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 스포츠카의 시작, XK120 이야기

기사입력 2019.06.0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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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는 영국의 고급 자동차 제조사로, 스포티한 스타일과 독특한 주행질감을 품은 세단 라인업을 주력으로 현재는 크로스오버와 전기차 시장에도 진출해 있다. 재규어는 1920년대, 이륜자동차의 사이드카를 제작하는 제조소로 시작했다. 하지만 1930년대부터 자동차 시장의 성장세와 가능성에 주목한 창업주 윌리엄 라이온즈(William Lyons)의 혜안으로 본격적인 자동차 제조사로 업종을 전환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 재규어가 스스로 표방하고 있는 이미지는 ‘아름다운 고성능’이다. 그런데 이러한 방향성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재규어는 창사 이래 지금까지, 항상 이와 같은 기조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재규어는 항상 당대에 가장 우수한 성능의 자동차를 만들어 왔으며, 더욱 우수한 성능을 알리고, 경험을 축적하기 위해 모터스포츠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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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유독 성능을 강조하는 경향은 본격적인 자동차 제조사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1936년 출시한 ‘SS100’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참혹했던 전쟁이 끝난 이후 등장한 또 하나의 신차는 재규어의 역사와 방향성을 더욱 확고히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 차의 이름은 바로 ‘XK12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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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 XK120은 재규어가 1948년 출시한 2인승 스포츠카다. 매끈하고 유려한 곡선이 인상적인 이 스포츠카는 고전 스포츠카 디자인의 전형인 롱-노즈/숏-데크의 비례를 철저하게 따른 형태로 빚어졌다.   XK120의 개발은 전쟁 이후 재규어의 새로운 주력이 될 신형 세단 모델의 개발이 지연된 것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재규어가 준비하고 있었던 신형의 세단 모델은 각종 신규 설계가 적용되어 있었다. 따라서 새로운 엔진과 섀시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한 테스트 베드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재규어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업이었기에, 이와 같은 과정에서 상당한 시간을 들일 수 밖에 없었다.


신형 세단의 개발 지연은 곧 소비자의 관심에서 멀어진다는 것과 같았다. 따라서 재규어는 신형 세단의 엔진과 섀시의 성능을 시험할 테스트 베드와 더불어 이른 시기에 출시하여 소비자의 관심을 붙잡아 둘 차를 급하게 만들어야만 했다. XK120은 이러한 전후 사정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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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런던모터쇼에서 처음 등장한 XK120은 유럽 자동차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공기역학을 반영한 미려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외관 디자인은 물론, 당대 최신 기술로 통했던 DOHC(Double Overhead Cam) 방식을 적용한 3.4리터 XK엔진과 신형의 섀시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이목을 끌게 된 내용은 바로, 차명인 XK120의 ‘120’이라는 숫자였다. ‘120’은 이 차가 낼 수 있는 제원 상 최고속도인 120mph(약 193km/h)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1948년 당시 120mph의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것은 마치 10여년 전, 부가티 베이론이 400km/h의 벽을 돌파한 것과 같은 충격이었다. 재규어 XK120의 엔진은 162마력의 최고출력을 자랑했다. 이는 이탈리아산 경주용 자동차들에 준하는 성능이었고 당대에도 비싼 가격으로 유명했던 이탈리아산 스포츠카들을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즉, 양산차에게는 꿈의 영역에 해당하는 속도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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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슈가 된다는 것은 곧 언론과 호사가들에게 공격받게 될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국의 언론은 XK120에 대해 연일 회의적, 내지는 부정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특히 XK120의 기계적인 완성도를 우려하면서 신뢰성에 대한 강한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이러한 언론의 태도는 그리 이상한 반응은 아니다. 국내의 중소규모 자동차 제조사에서 어느 날 갑자기 “최고속도 400km/h를 넘는 차를 만들었다”고 발표한다면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들을 이가 몇이나 있을까? 그만큼 재규어 XK120의 성능이 당대에 ‘터무니없는’ 수준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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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K120를 공개하면서 나타난 영국 언론의 반응에 가장 격하게 분노한 사람은 바로 라이온즈였다. 라이온즈는 재규어의 수장임과 동시에, XK120의 직접 설계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래서 언론의 부정적인 반응에 대해 격노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언론의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직접 XK120의 성능시연을 벌이는 결단을 내렸다. XK120의 성능 시연은 벨기에 야베크(Jabekke) 지역의 긴 왕복 2차선 도로에서 벌어졌다. 라이온즈는 이 날 XK120의 성능을 의심했던 영국의 기자들을 모두 불러 모았고, 자신이 직접 XK120의 운전대를 잡으며 성능 시연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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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연 결과는 대성공. 이 날 성능 시연에서 XK120이 기록한 최고속도는 무려 132mph(약 213km/h)에 달했다. 제원 상의 최고속도보다 10% 더 높은 속도가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 속도는 당대의 양산차량 중 가장 빠른 속도였다. 오늘날로 빗대자면 마치 부가티 시론에 해당할 법한, 하이퍼카 수준의 성능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가격은 이탈리아제 스포츠카들에 비해 절반도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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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K120의 놀라운 성능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던 영국의 언론에 놀라움을 안겨주었고, 이 이후로 재규어는 성능 중심의 자동차 제조사로 그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XK120은 ‘아름다운 고성능’을 표방하는 재규어의 시작점이자 전환점을 맞이하게 만들어준 자동차이며, 지금도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XK120의 뛰어난 설계는 이후 1950년대 르망24시에서 통산 5회 우승을 따낸 `재규어 C-타입`과 `재규어 D-타입` 등의 명차를 만들어 낸 밑바탕이 되었다. 또한 재규어의 전성기를 이끈 마크(Mk) 시리즈의 첫 번째 모델, Mk.I 세단의 설계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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