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모험을 위한 소형 SUV - 지프 레니게이드 시승기

2015-10-26     이동익

FCA코리아가 지난 9월부터 지프 브랜드의 무서운 신인, `레니게이드`를 출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한국의 소형 SUV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다. 대한민국의 소형 SUV 시장은 쌍용 티볼리, 르노삼성 QM3, 기아 쏘울 등의 국내 완성차 모델들은 물론, 푸조 2008, 미니 컨트리맨, 닛산 쥬크 등, 수입차 업계에서도 쟁쟁한 경쟁자들이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걸출한 경쟁자들이 한 가득 포진한 상황에서 느지막히 참전한 지프 레니게이드. 하지만 파블로 로쏘 FCA코리아 대표는 ``미니 컨트리맨은 사이즈만 키운 미니일 뿐이고 닛산 쥬크는 도심주행만 가능한, `SUV의 흉내만 낸` 모델에 불과하며, 푸조 2008은 단지 `스테이션 왜건`에 지나지 않는다``며, ``지프 레니게이드야말로 진정한 소형 4X4 SUV라고 할 수 있다``고 딱 잘라 말하며, 레니게이드가 경쟁해야 할 상대들에 대해 실로 도발적인 스탠스로 나섰다.



그렇다면, 지프 레니게이드는 그 걸출한 경쟁자들에게 ``너희들은 진정한 소형 SUV가 아니다``라고 못박을 수 있을 만큼의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을까? 지프 레니게이드를 시승하며 그 면면을 파악해 본다. 시승차는 국내 출시된 레니게이드 라인업의 최상위 모델에 해당하는 2.0 리미티드 디젤 AWD 모델이다. VAT 포함 가격은 4,390만원. 개소세 인하분을 반영한 가격은 4,190만원이다.




지프 레니게이드의 외모는 그야말로 `지프` 그 자체다. 자유를 갈망하고 탈출을 꿈꾸는 지프 브랜드의 상징성을 소형 SUV의 컴팩트한 차체에 그대로 새겨 넣었다. 지프의 뿌리인 윌리스 MB의 디자인적 특성과 요소를 현대적인 소형 SUV로 풀어냈다. 뿐만 아니라, 군용 지프에 싣고 다녔던 연료통의 `X`자 표시를 형상화한 새로운 디자인 요소를 곳곳에 가미하여 더욱 유니크한 개성을 더했다.




레니게이드는 헤드램프와 안개등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직선적인 형태로 디자인 되어 있어, 지프 특유의 마초스런 남성미를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군용 지프를 연상시키는 직선적인 실루엣과 측면의 사다리꼴 휠 하우스 등, 지프의 전통적 디자인 요소가 오롯이 살아 있다. 이러한 디자인의 흐름은 비단 차체의 형태 등에 국한되지 않고, 얼굴에서부터 옆구리를 지나, 꽁무니에 이르기까지 충실하게 반영되어 있다. 이쯤 되면 동사의 정통 오프로더인 랭글러에 필적하는 남성미와 야성미라 할 수 있다.



레니게이드는 7구의 세로줄 라디에이터 그릴과 원형 헤드램프로 구성된 얼굴에서부터 자신이 지프의 일족임을 대놓고 어필하고 있다. 군용 지프에 싣고 다녔던 연료통의 `X`자 표시는 헤드램프는 물론, 테일램프에도 새겨져 있다. 모델에 따라, 라디에이터 그릴의 색상이 달리 적용된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뿐만 아니라, 시승차인 리미티드에는 `마이 스카이(My Sky)` 루프가 적용되어 있어, 필요한 경우, 별도의 공구를 이용하여 랭글러처럼 지붕을 탈착하는 것도 가능하다.



인테리어는 브랜드의 모험가적이고 유쾌한 이미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요소가 인테리어 구석구석에 배어 있다. 터치스크린 위쪽 송풍구는 익스트림 스포츠용 고글을 컨셉으로 디자인되었다. 중앙 콘솔 매트에 새겨진 지도 표식, X 마크가 들어 있는 기어 쉬프터 베젤, 계기판 내에 뿌려진 진흙을 형상화한 느낌의 요소 등은 아웃도어 라이프를 즐기는 운전자에게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지프의 능력과 전통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 되었다. 또한, 지프의 원형 헤드램프와 7구 라디에이터 그릴을 캐릭터화시킨 듯한 형상들을 실내 곳곳에 새겨 넣어, 인테리어에 재미있으면서도 일관적인 느낌을 더한다. 이렇게 완성된 레니게이드의 인테리어는 美 `워즈 오토(Ward´s Auto)`의 `2015 10 Best Interior`에 선정된 바 있다.



