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티 Q70이 에쿠스의 형제차가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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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피니티 Q70이 에쿠스의 형제차가 된 사연
  • 박병하
  • 승인 2016.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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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에서 `초대형 세단`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나타난 현대차의 플래그십 세단 에쿠스. 지금은 제네시스 브랜드의 EQ900이 그 혈통을 계승하고 있지만, 제네시스 브랜드의 설립 이전까지, 에쿠스는 당시 체어맨과 함께 대한민국 최고급 세단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고 있었고, 지금도 그 영향이 남아, 후계자라 할 수 있는 EQ900에도 영향을 끼친 바 있다.



에쿠스는 현대차와 미쓰비시자동차(이하, 미쓰비시)의 공동 개발로 태어났다. 또한, 에쿠스의 개발을 끝으로, 미쓰비사의 기술 이전도 마무리에 이르게 되어, 현대와 미쓰비시의 마지막 공동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현대차는 이 프로젝트로 완성된 전륜구동 대형 세단을 한국 시장에서 `에쿠스`라는 이름으로, 미쓰비시는 일본 시장에서 `프라우디아(Proudia)`라는 이름의 플래그십 대형 세단으로 판매를 개시했다. 아울러, 한국에서 에쿠스 리무진으로 판매된 모델에는 `위엄`, `존엄성` 등을 의미하는 `디그니티(Dignity)`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했다. 현대차의 에쿠스는 라틴어로 `말(馬)`을 의미하는 이름이었고, 미쓰비시의 프라우디아는 자존심을 뜻하는 영어의 Proud와 가장 값비싼 보석이자, 자사의 상징이기도 한 다이아몬드(Diamond)를 조합한 것이었다. 미쓰비시에게는 그야말로 회사의 상징이자 자존심을 건 이름이었던 것이다.


현대의 에쿠스는 사실 상 유일한 경쟁자였던 쌍용자동차의 체어맨을 압도하고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하며 대한민국 대형 세단의 대표 주자로 성장했다. 반면, 미쓰비시 프라우디아의 행보는 에쿠스와는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그야말로 자존심을 걸고 만들어진 프라우디아가 일본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불과 2년여 만에 단종의 수순을 밟았기 때문이다.



프라우디아의 실패의 이면에는 시장 환경이 달랐다는 것을 들 수 있다. 한국의 경우, 당시 현대차가 타도해야 할 적은 쌍용차의 체어맨이 사실 상 유일했고, 실내 공간과 눈길 주행에서의 불리함을 이유로 당시 전륜구동의 인기가 높았기 때문에 전륜구동 대형 세단이 시장에서 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의 상황은 달랐다. 물론, 이 당시에는 일본 역시 전륜구동 승용차의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그것은 중~소형차에 한정된 이야기로, 대형세단 시장만큼은 전통적으로 전방 엔진 후륜구동계(FR)를 채용한 차들이 시장을 굳건하게 틀어 쥐고 있었다. 경쟁자만 해도 이미 토요타 셀시오(렉서스 LS)를 비롯하여 닛산 시마(구 인피니티 Q세단) 등에 이르는 쟁쟁한 라이벌들이 포진하고 있었으며, 이들과 정면으로 맞서 싸워야 할 상황이었다. 또한, 버블 붕괴와 함께 찾아 온 불황 때문에 대형차 시장의 규모 역시 축소되어, 프라우디아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미쓰비시의 전작인 데보네어(현대차 그랜저) 시절부터 줄곧 고수해 왔던, 지나치게 보수적인 디자인과 경쟁자에 비해 부족한 성능 등으로 인하여, 일본 시장에서는 데보네어 시절부터 주구장창 들어 왔던 `미쓰비시 중역 전용차`라는 비아냥과 함께, 상품성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출시 초기인 2000년에 터지기 시작한 `미쓰비시 리콜 은폐 사건(三菱リコール隠し事件)`으로 인해, 기업의 신뢰도에 막대한 손상을 입었음은 물론, 당시 최대 주주였던 다임러-크라이슬러(Daimlerchrysler)가 자본 제휴를 끊어버리는 등, 심각한 경영 부진을 겪으며 파산 위기에까지 몰린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 시기 자금이 궁해진 미쓰비시가 판매량이 부족한 모델들은 전부 단종시키는 정책을 취함으로써 한 때 회사의 자존심을 걸었던 플래그십 모델을 출시 2년여 만인 2001년에 단종시키고 만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난 2011년 9월, 미쓰비시는 내수 시장에서 닛산과의 업무 제휴를 통해 서로의 모델 라인업을 일부 공유하게 되었다. 닛산은 미쓰비시의 경차 라인업 일부를, 미쓰비시는 닛산의 승용차 라인업 일부를 각각 OEM공급 받는 식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미쓰비시의 기함이었던 프라우디아가 부활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새로운 프라우디아는 한 때 자사의 자존심을 걸었던 기함이자, 현대차 에쿠스의 형제차라는 정체성과는 완전히 다른 차였다. 그 차는 다름 아닌 닛산 푸가, 한국 시장 기준으로 인피니티 Q70(구 인피니티 M)이기 때문이다. 이 뿐만 아니라, 이듬해에는 프라우디아의 리무진 버전이었던 디그니티 역시, Q70의 롱 휠베이스 모델인 `닛산 시마(인피니티 Q70의 롱 휠베이스 모델)`로 대체되었다. 한 때 넘을 수 없었던 경쟁자 중 하나가 대를 잇기 위한 양자로 들어 온 모양새가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인피니티 Q70은 족보 상으로 본의 아니게 현대 에쿠스의 형제가 되어버렸다. 물론, 오늘날에는 현대차와 미쓰비시와의 관계성은 이미 끊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어디까지나 미쓰비시가 닛산 승용 모델의 OEM공급을 받기 위한 업무 제휴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일이므로,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에쿠스의 쌍둥이 형제였던 프라우디아의 실패는 미쓰비시의 경영 부진 등에서 비롯된 일이었고, 그 자리에 자기 자식이 아닌, 남의 자식이 들어앉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도 미쓰비시 자동차가 스스로 자초한 일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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