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산 재료, 미국식 레시피 - 지프 체로키 리미티드 2.0 4WD 시승기

2014-09-15     박병하

새로운 체로키가 오랜만에 한국을 찾았다. 지난 8월 20일, 서울 코엑스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체로키는 파격적인 디자인과 동급 최고의 오프로드 주파 능력을 앞세워 7년 만에 다시금 소비자 앞에 섰다. 7년 만의 부활이라고는 하나, 사실 13년 만의 부활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 동안 국내 시장에서 판매됐던 체로키(KJ)는 본래 `리버티`라 불렸던 모델이었기 때문. 리버티는 선조라 할 수 있는 체로키(XJ)와는 큰 관계가 없는 새로운 개념의 모델이었다. 리버티는 북미 시장에서 꾸준한 실적을 냈으나, 한국에서는 맏형인 그랜드 체로키보다는 판매가 부진했다. 또한 커맨더의 외모를 그대로 가져온 2세대 리버티(KK)부터는 국내 시장에 소개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접근하면 새로운 체로키(KL)도 리버티의 후속이라 보는 것이 타당할 수 있다. 개발 중의 코드네임부터 리버티의 계보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모델임이 드러난다. 하지만 지프는 새로운 모델의 이름을 굳이 `체로키`라 명명했다. 디자인에서부터 리버티의 흔적을 안팎으로 깨끗이 씻어내는 한편, 알파로메오의 섀시, 피아트의 엔진, 그리고 ZF의 9단 자동변속기를 도입했다. 지프의 글로벌 모델로 탈바꿈한 체로키를 시승하며, 유럽산(産) 재료로 완성된 미국식 SUV의 능력을 진단해보고자 한다. 시승차는 체로키 2.0 리미티트 모델로, VAT포함 가격은 5,640만원이다.




새로운 체로키는 등장 때부터 독특하고 개성적인 외모로 화제가 되었다. 특히 얼굴에서 그 파격적인 시도가 나타난다. `헤드램프는 통상적으로 최상단에 위치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간혹 최상단의 콤비네이션 램프(이하 콤비 램프)를 헤드램프라 착각할 수 있으나, 헤드램프는 콤비 램프 하단에 위치한다. 이는 닛산 쥬크와도 비슷한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길쭉하고 날렵한 형상의 주간주행등 방향지시등 구성의 콤비 램프는 기존의 지프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날렵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헤드램프의 배치 때문에 어딘가가 미묘한 느낌을 준다. 파격적이지만 호불호가 크게 갈릴 법한 얼굴이다.




브랜드의 전통과 아이덴티티를 중요시하는 지프의 모델답게, 옛 모델들의 디자인 요소를 살려내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중간이 가로로 꺾인 형상을 하고 있는 7슬롯 라디에이터 그릴은 선대 모델인 코드네임 TJ 및 YJ 랭글러의 것을 기초로 재해석했다고 한다. 또한 지프가 고집스럽게 만들어 오고 있는 사다리꼴 형상의 휠 아치 디자인은 기능적인 면에서는 물론, 브랜드의 상징적인 이미지까지 구현해내고 있다. A필러 부근에서 하강했다가 뒤쪽으로 갈수록 상승하는 윈도우 라인도 독특한 느낌이다. 이는 옛 Jeepster나 랭글러 모델에서 선보였던 것을 재해석한 결과물이며, 이를 통해 운전자에게 추가적인 측면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고 크라이슬러 측은 말한다. 하지만 시야 확보에 대해서는 그다지 유의미한 느낌을 받지는 못한다.



새로운 체로키의 인테리어는 워즈 오토(Ward´s Auto)에서 선정한 `10 Best Interior`에 선정된 바 있다. 또한 체로키의 인테리어는 향후 지프 인테리어의 디자인 방향을 보여준다. 이러한 디자인은 이미 그랜드 체로키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본다. 체로키의 인테리어는 맏형인 그랜드 체로키의 차분한 분위기에 비해 감각적인 면모가 조금 더 부각된 듯하다. 인테리어는 지프 고유의 사다리꼴 형태를 곳곳에 적용함은 물론, 모로코, 베수비어스, 그랜드 캐년의 세 가지 색상 테마를 마련해 두고 있다. 마감품질이나 질감은 대체로 만족스러운 느낌을 준다. 과거의 미국차에서 볼 수 있는 부실한 마무리와는 한참 거리가 있다.




스티어링 휠은 그랜드체로키의 것을 그대로 가져왔으며, 8.4인치 터치스크린 유커넥트(Uconnect®) 멀티미디어 커맨드 센터 역시 그랜드 체로키와 같은 것을 사용한다. 7인치 컬러 멀티-뷰(Multi-View) 주행 정보시스템도 그랜드 체로키와 비슷한 구성을 따르고 있다. 센터페시아의 구성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전반적으로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구성이 돋보인다.




