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보병 화기의 기본, 돌격소총의 탄생 - StG44 이야기

2021-04-07     모토야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에 벌어진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보병에게 지급되는 가장 기본적인 소화기(小火器)는 평균 1m를 훌쩍 넘는 길이와 더불어 한 발 한 발 수동으로 장전하는 볼트액션(Bolt Action) 소총이었다.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 당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반자동 소총인 M1 개런드를 제식으로 채용한 미 육군을 제외한 유럽의 군대는 너나할 것 없이 볼트액션 소총이 기본 무장이었다.

하지만 양차대전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유럽 각국의 군사 전문가들은 통상적인 보병간의 교전거리가 아무리 멀어야 300m 내외인 경우가 대다수라는 것을 간파했다. 그리고 당시 사용하고 있었던 소총들이 일반 보병들이 사용하기에 지나치게 긴 사거리와 위력(저지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이 당시 볼트액션 소총들의 유효사거리는 통상 500m를 넘나들며, 망원조준경까지 사용한다면 약 1km까지 늘어났으므로, 저격수들에게나 어울리는 총기였던 것이다.

이러한 총기는 접근전 상황에서도 매우 불리했다. 사실 상 1차 대전 당시의 것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길다란 소총은 이미 당시에도 육박전에서 그 한계를 명백히 드러낸 바 있었다.

이 당시 참호에 돌입한 적 소총수들을 제압하기 위해 나타난 총이 바로 기관단총(Submachine gun)이다. 권총탄을 쓰는 덕분에 작고 취급이 간편한 기관단총은 비좁은 참호 안에서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이 이후로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볼트액션 소총과 기관단총을 함께 운용하는 방향으로 편제가 변화하게 된다.

하지만 기관단총은 종래의 볼트액션 소총이 차지하고 있었던 주무장의 자리에서 밀어낼 수 는 없었다. 기관단총은 당시의 소총용 탄환의 절반 크기도 안 되는 권총탄을 사용했기 때문에 순간적인 화력 투사와 반동제어 등에 유리한 반면, 유효사거리가 지나치게 짧아서 시가전이나 육박전 상황이 아니라면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2년 무렵, 나치 독일군에서 대단히 혁신적인 형태의 총기가 등장한다. 바로 MKb42(H)와 MKb42(W)다. 'Mkb'는 독일어로 자동 카빈(Maschinenkarabiner, Machine Carbine)을 의미하고, 42는 생산년도를, 그리고 괄호 속 철자는 제조사를 의미한다. 이 총기들은 각각 헤넬(Haenel Waffen und Fahrradfabrik)사와 발터(Walther)사에서 만들어졌다.

이 총기의 핵심은 바로 '탄약'이다. 위에서 언급한 통상적인 소총탄과 권총탄 사이의 크기를 갖는, 이른 바 '중간탄'을 채용함으로써, 보병간의 일반적인 교전거리에서 충분한 위력을 발휘하면서도 자동사격시의 부담은 기존의 소총탄 대비 크게 줄인 것이다. 이 총기들에 사용된 탄약은 통칭 'K탄'으로 불리는 7.92×33mm 쿠르츠(Kurz)탄으로, 당시 제식소총인 카라비너98K(Karabiner 98 Kurz)에 사용된 7.92x57mm 마우저탄 보다 훨씬 짧은 길이의 탄피와 더 짧은 형태의 탄두를 가졌다.

이러한 중간탄을 채용한 덕분에 얻는 효과는 상당했다. 먼저, 보병 개개인의 탄약 휴대량을 크게 늘릴 수 있었고, 자동사격의 부담이 적어, 적군의 보병을 상대로 압도적인 순간화력을 집중시켜 제압이 가능한 등, 전술적인 이점이 컸다.

당시 이 총기들은 주로 독소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던 동부전선에 먼저 보급되었는데, 일선에서의 평가는 매우 좋았다. 특히 홀름 전투 등의 전장에서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 물밀듯 몰려오는 소련군에게 불벼락을 선사했다. 특히 만성적인 자동화기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던 독일군으로서는 통상의 경기관총보다 훨씬 가벼우면서도 중거리에서 안정적으로 화력을 퍼부을 수 있었던 자동카빈은 복음과도 같았다. 그래서 주로 분대지원용 경기관총처럼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혁신적인 무기체계는 보수적인 군 수뇌부의 입장에서는 달가울 것이 없었다. 기존에 이미 생산해 둔 탄약의 재고 처리 문제를 시작으로, 새로운 무기를 위한 새로운 보급 체계를 구성해야 하며, 여기에는 막대한 자원과 비용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나치독일의 자동 카빈들은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장될 뻔하기도 했다. 새로운 보급체계를 필요로 하면서, 당시 독일군의 전투 교리에도 맞지 않았던 이 총을 히틀러가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미 자동카빈의 뛰어난 성능과 전투효율에 홀딱 반해 있었다. 그래서 자동카빈에 대한 추가 보급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이에 독일 본국에서는 이 신무기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지속적으로 개발을 이어 나갔다. MKb42(H)를 클로즈드 볼트 방식으로 변경하고, 생산성을 높인 신형 소총을 개발했다. 이 총은 본래 기관단총(Maschinenpistole)을 뜻하는 'MP'라는 철자가 붙은 'MP44'로 명명되어 있었으나, 후일 돌격소총의 어원이 되는 슈트름게베어 44(Sturmgewehr 44, 이하 StG44)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StG44는 전세계 돌격소총의 시조격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StG44의 등장 이전에도 '중간탄'을 사용하는 돌격소총들은 존재했다.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제정 러시아에서 개발된 표도로프 M1916(Fedorov M1916)이나 프랑스에서 개발된 '리베롤 1918(Ribeyrolles 1918)' 등이 그 사례다. 하지만 이들 총기는 군대에 전면 보급되어 배치된 것이 아닌, 시험적으로 생산 및 운용하는 데 그쳤다. 앞서 언급한 보급소요의 문제와 더불어, 공업생산력 등이 뒷받침되지 않는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대에서 정식으로 채용하여 실전에 배치된 돌격소총은 StG44가 세계 최초라고 할 수 있다. 

StG44는 이후 또 한 번의 개량을 거쳤다. StG45라는 이름의 신형 자동소총이 그것인데, 이 총은 가스작동식을 채용한 StG44와는 달리, 혁신적인 롤러지연 블로우백 방식을 적용해 높은 신뢰도와 더불어 기존 StG44 대비 단순한 내부구조로 생산성까지 올렸다. 하지만 전쟁 막바지에 등장한 탓에 그다지 생산되지 못했다. 이 총을 개발한 마우저사의 기술자들은 나치독일의 패망 이후, 스페인으로 도망쳤고, 이후 스페인의 세트메(CETME)사에서 종사했으며, 여기서 이 StG45의 개량형인 세트메 자동소총은 후일 서독군이 채용한 H&K G3 소총의 원형이 되었다.

혁신적인 중간탄의 채용과 이를 통해 대대적인 혁신을 일으킨 StG44는 전쟁 중후반기의 불리한 전황에 등장했음에도 우수한 성능과 완성도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등장 시기가 너무 늦었던 데다, 독일의 공업생산력이 이 혁신적인 소총을 대량으로 보급시키는 데에는 너무도 모자랐기에, 전황을 뒤바꿀 정도의 활약을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StG44의 등장은 전후 각국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으며, 이후 '돌격소총의 시대'를 열게 된 방아쇠로 작용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트렌드에 누구보다 빠르게 올라 탄 군대는 독소전쟁 당시 막대한 희생을 치렀던 '소련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