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치아 랠리 전설의 시작, 풀비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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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치아 랠리 전설의 시작, 풀비아 이야기
  • 박병하
  • 승인 2016.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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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자동차 제조사 `란치아(Lancia)`는 우리에게는 꽤나 생소한 이름이지만, 피아트에 인수되기 이전부터 기술력으로 알아주는 자동차 기업 중 하나였다. 올해로 창립 110주년을 맞는 란치아는 과거 피아트(FIAT)의 테스트 드라이버이자 기술자였던 빈센초 란치아(Vincenzo Lancia)가 세워,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란치아가 기술력으로 인정 받은 데에는 새로운 기술을 신차에 그대로 도입하는 그 과감성에 있었다. 전기식 점화 장치와 전기식 전조등을 비롯하여, 일체형 차체구조(Monocoque) 등, 오늘날 널리 쓰이고 있는 기술들을 양산차 업계 최초로 도입한 기업이 바로 란치아다. 이 외에도 란치아는 양산차 최초의 전륜 독립식 서스펜션, 양산차 최초의 V형 6기통 엔진을 도입한 기업이다.



란치아는 또한, 양산차 최초의 V형 4기통 엔진(이하 V4)을 도입한 제조사이기도 하다. V4엔진은 란치아가 창립 초기인 1920년대부터 애용해 왔던 레이아웃으로, 1970년대 초반까지 사용했다. 그야말로 란치아의 반평생을 함께 해 온 엔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란치아의 V4 엔진을 탑재한 마지막 모델이 바로, 본 기사의 주인공인 `풀비아(Fulvia)`다.



란치아 풀비아는 란치아의 마지막 V4 엔진 탑재 모델이자, 피아트에 합병되기 이전에 만들어진, 마지막 란치아 독자모델이다. 1963년부터 1976년까지 생산되었으며, 4도어 세단형인 베를리너(Berliner)와 가장 유명한 2도어 쿠페, 그리고 카로체리아 자가토(Zagato)와의 협력으로 완성된 스포트(Sport)의 세 가지 모델이 생산되었다.




란치아 풀비아의 세단형인 베를리너 모델은 옛날도시락 통처럼 직선적인 외형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쿠페 모델은 60~70년대 등장했던 수많은 매혹적인 이탈리아 자동차들에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큼지막한 원형의 4등식 헤드램프가 특징인 얼굴을 비롯하여, 깔끔한 한 줄의 직선으로 이루어진 어깨선, 고전적인 노치드 쿠페의 멋이 그대로 살아 있는 조그마한 차체는 오늘날에도 매력적이다. 통상적으로 쿠페에서 연상하는 패스트백과는 또 다른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스타일링이다.



란치아 풀비아는 란치아 전통의 V4엔진과 전륜구동 방식, 독립식 전륜 서스펜션과 4륜 디스크 브레이크 등을 갖췄다. 또한, 체급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가였던 차량인 만큼, 실내 역시, 고급 소재를 듬뿍 사용하여 마무리했다.



란치아 풀비아의 엔진은 상기했듯이, 란치아 전통의 V4 엔진이다. V4엔진은 직렬4기통 엔진에 비해 크랭크샤프트 길이가 짧고, 무게중심을 낮출 수 있으며, 밸런스를 맞추기가 용이하여, 진동이 거의 없는, 깔끔한 회전질감이 장점이다. 오늘날에는 직렬4기통 엔진 기술의 발달과 제작 단가가 높은 등의 단점으로 인해, 이륜자동차에서나 일부 사용되고 있는 엔진 형태다. 최근에는 포르쉐가 WEC 등에 출전하는 경주차 `919`의 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풀비아의 V4 엔진은 뱅크각이 13도에 불과한 협각 V4 엔진으로, 양쪽 실린더가 실린더헤드를 공유하는 구조를 구현함은 물론, DOHC 구조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크기를 자랑했다. 트윈초크 카뷰레터로 연료를 공급받는 풀비아의 1.2리터 V4엔진은 80마력의 최고출력을 냈다. 후기 모델에서는 배기량이 1.6리터까지 늘어났으며, 1.6리터 V4엔진은 최고출력이 132마력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 공차중량이 900kg도 되지 않는 가벼운 중량과 튼실한 하체를 갖춘 풀비아 쿠페는 당시로선 탁월한 가속력과 조종성을 자랑했다.



풀비아는 란치아에게 있어서 기념비적인 모델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바로, 1970년대부터 시작된 란치아의 빛나는 랠리 역사에서 첫 번째 우승을 안겨준 차가 바로 풀비아였기 때문이다. 란치아는 1965년, HF 스콰드라 코르세(HF Squadra Corse) 레이싱 팀을 인수하면서 랠리를 중심으로 한 모터스포츠 활동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란치아는 랠리에 대한 경험을 빠르게 축적하기 시작했고, 70년대 초부터 각종 국제 랠리 대회에 참가하여 두각을 드러냈다. 그리고 1972년, 풀비아 HF가 국제 랠리 선수권대회(International Rally Championship) 제조사 부문에서 처음으로 우승을 따내며 랠리 무대에서 란치아의 이름을 빛내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 이어진 1973년의 유럽 랠리 선수권대회에서도 우승을 거머쥐었다. 란치아 풀비아가 일궈낸 업적은 이후, 스트라토스, 037, 델타에 이르는, WRC 강자로서 한 세대를 풍미한 란치아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밑거름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란치아 풀비아는 클래식카 경매에서 한화로 적게는 수 천만원에서 많게는 수 억원을 호가하는 모델이다. 지난 10월에는 경주에 사용되었던 풀비아 HF 파날로네(Fanalone)가 약 20만달러의 가격에 eBay 매물로 오르기도 했다.



피아트에 합병된 이후인 2003년, 란치아는 풀비아를 되살리기 위한 컨셉트카를 발표한 바 있다. 2003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처음 등장한 이 컨셉트카는 풀비아 특유의 2도어 세단에 가까운 노치드 쿠페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스타일링으로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란치아는 이 컨셉트를 끝내 양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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