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동차업계의 잇단 인증부정 사태... 그 원인은?

2024-02-13     박병하

지난 연말부터 일본 자동차 산업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토요타자동차(이하 토요타)의 자회사, 다이하츠공업(이하 다이하츠)에서 발각된 대규모 인증부정 사태를 시작으로 연초에는 토요타자동차의 자회사, 토요타자동직기(豊田自動織機, Toyota Industries Corporation)에서 디젤엔진 3종의 성능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태가 커지고 있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보다는 일본측에서 더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인증 부정을 통해 생산 및 출고된 차량들 중 내수용 차량의 비중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다, '일본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실 상 거의 마지막 남은 글로벌 기업인 토요타의 자회사들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기실 일본 자동차업계의 인증 부정 사례는 이것들 뿐만이 아니다. 다이하츠 이전에 토요타의 또 다른 자회사인 히노자동차(Hino Motors)의 경우, 1989년도부터 무려 34년에 걸쳐 인증부정을 행해왔다는 것이 폭로된 바 있다. 토요타그룹 이외의 사례로는 지난 2016년 미쓰비시 자동차가 지난 1991년부터 25년에 걸쳐 연비 데이터를 조작해왔다는 것이 들통나 닛산자동차에 인수합병되었고, 2017년도에는 닛산자동차에서 1979년부터 무자격자에게 완성차 검사를 맡겨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등, 일본의 자동차 업계에서는 잊을 만 하면 불거져 나왔던 바 있다.

대규모 인증부정의 원인은... 경직된 조직문화?
그렇다면, 이렇게 일본의 자동차 업계에서 이러한 일이 잊을 만 하면 수면으로 떠올랐던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가장 최근에 일어났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조사 및 재검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다이하츠, 그리고 토요타자동직기 측의 부정 원인부터 살펴보자. 다이하츠의 인증부정을 조사한 토요타 조사위원회에 따르면, 토요타자동차그룹 전반에 걸친 "지나치게 수직적이고 경직된 조직문화"와 "지나치게 성과 및 수익에 집착하는 목표지향적 기업문화"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특히 토요타자동차그룹은 모회사인 토요타자동차 본사 뿐만 아니라 자회사들까지 '상명하복'식의 경직되고 수직적인 조직문화가 만연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에서, 회사는 항상 다른 업체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지나칠 정도로 빠듯한 개발 일정을 강요하는 것은 물론, 양산 날짜가 정해지면 그 누구도 일정 지연을 말하지 않고, 부정한 방법을 써서라도 일정에 맞춰버리는 일이 일어나버렸다는 것이다. 도요타 조사위는 “값이 싸면서도 성능까지 좋은 차를 '단시간'에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품질 부정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토요타자동차그룹 외부의 위원들로 구성된 제3자위원회 역시 "타이트한 스케줄로 개발일정의 사수를 요구", "현장에서 관리자에게 보고 및 상담이 불가능한 구조", "부정과 은폐를 시도하면 확인이 불가능한 직장환경" 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하지만 그저 '기업문화'만으로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 정확한 원인 설명은 되지 못한다. 일본도 나라에서 법률로 제정한 '자동차 인증제도'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은 '형식승인제도(Typt Approval System)'를 기반으로 하는 인증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다. 이 방식은 유럽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자동차 인증제도로, 차량을 판매하기 전에 정부의 사전 승인은 물론, 정부 주도의 사전 시험 및 검사 과정을 동반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북미 국가들에서 시행하고 있는 '자기인증제도(Self-Certification System)' 기반의 인증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 자동차업계에서 벌어진 인증부정 행위는 소비자는 물론, 국가의 제도를 정면으로 능멸한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허울뿐인 인증제도
일본의 자동차 인증심사는 국토교통성 소관인 자동차기술종합기구(NALTEC)와 교통안전환경연구소(NTSEL)가 실시한다. 이들 인증기관의 심사에 합격하면 신차로서 제조 및 판매하기 위한 형식 지정을 받을 수 있다. 인증시험은 대량생산에 필요한 '형식지정'을 취득하기 위해 필요하며, 정해진 시험방법에 의해 차량이 안전 및 친환경성에 적합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또한 일본의 자동차 인증 기준은 국제 표준을 따르고 있으며, 시험의 진행 및 세부 기준은 유럽의 자동차관련 규제에 기반하고 있다. 

