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이 일본 자동차 업계에 남긴 것, 3대 스포츠카 - 토요타 수프라 상편

2022-06-14     모토야

1980년대 부동산 붐으로부터 시작된 일본의 거품경제가 1990년대 들어 붕괴하면서 일본은 이른 바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잃어버린 20년', '잃어버린 30년'이라고 일컬어지는 초장기 경기 침체를 넘어, 디플레이션(물가와 소득이 동시에 떨어지는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거품경제가 극에 달해 일시적으로 엄청난 현금을 갖게 되었던 일본의 자동차 업계는 이 돈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참가하는데만 해도 어마어마한 비용이 드는 전세계의 모터스포츠 무대에 거침없이 뛰어 들었고, 1960년대 일본 자동차 산업의 중흥기부터 지속적으로 키워오고 있었던 자국 내의 모터스포츠 기반도 한층 단단하게 다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뿐만 아니라 투자 비용 대비 시장성이 지극히 낮은 고성능 스포츠카의 개발에도 아낌없이 돈을 쏟아 부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차들이, 오늘날에도 JDM(일본 내수차량)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일본의 3대 스포츠카들이다. 자동차에 대해 관심이 있으면서도 특히 2000년대 만화 '이니셜D' 시리즈나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초기 시리즈를 보고 자라 왔던 세대라면 적어도 한 번쯤은 눈에 들어 왔을 법한 그 차들이기도 하다. 이번 연작 기획의 마지막 주인공은 일본 3대 스포츠카 가운데 가장 늦게 부활한 토요타자동차(이하 토요타)의 스포츠카, 수프라에 대하여 살펴본다.

스페셜티카, 셀리카의 파생모델로부터 시작되다
토요타의 스포츠카 수프라는 양산형 고급 중형세단의 파생모델로 시작해 오랜 역사를 이어 온 스카이라인 닛산의 GT-R이나 바닥부터 정통 스포츠카로서 개발된 혼다의 NSX와는 또 다른 탄생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스페셜티카(Specialty Car)인 '셀리카(Celica)'의 고급 모델로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스페셜티카는 2~3도어 쿠페 스타일을 가지지만 성능은 일반적인 양산형 승용차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차량으로, 쿠페의 멋진 스타일을 적당한 성능과 현실성 있는 가격으로 접근할 수 있어, 1980~90년대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세그먼트다.

셀리카는 1970년대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스페셜티카로, 1985년 4세대 모델의 등장 이전까지 전방엔진-후륜구동(FR)으로 생산되었으나, 4세대 모델 이후로 전륜구동(FF)으로 변경되어 2006년까지 생산되었다. 또한 사족으로 1979년도에는 셀리카의 4도어 세단형 모델, 셀리카 캠리(Celica Camry)도 함께 출시되었는데, 이 차가 바로 토요타의 대표 중형세단, '캠리(Camry)'의 원형이 된다.

그렇다면 수프라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것은 1978년 등장한 2세대 셀리카 XX(더블엑스)로부터 시작한다. 이 차는 당시 북미지역의 토요타 딜러의 요청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그 이유는 북미시장에서 닛산의 스포츠카, 페어레이디 Z가 크게 인기를 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페어레이디 Z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셀리카 XX는 FR 구동계에 직렬 6기통 엔진을 탑재하여 성능을 크게 올린 모델이다. 그리고 셀리카 XX라는 차명은 일본 내수시장에서만 사용한 차명이고, 북미 시장에서는 셀리카 수프라(Celica Supra)라는 별도의 차명을 사용했고, 후에 이 '수프라'가 차명으로 굳어지게 된다.

1세대 수프라에 해당하는 셀리카 수프라(A40/A50형)는 노치백형 2도어 쿠페 모델인 셀리카를 3도어 리프트백(패스트백) 형태으로 바꾸고 프론트의 길이를 늘려 보다 큰 체급의 중형쿠페로 차별화를 꾀했다. 엔진은 2.0리터, 2.6리터, 그리고 2.8리터 배기량을 갖는 토요타의 M형 직렬 6기통 엔진을 탑재했으며, 이후로도 이 직렬 6기통 엔진은 수프라를 상징하는 레이아웃이 된다.

또한 순수한 스포츠카를 지향하고 있었던 닛산 페어레이디 Z와는 달리, 한층 고급스럽고 쾌적한 쿠페를 지향했다는 점도 특징이다. 특히 일본 내수 시장에서는 이른 바 '하이소카(ハイソカー)' 붐을 타고 큰 인기를 얻었다. '하이소카'란, 'High Society Car'를 축약한 일본식 조어로, 1960~80년대 일본 경제가 급성장하던 시기에 인기를 끌었던 고급형 차종들을 말한다. 6기통 엔진과 크고 고급스러운 외관 및 실내를 가진 고급 쿠페였던 셀리카 XX는 후에 '렉서스 SC'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최고급 쿠페 모델, 토요타 소아라(Toyota Soarer)의 원류(源流)가 되기도 한다. 

