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차에 대한 오해와 진실

2020-12-07     모토야


자타가 공인하는 '경차 왕국' 일본. 일본의 경차는 1950~60년대, 자동차 보급을 촉진하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수십년 동안 몇 차례의 법 개정을 거치면서 규격이 차츰 변화하기 시작, 1990년대에 정해진 길이 3.4m, 폭 1.48m, 높이 2.0m에 660cc 미만의 배기량을 갖는 차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일본의 경차는 일본 자동차 문화를 상징하는 세그먼트 중 하나다. 자동차로서 필요최소한의 요건을 갖추면서도 뛰어난 경제성과 실용성을 바탕으로 승용과 상용을 가리지 않고 애용되고 있는 경차는 1990년대 대한민국 상공부의 '국민차 계획'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경차 선진국인 일본 스즈키의 알토(Alto)와 에브리(Every), 캐리(Carry)등을 바탕으로 하여 대한민국 최초의 경승용차, 대우국민차 티코와 다마스, 라보가 태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경차에 대한 몇 가지의 오해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일본인의 '검소한 국민성'을 이유로 내세우는 경우가 있고, 일본 경차 시장은 시장이 큰 만큼 '폭넓은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일본 경차 시장의 어제와 오늘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러한 주장들은 소형차종을 지극히 꺼리는 경향이 아직도 강한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의 행태와 맞물리기도 한다. 이에, 일본의 경차에 대해 흔히 가지고 있는 오해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1. 일본인들의 국민성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인들은 경차에 특별한 매력을 느껴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경차 이외의 선택지를 고려하기가 힘든 조건들 때문에 경차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에 더 가깝다고 보면 된다. 일본인들이 경차를 선호하는 이유로 드는 내용 중에 자주 보이는 견해로는 "일본인들은 검소하다" 내지는 "일본인들은 실용성을 중시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렇지만 이는 다소 잘못된 견해라고 본다. 

먼저, 일본은 자국 자동차 산업의 규모에 비해 자동차(특히 자가용)에 대해 유달리 엄격한 정책 기조를 취하고 있는 국가다. 그리고 일본의 전반적인 교통 환경 또한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리고 이는 현재 극심한 양극화를 겪고 있는 일본의 경제상황과 맞물려, "어쩔 수 없이" 경차를 선택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일본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자가용 승용차에게도 엄격하게 차고지 증명을 거쳐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 자동차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자택에 차고 내지는 주차장이, 하다못해 주차장 역할을 할 마당이라도 있어야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이 충족된다. 그마저도 안 된다면 거주지 주소 기준으로 반경 2km 내에 주차 가능한 사설 주차장 공간이라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구입하고자 하는 차량의 크기에 따라, 차고지 증명 요건이 세분화되어 있으며, 이는 경차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아무리 경제적인 여유가 된다고 해도, 차고지를 증명할 수 없으면 자동차를 구매할 수 없다. 차량의 크기가 커질수록 이러한 제약이 더욱 심해진다. 물론 이러한 차고지 증명제도는 지자체별로 기준이 상이하지만, 공통적으로 경차는 이러한 제도 하에서도 '그나마' 자유로운 편이다. 그나마라고 표현한 이유는 경차 또한 지자체에 따라 차고지 증명 과정이 꽤 만만치가 않아서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다.

그리고 경차는 기본적인 세제혜택과 더불어 '에코카' 정책의 수혜를 받는 대표 차종이다. 일본 정부는 경차 시장의 지나친 비대화로 인해, 2014년도부터는 경차에 대한 자동차세를 50% 인상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뻥연비'의 대명사로 알려진 JC08 연비를 기준으로 한 에코카(Eco Car) 감세 혜택은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 특유의 막대한 비용을 요구하는 자동차 검사제도 또한, 경차를 선택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일본의 자동차 검사는 신차 구입 후 3년, 이후 2년에 한 번씩 자동차 검사를 받게 되어 있는데, 이 때 차량의 중량에 따라 최고 2만~6만엔 가량의 세금이 부과되고, 여기에 자동차안전 기준에 맞춰 검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 자동차 검사를 하게 되면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는데, 이 때의 비용은 우리나라 돈으로 적게는 수 십만원에서 많게는 1백 만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한다. 반면 경차의 경우에는 이 비용이 상대적으로 훨씬 적게 든다.

이 뿐만 아니라 좁은 길이 많은 일본 특유의 도로 환경도 한 몫을 한다. 특히 경험이 부족한 운전자일수록 이러한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고, 근래에는 여성운전자와 노인운전자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경차 시장은 일본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여전히 3할이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2. 일본 경차는 종류가 다양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경차 시장의 다양성이 가장 꽃을 피웠을 시기는 바로 버블경제의 전성기이자 막바지였던 1980~90년대였다. 이 당시에는 일반적인 해치백 형태의 실용적인 경차들 뿐만 아니라 스즈키 카푸치노, 마쓰다 AZ-1, 혼다 비츠 등, 스포츠카 형태의 경차들도 세 종류나 출현했으며, 오스틴 미니를 닮은 클래식한 스타일의 경차들도 존재했다. 또한 이미 이 때부터 톨박스형 경차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스즈키 왜건 R과 같은 차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의 일본 경차 시장에서 '다양성'을 논하기에는 다소 어폐가 있다. 물론, 완성차 업계를 몽땅 긁어 모아도 단 3종만 존재하는 우리나라의 경차 시장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지금 일본의 경차 시장은 과거에 비해 다양성의 측면에서 상당히 퇴색되었다. 특히, 2000년대를 기점으로 톨 박스형 경차의 시대가 열리면서 일본의 경차 시장은 점점 박스형 경차 일변도로 흘러가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더더욱 그러한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또한 과거에는 승용차 제조사는 토요타와 닛산 정도를 제외하면, 너도나도 경차를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일본 내 완성차 제조사 10개사 중, 경차를 직접 제조하고 있는 완성차 업체는 스즈키와 다이하쓰, 미쓰비시의 단 3개 업체 뿐이다. 그나마 미쓰비시 자동차는 스즈키와 다이하쓰 양사에 비해 모델 라인업이 매우 부실한 형편으로, 사실 상 스즈키와 다이하쓰의 양강구도가 정립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상태다. 심지어 닛산이나 마쓰다에서 출시되는 경차들의 경우, 마쓰다는 스즈키에서, 닛산은 미쓰비시자동차에서 공급하는 차종이으로 이루어져 있다.

2020년 현재 일본의 경차 시장에서 가장 높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차종은 혼다 N-BOX, 스즈키 스페시아, 다이하쓰 탄토 순이다. 그리고 이들 차종은 공통적으로 폭은 좁고 높이는 높은 전형적인 톨박스형 경차다. 심지어 판매량 1위~10위 중 톨박스형 경차가 아닌 차종은 다이하쓰 무브와 미라 단 2종 뿐이다. 물론, 혼다의 S660이나 다이하쓰 코펜 등과 같은 경스포츠카도 여전히 존재는 하지만 단지 틈새시장용 모델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나마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하는 전통적인 해치백형 경차의 인기도 플릿 수요를 제외하면, 예전만 못한 것이 현실이다. 또한 일본의 자동차 시장이 지속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면서 경차 시장의 다양성 또한 점점 퇴보하고 있다.

결론: 경차를 사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살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일본인들이 경차를 선택하는 이유는 그것 외에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최초 획득부터 유지비용에 이르는 부분에서 소득 수준 대비 상당히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 일본의 자동차 관련 정책과 운용 환경으로 인해 경차를 선택하는 것을 강요받고 있는 것에 조금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