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고도 뜨거운 심장, 엔진]대우 XK엔진 편

2018-02-27     박병하

자동차의 엔진은 두 가지의 상반된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는 차가움이고, 나머지 하나는 뜨거움이다. 이렇게 두 가지의 상반된 속성을 갖는 이유는 금속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증기기관으로부터시작된 엔진의 역사이래, 인류는 항상 금속으로 엔진을 만들어 왔다. 최근에는재료역학의 발달로 인해, 금속 외의 다른 합성 재료를 사용하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지구상의 모든 엔진의 주류는 금속이다. 강철과 알루미늄 등의금속은 엔진이 잠에서 깨어난 시점부터 가동 시간 내내 발생하는 고열과 마찰 등의 모든 부담을 감당할 수 있으며,대량생산에도 적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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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으로 만들어진,차가우면서도 뜨거운 자동차의 심장, 엔진의 세계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본 기사에서 다룰 수많은 자동차의 엔진들 중 스무 번째 이야기는 ‘8년’이라는, 엔진으로서는 실로 짧은 생을 살았던 엔진이다. 이 엔진은 개발 주체인 대우자동차의 집념을 고스란히 담아낸, 혁신적인엔진이었다. 이 엔진의 이름은 XK엔진. 대우 매그너스의 ‘L6 엔진’으로불리던 그 엔진이다.

국내 최초, 세계에서 둘 뿐인 가로배치 직렬 6기통 엔진

대우 XK엔진은 1995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어 2002년, 매그너스 L6 모델을 시작으로 도입했다. 대우 XK엔진은 당시 볼보자동차 S90과함께 세계에서 둘 뿐인 전륜구동형 직렬 6기통 엔진이었다. 또한국내 완성차업계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최초의 직렬 6기통 엔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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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 한창 성장하고 있었던 대우자동차는 에스페로를통해 1.5리터급 소배기량 엔진은 독자개발에 성공했지만 2.0리터급엔진은 홀덴의 4기통 엔진을 사용하고 있었다. 또한 대우자동차는승용차 시장에서 풀-라인업을 구성한 현대자동차와 경쟁하기 위해 홀덴 엔진보다 상급의 엔진을 개발해야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이에 대우자동차는 독일 뮌헨에 새로 설립한 파워트레인센터를 통해 ‘한 생산 라인에서 다기통 엔진 생산이 가능한’ 신형엔진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XS’라는 코드네임으로 연구되고 있었던 이 연구안은 98년부터 대우의 부평연구소로 넘어와 본격적으로 개발에 착수했다. 배기량은 2.0리터와 2.5리터급의 두 가지를 준비했고 영업용 차량 수요를염두에 두어 LPG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XK엔진의 개발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98년에개발이 시작되어 99년에는 생산 설비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2000년도에는프로토타입을 완성했다. XK엔진의 빠른 개발속도는 엔진 부품, 시스템, 매그너스 탑재 대응, 생산 설비 등에 이르는 과정에 동시공학(Concurrent Engineering)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동시공학은제품의 개발 및 생산을 동시에 진행하여 개발 시간을 크게 단축시킬 수 있다. 하지만 2000년, 대우그룹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생산이 지연되어 프로토타입개발이 끝나고 2년 뒤인 2002년에 선보이게 되었다. XK엔진의 개발에는 총 510억원이 투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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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 XK엔진의핵심은 국내 최초로 독자개발한 전륜구동 자동차를 위한 ‘가로배치’ 직렬 6기통 엔진이라는 점이다. 당시 세계에서 직렬6기통 엔진을 사용한 전륜구동 승용차는 볼보자동차의 S90과 GM대우의 매그너스 L6의 단 둘뿐이었다. 직렬 6기통 레이아웃은 이미 세계의 여러 제조사에서 사용하고 있었고지금도 일부 유럽계 제조사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전륜구동 자동차에는 좀처럼 쓰이지 않았다.

전륜구동에 직렬 6기통엔진을 사용하기 어려운 이유로는 엔진의 구조적 특성에 있다. 직렬 6기통레이아웃은 6개의 실린더가 일렬로 배치되기 때문에 V6 엔진에비해 엔진의 길이가 길다. 엔진의 길이가 길다는 것은 가로로 배치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엔진을 세로로 배치하면 실내공간에서 손해를 볼 수 있고 동력을 전달하는 과정이 복잡해져 구동 손실도 더 커질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실내공간 확보와 연비 향상이 곧 제품력으로 직결되는 양산차 시장에서는 직렬 6기통보다 V6 엔진이 절대 우세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직렬 6기통에는장점도 있다. 6개의 실린더가 일렬로 배치된 직렬 6기통엔진은 폭발 행정에 따른 진동을 잡는 설계가 V6 엔진에 비해 유리하다. 폭발행정이 수직방향으로만 작용하는 직렬 6기통엔진은 각각 두 개의피스톤을 함께 움직이게 만듦으로써 폭발행정에서 나오는 관성을 상쇄시킬 수 있다. 하지만 V6 엔진은 불균형한 폭발행정의 관성 억제를 위해 크랭크샤프트 밸런서같은 부품이 필수다. 진동이 적다는 것은 운전자의 피로도는 물론 차체가 감당하게 되는 피로도 역시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또한 두 개의 헤드를 갖는 V6 엔진과는 달리 헤드가 하나만 필요하기때문에 생산단가 상승도 다소 억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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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 XK엔진은직렬 6기통 엔진이면서도 같은 배기량의 직렬 4기통 엔진에못지 않은 소형화 설계가 가장 큰 특징이었다. XK엔진은 직렬 6기통레이아웃을 사용하면서도 기존 홀덴의 2.0 직렬 4기통 엔진에맞춰서 만들어졌던 매그너스의 엔진룸에 그대로 장착 가능하게 만들어질 것을 요구 받았다. 또한 변속기도기존에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어야 했다. 여기에 고급 자동차용과 수출의 주역으로 설계한엔진이었기에 직렬 6기통의 우수한 감성품질까지 요구되었다. 이런터무니없는 요구 사항을 충족하기 위해 XK 엔진은 당시 대우자동차 개발진이 투입할 수 있는 모든 것을쏟아 부어 만들어 진 엔진이기도 하다.

