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 CLS 350 블루이피션시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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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벤츠 CLS 350 블루이피션시 시승기
  • 김기범
  • 승인 2012.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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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즘 전 세계 자동차 업계를 휩쓰는 테마는 ‘섹시’다. 과거엔 스포츠카의 특권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 빠르게 그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다. 신호탄을 쏘아올린 주인공은 2004년 데뷔한 메르세데스-벤츠 CLS였다. 문짝 넷 달린 세단이었다. 하지만 몸매가 스포츠쿠페 뺨치게 섹시했다. E-클래스의 뼈대를 152㎜ 늘려 쓰되 더 비싼 값을 매겨 위급으로 내놨다. 

 

벤 츠의 도발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CLS를 ‘4도어 쿠페’라고 주장했다. 기존 ‘쿠페=2도어’의 고정관념을 거리낌 없이 뒤집었다. 호기심에 목마른 언론은 신이 나서 떠들었다. 우리가 내연기관 자동차를 발명했는데 그깟 장르의 정의 좀 비틀면 어때, 이런 자신감이 넘쳐났다. 자동차 업계는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벤츠의 모험을 지켜봤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팔 짱 끼고 물끄러미 지켜보던 자동차 업계의 발등엔 불똥이 튀었다. 허둥지둥 CLS 꼬리잡기에 나섰다. 하지만 몇 년의 공백은 피할 수 없었다. 신차 개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리적 시간이었다. 그 시기가 지날 무렵, 소위 쭉쭉 빵빵한 세단이 속속 선보였다. 폭스바겐 CC, 포르쉐 파나메라, 애스턴마틴 라피드가 나왔다. 늦깎이로 아우디 A7도 뛰어 들었다.

메 르세데스-벤츠 CLS 이후 자동차 업계는 여성의 감성에 호소할 디자인과 패키지에 눈을 떴다. 그리고 경쟁적으로 제품에 반영했다. 각종 조작감이 가벼워졌다. 승차감은 나긋나긋해졌다. 차체를 수놓은 근육의 결 또한 고와졌다. 심지어 핸드백 및 쇼핑백 걸이까지 등장했다. 섬세한 취향의 남성과 편안한 차를 원하는 중장년층까지 아우를 묘안이었다.

그 런데 앞날은 알 수 없다더니, CLS가 기획될 때와 사뭇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2007년 미국의 부실담보대출로 촉발된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시장은 급격히 활기를 잃었다. 반면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등 신흥시장은 꾸준히 성장을 거듭했다. 아직까진 여성보다 남성의 영향력이 큰 시장이었다. 이 같은 불황과 호황에, 프리미엄 자동차는 누구보다 민감했다.


이 번에도 벤츠는 빨랐다. 미묘한 변화의 낌새를 귀신같이 눈치 챘다. 2010년 풀 모델 체인지로 진화한 신형 CLS가 등장했을 때 업계는 경악했다. 섹시 스타가 돌연 마초로 변신해서다. 벤츠는 기존 CLS의 여성스러운 성향을 과감히 덜어내고 남성호르몬을 잔뜩 주입했다. 그야말로 극적인 반전이었다. 기를 쓰고 CLS 뒤쫓던 업체들은 별안간 머쓱해졌다. 

 

몇 년 사이 자동차 업계를 울고 웃게 만든 악동, CLS를 시승 무대에 올렸다. 국내엔 CLS 350 블루이피션시와 63 AMG 두 모델이 수입된다. 이번 시승엔 350이 나섰다. 사진으로 처음 접했을 땐 내심 구형이 그리웠다. 예상을 뒤엎은 성전환 시술의 충격 때문이었다. 그런데 직접 보니 사진과 느낌이 굉장히 달랐다. 첫인상을 간추릴 단어는 ‘존재감’이었다.

 

미 끈미끈했던 몸매엔 불끈불끈 돌기가 도드라졌다. 별안간 빵빵하게 부푼 근육 때문에 옷깃을 채 여미지 못한 분위기다. 옆면은 두 가닥 선이 가로질렀다. 눈매 끝자락과 앞바퀴 뒤에서 시작된 선은 뒷문 주위에서 서서히 흐릿해진다. 끝자락의 희미한 흔적은 뒷바퀴 주위에 잔뜩 응어리진 근육으로 녹아든다. 뛰쳐나가기 위해 뒷다리 웅크린 맹수가 떠오른다.