고급 쿠페에서 순수 스포츠카로 선회하다
1981년 등장한 셀리카 수프라(셀리카 XX, A60형)는 컨셉트부터 큰 변화를 맞는다. 1980년, 토요타가 셀리카 XX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고급스러운 대형 럭셔리 쿠페 모델, 소아라(Toyota Soarer)를 내놓으면서, 두 차의 성격이 겹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타일부터 섀시, 그리고 하체 설정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부분을 대대적으로 일신하는 작업을 거쳐야 했다.

외관에서는 팝업 헤드램프를 적용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는데, 이는 수프라의 주요 판매처인 미국 시장의 요구 때문이다. 1970~80년대 등장한 자동차들 가운데 팝업 헤드램프를 적용한 차량이 많은 이유는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미국의 자동차 헤드램프 높이 관련 규제 때문이었다. 이 당시 미국에서 요구하는 헤드램프 높이는 일반적인 세단형 승용차에서는 적용하는 데 큰 무리가 없었으나, 낮은 지상고와 차체 높이를 갖는 스포츠카들에게는 지나치게 높아, 이를 회피하기 위해 이러한 헤드램프를 채용한 것이다. 이러한 디자인에 힘입어, 2세대 셀리카 수프라는 0.35Cd의 공기저항계수를 달성할 수 있었으며, 최고급 사양인 2800GT의 경우에는 최고속도 200km/h 이상을 기록한, 당시로서는 몇 안 되는 차였다.

또한 기존의 리프트백형 차체는 그대로 유지했지만 초대 모델의 부드러운 차체 형상 대신, 직선적이면서도 날렵한 스타일로 탈바꿈했다. 또한 초기형의 경우에는 초대 셀리카 수프라와 마찬가지로, 프론트 펜더 상단에 설치된 펜더미러의 사이드미러를 적용했으나, 후기형에서는 이를 버리고 현대적인 도어미러 형태의 사이드미러로 교체했다.

인테리어는 스포츠 지향이긴 하지만, 태생이 고급 쿠페였던 만큼, 이전 모델의 고급스러운 분위기는 어느 정도 따르면서도, 다양한 편의장비를 적용한 것이 특징이었으며, 초대 셀리카 XX에 적용했었던 버건디 내장색상도 선택 가능했다.

이러한 고급화의 기조가 아직 남아 있었던 점은 내수용 사양에서 특히 두드러졌는데, 토요타의 중소형, 혹은 스포티한 차량들을 주로 취급했던 코롤라점(カローラ店)에서 내세울 수 있었던 가장 고급 차종에 해당하는 차가 바로 이 차였기 때문이다. 최고급 사양인 2800GT의 경우에는 오늘날의 트립컴퓨터와 유사한 '크루즈 컴퓨터'라는 장비를  사용할 수 있었고, 속도제한장치나 정속주행장치 2개 중 하나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2세대 셀리카 수프라는 성능 면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다. 엔진은 기존 대비 더 강력한 엔진을 적용했다. 시작 트림에는 고급세단 크레스타에 사용하기 시작한 2.0리터 SOHC 직렬 6기통 엔진을 시작으로, 고급형인 2800GT에는 최고급 대형 쿠페 모델 소아라에 사용했던 2.8리터 DOHC 직렬 6기통 엔진을 사용했다. 또한 1982년도부터는 2.0리터 SOHC 터보 직렬 6기통 엔진을 추가하고, 신규 트림인 2000GT에는 신개발 2.0리터 DOHC 직렬 6기통 엔진을 적용했다. 2.8리터 엔진은 175마력/5,600rpm의 최고출력과 24.5kg.m/4,400rpm을 발휘했다.

섀시 및 하체의 경우에는 앞서 언급한 더블위시본 서스펜션의 적용 외에도, 영국 로터스자동차(Lotus Cars)의 협력을 통해 주행질감 면에서 큰 향상을 이루었다. 당시 토요타는 2세대 셀리카 수프라의 TV 광고에서 로터스의 수장, 콜린 채프먼(Colin Chapman, 1928~1982)을 내세우며 이를 강조했는데, 이 당시 일본에서는 "토요타와 로터스 간의 협업은 없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후 토요타자동차에서 이를 공식 발표함으로써 이전부터 실제로 협력관계에 있었음을 밝히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대중지향의 스페셜티카인 셀리카의 고급화 파생형 모델로 2대째를 이어왔던 수프라는 1986년, 완전히 독립된 별개의 모델로 거듭나며 진정한 스포츠카로서의 길에 접어들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