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의 심장을 처음으로 탑재한 세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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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의 심장을 처음으로 탑재한 세단은?
  • motoya
  • 승인 2016.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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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의 심장을 처음으로 탑재한 세단은?``이라는 질문에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로 답할 독자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가 페라리의 심장을 얹은 세단으로 유명하며, 그것이 주요한 세일즈 포인트 중 하나인 까닭도 있다. 페라리 V6 터보 엔진을 사용하는 기블리까지 등장한 현재에도, 페라리의 심장을 얹은 세단을 거론할 때에는 열에 아홉 이상은 콰트로포르테를 거론한다. 하지만 콰트로포르테는 비교적 근래에나 페라리의 심장을 얹게 된 세단이지, 가장 먼저 페라리의 엔진을 얹은 세단은 아니다. 페라리가 마세라티에게 엔진을 공급하기 시작한 시점은 두 회사가 모두 피아트 그룹의 울타리로 들어 왔을 시기인 90년대 이후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콰트로포르테 보다 먼저 페라리의 심장을 사용한 세단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탈리아 자동차 역사의 황금기를 장식했던 제조사, `란치아(Lancia)`에게서 찾을 수 있다. 이탈리아의 자동차 제조사 란치아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꽤나 생소한 이름이지만 창립 이래 110년에 달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서 깊은 제조사다. 유럽에서는 기술력으로 알아주는 자동차 제조사 중 하나였던 란치아는 피아트(FIAT)의 테스트 드라이버이자 기술자였던 빈센초 란치아(Vincenzo Lancia)가 설립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란치아는 랠리를 비롯한 각종 모터스포츠 무대에서 획득한 기술을 양산차에 그대로 투입하는 과단성과 우수한 성능으로 유명했다.


란치아가 세계 최초로 양산차에 도입한 기술들 중에는 우리가 일상적인 레벨에서 접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으로 차체(Body)와 섀시(Chassis)가 하나로 통합된 `일체형 차체구조(Monocoque, 혹은 Unibody)`를 들 수 있으며, 그 외에 오늘날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전기식 점화 장치와 전기식 전조등, 전륜 독립식 서스펜션, 팝업식 리어스포일러, 5단 수동변속기, 그리고 V형 6기통 엔진의 도입 등이 있다.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에 두고 있었던 란치아는 수많은 명차들을 만들어 냈다.그리고 란치아의 수많은 명차들 중에는 콰트로포르테 보다 먼저 페라리의 심장을 얹은 스포츠 세단이 존재한다. 그 차의 이름은 란치아 `테마 8.32(Thema 8.32)`다.



란치아 테마 8.32는 란치아의 E세그먼트급 세단인 테마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고성능 세단이다. 란치아 테마 8.32는 80년대 중반, 유럽이 오일쇼크의 여파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여 고성능차의 수요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란치아는 당시 상승세를 타고 있었던 고성능차 시장을 잡고자 했다. 하지만 당시 피아트가 란치아에 공급하고 있던 엔진만으로는 본격적인 고성능을 표방하기에 무리가 따랐다. 당시 피아트가 공급했던 엔진 라인업에서는 200마력 이상을 내는 엔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란치아는 본격적인 고성능 세단을 제작하기 위해, 페라리에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페라리는 50년대부터 란치아에 엔진을 소수 제공해왔던 인연이 있었다. 70년대 랠리판을 주름 잡았던 스트라토스의 엔진 역시 페라리의 V6엔진이었다. 이를 통해 란치아는 페라리에게서 페라리의 미드십 스포츠카, 308 GTB의 콰트로발볼레(Quattrovalvole, 이하 QV) 버전과 GT 모델인 몬디알 QV에 쓰였던 `Tipo F105` 엔진을 공수해 오는 기염을 토했다. 1986년 토리노 오토쇼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란치아 테마 8.32는 페라리의 심장을 얹은 고성능 스포츠 세단으로 주목을 끌었다.



