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상을 넘어선 설득력 - 캐딜락 XT5 플래티넘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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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상을 넘어선 설득력 - 캐딜락 XT5 플래티넘 시승기
  • 윤현수
  • 승인 2017.08.0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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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럭셔리의 대표 주자로 군림한 캐딜락의 전략은 이제 뻔하다. 경쟁 모델보다 한 체급 크게 만들고, 가격에서는 조금 저렴하게 책정하여 가격대비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단순한 경제 논리로는 소비자 입장에서 매우 바람직한 전략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사치재에 가까운 프리미엄 브랜드 자동차의 특성상, 소비자들은 더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높은 브랜드 가치를 지닌 모델을 소유하길 원한다. 따라서 캐딜락의 전략은 날이 갈수록 브랜드 가치에 비중을 두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며 빛이 바래지고 있다. 특히 전통적인 주력 모델이던 세단들이 지속적으로 내리막을 타며 모기업 GM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그런 와중에 여전히 캐딜락의 미래를 밝히는 프리미엄 SUV가 있다. `SRX`의 뒤를 이어 작년부터 시장에서 활약하는 `XT5`는 주춤하는 캐딜락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으로 성장했다. 물론 같은 급의 자동차를 더욱 저렴하게 판매한다는 전략은 같지만 크로스오버 열풍에 감회를 받아 탄생한 SRX보다 완성도 높은 모습은 소비자들을 현혹하기에 충분했다.
새로운 차명, 새로운 캐딜락제 옷을 입은 XT5를 시승했다. 시승차는 고급 편의장비들을 몽땅 채워 넣은 7,480만원짜리 모델이다.

본래 어떤 물체든 풍파를 겪게 되면 무뎌지고, 부드러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명명 체계도 바꿔 `XT5`라 이름 붙여진 캐딜락제 SUV는 이전보다도 날을 벼린 듯한 외형이 압권이다.

휠아치 이외에는 곡선을 찾아볼 수 없는 직선 위주의 당당한 체구는 캐딜락 특유의 날 선 디테일 덕에 세련미를 그득 담아낸다. 특히 LED로 빚어진 헤드램프와 테일램프는 XT5의 네 모퉁이를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장식적 요소로서 돋보인다. 눈물을 흘리는 듯한 주간주행등은 안개등과 하나의 선을 형성하여 독특한 이미지를 선사하기도 한다.XT5를 정측면에서 바라보면 거대한 20인치 휠 덕에 제법 균형 잡힌 몸매를 갖췄음을 깨닫는다. 날카롭게 C필러를 파고든 그린하우스 디자인 덕에 제법 큼직한 차체에도 날렵한 이미지를 선사한다.

자연스레 뒤로 시선을 돌리면 깔끔하게 빚어진 모습이 눈에 띈다. LED 테일램프는 마치 헤드램프와 수미상관을 이루듯 한번 꺾인 모양새로 뒷모습을 수놓고, 범퍼는 다소 투박한 모양새에 스키드 플레이트로 SUV 특유의 터프함을 더했다. 테일파이프도 사각형 팁으로 마무리하여 군더더기가 없다.이러한 스타일링은 새천년이 도래하기 직전에 캐딜락이 `Art & Science`를 제창한 이후로 지속적으로 다듬어온 결과물이다. 무 하나 자르지 못하던 무딘 칼을 쉴새 없이 담금질하고 갈아오며 날이 서린 칼을 완성하듯 말이다. 디자인 큐의 방향성을 크게 변경하지 않고 자신의 색깔을 완성시켰다는 데에 캐딜락 디자인은 의미가 더욱 깊다.

실내로 몸을 들이면 온갖 고급 소재들로 만재한 것이 눈에 띈다. 가령 대시보드와 크래시패드는 톤이 낮은 알칸타라와 가죽으로 감쌌다. 특히 알칸타라의 경우 필러와 헤드라이너 등에 폭 넓게 사용하여 시각과 촉각 측면에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만든다. 좌우 끄트머리에 있는 송풍구는 탄소섬유와 알루미늄 트림으로 감싸 농밀한 고급스러움을 전한다.탄소섬유 트림은 도어 내부, 스티어링 휠, 크래시패드 등 다양한 부위에 발라져 있다. 특별히 스포티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모델이 아닌데도 탄소섬유 트림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에 캐딜락의 자동차 만들기 철학에 경이로움까지 느꼈다.

