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의 스타일에 배려를 더하다 - 지프 체로키 시승기

2015-12-10     박병하

체로키는 지프의 허리를 담당하는 중형 SUV 모델로, 작년 8월부터 신형 모델이 국내에 출시되어 판매되고 있다. 지난 세대의 리버티를 본격적으로 대체하는 체로키는 지프의 새로운 디자인 방향을 반영한 파격적인 디자인과 오프로드 주파 능력을 내세우며 데뷔했다. 2.0리터급의 디젤 엔진과 중형의 차체, 그리고 지프 고유의 스타일링과 감성을 담아낸 체로키는 올 상반기, 지프의 판매를 40%나 올려 준 장본인이기도하다.



그렇다면, 지프 체로키는 대체 어떤 매력을 지녔기에, 이러한 호응을 얻을 수 있었을까? 지프의 중형 SUV, 체로키를 직접 시승하며 그 매력을 짚어 본다. 시승한 체로키는 2.0리터 멀티제트 디젤 엔진과 4륜 구동 시스템을 장비한 2.0 리미티드 모델이다. 가격은 5,640만원.



지프 체로키는 `랭글러`, 혹은 `윌리스 MB` 등으로 대표되는 고전적인 지프의 터프하고 마초적 이미지와 함께, 지프의 특징적 스타일링 요소들을 독특한 방법론으로 재해석한 외관 디자인이 특징이다. 차체의 형상은 지프에서 연상되는 각지고 투박한 형태가 아닌, 비교적 매끄러운 유선형을 취하고 있어, 지프 라인업 내에서 가장 승용 감각에 가까운 실루엣을 지니고 있다.




헤드램프의 배치는 체로키의 디자인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다. 자동차의 헤드램프는 헤드램프 외에도 방향지시등 및 주간주행등 등을 한데 모은 콤비네이션 램프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체로키의 헤드램프는 위에서부터 주간주행등과 차폭등 모듈과 헤드램프 모듈, 그리고 안개등의 순서로 분리 및 배치되어 있다. 그래서 가장 상단에 높은 차폭등과 주간주행등 모듈이 시각적으로 마치 헤드램프인 것 같은 착각을 준다. 이는 헤드램프 자체의 높이를 낮춤으로써 높이가 낮은 승용차 운전자에게 끼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한 시도라 볼 수 있다.



체로키는 승용차 감각의 곡선적이고 매끈한 실루엣을 지니고 있지만, 측면을 꾸며주고 있는 요소들은 직선적인 점도 특징이다. 지프의 주요 스타일링 요소 중 하나인 사다리꼴 휠 아치를 비롯하여, 시원스럽게 뻗은 직선들이 체로키에 도회적인 세련미를 부여한다. 전방에서 하강하다가 앞 도어 중간쯤에서 상승하는 벨트 라인 또한 독특하다. 타이어는 225/55R18 규격을 사용하고 있으며, 휠은 크라이슬러 계열 모델들이 최근 즐겨 사용하는 반 무광 타입으로 마감된 18인치 알로이 휠을 사용하고 있다.




뒷모습에서는 승용차 분위기와 함께, SUV의 듬직한 이미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가로로 뻗은 테일램프는 주변을 유광 블랙 페인팅으로 마감하여, 마치 트렁크 리드와 뒷 유리 사이에 떠 있는 느낌을 준다.



체로키의 실내는 최근 지프가 추구하고 있는 인테리어 디자인의 방향성을 보여준 첫 사례라 할 수 있다. 물론, 지지난 해 페이스리프트를 마친 그랜드 체로키에서도 신규 인테리어 디자인이 부분적으로 반영이 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변화의 완성형을 처음 제시한 모델은 체로키 쪽이다. 체로키의 인테리어는 워즈 오토(Ward´s Auto)에서 선정한 `10 Best Interior`에 선정된 만큼, 현대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시승차의 인테리어는 블랙 원 톤 색상을 바탕으로 모래색의 악센트를 가미하여, 보다 감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블랙 톤의 색상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구릿빛의 메탈릭 페인팅의 장식과 모래색 스티칭 등이 포인트. 뿐만 아니라, 흔해 빠진 직물 카페트 대신, 허니컴 패턴의 터프한 고무매트를 바닥에 깔아 두었다. 세척과 관리에 용이한 고무매트의 적용은 다분히 지프의 스타일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열선 기능이 적용된 큼지막한 스티어링 휠은 그랜드 체로키의 것을 그대로 가져왔으며, 8.4인치 터치스크린 유커넥트(Uconnect®) 멀티미디어 커맨드 센터 역시 그랜드 체로키와 같은 것을 사용한다. 7인치 컬러 멀티-뷰(Multi-View) 주행 정보시스템도 그랜드 체로키와 비슷한 구성을 따르고 있다. 센터페시아의 구성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전반적으로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구성이 돋보인다.



