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소형차, 어쩌다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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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소형차, 어쩌다 여기까지?
  • 박병하
  • 승인 2017.08.04 1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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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의 초~중반기에 등장한 현대자동차 포니, 기아자동차 프라이드, 대우자동차 르망 등, 자동차의 대중화를 선두에서 이끌었던 모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소형차라는 것이다. 소형차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동차의 보급과 자동차 산업 역량을 육성함에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해 왔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은 물론, 자동차의 역사가 시작된 유럽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후에 ‘비틀(Beetle)’이라는  이명으로 불리게 되는 폭스바겐의 카데프-바겐(KDF-Wagen), 초대  피아트 500, 로버 미니 등, 유럽에 본격적인 자동차화(自動車化, Motorization)의  시대를 연 주인공들은 대부분 소형차들이었다.



소형차는 중저가형 자동차 시장의 첨병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과 높은 생산성에서 기인한 접근성으로, 유럽과  아시아 등지에서 사랑받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에서는 날이 갈수록 소형차의 인기가 감소 일로에 있으며, 일부 소형차 모델들은 단종 직전의 위기에 내몰렸다. 2017년 5월 기준으로, 국내 소형차 시장은 월 1,000대 아래로 규모가 축소되었다. 이는 6년 전인 2011년의 월  3,000대 이상에서 1/3도 안되는 수준으로 감소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소형차가 이토록 외면 받게 된 배경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큰 차를 선호하는 소비성향

대한민국의 자동차 보급은 소형차가 선봉장을 맡았지만, 이와는 달리, 시장에서는 오래 전부터 큰 차를 선호해 왔고, 지금도 그렇다. 이는 대한민국의 자동차 시장 초기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이렇게 된 이유로는 대한민국에서 자동차 역사가 시작된  이래, 자동차는 개인을 위한 재화가 아닌, ‘가족’을 위한 재화로 인식되어져왔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대중화가 일어난  시점은 물론, 오늘날에도 자동차는 한 가정에서 복수로 구매하기 어려운 고가품이다. 한창 산업화가 진행 중이었던 7~80년대 당시 자동차 보급의 주축이었던  중산층에서도 자동차를 한 가정에서 두 대 이상 구매하기 어려웠으며, 다수의 가족 구성원이 하나의 차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대부분의 대한민국 가정에서는 하나의 자동차로  출퇴근은 물론이요, 자녀의 통학, 장보기, 그리고 여행 및 레저활동에 이르는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의 자동차로 이만한 범용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크기가 큰 쪽이 당연히 유리하다. 최근 들어 맞벌이  부부의 증가와 함께, 비로소 1가구 1차량 시대가 도래하면서 ‘세컨드 카’의 개념이 조금씩 자리를 잡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이러한 인식이 남아  있다. 여기에 과거부터 자리 잡힌, 자동차를 자신의 ‘재력’과 ‘사회적 지위’를 드러낸다는 의식 역시 대한민국에서 큰 차가 잘 나가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작은 차를 전반적으로 낮잡아 보는 태도도 이러한 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소형차를 압도하는 매력을 지닌 새로운 세그먼트의 연이은 등장

80년대 들어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한국의 소비자들은 큰 차를 선호하는 풍조와 맞물려, 상대적으로 제한된 활용도와 편의성을 지니는 소형차를 벗어나고 싶어했다. 하지만  상당한 수의 소비자들에게 있어 중형차는 소형차에 비해 여러모로 부담이 컸다. 그리고 이 ‘소형차는 벗어나고 싶지만 중형차는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는 소비자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 든 새로운 세그먼트가 등장했으니, 그것이 바로 ‘준중형차’다.



준중형차는 소형차와 중형차 사이에 위치하는 포지셔닝을  주장하며, 배기량은 소형차와 같으면서도 ‘중형차에 준하는  크기와 실내 공간’을 앞세웠다. 세제 상으로는 소형차지만  ‘소형차가 아님’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준중형차는 조금이라도 큰 차를 원했던 대한민국 소비자들의  심리를 통렬하게 파고들었다. 준중형차는 중형차에 비해 가격 부담도 적고, 세제 상 소형차로 분류된다는 점, 소형차에 비해 높은 범용성이라는  세 가지 장점을 갖추고 있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비록 초기에는 동력 성능에 비해 지나치게 크고 무거운 차체를 가진 탓에 ‘국산차는 동력  성능이 부족하다’는 인식을 낳는 단초가 되기도 했으나, 이후  꾸준히 성능 향상이 이루어지면서 중형차와 함께 오늘날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세그먼트 중 하나로 발전했다. 그리고 준중형차가 세를 넓히는 동안, 소형차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또한, IMF 이후  작은 차, 특히 각종 세제 혜택과 낮은 유지비를 자랑하는 경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에 따라 경차의 시장점유율이 올라가고 있어, 소형차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는 전세계를 강타한 크로스오버의  붐과 함께, 소형차를 압도하는 또 다른 세그먼트가 나타나, 소형차의  입지를 벼랑 끝까지 밀고 있다. 바로 ‘작은 SUV’를 표방하고 나선 소형 크로스오버의 등장이다. SUV의 스타일과  실용성을 보다 낮은 비용으로 경험할 수 있는 소형 크로스오버는 우수한 상품성을 앞세워, 준중형 승용차  시장까지 일부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계륵