아울러 터치패드 및 물리 버튼을 혼합해서 사용한 센터페시아는 미래의 자동차를 조작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물론 터치패드 타입의 작동 방식은 여전히 편안히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중앙 송풍구 하단에 자리한 CUE 모니터는 사이즈가 조금만 더 컸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내비게이션의 경우 CUE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완전히 녹아든 방식이 아니라, GM코리아가 별도로 소프트웨어 구성을 해놓았다. 모니터 하단에 있는 집 모양의 버튼을 두 번 빠르게 누르면 내비게이션으로 전환된다. 따라서 CUE 메뉴 중에 내비게이션 항목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내비게이션이 길을 알리는 소리는 들리는데 도통 내비게이션 메뉴를 찾을 수 없어 잠시 헤맸다.

구조가 간단한 시프트 바이 와이어 방식의 변속기 덕에 센터플로어 쪽은 상당히 깔끔하게 다듬어졌다. 슬라이딩 방식으로 마련된 컵 홀더에는 흡연자를 위해 캐딜락 문양을 정성스레 새겨넣은 재떨이도 제공한다. 컵 홀더 커버를 슬라이딩하면 센터플로어에는 버튼 세 개와 변속 노브만 덜렁 남아 여타 브랜드처럼 버튼들이 여기저기 산재하여 번잡한 느낌이 전혀 없다.

다만 터치패드 구성이나 스티어링 휠의 리모컨 버튼의 배열 등은 인체공학적으로 편리하다고 볼 수 없었다. 각 스포크에 적용된 버튼들의 위치 간격이 넓어 운전대에서 손을 떼지 않고서는 하단부 버튼들을 조작하기 어렵다.

조작성에 있어 아쉬움을 표하긴 했으나, 프리미엄 브랜드 중 가격대비 가치가 가장 높은 브랜드답게 고급 편의장비를 매우 풍부하게 품었다.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차선 유지 보조 시스템, 전자식 변속기, 통풍시트, 헤드업 디스플레이, 보스 프리미엄 오디오 시스템, 전동식 테일게이트 등, 카테고리를 불문한 고급 장비들을 다수 챙겼다.

리어 뷰 미러는 단순히 후방을 비추는 거울로서 기능할 뿐 아니라, 하단부 레버를 뒤로 젖히면 카메라로 후방 상황을 영상으로 표시한다. 플래티넘 트림에만 적용되는 `리어 카메라 미러`라는 기능은 리어뷰 미러에 선명한 후방 영상을 띄운다. 마치 사이드미러도 카메라로 대체하는 가까운 미래를 간접 경험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리어뷰 미러를 완벽히 대체하기에는 위화감이 제법 있다.

2열로 자리를 옮겨 몸을 맡기면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공간이 나온다. 전장이나 휠베이스가 특출나게 길진 않아서 무릎 공간에 여유가 넘치진 않지만, 장거리 주행을 하더라도 크게 부담이 없는 공간이 생긴다. 헤드룸도 넉넉하지만 후방 시야를 위해 헤드레스트를 작게 구성한 것인지, 목이 마냥 편하진 않다. 그리고 적재 공간은 2열 시트를 접으면 최대 1,784리터까지 확장되어 제법 광활한 공간을 자랑한다. 최대 경쟁 모델인 메르세데스-벤츠 GLC가 최대 적재용량이 1,600리터에 불과하다는 걸 감안하면, 차체가 큰 장점이 빛을 발한 대목이다.

전동식으로 마련된 테일게이트를 조작하려면 특이하게 도어 트림 하단부를 살펴야 한다. 다이얼 조작 장치를 통해 개폐 정도를 조절할 수도 있다.

탄소섬유를 품은 운전대를 잡으니 스포츠카에 몸을 실은 듯한 느낌이 찰나에 전해졌다. 그러나 XT5는 다분히 대중성에 초점을 맞춘 럭셔리 SUV였다. 보닛 아래에도 점잖은 V6 3.6리터 가솔린 직분사 엔진을 탑재했다.