란치아 테마 8.32는 밑바탕이 되는 테마의 직선적인 디자인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 외관 상으로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 다만, 테마 8.32만의 특별한 장비 한 가지가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그것은 바로 양산차 최초로 탑재된 팝업식 리어 스포일러다. 오늘날에는 포르쉐 911, 렉서스 LFA 등의 (슈퍼)스포츠카에서 간혹 사용되고 있는 이 기술을 이미 80년대에 상용화했다는 점에서 란치아의 광기에 가까운 과감함이 드러난다.



실내는 고급 세단을 지향하는 만큼, 가죽과 우드 패널을 듬뿍 사용하여 꾸몄다. 3스포크 스티어링 휠은 혼 패드까지 가죽으로 마감했으며, 기어 레버와 핸드브레이크 레버까지 가죽을 둘렀다. 일체형으로 이루어진 인스트루먼트 패널과 센터페시아는 각종 게이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앞좌석에는 6방향의 전동식 시트 조절장치를 탑재할 수 있었고, 차량용 전화기 등을 설치할 수 있었다.




테마 8.32의 보닛 아래에는 페라리 특유의 붉은색 마킹과 함께, `란치아 By 페라리(Lancia by Ferrari)`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는 엔진이 자리잡고 있다. 이 엔진은 페라리의 뱅크각 90도 V형 8기통 2.9리터 Tipo F105L 엔진으로, 페라리 308 GTB QV와 몬디알 QV에 쓰였던 Tipo F105 엔진을 개조한 것이다. 차명의 뒤에 붙어 있는 8.32가 의미하는 것이 바로 이 8기통/32밸브를 의미한다. 원본에 해당하는 엔진이 미드십 후륜구동(MR) 방식을 위한 엔진이었기에, 이를 전륜구동(FF)이었던 테마의 구동방식에 맞추기 위한 변경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구동방식에 맞추기 위한 부분 외에도, `세단`이라는 차의 성격에 맞추기 위한 변경도 일부 이루어졌다. 이 V8 엔진에는 본래 가볍고 빠른 리스폰스와 고회전에 유리한 플랫 플레인 크랭크샤프트(Flat plane crankshaft)를 사용하고 있었다. 즉각적인 리스폰스가 생명인 페라리 스포츠카에게 핵심 부품이었다. 하지만 란치아는 이러한 형태의 크랭크샤프트는 구조 상, 행정 간 밸런스를 맞추는 데 불리하여, 진동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따라서 란치아는 이 엔진의 크랭크샤프트를 진동 억제에 유리한 크로스 플레인 크랭크샤프트(Cross plane crankshaft)로 바꿔버리는 강수를 둔다. 여기에 밸브의 형상도 큰 밸브와 작은 밸브로 나눠, 가속페달 조작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밸브가 움직이도록 했다.



이 때문에 엔진의 성격이 크게 달라졌다. 가용 회전수가 크게 낮아졌고, 엔진의 출력도 245마력에서 205~215마력, 최대토크 26.3kg.m 가량으로 크게 낮아졌다. 하지만 엔진의 진동이 크게 낮아졌고, 부드러운 가속 특성을 얻을 수 있었다. 란치아 테마 8.32의 엔진이 `Tipo F105L`이라는 별도의 코드로 불리는 것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성능이 낮아졌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고성능을 내기 위한 엔진이었던 만큼, 이 엔진을 탑재한 테마 8.32는 0-100km/h 가속을 6.8~7.2초에 끝낼 수 있었고, 최고속도도 235~240km/h에 달했다. 변속기는 5단 수동변속기를 사용했다.



페라리의 심장을 처음으로 얹었던 세단, 란치아 테마 8.32는 테마 8.32의 경쟁자들로는 BMW M5의 시초가 되는 M535i, 아우디 고성능 4륜구동 세단의 첫 단추를 꿰게 되는 아우디 100 콰트로, 그리고 포드 시에라 RS 코즈워스(Ford Sierra RS Cosworth) 등, 당대 최고의 고성능 세단들과 시장에서 경쟁했다. 콰트로포르테보다도 먼저 페라리의 심장을 품었던 세단, 란치아 테마 8.32는 현재도 란치아의 대표적인 명차로 회자되며, 올드카 시장에서도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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