스티어링 휠은 그랜드 체로키를 비롯한 대부분의 지프 모델들이 공유하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직경이 꽤나 큰 편이고, 열선 기능이 마련되어 있으며, 부드러운 가죽으로 마감되어 양질의 그립감을 지니고 있다. 다만, 지나치게 큰 직경은 운전자에 따라 호불호가 크게 갈릴 듯하다. 계기판은 금속성 페인팅으로 마감된 양쪽의 원형 다이얼과 그 사이에 자리한 큼지막한 디스플레이로, 준수한 시인성을 보인다. 그러나 기본으로 제공되는 유커넥트 시스템의 디스플레이가 다소 작은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앞좌석은 큼지막한 데다, 세미 버킷 형상을 채용하여, 격렬한 기동 상황에서도 탑승자의 몸을 든든히 붙들어 맨다. 착석감은 단단한 느낌이 강하다. 운전석은 8방향 전동 조절 및 전동 조절식 4방향 허리 받침이 적용된다. 양쪽 좌석은 모두 2단계의 열선 기능이 적용된다. 뒷좌석 역시, 앞좌석과 같은 단단한 착석감을 보인다. 그러나 여타의 소형 SUV들이 그렇듯, 성인 남성에게는 그리 편한 자리라고 말하기 어렵다. 등받이의 각도가 꽤나 서 있는 편인데다, 무엇보다도, 다리 공간이 부족한 편이다. 머리 공간만큼은 넉넉한 편이라는 것이 한 가지 위안이다.




다소 부족하다 싶은 뒷좌석에 비해, 트렁크는 크다. 레니게이드의 넓은 짐 공간은 다양한 형태의 아웃도어/레저 활동을 즐기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기본 용량만 524리터에 달하는 공간을 제공하며, 4:2:4 비율로 접을 수 있는 뒷좌석을 모두 접으면 1,438리터의 용량을 확보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트렁크 바닥에는 공구로 탈거한 마이 스카이 선루프를 수납할 수 있는 별도의 가방과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 또한, 필요치 않은 경우에는 들어 내서 트렁크 공간으로 전용할 수 있다.



시승차인 레니게이드 2.0 디젤 AWD 리미티드는 피아트의 멀티제트2 디젤 터보 엔진을 심장으로 한다. 직렬 4기통 레이아웃의 디젤 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170마력/3,750rpm, 최대토크 35.7kg.m/1,750rpm의 성능을 낸다. 엔진은 ZF의 자동9단 변속기와 짝을 이루며, 엔진과 변속기를 거쳐 생성된 동력은 저속 트랜스퍼 케이스가 포함된 상시 4륜구동 시스템으로 연결되어 네 바퀴에 전달된다. 동력계는 상위 모델인 체로키와 같은 구성으로 보면 된다.


마초적이고 개성적인 외모와 젊고 자유분방한 감각의 실내, 넉넉한 짐 공간을 지닌 레니게이드는 시선을 잡아 끄는 데에는 성공이다. 그렇다면, 시동을 걸고 직접 운전을 시작하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시동을 걸자, 우렁찬 시동음과 함께, 디젤 엔진 특유의 걸걸거리는 소음이 실내를 파고들기 시작한다. 레니게이드의 소음 대책은 최근의 디젤 승용차들이 정숙성 면에서 발전을 거듭해가고 있는 것에 역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차의 바깥에서 들리는 엔진 소음보다는 적지만, 그 차이가 체감 상 그리 크지 않다.


뿐만 아니라, 파워트레인에서 들어 오는 진동 대책에서도 좋은 평을 내리기 어렵다. 시동 중, P 레인지나 N 레인지(중립)에 있는 상황에서도 적지 않은 진동이 기어레버와 스티어링 휠, 그리고 페달 등을 통해 운전자에게 전달된다. 딱 한 가지 위안으로 삼을 만한 점이 있다면 스톱/스타트 기능이 적용되어 있어, 운행 중 신호 대기 등으로 정차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소음과 진동에서 잠시나마 해방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스톱/스타트 역시 그리 좋은 점수를 주기가 어렵다. 반응 속도가 다른 유럽계 모델들에 비해 더딘 편이기 때문이다. 승차감은 지프의 다른 모델들에 비해서 단단한 편이다. 유럽식의 탄탄함이 아닌, 랭글러와 같은 정통 오프로더들이 보여주는 단단함에 더 가깝다. 노면에서의 충격을 흡수하기보다는 `버텨내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소형 SUV인 주제에 공차중량만 1.6톤이 조금 넘는 레니게이드지만, 가속력은 시원스런 편이다. 특히, 1,750rpm의 저회전에서 정점에 이르는 토크 덕분에, 일상적인 운행에서는 나쁘지 않은 수준의 순발력을 보인다. 9단 자동변속기의 반응은 자동변속기로서는 무난한 수준의 반응을 보인다. 변속 속도가 조금 더 빠르다면 가속이 보다 즐거워질 수 있을 듯하다.


