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생산된 외국의 자동차] 포드 그라나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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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생산된 외국의 자동차] 포드 그라나다 편
  • 박병하
  • 승인 2017.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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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에서 선발주자의 제품을 라이센스 생산하는 경험은 제품의 생산 및 개발에 대한 노하우를 획득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선발주자가 적게는 십 수년, 많게는 수십년에 걸쳐서 얻은 성과를 빠르게 흡수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동차와 같이 고도의 기술력이 수반되어야 하는 분야에서는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성장한 기업들이 많다.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는 광복과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남기고 간 군용 차량의 부속들을 주워 모아 만든 국제차량제작의 `시-발`을 시작으로 했다. 그 이후에는 자동차 산업의 선발주자인 서유럽이나 북미 등지의 자동차 기업들에서 이미 만들어진 차를 라이센스 생산하면서 발전을 이루며, 세계적인 규모로 성장하는 데 성공했다. 모토야에서는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의 성장을 이끌었던, `한국에서 생산된 외국의 자동차`들을 다룬다. 본 기사에서는 아시아자동차가 생산했던 `피아트 124`에 이어,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가 생산했던 `포드 그라나다`에 대해 다룬다.



포드 그라나다는 미국 포드에서 개발한 중형 세단과 유럽포드(Ford of Europe AG)의 서독(Ford-werke GmbH)지부에서 개발한 준대형급 세단의 두 가지가 있다. 현대자동차가 생산했던 포드 그라나다는 유럽포드의 2세대(Mk. II) 모델로, 고급 자동차 수요층 공략을 목표로, 1978년부터 생산을 시작했다.



당시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은 1차 석유파동 이후 정부 주도의 에너지절약 기조와 더불어 현대차가 76년 출시한 첫 독자모델 `포니`의 성공으로 인해 소형차 중심으로 선회한 상태였다. 하지만 여전히 고급자동차에 대한 수요는 존재했고 대당 수익이 높기 때문에 자동차 제조사들은 고급 자동차의 생산 및 판매를 포기할 수 없었다. 여기에 현대차는 포니를 해외에 수출하면서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 한국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판매해야만 했었고, 이에 따른 재정 부담을 해소해 줄 모델이 절실했다.


하지만 당시 상공부는 상기한 정부 주도의 에너지절약 기조와 소형차 시장의 육성을 이유로 6기통 이상의 자동차 생산을 불허하고 있었다. 현대차는 상공부에 고급 승용차의 생산 허가를 요청했으며, 결국 상공부는 배기량 3.0리터 이하, 국산화율 20% 이상 달성이라는 조건 하에 고급 승용차의 생산을 허가했다. 이에 현대차는 포드 그라나다의 생산에 착수할 수 있게 되었다.



현대차가 생산한 포드 그라나다는 정통 `구라파` 스타일을 내세운 후륜구동 고급 세단이었다. 전/후륜에 모두 코일 스프링과 가스식 쇽업소버를 탑재한 전륜 더블위시본, 후륜 세미 트레일링 암 형식의 4륜 독립식 서스펜션, 현대적인 유압식 랙 앤 피니언 타입 파워스티어링 시스템, 이중 유압식 브레이크, 충돌안전을 위한 보닛 설계와 충격흡수 구조 등, 당대에서 가장 선진적인 기술들이 사용된 자동차였다. 이러한 선진적 설계 덕분에 고급 승용차에 걸맞은 승차감과 주행 성능을 가졌다. 이 외에 전동식 사이드미러와 파워윈도우, 중앙집중식 도어 잠금장치 등, 당시 기준에서는 그야말로 풍부한 편의사양으로 무장했다.


엔진은 102마력의 최고출력을 발휘하는 포드의 V형 6기통 2.0리터 엔진과 싱크로메시(Synchromesh, 동시치합)가 적용된 4단 수동변속기를 사용했다. 이 엔진은 현대가 이전에 생산했던 포드 20M의 엔진과 같은 것이었다. 1980년대 2차 석유파동 이후에는 2.0리터 배기량의 4기통 모델을 추가하고, 새로운 디자인의 라디에이터 그릴과 테일램프 디자인을 손 본 `뉴 그라나다`를 출시하며 인기를 이어갔다.



당시 대한민국 최고급 승용차로 출시된 포드 그라나다는 70~80년대 대한민국에서 대기업 중역들과 고위 공직자들을 중심으로 높은 인기를 누리며, 그야말로 `부(富)의 상징`으로 통했다. 포드 그라나다의 첫 출시 당시 가격은 1,154만원이었다. 당시 기준으로도 이는 상당한 고가였는데, 이마저도 사실 현대차가 상공부에 신청한 1,395만원에서 상공부가 241만원을 깎아낸 가격이었다. 하지만 이후 특별소비세의 인상을 비롯하여, 거진 8할에 달하는 부품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고, 각종 세금이 붙는 바람에, 포드 그라나다의 실질 가격은 해가 넘어갈 때마다 100만원 단위로 치솟았다. 포드 그라나다의 출시 중~후반인 1982년에는 1,867만원까지 오르는데, 이는 출시 초기의 1,154만원에 비해 4년 동안 무려 713만원이나 오른 가격이었다. 1979년 처음 분양을 시작한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31평형 분양가가 1,800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으니, 그야말로 아파트 한 채가 도로를 활보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단종 직전이었던 1985년의 가격은 무려 1,992만 7천원에 달했다.


이후 포드 그라나다는 1986년, 현대차의 새로운 기함 `그랜저`의 등장 이전까지, 약 8년간 4,743대가 생산/판매되었다. 현재 국내에는 약 5대 가량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이며, 70~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등의 영상매체에서 정치인이나 유명인사 등의 자가용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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