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보르기니의 첫 작품은 슈퍼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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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르기니의 첫 작품은 슈퍼카가 아니다?
  • 박병하
  • 승인 2017.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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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페라리와 함께, 이탈리안 슈퍼카 브랜드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람보르기니(Automobili Lamborghini)는 특유의 디자인과 폭발적인 성능, 그리고 브랜드 고유의 감성 등으로 전 세계에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으며, 대한민국에서도 슈퍼카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 람보르기니의 첫 작품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슈퍼카`라는 답을 기다리고 있었던 독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람보르기니의 첫 작품은 슈퍼카가 아니었다. 그들의 첫 슈퍼카는 1966년 제네바 모터쇼를 통해 데뷔한 미우라(Miura)였고, 이 차는 람보르기니의 세 번째 작품이다. 그런데 창업주인 페루치오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 1916 - 1993)가 회사를 차린 것은 1963년의 일이다. 그렇다면, 3년의 시간이 남는데 이 3년간 그들은 무슨 차를 만들었을까?



람보르기니의 첫 양산차는 전형적인 GT(Gran Turismo)였다. 이 차의 이름은 `350GT`. 전방엔진 후륜구동(FR) 형식에, 기나긴 노즈와 짧은 트렁크, 그리고 매끄러운 실루엣의 패스트백 루프를 지닌 아름다운 2도어 쿠페형 자동차였다. 이 차의 외관은 애스턴 마틴 DB5와 알파로메오 디스코 볼란테(Alfa Romeo 1900 C52 Disco Volante)를 빚어낸 이탈리아의 카로체리아, 투어링 수퍼레게라(Touring Superleggera, 이하 투어링)의 작품이다.



람보르기니의 첫 작품이 이러한 GT인 이유는 창업주인 페루치오의 선호에서 비롯되었다. 우선, 그가 소유했던 페라리 대부분이 GT였다. 그리고 그가 한창 F1에서의 승리에 취해 있었던 엔초 페라리(Enzo A. Ferrari)의 참을 수 없는 오만함에 실망하고, 자동차 회사를 세운 계기를 만들어 주었던 차 역시 페라리의 GT들 중 하나였다. 그만큼 그는 강력한 성능과 안락함, 그리고 아름다운 외형을 지닌 GT를 사랑했다. 람보르기니의 엔지니어들이 슈퍼카 미우라의 개발을 그의 몰래 진행해야 했었던 이유도 페루치오의 이 같은 GT 사랑에 있었다.





350GT는 람보르기니의 첫 프로토타입에 해당하는 350GTV를 대량생산 환경에 맞게 개수한 결과물이었다. 외형 상에서는 350GTV의 팝업식 헤드램프를 제거와 같은, 대량생산에 걸맞은 개수를 단행했다. 투어링이 제작한 매끈하고 유려한 곡선의 차체 아래에는 지오토 비자리니(Giotto Bizzarrini)가 설계한 3.5리터의 V형 12기통 엔진이 숨쉬고 있었다. 이 엔진은 알루미늄 실린더 블록과 DOHC 방식을 적용한, 선진적인 설계의 엔진이었다. 당초 비자리니의 설계는 11,000rpm에서 400마력의 최고출력을 낼 수 있도록 했으나, 양산형 GT에는 가속특성이나 정숙성, 내구성 등에서 적합하지 않았기에, 전술한 세 가지를 고려한 270마력 사양으로 최종 결정된다. 변속기는 독일 ZF의 5단 수동 변속기를 사용했다.



성능은 GT카답게 훌륭했다. 0-100km/h 가속 시간은 6.8초였으며, 최고속도는 약 250km/h에 달했다. 튼튼한 튜브 프레임 섀시와 코일스프링 댐퍼가 적용된 4개의 독립식 서스펜션은 우수한 핸들링을 제공했고, 진공 서보의 도움을 받는 디스크 브레이크로 차체의 움직임을 다스렸다.



람보르기니의 첫 양산차인 350GT는 1964년부터 1966년까지 총 242대가 생산되었다. 그 후, 미우라가 등장하기 이전에 후계차인 400GT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단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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