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시작, 컨셉트카]현대 포니 쿠페

2018-10-16     이창호

컨셉트카는 자동차 제조사의 새로운 디자인과 스타일, 새로운 기술력을 선보이기 위해 개발하는 일종의 프로토타입이다. 주로 모터쇼 같은 자동차 전시회에 선보이는 자동차로 관람객들과 소비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을 보이는지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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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컨셉트카는 바로 출시와 함께 양산할 수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소비자들의 의견과 양산 가능성, 실용적인 디자인과 가격, 제조사가 만들어낼 역량까지도 생각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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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흥미로운 컨셉트카의 역사는 존재한다. 바로 현대차가 처음으로 만든 포니 쿠페 컨셉트카이다. 포니 쿠페 컨셉트카는 현대 포니 세단에서 파생된 컨셉트카는 이탈디자인의 조르제토 쥬지아로가 디자인했고 미국 드로리안 모터스 컴퍼니의 드로리안 DMC-12의 선조격인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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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포니 쿠페 컨셉트카는 생산을 목적으로 연구 및 개발되었다. 현대차는 프로토타입 Asso di Fiori(이하, 아소 띠 피우리)라는 모델명을 바꾸고 싶었지만, 이미 이탈디자인에서 이미 아소 디 피오리라는 모델명으로 보도자료를 발표되는 바람에 결국 아소 띠 피우리라는 모델명을 갖게 됐다. 아소 띠 피우리라는 모델명에 대해서는 ‘ 일본기자들은 이탈디자인이 장난으로 이름을 붙였나?’라고 생각 했다는 언급이 이탈디자인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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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는 1974년 자신들의 자동차를 개발하기 위해 British Leyland의 오스틴 모리스(Austin morris)전 관리 이사를 고용했다. 그는 영국출신의 자동차 엔지니어인 케네스 버넷(Kenneth Barnett)과 차체 설계 엔지니어 존 심슨(John Simpson), 그리고 에드워드 채프먼(Edward Chapman)을 현대차로 적극 영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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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시 엔지니어인 존 크로스와이트(John Crosthwaite)와 수석 개발 엔지니어 피터 슬래터(Peter Slater), 모리스 마리나(Morris Marina)는 포니 쿠페의 파워트레인을 미쯔비시제 엔진과 변속기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미 제작했던 포드 코티나의 일부 부품 과 이탈디자인의 쥬지아로가 디자인한 간결한 해치백 쿠페 스타일의 바디를 이용해 현대 포니쿠페를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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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는 극단적으로 얇은 차체와 그래픽적인 표면처리 바디 컬러와 똑같은 범퍼 채용은 차체를 좀더 세련되 보이게 했다. 인테리어 디자인도 이탈디자인의 초기 컨셉트카 중에서 가장 유려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될 정도로 훌륭했다. 운전석 영역의 대시보드는 원통형으로 디자인했고, 이러한 디자인은 시트와 일체감을 높여주는 요소로 작용했다. 이러한 점들은 당시 포니 쿠페를 성공적인 컨셉트카로 만들어준 요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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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포니쿠페는 정식 모델로 양산되지 못했지만 1974년 10월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는 발표되었다. 그러나 포니 쿠페 컨셉트카가 기반이 되어 포니1이라는 불세출의 모델을 1975년 12월에탄생시켰다. 롱 노즈 패스트 백 스타일의 포니1 모델은 국내 시장에서 새한 제미니, 기아 브리사와 경쟁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또한, 픽업 트럭은 1976년 5월, 1977년 4월에는 스테이션 왜건 그리고 1980년 3월에는 3도어 해치백 모델을 추가했다.

양산을 통해 정식으로 시장에는 등장하지 못한, 자신을 토대로 포니시리즈를 탄생시킨 컨셉트카 아소 띠 피우리라는 포니 쿠페는 불운한 운명을 가졌지만, 현재의 현대차를 만든 원천이 되는 자양분을 제공한 차임에는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