제품이라는 것은 대체로 크고 고성능일수록 대당 단가는  물론, 대당 수익도 올라가기 마련이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더 크고, 고급/고성능  제품일수록 대당 수익이 올라간다. 그리고 이러한 수익 창출 구조와 현재 대한민국의 자동차 시장 상황에서, 소형차란 국내 완성차 제조사의 입장에서는 잘 봐줘야 ‘계륵’이라 할 수 있다. 판로는 축소 일로에 놓여 있는 데다, 생산라인을 유지하기 위한 각종 고정비는 그대로 소모된다. 따라서  유의미한 수익 창출을 기대할 수 없다.



현재 국내 완성차 제조사들이 소형차의 생산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수출 물량 소화와 운전면허 연습용 차량 등, 플릿(Fleet  car, 업무용 차량) 시장 대응과 같은 내수 시장점유율 확보를 위한 라인업 유지 정도에  의의를 두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의 소형차 시장은 신모델 출시가 다른 세그먼트에  비해 늦은 편이며, 이는 소형차들의 상품성을 떨어뜨리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정책적인 보조의 미비

자동차 역사의 초창기, 자동차 보급의 선봉장이었던 소형차가 이렇게 인기를 잃은 데에는 정책적인 보조가 미비했다는 점도 한 몫을 차지한다. 소형차의 혜택을 고스란히 받으면서도 소형차보다는 큰, 준중형차의  등장 이래, 대한민국 정부당국은 준중형차와 경차 사이에 끼어 버린 소형차에 대해 별도의 세제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으며, 소형차에 혜택을 주려고 해도 그 혜택은 고스란히 준중형차에게도 동시에 적용 받게  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소형차는 달린다

큰 차를 선호하는 소비성향과 소형차를 압도하는 매력적인  세그먼트의 대두, 정책적 보조 미비와 완성차 업계의 홀대로 인한 상품성 저하 등, 대한민국의 소형 승용차 시장은 고사 직전에 놓여 있다. 이런 대한민국의  소형차 시장에서 그나마 유의미한 실적을 올리고 있던 제조사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기아자동차의 프라이드는 최근 단종을 맞았고, 현대 엑센트는 생산 라인을 2020년까지만 운영하겠다고 못 박으며, 2010년 출시된 현행 모델을  유지한다. 한국지엠이 판매하는 쉐보레 아베오의 경우, 지난  해 대대적인 페이스리프트를 거쳤으나 여전히 소형차 시장 만년 꼴찌로 존재감이 희박하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2017년에는 국내 소형 승용차 시장에 새 모델이 2종이나 출시된다는  것이다. 르노삼성자동차는 오는 9월, 르노의 소형차 모델, ‘클리오’를  출시한다. 르노의 클리오는 유럽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B세그먼트 시장을 선도하는 모델이다. 비록 국내에서 선호도가 낮은 해치백형  모델이고 전량 수입으로 인해 높은 가격대가 책정될 것으로 보여지지만, 최근 SM6와 QM6의 잇단 성공으로 자신감을 찾은 르노삼성이기에, 그 귀추가 주목된다.



르노 클리오와 함께 국내 시장에 새롭게 출시될 소형차로는  기아자동차의 신형 프라이드가 있다. 7월 출시된 소형 크로스오버 스토닉의 바탕이 되는 소형 승용차로, 엑센트 단종 이후 현대기아 그룹의 유일한 소형 승용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소형차는 자동차 산업의 가장 밑바탕을 이루는 중요한  세그먼트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소형차 시장은 축소 일변도로 흘러가고 있다. 전통적으로 큰 차를 선호하는 풍조와 함께, 소형차를 압도하는 매력적인  신규 세그먼트의 잇단 등장으로 소형차의 입지는 나날이 위태로워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소형차 시장이 소멸하지  않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매력적인 신모델의 출시와 더불어, 소형차를 위한 정책적인  지원책 마련 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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