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고도 뜨거운 심장, 엔진]커민스 ISB 6.7 엔진 편

2020-03-02     박병하

자동차의 엔진은 두 가지의 상반된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는 '차가움'이고, 나머지 하나는 '뜨거움'이다. 이렇게 두 가지의 상반된 속성을 갖는 이유는 '금속'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증기기관으로부터 시작된 엔진의 역사이래, 인류는 항상 금속으로 엔진을 만들어 왔다. 최근에는 재료역학의 발달로 인해, 금속 외의 다른 합성 재료를 사용하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지구상의 모든 엔진의 주류는 금속이다. 강철과 알루미늄 등의 금속은 엔진이 잠에서 깨어난 시점부터 가동 시간 내내 발생하는 고열과 마찰 등의 모든 부담을 감당할 수 있으며, 대량생산에도 적합하기 때문이다.

금속으로 만들어진,차가우면서도 뜨거운 자동차의 심장, 엔진의 세계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본 기사에서 다룰 수많은 자동차의 엔진들 중 쉰 여섯번째로 다루게 될 엔진은 지난 회차에 이어 미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디젤 엔진을 다룬다. 하지만 이번 디젤 엔진은 V형 8기통 구조를 사용하고 있었던 포드와 GM의 엔진들과는 다르다. GM과 포드의 막강한 V8 디젤에 대항하는 이 엔진은 크라이슬러그룹에서 사용 중인 커민스 ISB 6.7 엔진이다.

GM, 포드의 V8에 대항하는 대배기량 직렬 6기통 디젤 엔진
미국의 자동차업계에서 디젤엔진은 상용차를 중심으로 발달되어 왔다. 디젤엔진의 소형화와 승용차종으로의 도입에 적극적이었던 유럽과는 달랐다. 물론 다운사이징의 광풍이 몰아닥친 현재는 미국의 자동차 업계에서도 배기량과 소음/진동을 줄인 이른 바 '승용형 디젤엔진'에 가까운 엔진들을 픽업트럭 모델들을 중심으로 극소수 도입하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미국시장에서 디젤엔진은 산업용 엔진으로서의 인식이 더 강하게 자리한 편이다.

미국의 자동차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디젤 엔진이 주력이 되기 시작하는 차종은 픽업트럭이다. 픽업트럭은 가정용으로도 사용되기는 하지만 한 편으로는 우리나라의 소형~준중형화물차 정도에 해당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적재중량 2,500파운드 이상의 헤비듀티(Heavy Duty)급 픽업트럭부터는 견인중량이 더더욱 중요해지기 때문에 저회전에서부터 강력한 토크를 끌어낼 수 있는 디젤엔진이 주류가 되기 시작한다. 지난 기사에서 살펴 보았던 V형 8기통 디젤엔진들은 모두 각사의 헤비듀티급 픽업트럭부터 탑재 가능한 엔진들이다.

크라이슬러그룹은 현재 미국의 이른 바 '빅3' 중 말석에 위치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부진한 승용 부문을 함께 산정했을 때의 이야기다. 적어도 상용/픽업트럭 부문에서는 닷지로부터 분리한 램 트럭(Ram Trucks)을 앞세워 여전히 만만치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램 트럭은 미국 픽업트럭 시장에서 GM과 2위 자리를 놓고 열띤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지난 2018년 세대교체를 거친 완전신형 램 1500(풀사이즈)이 선전을 거듭했으며 지난 2019년에 공개된 신형의 램 헤비듀티(Heavy-duty) 모델 역시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이번에 소개하게 될 커민스 ISB 6.7 엔진은 2007년도에 처음 도입되기 시작하여 현형의 램 헤비듀티 픽업트럭 모델들과 중형 트럭들에 사용되고 있는 엔진이다. 

커민스 ISB 6.7 엔진은 미국의 디젤 엔진 전문 제조사 '커민스(Cummins Inc.)'에서 개발, 생산하고 있는 엔진이다. 커민스는 1919년 세워진 미국의 엔진제조 기업으로, 올해로 창사 100주년을 넘은 전통 있는 기업이다. 커민스의 디젤 엔진은 선박 등의 해상용 엔진 사업을 시작으로 화물차나 철도차량 등에 사용되는 육상용 엔진, 공장 등 산업시설에서 사용하는 산업용 엔진에 이르기까지, 디젤엔진이 사용되는 거의 모든 분야에 자사의 엔진을 공급하고 있다. 커민스는 현재 국내에도 현지 법인을 세워 활동하고 있기도 하며, 국내의 버스 전문 제조사 자일대우상용차에서도 커민스의 디젤 엔진을 사용하고 있다.

