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플래그십 세단의 역사 - 1980년대 편

2023-03-15     모토야

자동차역사의 시작점인 구미권의 자동차 산업은 19세기 말엽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자동차 산업사는 두 세기를 넘나드는 세월 동안 차근차근 성장해 왔고, 산업으로서 뿐만 아니라, 하나의 역사이자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대한민국의 자동차 산업은 이들에 비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성장 속도만큼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고, 지금은 세계 10대 자동차 생산국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현재 국내의 자동차 산업은 조선,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과 함께 대한민국 경제를 책임지는 제조업의 중추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자동차 산업은 한국전쟁 이래 미군들이 버리고 간 지프 등의 차량 부속을 주워모으고 드럼통을 펴서 차체를 만드는 원시적인 단계부터 출발했지만 한 세기도 되지 않는 시간에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여 오늘날에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자동차 강국으로 우뚝 섰다. 

물론 그 중간에는 원천기술을 가진 해외의 자동차 제조사들을 끌어들여, 그들과 기술제휴를 맺고 그들의 차들을 만들어 왔던 시간이 있었다. 전후 빠른 수복을 이루며 눈부신 경제 성장을 하고 있었던 대한민국을 아시아 시장으로의 진출을 원했던 다국적 기업들이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외국계 기업들과의 제휴로 인해,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에는 피아트 124와 같은 소형 승용차부터 신진 크라운 등의 중~대형 세단들까지 출시될 수 있었다. 이번 기사에서는 대한민국의 자동차 산업이 발흥하고 있었던 1980년대의 고급세단들을 둘러본다.

현대자동차 그랜저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현대자동차는 포드자동차의 그라나다를 플래그십 모델로 삼고 있었다. 하지만 그라나다는 6기통 엔진을 사용했기에 의전차량으로서의 수요도 기대할 수 없었다. 1980년대 당시 상공부가 석유파동을 이유로 장관급 의전차량을 4기통 차량으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가격도 지나치게 비싸서, 기아산업이 생산하던 푸조 604와 마찬가지로 판매량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이 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는 포니의 개발 이래 단계적으로 포드와의 제휴관계를 정리하고 있었기에, 그라나다를 언제까지 붙들고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포드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플래그십 대형세단 모델이 절실히 필요했다.

이에 미쓰비시는 급속한 성장세를 보이며 이미 자사에 비해 훨씬 대규모의 설비까지 갖추게 된 현대차의 역량에 주목했다. 그리고 현대차에 새로운 고급 승용차를 공동개발하는 프로젝트를 먼저 제안하게 된다. 프로젝트의 내용은 차량의 개발 및 설계는 미쓰비시가 주도하되, 차량의 생산은 현대차가 담당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이렇게 양사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 공동으로 개발하게 된 차는 일본에서는 2세대 '데보네어(Debonair)', 한국에서는 초대 '그랜저(Granduer)'로 불리는 전륜구동 고급세단이 등장하게 된다.

1986년 시장에 등장한 초대 현대 그랜저는 순식간에 시장의 이목을 잡아 끌었다. 그랜저는 등장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대우 로얄 패밀리를 뒤흔들었다.  당시 국내 고급세단 시장의 입맛에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극도로 보수적이고 과시적인 외관과 전륜구동의 상대적으로 우수한 연비와 주행특성, 그리고 다양한 고급 편의장비 덕분에 그랜저는 이 가장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2.0리터 이하급 엔진만 존재해 성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은 대우 로얄 패밀리에 비해 2.4리터 V6와 3.0리터 싸이클론 V6 엔진을 전면에 앞세워 성능 면에서도 압도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뛰어난 상품성을 바탕으로 현대 그랜저는 10년 넘게 대우 로얄 시리즈가 틀어 쥐고 있었던 국내 고급세단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었다. 그랜저는 등장과 동시에 대우 로얄 시리즈를 단숨에 밀어내고 대한민국 고급세단의 대명사로 불리게 되었다. 

대우자동차 슈퍼살롱
1980년대는새한자동차, 그리고 대우자동차에게 있어 마지막 전성기라고 할 수 있었던 시절이다. 이 당시 고급 승용세단 시장을 오펠 레코드(Opel Rekord) 기반의 로얄 시리즈로 완전히 틀어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우자동차는 로얄을 고급 버전인 '로얄살롱'과 중급 버전인 '로얄프린스', 그리고 접근성을 높인 저가형 버전 '로얄XQ'로 이어지는 세단 3종 라인업을 완성했고, 여기에 그랜저의 등장 직전에는 로얄살롱을 더욱 고급화한 '로얄살롱 슈퍼'를 추가했다. 그러나 야심차게 내놓은 최고급 세단 로얄살롱 슈퍼가 그랜저의 등장으로 인해 순식간에 힘을 잃으면서 대우는 로얄살롱 슈퍼를 대대적으로 개량한 모델을 내놓는데, 이 차가 바로 슈퍼살롱이다.

대우 슈퍼살롱은 로얄 살롱 슈퍼의 전면부를 그랜저처럼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색채가 짙은 스타일로 변경한 것이 특징인데, 이는 당시 대우자동차 부평연구소에서 직접 디자인한 것이다. 여기에 오늘날 롤스로이스 등 최고급 세단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상하부 투톤 컬러도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반설계부터 근본적인 혁신이 없었던 슈퍼살롱은 그랜저를 끝내 이겨낼 수 없었다.

대우자동차 임페리얼
슈퍼살롱의 실패를 거울 삼은 대우자동차는 오일쇼크로 인해 백지화되었던 그들의 6기통 세단 프로젝트를 다시 꺼내들었다. 그리고 대대적인 수정 및 보완을 거쳐, 맹렬한 기세로 시장을 장악한 그랜저에게 카운터 펀치를 날리고자 했다. 대우자동차가 내놓을 새로운 대형세단은 (당대로서는)신개념의 디자인과 최신 편의사양, 그리고 오펠의 모트로닉 직렬 6기통 엔진을 한데 버무려 완성되었다. 이 차가 바로 1989년 등장한 대우자동차의 '임페리얼'이다.

대우 임페리얼은  그랜저를 굉장히 의식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프론트 마스크와 더불어, 당대 가장 긴 차체를 지녔다. 하지만 여기에 임페리얼만의 특징으로서 당대 미국의 고급세단에서 사용되었던 캠백(Camback) 스타일의 C필러를 적용한 것이 눈길을 끌었다. 여기에 당대 최강의 성능을 자랑했던 184마력의 3.0리터 직렬 6기통 모트로닉 엔진을 탑재했고, 항공기 실내의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송아지 가죽으로 마감한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그리고 그랜저에게 밀리지 않는 다양한 편의장비를 갖췄다.

대우자동차가 혼신의 힘을 다해 완성한 임페리얼은 상기한 강점들과 더불어, 로얄 시리즈의 최신/최고급 세단이라는 점이 후광 효과로 작용하여 그랜저의 점유율을 조금씩 빼앗아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임페리얼의 앞길은 전혀 순탄치 못했다. 오펠의 3.0리터 모트로닉 직렬 6기통 엔진은 냉각 계통이 부실하여 주행 중 과열이 빈번하여 신뢰성이 떨어졌고 유럽산 엔진 특유의 소음도 당시 고급 승용차 소비층의 취향과는 맞지 않았다. 게다가 잔고장이 많고 품질도 좋지 못해 고급 승용차의 이미지를 스스로 갉아 먹었으며, 결정적으로 싸이클론 V6 엔진을 얹은 그랜저 3.0이 등장하며 몰락했다. 그리고 1993년 단종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