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스턴 마틴과 AMG의 두 번째 작품, '밴티지'

2018-01-05     윤현수

영국 슈퍼카의 심장, 애스턴 마틴은 최근 꾸준히 실적을 개선해왔다. 메르세데스-AMG와의 협업으로 빚어낸 'DB11'의 판매 호조로 인한 결과다. 특히 DB11은 작년 1분기에 10년 만의 흑자를 안겨주며 확실한 효자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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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카 메이커와 같이 모델 주기가 자연스레 길 수 밖에 없는 메이커들은 소수의 모델들로 길게 연명해야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당연하다. 그런 와중에 자금 부족으로 쩔쩔매던 애스턴마틴은 제아무리 팬의 입장이라 해도 너무하다 싶은 '사골'쇼를 선보였었다.

현대의 자동차 세계는 프리미엄 브랜드들조차 신속하게 변화하는 시장에 맞춰 모델 교체 주기를 빠르게 가져가는 시대인지라, 애스턴 마틴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덕분에, 오래간만에 등장한 완전 신차 DB11은 '자동차 브랜드는 신차로 먹고산다'라는 오래된 문구를 다시금 깨닫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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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13년 만에 2세대로 변신한 밴티지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특히 시간의 흐름과 함께 초대 모델의 뛰어났던 엔지니어링도 결국 퇴색되며 브랜드와 감성만으로 바라봐야 했던 애스턴 마틴의 탈바꿈과 함께 밴티지도 더 이상 감성만으로 의존하는 자동차가 아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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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AMG 기술력을 수혈받은 두 번째 작품은 전형적인 애스턴마틴제 슈트를 입은 것은 아니다. 물론 디자인 헤리티지인 라디에이터 그릴 및 에어 인테이크를 통합한 빅마우스는 유지했으나, 위치를 한껏 내린 탓에 밴티지의 후속 모델이라고 넌지시 이야기해주기 전까진 알아채기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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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 새로운 밴티지의 디자인이 제법 의미가 있는 것은, 2015년 개봉한 007 시리즈 '스펙터'에 출연했던 DB10의 양산 버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 이름과 마찬가지로 10대만 생산되었던 DB10은 007 시리즈를 위한 기념 모델에 불과했으나, 밴티지는 그야말로 본드카의 현실화라 부를 수 있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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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끈하다 못해 관능적이기까지 한 옆태는 여전한 브랜드 시그니처 포인트. 길고 가늘게 늘어뜨린 테일램프 스타일은 종전의 로드카 라인업 모델들을 떠올리면 상당히 신선하게 보인다.

아울러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술적이고 심미적인 부분을 강조했던 이전과는 달리 공기역학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기능적 요소들을 상당히 많이 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본형 모델임에도 마치 선대 모델을 서킷 전용으로 빚어놓은 듯한 과격한 형상의 립스포일러와 디퓨저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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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닛 아래 깊숙이 탑재된 4리터 V8 트윈-터보 엔진은 메르세데스-AMG로부터 수혈받은 것. 최고출력 510마력에 최대토크 69.8kgm의 파워를 내는 해당 유닛은 ZF 8단 자동변속기와 매칭되어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3.6초 만에 도달한다. 여기에 최고 시속은 314km까지 뻗는다.

V12 엔진을 장착한 DB11보다 100마력 가량 낮은 성능을 지녔음에도 공차중량 기준 몸무게가 200kg 이상 가벼워 초고속 영역을 제외한 가속 성능이 DB11보다 뛰어나다. AMG가 특급 심장을 전해준 덕에 막내는 손위형과 대등할 정도의 걸출한 면모를 갖추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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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기반이 된 최신 알루미늄 섀시는 DB11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이나, 애스턴 마틴은 밴티지를 위해 70% 가까이를 새로 만들어냈다. 아울러 주행 안정성과 역동성을 향상시켜주는 다이내믹 스태빌리티 컨트롤(Dynamic Stability Control) 및 다이내믹 토크 벡터링(Dynamic Torque Vectoring) 등과 같은 전자장비들이 무수히 탑재하고 무게 배분도 전후 50:50으로 나눠 선대 모델이 지녔던 스포티한 특성을 더욱 극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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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출신 성분과 마찬가지로 인테리어도 애스턴마틴과 메르세데스-벤츠의 DNA가 뒤섞인 듯하다. DB11과 마찬가지로 메르세데스 벤츠의 커맨드(COMAND) 컨트롤러도 구비해놓고, 여기저기 만재한 버튼들도 AMG GT의 감성을 어느 정도 느끼게 한다. 그러면서 앞 쪽에 요란한 엔진 시동 버튼과 버튼식 기어 셀렉트를 마련하여 도통 어떤 브랜드의 차량인지 헷갈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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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임러와의 긴밀한 협업으로 탄생한 DB11과 밴티지는 그야말로 애스턴마틴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지부진했던 기술 발전으로 '슈퍼카'라는 타이틀은 유명무실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당당히 보닛에 들어찬 독일제 파워트레인은 애스턴마틴을 영국 슈퍼카의 상징으로 다시금 거듭나도록 했다.

이미 시판되고 있는 새로운 밴티지의 가격은 120,900파운드(한화 약 1억 7740만 원)부터 시작하며, 올해 2분기부터 인도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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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골탈태를 겪은 밴티지를 지켜보고 있자면, 여태 애스턴 마틴이 품어온 전통에 어긋나는 부분들이 하나둘 엿보이긴 한다. 그럼에도 전통은 언젠가 깨지기 마련. 유서 깊은 가문의 연명을 위해서 애스턴 마틴은 변화해야 했다. 적자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결과물이 바로 DB11과 밴티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