일본 현지의 매체들은 부정을 저지른 주체인 다이하츠를 연일 성토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식의 엄격한 형식승인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면, 일개 기업이 소비자와 국가를 상대로 한 일종의 사기행위를 여러 해 동안 지속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설령 그러한 움직임이 있었다고 해도 사전에 차단되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증을 진행하는 주체인 국가기관이나 제도에는 문제가 없었을까? 일본 현지의 매체에서는 연일 부정을 저지른 다이하츠를 성토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인증부정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는 보도가 거의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현행의 자동차 인증제도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日마이니치 방송(MBS)은 지난 2023년 12월 21일 방송한 뉴스 프로그램에서 이 문제에 대해 일본의 자동차 평론가 모모타 켄지(桃田健史)氏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해당 인터뷰에서 모모타 평론가는 "안전 측면에서의 부정은 그야말로 '악질'"이라며, "국가에는 인증제도 본연의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인증이라고 하는 것은 '형식 지정'이 된 차량을 제조하기 위한 허가를 받는 것으로, 인증을 받아야 하는 내용도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이를 담당하는 국토교통성 산하의 담당 기관은 현재 인원으로 감당할 수 없는 탓에, 대면으로 실시할 수 있는 시험들이 적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현재 일본 국토교통성의 자동차 인증 담당 기관은 제조사가 제공하는 데이터를 신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증을 내주고 있다는 것이 현재 일본 내 자동차 인증제도의 현주소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러한 행태를 두고 '성선설'이라는 말로 축약해 표현한다. 즉, 국가 기관에서 제조사의 결과물을 철저하게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제조사가 정확한 데이터를 제출한다는 것을 전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일본의 자동차 인증제도는 실로 허울뿐인 것이 되고 만다. 이런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면 우리나라나 북미에서 시행하고 있는, 사후 승인을 내주는 자기인증제도 보다도 더욱 허술하게 운영되과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또한 모모타 켄지는 같은 날 TBS와 진행한 인터뷰에서도 일본의 자동차 인증제도 문제를 직접적으로 지적했다. 그는 "이만큼의 허점이 드러난 것이 현재의 문제이며, 이전의 히노자동차나 미쓰비시자동차의 경차들의 연비 부정 사건 당시에도 국토교통성 측의 부실한 인증절차가 지적된 바 있다"고 말했다. 해당 인터뷰에서도 그는 "국토교통성측의 관리자와 담당자 인원이 부족해 입회검사가 적고, '성선설'을 전제로 제조사의 데이터를 수용하는 식으로 인증을 진행하는 곳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인증을 실시하는 쪽도, 신청하는 쪽도 확실한 디지털 데이터를 통해 부정이 행해질 수 없는 상황을 상정하고 인증을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는 근본적인 개혁을 제조사 뿐만 아니라 국가에서도, 업계에서도 동시에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외에도 일각에서는 현재 일본의 자동차 인증 및 검사제도가 지나치게 과잉되어 있고, 행정력 낭비가 심한 구조라는 의견도 있다.

다이하츠 신체제 발표... 신뢰 회복할 수 있을까?
한편 다이하츠와 토요타 본사 측에서는 오늘(13일) 다이하츠의 신체제에 대한 공동 입장문을 발표했다. 다이하츠와 토요타 양사는 서두에서 "이번 인증부정 문제로 고객을 비롯해 공급업체, 판매점, 공장 소재지 등, 많은 이해관계자 여려분께 엄청난 폐롸 걱정을 끼쳐드린 것에 대해 다시금 깊이 사과 드린다"며, "앞으로 새로운 체제 하에서 재발방지책을 철저히 이행하고 향후의 재생을 향한 대처를 진행해 나갈 것이며, 토요타 역시 새롭게 태어나는 다이하츠를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사가 공동 발표한 다이하츠의 신체제란, '경영진과 현장의 소통'과 '현장이 주권을 되찾는 경영 방침'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계획이라고 한다. 오는 3월 1일부로 다이하츠의 마츠바야시 스나오(松林淳) 회장과 오쿠다이라 소이치로(奥平総一郎) 사장을 비롯한 임원진은 전면 퇴진하며, 새로운 수장으로 토요타의 중남미 시장을 맡고 있었던 이노우에 마사히로(井上雅宏)를 사장으로, 큐슈지역을 담당하고 있었던 쿠와타 마사노리(桑田 正規)를 각각 임명한다. 기존의 회장직은 없어지고, 사장과 부사장 체제로 재편된다.

토요타는 "향후 새로운 체제를 통해 다이하츠 사내나 이해관계자 여러분과 대화를 거듭하면서, 향후의 다이하츠의 사업의 구체적인 모습이나, 그것을 추진해 가는 본부장 이하의 체제에 대해 검토 및 판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잇단 인증부정 사태로 인해 일본 자동차업계의 신뢰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지금, '신뢰회복'을 위한 일본 자동차 업계의 고민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