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대 '씨드', 클래스 최고 자리를 탐하다

2018-02-23     윤현수

3세대 씨드가 '2018 제네바 모터쇼'를 통해 유럽 시장에서 공식적인 데뷔 무대를 가진다. 도전자 시절의 혈기 넘치는 모습은 조금 희미해졌지만, 원숙미가 묻어나는 여유를 보이며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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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소비자들을 위해 빚어진 씨드는 처음 시장에 소개된 2006년 이후, 기아차에게 있어 분수령과도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해왔습니다" 기아차 유럽 법인 최고 운영 책임자(COO) 마이클 콜의 말마따나, '씨드'는 현재 유럽시장에서의 기아차를 있게 한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컴팩트 / 서브 컴팩트 SUV들이 득세하기 시작하며 해치백 시장도 갉아먹는 와중이라 사실 현재는 1세대 모델만큼 씨드가 기아차를 이끌고 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지난해 기아차 유럽 법인 판매량 중 씨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달해 여전히 브랜드에 높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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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V와 크로스오버들이 해치백과 왜건의 성지였던 유럽 시장마저 잠식하는 와중이라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긴 해도 유럽에서 가장 사랑받는 차종은 해치백이다. 지난해 유럽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자동차 10대를 나열해봤더니 그중 7대가 해치백이었다. 굳이 부가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될만한 확실한 근거다.

시장의 형세가 조금씩 뒤바뀌어가는 통에 씨드의 활약상이 예전만 못하기는 해도, 3세대로 거듭난 씨드의 목표는 다름 아닌 브랜드 위상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1-2세대 씨드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와 풍성한 편의장비 구성으로 높은 가격 대비 가치를 자랑했다. 이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 확립과 더불어 볼륨 상승 이루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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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3세대부터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변방의 도전자가 아니라 이제는 확실한 유럽 C세그먼트 해치백 시장의 핵심 일원이라는 것을 보여줄 때라는 것이다. 같은 플랫폼으로 개발된 현대차 i30가 그랬듯, 신형 씨드 역시 기본기 강화와 더불어 만듦새의 수준 높이기에 초점을 맞춰왔다. 유럽의 강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 말이다.

새롭게 매만진 스타일링도 선대 모델이 보였던 화려함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지녔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마치 모기업이 급진적 진보와 혁신을 통해 엄청난 속도로 볼륨을 키우고 난 이후, 이전과는 상이한 변화의 방향성을 보이는 것과 매우 유사한 뉘앙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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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선대 모델의 경우 낮은 노즈 형태를 최대한 강조하여 조형적 역동성을 한껏 발휘하려 했다. 특히 A필러부터 시작되는 벨트라인이 C필러까지 서서히 상승하며 쐐기 형태의 측면부 디자인을 형성하는 것이 2세대 씨드 디자인의 백미였다.

그러나 화려했던 그린하우스 디자인을 차분하게 다듬고, BMW가 15년 전에 이야기했던 '플레임 서피스'를 연상시켰던 표면 처리도 이제는 과거 이야기가 되었다. 이를 통해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인상이라기 보다 3세대 i30와 마찬가지로 '안정적'인 인상을 안기고 있다. 그러면서 'X'자 형태의 헤드램프 디테일을 집어넣어 K3를 비롯한 컴팩트 라인업만의 캐릭터를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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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를 열고 마주한 실내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인테리어 만들기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HMI (Human-Machine Interface)를 기반으로 한 컨트롤러와 버튼의 크기나 위치 등의 설정은 물론, 운전자 시선 이동의 최적화를 통해 인테리어의 기능적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테면 운전대에서 손을 떼지 않고 각종 멀티미디어 및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조작을 위해 스티어링 리모컨 버튼들은 좌우 스포크에 몰아넣었고, 센터페시아 모니터는 운전자가 시선을 우측으로만 살짝 옮기면 되는 곳에 위치했다. 센터페시아 버튼들의 크기를 일정하고 큼직하게 다듬어 오조작 가능성을 줄인 것 역시 동일한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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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닛에는 1.4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과 'U3'로 진화한 1.6리터 디젤 엔진을 새로 담는다. i30, 그리고 벨로스터에 적용된 바 있는 1.4 터보 엔진은 저배기량 터보 엔진 특유의 적당히 매콤한 성능과 높은 효율을 자랑하며 다분히 주력 엔진 다운 면모를 보인다. 

아울러 개선을 이룬 U3 디젤 엔진은 유로 6 배기가스 기준을 충족하는 것은 물론 선택적 촉매 환원장치와 각종 배기가스 컨트롤 기술로 배기가스 감소와 더불어 효율성 향상을 이룩하는 최신예 유닛이다. 이 새로운 심장들은 수동변속기를 기반으로 하지만, 7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도 선택 사양으로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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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이 유럽 도로, 그리고 유럽 소비자들을 겨냥하여 빚어진 전략 모델답게 씨드는 세대를 거듭하며 차츰 진화를 이뤄왔다. 그리고 형제 브랜드인 현대차가 그렇듯, 이제는 승차감과 핸들링이라는 요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K2 아키텍처를 토대로 두고 제작된 씨드는 현대차 그룹이 전사적으로 향상시키고자했던 기본기 측면에서 눈부신 발전을 보일 예정이다. 형제차인 i30 3세대 모델이 그랬듯 질긴 차체와 더불어 효율성과 성능을 아우르는 각종 파워트레인, 그리고 신뢰도를 크게 키운 섀시를 자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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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30가 유럽 시장에서 호평받고 있다는 것은 형제 브랜드인 기아차에게도 희소식으로 다가온다. 특히 한국제 해치백 모델들이 해당 시장에서 평가절하를 받았던 주된 원인이 다름 아닌 '주행성능' 문제였음을 감안하면, 3세대 씨드야말로 C세그먼트 해치백 시장의 정상 궤도에 들어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된다.

스포츠성을 극대화한 'i30 N'이 'EVO'와 같은 현지 전문매체로 하여금 대호평을 이끌었다는 것도, 씨드의 고성능 모델 라인업인 '씨드 GT'의 또 다른 진화를 기대하게 만든다. 바꿔 말하면, 현대차 그룹이 부여했던 '브랜드 가치 상승'이라는 임무를 i30가 매우 충실히 해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씨드 역시 i30와 더불어 그 쌍두마차 역할을 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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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여지껏 시장에서 호평을 받을 수 있었던 요소들을 버린다는 것은 어불성설. 현대기아차 컴팩트 해치백 듀오는 수준 높은 편의장비를 풍부히 품었다는 메리트를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며, 라이벌들보다 조금이라도 저렴한 가격대를 유지하면서 만듦새 수준을 높일 것이다.

한편, 기아차는 지난 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공개한 바 있는 '프로씨드' 컨셉트가 보여준 '익스텐디드' 모델도 라인업에 추가한다. 슈팅브레이크 스타일의 꾸민 가지치기 모델을 통해 소비자 선택폭의 확장과 더불어 모델 이미지 다각화도 신경 쓰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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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서 어포스트로피를 뺀 씨드는 마치 기름기를 빼듯 더욱 담백해지고 신뢰도를 높인 웰메이드 해치백이 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스포티지가 유럽 시장에서 활개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그 주역이 조금 더 높은 곳을 향한 발걸음을 시작하려 한다. 넓은 중원에서 뛰어노는 토종 유럽 해치백들을 지그시 바라본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