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딜락 SRX 시승기

2012-04-03     김기범

SRX 는 캐딜락의 중형 SUV다. 이번이 2세대 째다. 1세대 모델은 지난 2004년 처음 선보였다. 당시 캐딜락이 밝힌 SRX의 타이틀은 ‘미디엄 럭셔리 유틸리티 비클’. 뼈대는 뒷바퀴굴림 기반인 CTS의 시그마 플랫폼이었다. 캐딜락이 승용차를 기본으로 만든 최초의 크로스오버카였다. 뒷바퀴굴림의 틀로 크로스오버를 만든 건 업계에서도 흔치 않은 경우였다.




1 세대 CTS와 SRX가 이끈 캐딜락의 변화는 이들 모델이 2세대로 거듭나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자아도취에 빠져 들떴던 지난 개혁에 대한 반성을 담았다. 지나치고 섣부른 욕심도 다독였다. 한 발 앞서 선보인 CTS가 좋은 예였다. 에지에선 예리함을 덜어냈다. 인테리어에서는 실용주의가 디자인 지상주의, 그리고 어긋난 미래감각과 사이좋게 타협했다.

2세대 SRX 또한 마찬가지. 그러나 CTS와 또 다른 외유내강의 변화가 스몄다. 이를테면 뼈대가 그렇다. 뒷바퀴 굴림 기반의 1세대와 달리 이젠 앞바퀴 굴림방식 플랫폼을 쓴다. GM대우 윈스톰과 같은 계열의 뼈대다. 자연스레 엔진 배치도 세로에서 가로로 바뀌었다. 1세대의 과격함을 다독였을지언정, 변화의 내용은 가히 혁명적인 셈이다.

이번 SRX는 스케일을 재구성하는 한편 라인의 흐름에 다채로운 변주를 줬다. 그 결과 한결 오밀조밀한 모양새가 됐다. 단지 잘 생겨서 샀다는 얘기 꺼내기가 머쓱하지 않을 만큼. 플랫폼을 바꾸면서 덩치는 한결 아담해 보인다. 그러나 수치를 따져보면 딱히 큰 차이까진 아니다. 길이 100㎜, 높이 20㎜가 줄었을 뿐이다. 너비는 오히려 66㎜ 키웠다.

반면 휠베이스는 1세대보다 150㎜나 줄었다. 앞 오버행이 늘어나면서, 얼굴은 더욱 커 보인다. 눈망울은 수직으로 곧추세웠던 이전과 달리 펜더 모서리의 흐름을 따라 완만히 뉘였다. 이젠 CTS와 분위기만 나눴을 뿐 사뭇 다른 표정이 됐다. 몸집보다 좁은 지붕을 씌우면서 네 면의 그린하우스 또한 비스듬히 기울었다. 수치보다 덩치가 작아 보이는 이유다.




실 내 구석구석엔 다양한 수납 아이디어가 녹아들었다. 센터콘솔은 2단으로 나눴다. 글러브박스는 1.8ℓ 생수병을 꿀떡 삼킨다. 트렁크의 해치도어는 전동식으로 여닫힌다. 짐 공간은 827ℓ가 기본. 뒷좌석을 접으면 1732ℓ까지 확장된다. 한편, 3열 시트는 사라졌다. 그래서 이젠 5인승이다. 한편, 센터페시아 위쪽에선 8인치 LCD 모니터가 오르내린다. 일본 덴소와 개발한 내비게이션도 뜬다. 수입차 최초로 한글 음성인식 기능을 갖췄다.

국내에 소개된 신형 SRX의 엔진은 V6 3.0ℓ 265마력 한 가지. CTS에 얹은 3.6ℓ 엔진의 소형 버전으로, 가변밸브 타이밍 기구와 직분사 시스템으로 효율을 높였다. 최대토크는 5천100rpm에서 50.8㎏·m. 변속기는 자동 6단 하이드라매틱(6T-70)으로 진화했다. 정숙성은 굉장히 뛰어나다. 아이들링 땐 심지어 보닛 옆에서도 엔진의 쇳소리를 눈치 채기 어렵다.

드로틀을 활짝 열면, 휘둘리거나 숨 찬 느낌 없이 기분 좋게 가속을 이어간다. 배기량 빠듯한 자연흡기인 만큼 저회전 토크가 넉넉지 않지만, 높은 1~2단 기어비로 갈증을 달랠 만하다. 기어는 스티어링 휠의 패들로도 주무를 수 있다. 스포츠 모드에선 연료가 차단될 때까지 기어를 물고 늘어진다. 그러나 반 박자 느린 반응과 흐릿한 연결 감각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신형 SRX는 V8의 1세대보다 25㎏이나 무겁다. 그럼에도 핸들링 감각은 오히려 친근하고 편안하다. 접지력의 임계점을 넘어설 때 언더스티어로 흐르는 성향은 여전하다. 그러나 휠베이스가 짧아지면서 회전감각이 더욱 경쾌해졌다. 실시간 감쇠력 조절식 서스펜션은 탄탄함과 편안함의 교집합을 절묘하게 짚어낸다. 상시 AWD 시스템과 eLSD는 앞뒤와 뒷바퀴 좌우의 토크를 끊임없이 옮겨 최적의 접지력을 이끈다.

1세 대와 2세대 SRX의 운전감각은 브랜드와 차급이 바뀐 것만큼 판이했다. 솔직히 개인적으론 이전의 예리한 감각이 그립기도 했다. 변화의 방향이 옳았는지는 판매가 말해줄 것이다. 분명한 건, 신형으로 거듭나면서 SRX가 불특정다수의 취향에 한결 가까워졌다는 사실이다.


글 김기범|사진 G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