구불구불한 회전구간이 이어지는 산악 및 해안 도로에서, 레니게이드는 정통 SUV를 표방하는 지프 특유의 둔중한 느낌이 가장 적은 편이다. 오히려 시장에서 인기 있는 유럽식의 소형 SUV들이 보여주는 영민하고 세련된 몸놀림에 더 가깝다. 물론, 레니게이드가 상대해야 할 유럽의 경쟁자들과 동등한 수준의 민첩함을 과시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 태어나 철저하게 유럽식으로 빚어지고 다듬어진 경쟁자들에 비해서는, 안정감이나 회전구간을 처리해내는 동작에서 세련된 맛이 약간 부족하기 때문이다. 조향에서의 반응과 감각에서도 마찬가지. 유럽 태생의 경쟁자들이 일류 요리사가 쓰는 요리 전용 칼이라고 한다면, 레니게이드는 군인들이 쓰는, 덤불이나 잡목 제거용의 정글도(Machete)에 더 가깝다. 레니게이드는 이탈리아산 플랫폼을 바탕에 깔고는 있다만, 엄연히 지프의 SUV이며, 그들이 추구하는 전통적인 성격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이렇게만 보면, 레니게이드가 개인의 취향에 좌우되는 디자인 부분을 제외하면, 유럽의 경쟁자들에 비해 딱히 이렇다 할 비교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레니게이드의 진짜 실력은 다른 곳에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 곳은 바로 `오프로드`다. 유럽 태생의 경쟁자들이 설계 단계부터 험로 주파 능력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 것에 비하면, 레니게이드는 오프로드 주파 능력에 상당한 힘을 실었다. 레니게이드에는 액티브 드라이브 로우(Active Drive Low) 상시 4륜구동 시스템이 장착되는데, 이 시스템은 차축 분리 시스템은 물론, 동급 유일의 저속 기능을 지원한다! 물론, 이는 정통 오프로더인 랭글러 등에 장착되는 본격적인 저속 트랜스퍼 케이스는 아니고, 9단 자동변속기의 1단 기어와 저속용 액슬 기어를 이용하여 부분적으로 재현한 것에 가깝다. 하지만 빠듯한 플랫폼 내에 이 정도의 장비를 갖춘 점은 분명 특기할 만한 부분이다. 이 뿐만 아니라, 지프의 전자식 지형 반응 시스템인 셀렉-터레인 시스템 역시 함께 탑재되어 있어, 레니게이드의 오프로드 주파력을 뒷받침한다.




이렇듯, 레니게이드는 오프로드 주파를 위한 능동적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견실하게 갖춰져 있다. 또한, 소형 SUV의 상대적으로 짧은 휠베이스와 경쟁자들에 비해 높은 최저지상고 등이 맞물려, 높은 수준의 접근/램프/이탈각을 실현하여, 수동적 하드웨어 역시 든든한 편이다. 이 덕분에 비포장 도로에 들어 서면, 마치 제 집 만난 듯 돌아다닌다. 포장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활기찬 느낌을 받는다. 고저차가 높은 길에서도, 고르지 못한 임도나 진창길에서도 다른 SUV에 비해 보다 안심하고 주파할 수 있다. 진창길에서 1개 이상의 바퀴가 헛돌고 있을 때에도, 상시 4륜구동 시스템과 지형 반응 시스템이 능동적으로 개입하여, 쉽사리 접지력을 잃지 않는다.



연비는 체급과 배기량 등을 감안해도, 그다지 높은 수준이라 보기는 어렵다. 공인 연비는 도심 11.1km/l, 고속도로 14.1km/l, 복합 12.3km/l인데, 시승 중 트립컴퓨터로 기록한 구간 별 평균 연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고속도로에서 100km/h로 정속주행을 하는 경우에는 15km/l를 웃도는 평균연비를 기록하여, 공인연비보다 높은 결과를 냈다. 그러나 경쟁자들의 복합 연비가 레니게이드의 고속도로 연비를 상회하는 수준을 자랑하는 점에 비춰보면, 연비는 명백한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레니게이드로 현실화된 지프식 소형 SUV의 표상은 대중에게 어필하기에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오프로드에서의 성능을 올리기 위한 조치들이 대다수 한국의 소형 SUV 구매자들에게 맞지 않는 점이 몇 가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연비를 들 수 있다. 대한민국의 소형 SUV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킨 모델들의 공통점은 바로, 디젤 파워트레인과 전륜구동계의 채용으로 인한 우수한 연비다. 또한, 평균 이상의 정숙성과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부드러운 승차감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레니게이드는 전술한 세 가지 부문에서 경쟁자들에 비해 좋은 점수를 얻기 어렵다.



하지만 역으로, 경쟁자들이 주지 못하는 대부분의 것을 충실하게 갖추고 있는 소형 SUV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레니게이드다. 레니게이드는 지프의 아이덴티티를 극대화시켜, 유니크한 개성을 자랑하는 디자인과 구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그들이 주장하는 정통 SUV의 필수요건이자, 대다수 유럽산 SUV들이 배제한 부분인 `오프로드 성능`을 강화하여, 이 부분에서만큼은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지프 레니게이드는 도심 운행을 전제로 하는 유럽식의 소형 SUV에 대해, `너희들은 SUV가 아니다`라는 도발적인 선전포고와 함께 시장에 진출했다. 그리고 레니게이드를 시승하면서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소형 SUV의 표상을 남김 없이 느낄 수 있었다. 그 동안 도심 운행에 초점이 맞춰진 소형 SUV만을 접하다가 레니게이드를 접하고 나면 실로 신선한 기분이 드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보다 터프하면서, 자연과 모험에 어울리는 소형 SUV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지프 레니게이드가 그 해답이 되어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