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 랭글러 사하라 언리미티드 2.8 CRD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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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 랭글러 사하라 언리미티드 2.8 CRD 시승기
  • 김기범
  • 승인 2012.07.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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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 은 치열한 경쟁의 산물이었다. 1940년 미 육군은 군용차 선정을 위해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었다. 최고시속 90㎞ 이상, 최대 견인력 250㎏ 이상, 무게 953㎏ 이하, 접근각 45°, 탈출각 35°. 총알이 소나기처럼 빗발치는 전장을 누벼야 하니 기능성과 내구성은 기본. 동시에 쓸 데 없는 건 과감히 발라냈다. 그야말로 핵심 중의 핵심만 추린 알짜배기였다.




짚 의 뿌리는 1944년 등장한 CJ 시리즈였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새로운 수익을 꾀하기 위해 내놓은 민수용 사륜구동차였다. CJ 시리즈는 윌리스-오버랜드, 카이저 짚, 아메리칸 모터스 코퍼레이션 등 모기업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브랜드로 선보였다. 아울러 세계 각지에서 라이선스 방식으로 생산됐다. 국내 최장수 브랜드, 코란도 역시 CJ가 밑바탕이었다.


오 늘날 짚은 SUV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장수 비결은 ‘단순함’에서 찾을 수 있다. CJ 시리즈는 수십 년 동안 같은 모습을 지켰다. 하지만 변화는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짚은 1987년 CJ의 후속으로 랭글러를 선보였다. 2007년엔 코드네임 JK의 3세대로 진화했다. 이때 처음 4도어 모델인 언리미티드를 더했다.




랭 글러 언리미티드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새빨간 페라리, 샛노란 람보르기니 뺨친다. 길이는 4m를 살짝 넘지만, 1.84m의 키 때문에 수치보다 훨씬 커 보인다. 보행자 안전규정을 챙기느라 오리주둥이마냥 삐죽 내민 앞 범퍼마저 위압적이다. 곳곳엔 쇠의 냉랭한 질감이 선연한 경첩과 볼트가 드러났다. 네모반듯한 앞 유리는 거의 수직으로 곧추섰다.


지 난해 랭글러는 실내를 화끈하게 갈아치웠다. 대시보드는 디자인뿐 아니라 촉감도 한층 부드러워졌다. 스위치도 인체공학적으로 바꿨다. 하지만 짚 랭글러만의 특징은 여전하다. 쇠파이프 기둥과 철판을 스스럼없이 드러냈다. 시트엔 직물을 씌웠다. 뒷좌석은 벤치식인데, 등받이가 수직에 가깝고 엉덩이 받침의 길이가 짧다.  



뒷 좌석 등받이는 엉덩이받침과 포개서 접을 수 있다. 그러면 앞좌석 이후 같은 높이로 펼쳐진 짐 공간이 나온다. 뒷좌석을 세우더라도 짐 공간은 넉넉한 편이다. 2011년형은 뒷유리를 키워 시야를 개선했다. 예나 지금이나, 지붕은 볼트와 걸쇠를 풀면 벗길 수 있다. 앞좌석 천정 좌우와 나머지 부분의 세 덩어리로 나뉜다. 옵션으로 소프트 톱도 마련했다.


올 해 크라이슬러 코리아는 랭글러 사하라를 라인업에 더했다. 랭글러는 가장 기본형인 스포츠와 오프로더 성향을 부각시킨 루비콘, 도심에 어울리게 멋을 부린 사하라로 나뉜다. 이번에 시승한 모델은 랭글러 사하라 언리미티드. 루비콘 언리미티드와 기본적으로 외모는 같다. 무광 검정으로 처리했던 펜더와 루프를 차체와 같은 색으로 칠했다. 한층 산뜻하다.




랭 글러 사라하 언리미티드의 엔진은 직렬 4기통 2.8ℓ 디젤 터보. 지난해 성능이 업그레이드되었다. 최고출력은 177에서 200마력, 최대토크는 40.8에서 46.9㎏·m로 치솟았다. 신형 그랜드 체로키의 자동 5단 변속기를 물리고 최종감속비를 줄였다. 공인연비도 개선했다. 굴림방식은 파트타임 4WD. 평소엔 후륜구동이고, 4H(고속)와 4L(저속)을 선택할 수 있다.


운 전석에 오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앞 유리 너머 보이는 네모난 풍경, 옆차기 하듯 불거진 펜더가 우쭐한 기분을 더한다. 중장비나 대형 트럭 운전석에 앉은 기분이다. 버튼 시동 같은 사치는 어울리지 않는다. 삐뚤삐뚤한 이랑을 새긴 전통적 열쇠다. 그걸 꼽고 비틀면, 육중한 차체가 움찔 떨면서 엔진이 깨어난다. 규칙적인 쇳소리가 더없이 터프하다.




첫 걸음을 떼는 순간 무게와 덩치가 피부에 와 닿는다. 높은 기어비 때문에 첫 발자국이 힘겹다. 그러나 액셀을 깊숙이 밟으면 당황스러울 만큼 저돌적으로 튀어나간다. 운전 감각은 예상 그대로다. 거칠다. 스티어링과 엔진의 반응엔 시차와 유격이 두드러진다. 차체는 코너에서 육중하게 기운다. 4H나 4L 모드에선 앞뒤 바퀴의 회전차로 끽끽 제동이 걸린다.


‘모 름지기 남자라면.’ 짚 랭글러는 이런 호기를 들쑤시는 존재다. ‘사내대장부에게만 허락된 물건’ 같은 남성 우월적 발상이 거리낌 없어지는 차다. 뼛속까지 거친 짚의 성향은 강하고 싶은 남자의 욕망과 찰진 궁합을 이룬다. 뒷좌석 편의성을 높였다지만, 여전히 짚은 현실보다 환상을 만족시켜주는 차다.




랭 글러는 소유하는 순간, 라이프스타일이 뒤바뀐다. 그럴 수밖에 없다. 승용차처럼 나긋나긋하게 몰아선 본전의 절반도 뽑아먹기 어렵다. 운전자도 적당히 거칠어질 필요가 있다. 막강한 오프로드 성능은 활동범위를 극적으로 넓혀준다. 이 차로 바위산이나 계곡을 탐험하는 이는 극소수다. 하지만 잠재력을 갖췄다는 사실만으로 까닭모를 용기와 자신감이 샘솟는다.

글 김기범|사진 최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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