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의 추억 오브제, 브리사와 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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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의 추억 오브제, 브리사와 포니
  • 윤현수
  • 승인 2017.08.18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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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스크린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자아내는 작품은 다름 아닌 송강호 주연의 `택시운전사`다. 17일 기준 누적 관객수가 940만명을 돌파하며 주말을 맞이함과 동시에 관객수 1천만명 돌파를 코 앞에 두고 있다.

`택시운전사`는 모두가 알고 있듯, 5.18 민주화 운동 당시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스크린 속에서 남녀노소의 가슴을 저릿하게 하게 하는 것은 실화보다 더 실제 같은 배우들의 연기력이었을 터이다. 그 역사의 현장 속으로 우리를 끌어들이는 듯한 열정 넘치는 배우들의 혼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실제 과거사를 다룬 작품인 만큼, 그 시대를 겪었던 사람들은 당시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오브제`들의 등장에도 가슴 한 켠이 먹먹했을 것이다.

그 수 많은 오브제들 중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은 등장인물들의 발이 되어준 `택시`였다. 2017년 서울 거리를 돌아다니는 꽃담황토색의 쏘나타가 아닌, 산뜻한 초록색 페인트를 뒤집어 쓰고 하나같이 자그마한 몸집에 동그랗게 눈을 뜨고 열심히 도로를 달렸던 그 시절 택시들이다.

주인공인 김만섭 (송강호 분)이 독일 기자와 함께 먼 길을 떠났던 자동차는 기아자동차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브리사`였다. 포르투갈어로 산들바람을 뜻하는 `브리사`라는 차명은 그 의미과 같이 대한민국 도로에 산들바람처럼 불어온 산뜻한 존재였다.

브리사는 당시 여느 국산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외국 차량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마쯔다의 소형차 `패밀리아` 차체를 활용하고 기아자동차가 기술 제휴를 통해 독자개발한 엔진을 탑재하여 국산화율을 90%까지 높인 것이 특징이다.

1리터 / 1.3리터 엔진 라인업에 왜건, 세단, 픽업트럭과 같이 다양한 가지치기 모델을 지녔던 브리사는 최대 경쟁자인 포니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소형차 시장을 장악했던 기아차의 효자모델이었다. 특히 픽업트럭이 차량 라인업 중 가장 일찍 출시된 독특한 이력을 지니기도 했다.

요즈음의 소형차는 열이면 열, 앞바퀴를 굴리는 시대이지만 브리사는 4미터도 안되는 차체에 뒷바퀴를 굴리는 자동차였다. 여기에 드럼 브레이크에 수동 변속기가 당연시되던 시절이라 오래된 제원표를 바라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차다.

그러나 0.9톤도 채 안 되는 몸무게에 자그마한 몸집은 소형차 특유의 발랄함을 잘 표현했다. 일본차 특유의 쫀쫀한 차체와, 마쯔다와의 기술제휴를 통해 탄생한 심장은 산들바람에 진배없는 몸놀림을 자랑했다.

탄탄한 완성도로 인기를 끌던 브리사는 1981년 전두환 정부가 시행한 자동차 공업합리화 조치로 인해 생산이 중단되었다. 산들바람은 근시안적인 정부의 실책으로 결국 더 이상 불지 않았다. 그럼에도 브리사는 기아자동차의 첫 승용차라는 역사적 타이틀을 지녔고, 택시운전사들과 한국 국민들에게 두루 사랑 받은 의미 깊은 자동차였다.

그리고 80년대 대한민국 도로의 상징과도 같던 현대차 포니도 영화 속에 등장하며 많은 이들의 추억을 더듬게 했다. 극 중 또 다른 택시 운전사로 등장한 황태술 (유해진 분)의 애마가 바로 포니였다.

1975년 12월에 탄생한 포니(Pony)는 그 차명대로 조랑말을 연상케 하는 작고 예쁘장한 소형차였다. 현재는 세상을 떠난 자동차 디자인의 거장,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솜씨로 빚어낸 차체는 지금 봐도 세련미와 조형미가 넘친다.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를 논할 때 이 자동차가 끊임없이 회자되는 이유가 있다. 포니는 현대차의 첫 독자생산 모델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고유 모델이기 때문이다. 외국 모델을 부품 형태로 들여와 조립 및 판매를 하던 게 당연시 되던 그 시절에 故 정주영 회장의 결단이 이뤄낸 결과였다.

현재는 르노-닛산 산하로 편입된 한 때 현대차의 스승, 미쓰비시와의 기술 제휴로 플랫폼을 엔진 등을 받아들였고, 앞서 언급한 주지아로의 스타일링을 통해 포니를 독자적으로 생산해내었다.

포니는 브리사와 마찬가지로 뒷바퀴를 굴리는 소형차였다. 가지치기 모델이라면 해치백 밖에 없는 포니의 먼 후손인 엑센트와는 달리, 포니는 3도어 해치백, 5도어 패스트백, 5도어 왜건, 픽업트럭과 같이 수많은 가지치기 가족들을 품었다.

출시 후 이듬해인 1976년에는 `대한민국 첫 수출 승용차`라는 타이틀을 손에 쥐었고, 주지아로의 스타일링과 실용적 구성, 다양한 가지치기 모델 구성은 승용차 시장 43% 이상을 점유하게 했다. 온 국민의 시선이 이 작은 조랑말에게 집중된 것이었다.

그러나 의미가 매우 깊은 탄생에도, 많은 이들에게 대차게 사랑 받은 포니를 도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매우 뼈아픈 일이다. 실제로 영화 `택시운전사`에 촬영 소품으로 사용된 포니는 당시 도로를 돌아다니던 초기 모델을 한국에서 도저히 구할 수 없어 포니 2를 포니 초기모델처럼 개조한 차량이라고 한다.

브리사와 포니는 스크린을 바라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극을 보다 실감나게 재현해주는 오브제로서 맹활약했다. 그리고 이 두 자동차는 지금의 한국 자동차 역사를 있게 해준, 의미 있는 길을 달려온 매우 고마운 `주연 배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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