앞좌석은 세미 버킷 타입으로 만들어져 있다. 약간 탄탄한 착좌감을 보이며, 급회전 상황 등에서 몸을 곧잘 잡아 준다. 운전석은 요추받침 포함, 12방향 전동 조절 기능을 제공하지만, 조수석은 모든 것이 수동 레버로 작동된다는 것이 다소 아쉬운 점이다. 기능적인 면에서는 문제가 없으나, 가격을 고려하면 다소 설득력이 부족하다. 뒷좌석은 다소 빠듯한 공간을 제공한다. 오히려 막내인 컴패스보다도 공간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뒷좌석은 전후 슬라이딩 기능과 각도조절 기능을 제공한다. 하지만 뒷좌석의 공간 자체가 한정된 편이어서 짐을 실을 때를 제외하면 그다지 유의미한 기능으로 비춰지지는 않는다.



뒷좌석 선반을 제거한 상태에서의 트렁크 용량은 824리터. 이는 트렁크 하부의 별도 수납 공간까지 계산한 수치다. 뒷좌석을 모두 접었을 때는 1,555리터로 용량이 증가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경쟁자들의 최대 트렁크 용량이 기본적으로 1,600리터를 상회하는 것을 볼 때, 체로키의 트렁크 용량은 큰 수치라고 보기는 어렵다. 체감 상으로도 트렁크 용량은 그리 크지 않게 느껴진다.



국내에 수입되는 체로키는 2.4리터 멀티-에어 가솔린 엔진과 2.0리터 멀티젯2 디젤 엔진의 두 가지 엔진, 그리고 ZF의 신형 9단 자동변속기로 구성되는 파워트레인이 준비되어 있다. 시승차인 체로키 리미티드 모델은 2.0리터의 멀티젯2 디젤엔진이 탑재되어 있다. 최고출력 170마력/4,000rpm과 35.7kg.m/1,750rpm의 최대토크를 발휘하는 디젤 엔진은 지프 그룹 모델 중 체로키에 최초로 쓰이게 되었다.



체로키의 체감 소음 수준은 낮은 편이다. 기본적으로 무난한 수준의 정숙성과 회전질감을 멀티젯2 디젤엔진의 덕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쉴 틈 없이 변속하여 회전 수를 2,000rpm 이하의 저회전 영역으로 머무르게 하는 9단 변속기의 보조가 체로키의 정숙성에 큰 몫을 차지한다. 그러나 간혹 D레인지 상태에서 브레이크를 밟고 있을 때 다소 거친 진동이 들어올 때가 있다. 또한 외부에서의 소음유입이 약간 크다는 점도 아쉬움을 남긴다. 또한 가속페달을 떼었다 밟았다 하는 동안 둔탁한 변속충격이 이따금씩 느껴진다. 승차감은 안락함에 집중한 편으로, 노면의 요철을 부드럽게 걸러준다.



스포츠 모드에서 가속을 시도하면 30km/h에서 2단으로 변속되고, 50km/h에 도달하기 전에 3단으로, 70km/h 언저리에서 4단으로 변속되고 나서야 속도계의 바늘이 100km/h에 도착한다. 그리고 바로 5단으로 넘어간다. 체로키의 가속 성능은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가속 페달의 반응이 둔하고, 4륜구동까지 얹은 1,880kg의 SUV를 밀어붙이기에는 엔진이 다소 힘에 겨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최대토크가 1,750rpm의 저회전에서 나오기 때문에, 고회전으로 갈수록 활력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이러한 연유로, 디젤 엔진을 얹은 체로키는 0-100km/h가속에 10초가 조금 넘는 시간을 소모한다.




새로운 체로키는 피아트-크라이슬러의 신형 CUSW 플랫폼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향후 출시될 알파로메오의 스포츠 세단 모델들이 채용하게 될 예정이다. 이 플랫폼은 알파 로메오 줄리에타와 닷지 다트에 적용된 것을 기초로 한다고 알려져 있다. 부드러운 서스펜션을 가진데다 무게중심이 높은 SUV로서는 의외로 세련된 몸놀림이 나온다. 그렇지만 좋은 느낌을 얻는 부분은 딱 거기까지다. 본 바탕은 단련이 잘 되어 있지만 기교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느슨한 스티어링 휠은 반응이 둔한 데다, 스포츠 모드에서조차 부드러움으로 일관하는 하체 때문에 차체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주질 않는다. 이는 안락한 주행질감을 중시하는 미국풍 가족형 자동차의 성격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지프가 그토록 자신 있어 하는 오프로드에 뛰어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맏형인 그랜드 체로키도 그렇듯이, 체로키는 오프로드에서 좀 더 좋은 느낌을 준다. 저속기어를 갖춘 4륜구동 시스템, 셀렉터레인 지형반응 시스템이 맞물려 상급의 오프로드 주파능력을 보인다. 고저차가 높아 바퀴가 뜬 상황에서도 여유 있게 대응하는 4륜구동 시스템은 체로키의 오프로드 주파 능력을 높여주는 일등공신이다. 시승차인 리미티드 모델에 적용되는 저속기어는 가파른 오르막에서도 무리 없이 차를 밀어 올려주고, 바퀴가 헛도는 상황에서 빠져 나오기 용이하게 만들어 준다. 다소 높은 최저지상고도 체로키의 오프로드 성능을 뒷받침해주는 요소로, 가파른 임도나 거친 지형에서 차체 하부의 손상을 피할 수 있다.