 

얼 굴 역시 강렬하다. 동여맨 매듭이 팍 터지며 거우듬히 벌어진 모양새다. 커다란 그릴 한 복판엔 샐러드 접시만한 세 꼭지별을 박았다. 그 밑엔 그릴 못지않은 크기의 흡기구를 심었다. 그릴 양옆엔 밤낮없이 형형한 빛을 뿜을 LED 띠를 둘렀다. 헤드램프도 큼직한데, 광원을 ‘ㄷ’자 모양으로 심은 LED 속에 가뒀다. 눈을 가늘게 뜬 듯, 음산한 표정이다.

이 전 CLS의 날렵한 느낌은 뾰족이 부각되고 예리하게 수렴된 선에서 비롯되었다. 반면 이번 CLS의 선은 굵고 뭉툭하다. 또한, 은근히 시작되어 잔잔히 끝맺는다. 이 같은 차이는 디자인을 이룬 요소에 고스란히 적용되었다. 테두리를 완만하게 둥글린 테일램프가 대표적이다. 섬세한 디테일이 눈부셨던 과거와 달리, 이번엔 박력 넘치는 조형미가 매력 포인트다.

실 내엔 뼈대와 핏줄을 나눈 E-클래스의 흔적이 남았다. 대시보드 위단을 반듯이 잇고 계기판과 모니터 주위를 화려하게 꾸몄을 뿐, 송풍구와 센터페시아의 구성이 판박이다. 기존 열쇠구멍을 재활용하느라 골프공만큼 커진 시동버튼도 E-클래스가 남긴 유전자 중 하나다. 변속레버는 센터터널에 자리한 E-클래스와 달리 S-클래스처럼 스티어링 칼럼에 붙였다.


CLS 350의 엔진은 V6 3.5ℓ 자연흡기다. 기통수와 배기량은 이전과 고스란히 겹친다. 그러나 이제 직분사로 거듭났다. 흡기관에서 연료를 공기와 미리 섞지 않고 엔진 실린더에 직접 뿜는다. 이때 연료는 액체보다 기체에 가깝다. 실린더 구석구석 뿌옇게 퍼진 연무는, 스파크 플러그가 푸르스름한 불꽃을 번쩍이는 순간 장렬히 타오르며 피스톤을 튕겨낸다.

 

연 료분사장치는 요즘 디젤과 가솔린 가리지 않고 앞 다퉈 도입하는 피에조 인젝터다. 피에조는 ‘누르다’는 뜻의 그리스어로, 결정체 이름이다. 전기 자극에 반응해 크기(길이)가 미세하게 바뀐다. 반응속도가 기계식보다 훨씬 빨라서 보다 정밀하게 연료분사를 조절할 수 있다. 분사압력은 최대 200바(bar). 승용차 타이어의 적정 공기압이 2.5~3바 정도 된다.

 

직 분사 방식의 장점은 수치로 명백히 입증된다. 이전 엔진은 275마력을 냈다. 반면 이번엔 306마력을 뿜는다. 최고출력이 나오는 엔진회전수도 끌어올렸다. 이전엔 6,000이었지만 이젠 6,500rpm이다. 고회전에서 들숨과 날숨을 매끄럽게 다듬는 밸브 시스템과 스파크가 불씨를 당기기 전 점화되는 이상발화를 줄인 직분사 시스템이 손발을 맞춘 결과다.

출 력보다 더 놀라운 건 연비다. 덩치와 힘을 키웠지만, 공인연비는 7.8에서 10.1㎞/ℓ로 오히려 치솟았다. 변속기는 이전과 같은 자동 7단. 최종감속비를 조정했을 뿐 기어비는 그대로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 2세대로 진화한 신형이다. 이전 이름은 7G-트로닉이었다. 이젠 뒤에 플러스가 붙는다. 제어 프로그램을 개선해 반응이 한층 빠르고 매끄러워졌다.