해당 엔진은 최고출력 310마력에 최대토크 37.4kg.m의 파워를 내는 유닛으로, 수치로만 보면 부족함이 없음을 지레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체격이 크고, 몸무게도 2톤이 넘는 육중한 지라 실제 주행에서 폭발적인 감각을 느끼기란 어렵다.

자연흡기 직분사 엔진이긴 해도 엔진 반응도 빠릿하다기 보단 여유로운 편에, 엔진회전수를 팍팍 높여 써야 활기가 도는 타입이다. 과급기가 없으니 엔진을 쥐어 짤수록 쾌감이 증대되지만, 시내 주행을 비롯하여 가속 초기에 풍부한 토크가 절실한 시점에선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초기 가속이 자극적이진 않았어도, 한번 탄력이 받기 시작하면 거대한 차체도 제법 쭉쭉 뻗어나간다. 특히 해당 엔진에는 부하가 적은 주행에서 6개 실린더 중 두 개를 쉬게 하여 연료효율성을 높이는 똑똑한 기능도 품었다.

과급기나, 경유를 사용하지 않는 엔진이기에 손 끝으로 전달되는 진동이나 귀를 찌르는 엔진 소음이 없는 것은 가히 프리미엄 브랜드다운 면모였다. 특히 V6 엔진과 합을 맞추는 8단 자동변속기는 이러한 면모를 더욱 강조해주는 포인트다. 기어를 넘기는 솜씨가 부드러우면서 신속하다. 자사의 제품이 있음에도 굳이 아이신제를 가져다 쓴 이유는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드러웠던 속내에 비해 하체는 제법 튼실하다. 캐딜락은 자사의 제품 완성도에 회의를 가지는 시기인 건지, 전매특허인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MRC) 대신 ZF제 가변식 댐퍼를 사용했다. 미국차, 그리고 럭셔리 브랜드를 떠올렸을 때의 전형적인 승차감은 아니었다. 비단결 같이 부드럽게 요철을 넘기기 보다, 노면을 잘 읽어들이며 일말의 긴장감을 더하고, 무게 중심이 좌우로 흩뜨려지는 순간에도 곧바로 자세를 다잡는 반전 매력을 보인다.

주행 모드 변경으로 댐퍼의 감쇠력, 엔진 반응 등을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긴 하지만, 각 모드에 따른 반응성 등의 격차가 크지 않다. 또한 트윈클러치 타입으로 구동 배분을 매우 유연하게 실행하는 AWD 시스템에는 텁텁함이 없다.

정차 중 쓸데 없는 공회전을 줄이기 위한 오토 스톱 & 스타트 기능도 챙겼다. 가속을 재개하며 엔진이 켜지는 시점에 흔히 느낄 수 불쾌함이 없다. 연료효율성 향상을 위해 액티브 퓨얼 매니지먼트도 더하고 오토 스톱 & 스타트 기능도 품었고 SRX 시절 보다 몸무게도 60kg 감량했으나, 실제 연비는 어째 큰 변화가 없다. 실린더 2개가 쉬고 있다며 `V4` 표시등이 적극적으로 켜져 있어도 항속 주행에서도 리터당 12km 정도에 머물고, 시내에선 9km/l를 상회하는 게 어렵다.

XT5는 안전에도 까다롭게 반응하는 차다. 운전에 집중을 못한다 싶으면 수시로 안전벨트를 잡아당겨 `안전운전 해라`라며 다그치고, 차량 전방에 장착된 센서들로 차선을 이탈하거나 앞 차에 가까이 다가가면 경고음을 쉼 없이 전달한다. 지나친 간섭으로 짜증을 유발한다기보다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고마운 다그침이다.

트림에 따라 6,580~7,480만원으로 구성되는 가격대는 경쟁 모델인 GLC와 X3와 맞물리는 구성이다. 그러나 XT5는 4기통 디젤 엔진을 탑재한 두 독일제 크로스오버가 품지 못한 일말의 부드러움을 챙겼고, 몸집도 한 체급 더 크다. 그리고 풍부한 편의장비와 적재 공간과 같은 재료들을 세련되기 그지없는 캐딜락제 그릇에 담아냈다. 캐딜락이 여태껏 이어온 `뛰어난 가격대비 가치` 전략은 이제는 식상하다. 그런데 결과물을 보아하니 여전히 유효한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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