이 외에도 기어 레버 전방에 마련된 트레이를 비롯하여, 센터페시아 상단의 수납함, 큼지막한 용량의 플로어 콘솔 박스와 도어 포켓 등, 실내 구석구석에 다양한 형태의 수납공간이 배치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플로어 콘솔의 상단부에는 스마트폰을 붙잡아 둘 수 있는 홀더 기능이 있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플로어 콘솔은 측면에 별도의 홈을 파 두었는데, 이는 충전용 케이블이 콘솔 도어 등에 협착되는 경우를 막기 위한 배려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수납공간과 소소한 배려는 체로키의 쓰임새를 한층 높여준다.



앞좌석은 세미 버킷 타입으로 제작되어 있으며, 약간 탄탄한 느낌의 착석감을 지닌다. 큼직하게 설계된 튼튼한 사이드 볼스터는 급기동 상황에서 운전자의 몸을 탄탄하게 받쳐준다. 하지만 머리 받침의 각도는 다소 전방을 치우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큰 불편은 없었으나, 운전자에 따라서는 신경이 쓰일 수도 있는 부분이다. 운전석은 4방향의 허리받침을 비롯하여 총 12방향의 전동조절 기능을 제공하지만, 조수석에는 수동 조절 레버만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 다소 아쉬운 부분. 앞좌석 양쪽에는 각 2단계의 열선 기능과 통풍 기능을 제공한다.




뒷좌석은 지프의 CUV인 컴패스 보다 약간 더 좁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전체적으로 탁 트인 느낌보다는 타이트하고 아늑한 느낌에 더 가깝다. 물론, 기본적으로 체로키의 실내 자체가 폭과 높이, 그리고 길이가 동급에서 그다지 넉넉한 편이 못 된다. 따라서 체격이 큰 성인 남성의 경우에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뒷좌석 선반을 제거한 상태에서의 트렁크 용량은 824리터인데, 이는 트렁크 바닥 아래의 별도 수납 공간까지 계산한 수치다. 트렁크 바닥 아래의 공간이 널찍한 편으로, 어지간한 가방 등의 짐은 대부분 이 공간에 수납이 가능할 정도다. 뒷좌석을 모두 접었을 때는 1,555리터로 용량이 증가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경쟁자들의 최대 트렁크 용량이 기본적으로 1,600리터를 상회하는 것을 볼 때, 체로키의 트렁크 용량은 큰 수치라고 보기는 무리가 있다.



시승차인 체로키 리미티드 모델은 2.0리터의 멀티-제트(Multi-Jet) II 디젤엔진과 9단 자동변속기로 구성된 파워트레인을 지니고 있다. 최고출력 170마력/4,000rpm과 35.7kg.m/1,750rp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이 2.0리터급 디젤 엔진은 지프 그룹 모델 중 체로키에 최초로 쓰인 엔진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크라이슬러 200에 쓰인 바 있는 2.4리터 멀티-에어(Multi-Air) 가솔린 엔진을 고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솔린 모델의 경우에는 4WD이 적용되지 않는다.



디젤 심장을 품은 체로키는 디젤 엔진을 탑재한 중형 급의 SUV로서는 전반적으로 무난한 수준의 정숙성을 지니고 있다. 멀티젯2 디젤엔진의 덕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쉴 틈 없이 변속하여 회전 수를 2,000rpm 이하의 저회전 영역으로 머무르게 하는 9단 변속기의 보조가 체로키의 정숙성에 큰 몫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 변속기는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는 경우, 변속충격을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어, 간간이 불쾌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승차감은 미국식 SUV의 전형적인 성격을 드러내듯, 부드러운 감각이 두드러진다.



체로키의 부드러운 승차감은 고속도로 상에서도 이어진다. 부드러운 승차감은 고속 주행 중의 양호한 직진 안정성과 함께, 장거리 운행의 피로감을 덜어 준다. 또한, 시승차인 리미티드 모델에 마련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선행 차량의 추종은 물론, 정지까지 대응할 수 있어, 더욱 편리한 사용이 가능하다. 반응 속도 면에서도 나쁘지 않아, 고속도로 선상에서 실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여기에 차선이탈 방지 장치와 사각지대 보조 기능이 모두 적용되어 있어, 보다 안전한 운행에 도움을 준다.



