포르쉐 박스터

2012-09-25     류민

박스터는 엔진을 차체 가운데에 얹는, 포르쉐의 미드십 로드스터다. 1996년 등장해 2005년 2세대, 2012년 3세대로 거듭났다. 크고 단단해진 차체, 성능과 효율 모두 개선한 엔진 등이 이번 변화의 핵심이다. 안팎에 많은 제약에도 불구하고 포르쉐는 박스터를 또 한 번 진화시켰다.



또렷한 인상과 다부진 몸집. 3세대 박스터의 첫인상이다. 이전세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매끈한 바디와 초롱초롱한 눈매의 귀여운 인상이 날카로운 인상으로 탈바꿈했다. 앞뒤 범퍼의 모서리, 보닛과 앞 펜더의 경계 부근, 도어 위쪽과 뒤 펜더 공기흡입구 등엔 반듯한 선이 도드라졌다. 빵빵하게 부푼 어깨선은 탄탄한 자세를 만들고 뾰족하게 날을 세운 헤드램프와 테일램프 등은 날렵한 느낌을 낸다.



덩치도 이전에 비해 확연히 커졌다. 전체 길이 32㎜, 앞뒤 바퀴 사이 길이를 60㎜ 늘린 결과다. 바퀴 크기도 키웠다. 휠만 키운 것이 아닌, 휠과 타이어를 합친 전체 직경을 늘렸다. 차체 높이는 13㎜ 낮춘 반면 바퀴 간 너비는 앞쪽 40㎜, 뒤쪽 18㎜를 늘렸다. 하지만 각 요소의 비율은 그대로 유지했다. 때문에 앞뒤 오버행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큼직큼직해졌다. 몸집은 부풀렸지만, 무게는 최대 35㎏ 줄였다. 주둥이부터 꽁무니까지 철저하게 쥐어짠 결과다. 차체 앞뒤, 바닥, 도어, 양쪽 트렁크 리드 등 차체의 절반 가까이를 알루미늄으로 빚었다. 실내에서도 무게를 덜어냈다. 소프트 탑의 프레임과 운전대 홀더의 재질은 마그네슘, 차체가 뒤집어질 경우 탑승자를 보호하는 롤오버 바의 기본 구조는 알루미늄 재질로 짰다. 강철 사용을 최대한 줄였지만 정적 비틀림 강도는 오히려 40% 늘었다. 무게중심은 6㎜ 낮췄다.



소프트 탑은 기초 설계부터 다시 했다. 센터콘솔에 붙은 스위치를 누르면, 지붕이 시트 뒤쪽에 차곡차곡 포개진다. 그런데 포개진 지붕의 덮개 역할을 할 패널이 없다. 지붕 앞쪽 프레임이 덮개 역할을 한다. 덕분에 12㎏나 감량할 수 있었다. 지붕을 감싼 천 재질도 바꿨다. 100㎞/h로 주행 시 실내 유입 소음이 75db에서 4db 줄어들었다. 체감소음은 절반가까이 낮아진 수치다. 지붕을 닫았을 때의 모양새도 한층 더 매끈해졌다. 앞 유리를 앞쪽으로 100㎜ 밀어내고 뒤 유리를 120㎜ 키웠기 때문이다. 지붕을 여닫는데 걸리는 시간은 9초. 최대 50㎞/h의 속도에서도 작동한다.



실내 역시 통째로 바꿨다. 한층 더 화려해졌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센터페시아와 완만하게 연결한 센터콘솔. 파나메라에서 선보인 디자인이다. 센터페시아 아래쪽에 따닥따닥 붙어있던 주행 관련 설정 스위치를 변속레버 아래쪽으로 옮겨 달았다. 쓰기도 편하고, 보기에도 좋다. 스티어링 휠과 변속레버가 가까워졌기 때문에 스포티한 느낌도 강해졌다. 5㎜ 낮아진 시트도 한 몫 한다. 다리공간은 25㎜ 늘렸다. 세 개의 원으로 나눈 계기판과 스티어링 휠 왼편에 붙인 열쇠구멍은 여전하다. 계기판의 오른쪽 원 안엔 각종 주행정보를 띄우는 4.6인치 모니터를 단다. 옵션인 PCM(포르쉐 커뮤니케이션 매니지먼트) 역시 신형이다. 모니터는 터치로 조작하는 7인치. 해상도가 높아진 것이 특징이다. 한국형 내비게이션은 물론 각종 멀티미디어와 외부기기 연결을 지원한다. 10개의 스피커와 8개의 디지털 앰프로 구성한 보스 서라운드 시스템은 옵션으로 선택 할 수 있다. 좌우 독립 공조장치, 전동 접이 사이드미러, 전후방 주차 카메라 등의 편의장비도 옵션이다.