체로키의 연비는 설득력이 있다. 공인연비는 도심 12.3km/l, 고속도로 16.8km/l, 복합 14.0km/l로, 2등급의 연비를 보인다. 이는 경쟁상대로 지목한 X3에 비해서는 소폭 밀리지만, 메르세데스-벤츠의 GLK220 4매틱이나 아우디 Q5보다 높은 수치다. 실제 운행하며 트립컴퓨터 상으로 기록한 평균연비도 공인연비에 가깝다. 도심에서는 혼잡할 때 11.0km/l, 교통 흐름이 원활한 경우에는 12.5km/l까지 기록했다. 고속도로에서는 17.0km/l까지 낼 수 있었다. 9단에 달하는 자동변속기와 유럽형 2.0리터 디젤 엔진의 조합에 힘입은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체로키는 론지튜드 2.4 AWD, 론지튜드 2.0 AWD, 리미티드 2.0 4WD의 세 가지 모델로 운영된다. VAT 포함 가격은 체로키 론지튜드 2.4 AWD 4,990만원, 체로키 론지튜드 2.0 AWD 5,290만원, 체로키 리미티드 2.0 4WD는 5,640만원으로 책정되어있다. 하지만 크라이슬러 코리아는 체로키의 저변을 확대 하고자 500명에 한하여 론지튜드 2.4 AWD는 4,330만원, 론지튜드 2.0 AWD는 4,830만원, 리미티드 2.0 4WD는 5,280만원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이 가격은 한정 판매되는 500대의 재고 소진과 동시에 정상가로 돌아간다고 한다.



새로운 체로키는 지프의 달라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유럽의 파워트레인과 개성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디자인을 적극적으로 도입했으며, 브랜드의 오리지널리티는 지켜나가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전반적인 품질감에 있어 괄목할 만한 발전이 있었다. 또한 아낌 없이 채워 넣은 각종 편의 사양들도 체로키의 경쟁력을 올려준다. 이는 유럽과 일본의 경쟁자들과의 승부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체로키는 프리미엄급의 경쟁자들과 대결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도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SUV를 원하는 소비자들은 더욱 남다른 무언가를 원한다. 하지만 체로키는 이러한 기준에는 다소 미치지 못하는 요소들이 몇 가지 존재한다. 매끄럽지 못한 변속감, 둔중한 느낌을 주는 온로드 주행성능과 질감 등이 그렇다. 물론 체로키의 오프로드 주파 능력은 높이 평가할 만 하다. 그러나 포장도로 상에서의 운행이 주행거리의 9할 이상을 차지하는 대부분의 운전자들에게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프리미엄급 SUV를 원하는 소비자들은 편의성뿐만 아니라, 전술한 모든 것을 원하는 욕심쟁이들이다. 프리미엄급 중형 SUV로 등장한 결과물이 성능 본위의 SUV라기보다는 가족을 위한 SUV에 더 가깝다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 어려워진다.



가격 정책도 체로키의 가치에 대해 의구심이 들게 만든다. 크라이슬러 측에서는 정상가로도 충분히 경쟁사의 모델들과 실질적으로 경쟁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일반적인 고객 입장에서는 다소 거부감이 드는 가격정책으로 비춰질 수 있다. 또한 지프의 브랜드 가치를 스스로 절하하는 행위로도 비춰질 우려가 있다.



유럽산 재료로 완성된 미국식 SUV, 체로키는 유럽풍의 알뜰함과 품질감을 살렸다. 독특하고 개성적인 외모 안에는 합리적인 유럽식 솔루션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충실한 편의사양과 신뢰감 있는 오프로드 성능, 그리고 미국풍의 안락한 주행질감을 가졌다. 체로키는 유럽의 합리성과 미대륙의 여유로운 느낌을 원하는 이들에게 알맞은 SUV가 되어줄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