그런데 굳이 왜 이 급의 차에 9단씩이나 되는 변속기를 달아 놓았는지는 다소 의문이다. 심지어, 고속도로에서도, 100km/h로 정숙주행하고 있을 때, 수동 모드로 단수를 확인해 보니, 8단에 들어가 있었고, 9단으로 변속을 시켜도 넘어가지 않는다. 최소 120km/h 가량으로 주행을 하니, 그제서야 9단에 기어가 물리기 시작한다.



가속력 자체는 그다지 시원스럽지는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 기어비를 촘촘하게 쪼개 놓은 변속기와 저속기능가지 지원하는 묵직한 4륜구동 시스템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스포츠 모드에서조차 엔진 자체의 박력이 그다지 강하게 와 닿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2.0리터 배기량의 디젤 파워트레인은 중형급 SUV에서는 표준에 가깝지만, 체로키에 실린 멀티제트 엔진은 그 `표준`에 걸맞은 순발력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0-100km/h 가속에는 10.0초를 약간 넘는 시간이 걸린다.



체로키는 미국식 SUV로서는 의외로 세련된 몸놀림을 지니고 있어, 운전대를 잡은 손을 자극해오기는 하지만, 급격한 기동을 즐기면서 운전하기에는 스티어링 시스템의 조작감과 응답성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차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또한, 급회전이 이어지는 구간에서는 페이스를 낮추는 것이 좋다. 아무리 체로키가 알파로메오의 스포츠 세단 모델들이 채용하게 될 플랫폼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 본질은 전형적인 가족을 위한 미국식 SUV에서 벗어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프로드에서는 온로드에서 불만족스러웠던 부분들이 하나 둘씩 보상되는 기쁨을 조금이나마 누릴 수 있다. 맏형인 그랜드 체로키가 그랬듯, 체로키 역시 오프로드에서 더욱 좋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정통 오프로더인 랭글러 수준의 하드웨어는 아니지만, 저속기어를 갖춘 4륜구동 시스템과 셀렉터레인(Selec-Terrain) 지형반응 시스템이 상호작용을 통해, 노면의 조건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모습에서 체로키가 명실상부한 지프의 혈통임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내리막 주행 보조 장치는 대부분의 동급 SUV들처럼 브레이크로 제어하는 형태가 아닌, 저속기어를 통해 내리막 주행 속도를 제어하는 시스템이다. 이 덕분에 브레이크의 부담을 줄일 수 있으면서도 보다 신뢰성 있게 작동을 보여준다. 이 장치는 저속기어를 사용하는 만큼, 4WD 설정을 저속으로 설정했을 때에만 사용이 가능하다.



시승차인 체로키 리미티드 모델의 공인 연비는 도심 12.3km/l, 고속도로 16.8km/l, 복합 14.0km/l이다. 이는 체로키가 주요 경쟁상대로 지목하고 있는 BMW X3에 비해서는 약간 낮지만, 현행의 아우디 Q5 등보다는 높은 수치다. 상대적으로 무거운, 저속기어까지 갖춘 4륜구동 시스템을 지닌 SUV로서는 나름대로 선전하고 있는 수치다. 트립컴퓨터로 기록한 구간 별 평균연비는 도심(혼잡) 10.0km/l, 도심(원활) 13.3km/l, 고속도로 17.5km/l를 기록했다.



지프 체로키는 피아트의 플랫폼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지프가 추구하고 있는 특유의 개성적인 외양과 함께, 타협 없는 오프로드 주파력을 보존하면서도 미국식 SUV의 본질을 그대로 품고 있다. 여기에 유럽 스타일의 디젤 파워트레인이 더해져, 시장에서 경쟁하기 충분한 경제성을 함께 갖췄다. 올 상반기 FCA의 실적을 크게 뒷받침 해준 체로키의 역량은 바로 상기한 요소들의 절묘한 조화에서 온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렇게 완성된 지프 체로키는 지프의 아이덴티티를 숨김 없이 표현하면서도, 일상과 여가를 균형감 있게 배려하는 현실감각을 고루 갖춘 결과물로 태어났다. 지프의 터프함, 미국식 SUV의 여유, 그리고 유럽식 SUV의 알뜰함이 조화를 이루는 지프 체로키는 향후에도 지프의 허리를 충실하게 받쳐 줄 볼륨 모델로서 활약할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