XK엔진은 알루미늄 합금 블록을 사용하며 실린더 블록과 헤드 사이의 냉각수 통로에 방해물이 없는 오픈덱(Open deck) 구조를 취하고 있었다. 밸브트레인은실린더 당 4밸브의 DOHC 방식. 캠구동에는 타이밍 체인을 사용하고 롤러 방식의 밸브 구동부를 적용하여 캠 구동에 걸리는 마찰력과 진동을 저감했다. 점화 시스템에는 분산형 점화 코일을 적용하고 3극식 이리듐 점화플러그를사용했다.

흡기 시스템은 플라스틱 흡기 매니폴드와 함께 독자적으로개발한 가변형 흡기 시스템(VIS)을 채용했다. 이 시스템은회전수에 따라 서지탱크의 체적을 달리할 수 있어 흡기 효율을 크게 올랐다. 흡기 유량 계산에 직접계측식의최신 센서를 도입하여 더욱 효율적인 제어를 통해 헤드의 온도 제어와 노킹의 방지까지 노렸다.

배기 시스템은 전체를 특수 튜블러 방식의 스테인리스소재로 제작하여 녹과 열변형을 최소화했다. 또한 대용량의 전자식 EGR(배기가스재순환장치)을 채용했다. XK 엔진의 EGR은 전자식으로 작동하며 EGR 라인의 설계를 최적화하여 연소실온도상승도 줄였다.

또한 2.5리터버전의 XK엔진은 대우의 유럽 및 미주지역 수출의 핵심으로 2.0리터버전과는 다른, 최신 기술들이 더 적용되었다. 2.5리터엔진에는 실린더 내벽에 독일에서 공수한 특수 코팅 라이너를 도입하여 실린더 내벽의 내마모성을 높였다. 피스톤또한 독일에서 도입한 특수 코팅을 적용하여 내마모성을 강화했다. 또한 ULEV 배기가스 규제를 충족하기 위해 특수 배기가스 저감장치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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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XK엔진은이 모든 것을 4기통 엔진의 크기에 우겨 넣기 위해 여러모로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감행해야만 했다. 그 중 하나는 실린더 블록의 설계다. 대우 XK엔진의 실린더간 간격은 6mm에 불과하다. 이는 2.5리터 버전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2.0리터 모델의 실린더간 간격은 8mm였다. 물론 대우는 이렇게 극단적으로 좁은 실린더 간격에도 불구하고 특수 코팅 기술 등에 힘입어 30,000km 연속운전 테스트를 통과해내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다이어트된 설계는 설계 상의마진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즉, 엔진의 모든포텐셜을 이미 초도 개발품에서부터 다 써버린 것이다. 이렇게 타이트한 설계는 차기 제품을 위한 출력강화나 엔진 바리에이션을 구성하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또한 기본적으로 설계 상의 마진이빠듯했기 때문에 10만km 이상 운전한 엔진에서 헤드 가스켓변형이나 실린더 블록에 크랙이 발생하는 등의 내구성 문제가 다소 불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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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그룹의 평지풍파와 해체에도 불구하고 끝내 개발을완료한 XK엔진은 기존의 직렬 4기통 엔진을 그대로 대체할수 있으면서도 직렬 6기통 엔진이 갖는 우수한 감성품질을 무기로 삼았다. 또한 당시 매그너스는 초기 포지셔닝의 실수로 그리 큰 반향을 이끌어 내지 못했으나, XK엔진을 실은 ‘L6 매그너스’로재편되면서 매그너스의 판매 호조를 이끌어 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일반 중형세단의 가격으로 고급승용차의 요소 중 하나인 직렬 6기통 엔진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세일즈포인트로 작용한 것이다. 또한 직렬 6기통 엔진의 뛰어난 정숙성과 감성품질을 지녀, 4기통 엔진을 사용했던 다른 중형세단과 차별화된 매력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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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너스에 사용되었던 대우 XK엔진은 매그너스의 후속 차종인 토스카(Tosca)에 적용되며 명맥을이었다. 토스카에는 XK엔진 외에도 XK 엔진과 함께 개발하고 있었던 대우의 독자개발 5단 수동변속기가조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우가 혼신의 힘을 다해 개발한 XK엔진은토스카의 단종을 끝으로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대우 XK엔진은세계에서 두 번째로 만들어진 전륜구동형 가로배치 직렬 6기통 엔진이라는 혁신을 보여주었다. 국내 기술로, 중형세단에서 직렬6기통 엔진의 우수한 감성품질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 XK엔진은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에남을 만한 엔진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빠듯한 설계로 인한 포텐셜의 부재는 XK엔진의 활용 가치를 떨어뜨렸다. 2002년 처음 선보인 대우 XK엔진은 2010년 생산이 종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