 

조 작감이 왠지 헐렁한 시동 버튼을 누르면, 엔진이 조용히 깨어나 잔잔히 숨 쉰다. 직분사 엔진은 연료를 고압으로 뿜는 펌프 때문에 아이들링 때 디젤 엔진 비슷한 규칙적 소음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1억 원 넘는 벤츠답게 분사음을 악착같이 틀어막았다. 차를 움직여도 먹먹한 정숙성은 유지된다. 손바닥이 가죽 스티어링 휠 스치는 소리만 귓가를 간질인다.

제 원을 수놓은 숫자의 차이는 오감으로 느껴졌다. 한때 이 만한 덩치에 V6 엔진 얹은 벤츠가 달갑지 않았다. 벤츠 특유의 느긋한 반응과 적당한 출력이 어울려, 운동회 다음날 등굣길처럼 움직임이 뻐근했기 때문이다. V8 이상은 흠잡을 데 없다. 파워가 느긋한 천성을 압도해서다. 이번 CLS는 의외였다. 가속페달을 건드는 순간, 경련하듯 움찔하며 화답한다.

예 상은 틀리지 않았다. 신형 CLS는 이전보다 한층 경쾌했다. 엔진회전수가 무르익기를 기다리지 않고, 화끈하게 힘을 불사르며 튀어 나간다. 성능이 향상된 덕분이기도 하다. 이번 CLS는 0→시속 100㎞ 가속을 6.1초 만에 마친다. 이전엔 7초였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지 않더라도, 반응은 시종일관 빠릿빠릿하다. V6 벤츠에 드리운 편견을 지울 때가 된 듯하다.


 

CLS 의 덩치와 무게는 가속보다 몸놀림에서 와 닿는다. 묵직한 감각이 지배적이다. 과체중과 다른 의미다. 코너에서 차의 모서리로 집중되는 물리력은, 점도 높은 유체 속으로 가라앉듯 서서히 사라진다. 서스펜션은 느릿하게 압축되고 뜸 들이며 이완된다. 자연스레 운전도 차분하고 섬세해진다. 이 때문에 벤츠는 의외로 꽈배기 길과 궁합이 잘 맞는다.

격 렬히 몰아쳐도 롤은 부드럽게 솟았다 은은히 꺼져든다. 템포가 느리니 롤도 소박하고 아담하다. 서스펜션이 바닥까지 주저앉기 전 벌써 다음 코너가 달려온다. 첩첩이 이어진 코너에서 차체를 이쪽저쪽 기울이며 리듬 타는 재미가 제법이다. BMW의 특징이 다혈질적 반응과 즉각적인 몸놀림이라면, 벤츠의 핵심은 이처럼 극단으로 치닫지 않은 균형 감각이다.

 

최 근 들어 두 라이벌의 성향이 뒤섞이고 있어 흥미롭다. BMW 5시리즈나 Z4가 좋은 예다. 파격을 다독인 디자인처럼 운전감각 또한 모난 곳을 둥글리는 중이다. 벤츠 역시 변신에 여념 없다. 반응의 민감도를 높인 이번 CLS가 대표적이다. 반 박자 쉬는 반응은 사실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의 영역이다. 기술적 한계가 아닌, 의도적 세팅이었다는 뜻이다.

 

벤 츠가 고집을 꺾은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고객이 원하기 때문이다. 세 꼭지별 앞세우면 모든 게 받아들여지던 시절 또한 지났다. 일부 시장을 제외하면 자동차 보급은 포화상태에 다다랐다. 그만큼 이윤 많이 남는 고급차 시장의 경쟁은 치열해졌다. 상향평준화된 기술도 한 몫 했다. 동급 차의 성능과 안전성은 더 이상 차별이 어려울 만큼 비슷해졌다.


여 기서 또 하나의 딜레마가 불거진다. 서로의 장점을 닮다 보면 ‘그 밥에 그 나물’이 될 수 있는 까닭이다. 때문에 저만의 개성을 부각시켜야 한다. 신형 CLS가 반전외모와 고효율로 거듭나되 부드러운 운전감각에 집착한 이유다. 절반의 성향을 유지했을지언정, CLS의 변신은 눈부시다. 피어스 브로스넌에서 대니얼 크레이그로 바뀐 007의 파격에 비할 만큼.

 

글 김기범|사진 메르세데스-벤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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