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레전드 SUV들이 돌아온다

2018-03-23     윤현수

현재 북미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키워드를 꼽자면 단연 SUV일 것이다. 크기를 불문한 SUV 제품들이 소비자들을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 일례로, 올해 1~2월 미국 자동차 판매량 차트에서 철옹성 같았던 미국 BIG3 업체의 픽업트럭 삼인방이 살짝 무너져버렸다. 절정의 인기를 구가 중인 닛산 컴팩트 SUV '로그'가 램 픽업트럭을 2개월 연속으로 꺾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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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램 픽업트럭이 풀체인지를 앞뒀기에 대기 수요 현상이라 해석할 수 있긴 해도, 작금의 SUV 열풍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와 더불어 포드는 현재 익스페디션과 링컨 내비게이터 등의 판매 호조에 힘입어 전 라인업을 SUV를 비롯한 크로스오버 모델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한편,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타고 미국 자동차 역사에서 굵직한 획을 그었던 SUV 모델들이 부활을 앞두고 있다. 포드는 터프한 숏바디 오프로더였던 '브롱코'의 차세대 모델을 무려 22년 만에 시장에 내놓을 것이라며 공언했으며, 지프도 럭셔리 대형 SUV 라인업 벌충을 위해 '왜고니어'라는 이름을 근 30년 만에 되살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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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SUV에 집중 투자를 계획한 포드는 링컨 브랜드를 통해 2000년대 초반 시장에서 잠깐 인기를 끌었던 고급 SUV인 '에비에이터'까지 다시 되살리며 수익을 왕창 끌어모을 생각에 빠져있다.

이는 SUV 열풍에 자연스레 편승함과 동시에 과거의 모델을 되살리며 브랜드 아이덴티티까지 확고히 할 수 있는 로- 리스크, 하이 리턴 (저 위험 고 수익) 전략이라 볼 수 있다. 시장 분위기에 따라 리스크는 크지 않은데도 대당 수익이 종전의 세단을 비롯한 여타 모델보다 크니 손을 대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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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티저 이미지가 공개된 신형 브롱코에 많은 미국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그 존재 의의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첫 탄생만 해도, 존재감은 당시 여느 자동차와 비교해도 독보적이었다. 3도어 타입의 굵직한 바디에 4x4 구성으로 출시된 브롱코는 자신만을 위한 독자 플랫폼 위에서 빚어진 '왕자'와도 같은 대접을 받으며 탄생했다.

그리고 생산성 향상을 위해 큰 기교가 없던 단순한 바디 디자인은 현재 시점에서 보면 너무나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면서도 브롱코는 그 극진한 대접에 부응하듯, 제설용 장비도 선택 사양으로 탑재할 수 있었고, 윈치나 견인 바 등을 설치할 수 있었기에 제법 다재다능한 면모를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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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 당시 고급 사양들을 잔뜩 품고 등장한 경쟁 모델들에 등장 탓에 초대 모델은 생각보다 많은 사랑을 받지 못했다. 이후 포드는 풀사이즈 픽업트럭 플랫폼을 활용하여 브롱코를 새로이 만들었고, 크기도 경쟁 모델에 걸맞게 한껏 키워내고 고급 장비들도 품어 상품성을 향상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조금 더 대중적인 노선을 밟자, 브롱코는 무려 30년간 5세대 모델까지 역사를 이어오며 소비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풀사이즈 SUV인 익스페디션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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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포드는 브롱코의 부활을 확정 지으며 꾸준히 소비자들에게 기대감을 불어넣어왔다. 특히 베일에 감싸여 있는 이번 티저 이미지는 초대 브롱코의 단순한 스타일링을 연상케하며 SUV 매니아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선수단에 오프로드 스페셜리스트를 하나쯤 영입하고 싶었던 포드에게 있어 이보다 반가운 지원군은 없을 터. 2020년 출시를 앞둔 브롱코가 포드 SUV 라인업의 이미지 리딩을 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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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SUV의 훈풍과 함께 주목받는 브랜드 중 하나는 지프다. 한 우물만 파왔던 자의 진가가 드러나고 있는 시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지프 역시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심정을 품고 있을 것이다. 지프는 최근 B세그먼트급 SUV를 추가한데다, 시장에서 활약상을 꾸준히 보여주는 메인스트림 모델을 잔뜩 구비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출신 SUV 전문 브랜드치곤 브랜드 플래그십의 면모가 다소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4x4 타입의 정통 SUV를 전문적으로 빚어온 브랜드라 '럭셔리'라는 단어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북미 시장에서 대형 럭셔리 SUV가 점차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음을 생각하면 지프의 입장이 다소 곤란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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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지프도 그랜드 체로키의 상위급 모델을 기획했으며, 출시를 앞두고 있다. 앞서 언급한 '왜고니어(Wagoneer)' 네이밍을 활용한 신차를 내놓아 대형 럭셔리 SUV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계획이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활약했던 그 럭셔리 SUV의 시초가 시장에 복귀를 선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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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처음 등장한 왜고니어는 지프의 플래그십 모델로 1990년대 초까지 제법 오랜 기간 동안 활약해왔다. 이름에 걸맞게 스테이션 왜건 차체를 살짝 들어 올려 터프함을 가미했던 왜고니어는 왜건 특유의 실용성을 자랑했다. 여기에 당시 4x4 모델로서는 볼 수 없었던 독립식 프런트 서스펜션을 비롯한 고급 편의장비들을 품어 고급차를 원했던 소비자들에게 호응 받을 수 있었다.

여담으로 왜고니어는 이러한 구성을 통해 당시 가장 승용차 다운 4x4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크로스오버 개념이 전무했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왜고니어가 랭글러를 위주로 빚던 지프의 작품임이 믿기지 않았을 것이다. 새로이 시장에 등장하는 왜고니어 역시 초대 모델과 같이 브랜드의 편견을 깨며 시장에서 활약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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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프는 왜고니어를 통해 같은 4x4 전문 브랜드인 랜드로버의 레인지로버를 겨냥하여 프리미엄 SUV 시장에서 활개치고 싶어 한다. 그야말로 미국 BIG3 브랜드 중 유일하게 해당 시장에 발을 들이지 못하고 있는 FCA의 숙원을 풀어줄 해결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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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프는 최근 튜닝카 7종을 공개한 바 있다. 최신예 랭글러와 레니게이드 컨셉트카들의 틈바구니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왜고니어 로드트립'이었다. 뜬금없이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왜고니어 복각판의 등장은 근 30년 만에 부활하는 왜고니어 네이밍을 끄집어내어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려는 면모가 엿보였다.

SUV 개념이 정착되지 않았던 1960년대 활약했던 전설들이 2020년대에 시장에 복귀하며 그 명성을 되찾으려 한다. 2~3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들이 지녔던 가치는 여전히 빛을 발할 수 있을까? SUV 열풍을 타고 이뤄진 전설들의 복귀에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