크라이슬러는 1988년부터 커민스의 디젤엔진을 사용해 왔다. 1981년도에 출시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램 픽업트럭의 1세대 모델부터 현행의 5세대 램 트럭의 헤비듀티 픽업트럭과 중형 트럭에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2019년에는 300만개째의 픽업트럭용 커민스 엔진이 롤아웃 되면서 두 기업 간의 오랜 파트너십을 증명하기도 했다.

램 트럭이 현행 모델에 사용되고 있는 커민스 ISB 6.7 엔진은 커민스의 'B 시리즈' 엔진의 바리에이션 중 하나다. 이 엔진은 커민스 B 시리즈 엔진의 가장 최신형에 해당하는 엔진이기도 하며, 램 트럭이 닷지로부터 분리되기 전인 2007년부터 도입하기 시작해 지금까지도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거쳐가며 사용 중이다.

이 엔진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경쟁사의 V형 8기통 디젤 엔진과 맞먹는 6.7리터의 대배기량임에도 '직렬 6기통' 레이아웃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직렬 6기통 레이아웃은 6개의 실린더가 일렬로 배치되는 덕분에 각각 두 개의피스톤을 함께 움직이게 만듦으로써 폭발행정에서 나오는 관성을 상쇄시키는 데 유리하다.  또한 직렬 6기통 엔진은 환경규제가 날로 강화되고 있는 현재, 유럽의 대형 상용차 시장에서는 이미 상식에 가까워진 바 있다. 

커민스 ISB 6.7 엔진은 실린더 보어(내경) 107mm, 피스톤 스트로크(행정 길이)124mm의 제원을 갖는 6개의 실린더가 일렬로 배치되어 총 6,690cc(약 6.7리터)의 배기량을 갖는다. 실린더 헤드와 블록은 모두 주철로 제작되며, 크랭크샤프트는 단조 강철로 제작된다. 밸브트레인은 실린더 당 4개의 밸브를 갖는 캠-인-블록(Cam-in-block) 방식을 채용하고 있다. 캠-인-블록 방식은 캠샤프트가 실린더 블록 아래에 위치하는 형태로, 오늘날 자동차 업계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오버헤드 캠(Overhead Cam, OHC) 방식은 캠샤프트가 실린더 블록 위쪽에 위치하므로, 정반대에 가까운 구조다. 캠샤프트는 기어로 구동된다.

연료의 공급 방식의 경우, 2000년 이후에 나타난 디젤엔진들의 상식이라 할 수 있는 커먼레일 고압 직접분사(CRDI) 방식을 채용했다. 인젝터는 7구 인젝터를 사용하며, 압축비는 17.3:1에 달한다. 터보차저는  홀셋(Holset) 사의 가변 지오메트리 터보차저(Variable Geometry Turbocharger, VGT)를 채용했다. 가변 지오메트리 터보차저를 채용함으로써 극저회전에서의 응답성을 높여 터보랙을 저감함과 동시에 통합된 배기브레이크 시스템과 연계하는 구조를 취했다. 배출가스를 줄이기 위한 기구로는 초기사양 기준으로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와 디젤 입자상물질 필터(DPF)를 채용했다.

2007년 5월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커민스 ISB 6.7 엔진은 닷지 램 헤비듀티 픽업트럭에 먼저 사용되기 시작했다. 당시 램 헤비듀티에 탑재된 초도사양의 ISB 6.7 엔진은 355마력/2,800rpm의 최고출력과 89.8kg.m/1,600rpm에 달하는 최대토크를 발휘했다. 단, 크라이슬러제의 수동변속기를 장착한 모델의 경우, 변속기의 보호를 위해 최대토크가 84.3kg.m/1,600rpm로 제한되었다. 또한 당시 최신형의 램 픽업 섀시캡 모델에는 최고출력은 305마력/2,800rpm, 최대토크는 84.3kg.m/1,600rpm로 낮춘 저출력 사양의 엔진이 사용되었다.

커민스 ISB 6.7 엔진은 직렬 6기통 구조를 가지고 있음에도 경쟁사의 V8 엔진과 거의 대등한 수준의 동력성능을 갖췄다는 점과 직렬 6기통의 장점인 더욱 우수한 정숙성과 동등한 수준의 견인력으로 시장에 어필했다. 물론 V형 8기통을 유달리 선호하는 미국 시장의 특성 상, 디젤 수요를 완전히 돌아 서게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행의 커민스 ISB 6.7 엔진은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통해 390마력에 달하는 최고출력과 128.5kg.m에 달하는 최대토크를 가지게 되었으며, 지금도 램 트럭의 최신형 픽업트럭과 중형 트럭, 그리고 섀시캡 차종에 이 엔진이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