포르쉐는 박스터에 두 종류의 엔진을 단다. 기본형은 최고 265마력, 28.6㎏·m의 힘을 내는 수평대항 6기통 2.7L 엔진을 얹는다. 이전 세대 기본형에 비해 배기량을 0.2L 낮췄지만 최고출력은 되레 10마력 높였다. 0→ 시속 100㎞ 가속시간은 5.7초(스포츠플러스 옵션 5.5초, 수동 변속기 5.8초), 최고속도는 262㎞/h(수동 변속기 264㎞/h)다. 박스터 S의 배기량은 3.4L 그대로다. 하지만 출력을 5마력 끌어올렸다. 늘어난 출력에 비해 성능 상승 폭은 크다. ‘제로백’은 5.0초(스포츠플러스 옵션 4.8초, 수동 변속기 5.1초). 이전에 비해 0.2초 단축했다. 최고속도는 5㎞/h 늘어난 277㎞/h(수동 변속기 279㎞/h)다. 변속기는 6단 수동 또는 7단 PDK(듀얼클러치 변속기)를 단다.



엔진은 이전보다 더욱 끈기 있게 회전한다. 최고출력 내는 회전 범위가 넓어졌다. 엔진의 들숨과 날숨을 조절하는 가변 밸브 타이밍(VarioCam Plus)의 조정 범위를 40도에서 50도로 넓혔기 때문이다. 공기량 측정방식도 에어플로 센서 방식에서 맵 센서 방식으로 바꿨다. 엔진이 들이키는 공기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기본형 2.7L 엔진은 더 빠른 회전을 위해 경량 합금 피스톤을 사용한다. PDK(듀얼클러치 변속기) 역시 개선했다. 응답성과 민첩성을 높였다. 스포츠 모드에서 기어를 내려 무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윗단 기어로는 최대한 늦장 부려 갈아탄다. PSM(주행안전장치)을 해제하면 긴장감의 수위는 한층 더 높아진다. 똘똘해진 PDK가 차체 기울어짐과 스티어링 각도를 계산해 굽이진 길을 달릴 땐 윗단 기어로의 변속을 자제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3세대 박스터는 PTV(포르쉐 토크 벡터링)와 다이내믹 변속 마운트를 단다. PTV는 스티어링 휠 꺾는 반대 방향 바퀴에 더 많은 구동력을 전달하는 장치. 앞머리를 비트는 속도와 주행 안정성을 높인다. 다이내믹 변속 마운트는 변속기와 차체를 연결하는 부품을 말한다. 차체가 기울어질 때마다 내부가 탱탱하게 부풀어 출력전달의 손실을 막는다.


효율은 출력과 성능 이상으로 높였다. 3세대 박스터의 연비는 이전 세대에 비해 약 15% 높아졌다. 포르쉐는 효율을 높이기 위해 공회전 방지장치, 전기 에너지 회수 시스템, 열 관리 장치, 탄력 주행 기능, 전동식 파워 스티어링 등을 달았다. 전기 에너지 회수 시스템은 제동 시 발생하는 에너지를 전기로 바꾸는 장치. 엔진에 붙은 발전기의 작동시간을 줄여 효율을 높인다. 열 관리 장치는 엔진과 변속기가 최적의 성능을 낼 수 있는 온도를 유지해 동력계통의 부하를 줄인다. 탄력 주행 기능은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기어를 중립으로 바꾼다. 때문에 엔진 브레이크 없이 관성을 이용해 달릴 수 있다. 전동식 파워 스티어링 휠은 기존 유압식에 비해 0.1L/100㎞의 연료를 아낀다.



사실, 박스터의 진화과정은 치열했다. 소비자가 바라는 대로 몸집을 키우고, 안팎을 화려하게 다듬었다. 편의 장비도 잔뜩 실었다. 하지만 쉽사리 성능을 올리긴 힘들었다. 포르쉐와 같은 스포츠카가 지구를 병들게 한다고 말하는 환경론자의 감시 때문이다. 포르쉐는 박스터를 쥐어짰다. 차체 구석구석에서 무게를 덜어냈다. 엔진과 변속기는 갈고 닦았다. 첨단 기술도 모두 도입했다. 그 결과 3세대 박스터는 독일 뉘르부르크링 노르드슐라이페(Nürburgring-Nordschleife) 서킷에서 7분 58초의 기록을 세웠다. 이전 세대보다 12초 빠른 기록이었다.


이전 박스터도 충분히 빠른 차였다. 하지만 3세대 박스터는 또 한 번 한계를 넘어섰다. 손쉽게 성능을 높이지 못했던 이유는 또 있다. 포르쉐의 상징인 911 때문이다. 박스터는 911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다. 포르쉐도, 또 포르쉐의 팬들도 원치 않는 일이다. 하지만 포르쉐는 훌륭하게 해냈다. 안팎의 많은 제약에도 불구하고 박스터는 높은 성능과 효율로 경쟁자 사이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포르쉐가 3세대 박스터로 이룬 진화가 더욱 값진 이유다.


글 류민 기자 | 사진 최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