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걸음 뗀 제네시스 G70, 그리고 스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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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걸음 뗀 제네시스 G70, 그리고 스팅어
  • 윤현수
  • 승인 2017.09.2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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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 G70의 판매가 시작된 지 하루 만에 2,100명의 소비자들이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이는 제네시스 브랜드가 설정한 올해 목표 판매량의 40%를 상회하는 수치다.

소비자들은 3천만원대 제네시스의 출현에 아주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G70이 조금만 팔을 뻗고 종아리에 힘을 주면 손에 쥘 수 있을 법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당히 스포티한 디자인과 성능 덕에 많은 젊은이들이 G70을 '현실적인 드림카'로 삼기 시작했다.

아울러 현대차가 1세대 제네시스 (BH) 출시 이후 꾸준히 쌓아온 제네시스 브랜드의 가치와 명성이 한국 소비자들에게 갖는 의미가 상당하다는 것을 꾸준히 입증하고 있다.

제네시스는 독일제 프리미엄 D세그먼트 트리오에게 총구를 겨눴다. 지켜보고 있는 입장에선 재규어 XE나 일본제 프리미엄 세단들을 먼저 잡는 것이 기본적인 의례라 생각되지만, 시장이 한참 늦게 발을 들인 제네시스 브랜드는 조금 더 과감해야 했다.

아직은 시장을 이끌어 나갈 입지를 확보했다고 보긴 어렵고, 제품 포트폴리오가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추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특히 크로스오버의 열풍이 프리미엄 브랜드들의 전두엽을 강타하고 있어 `GV` 라인업의 투입도 시급한 시점이다.

이렇게 브랜드 입장에서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그리고 G70에게 남겨진 숙제도 산더미처럼 쌓였다. 제네시스는 G70이 자사의 세단 라인업을 완성하는 모델이라고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바꿔 말해, 당분간 새로운 세단을 투입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이미지 다각화 및, 크로스오버 시장 진입을 위한 별도의 모델들을 위한 공백이 이어질 예정이다.

그럼에도 프리미엄 브랜드에게 있어 세단이라는 존재는 브랜드를 떠받치는 `허리`다. 세단 라인업이 휘청휘청거리는 캐딜락이 결코 세단 모델의 재정비 없이 크로스오버만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없는 이유다. 무게추가 점차 크로스오버나 SUV 쪽으로 옮겨가고 있긴 해도 `프리미엄 자동차는 세단`이라는 다소 낡은 인식은 여전하다.

와중에 G70은 럭셔리 & 프리미엄 이미지는 물론, 스포츠 세단의 기운까지 간직해야 하는 프리미엄 D세그먼트 시장에 투입된다. 제네시스는 `G70은 브랜드 역사상 가장 역동성에 무게를 둔 모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스포츠 세단 카테고리에 속한 독일산 준마들을 겨냥한 뉘앙스였다.

실제로 마주한 G70은 제법 매력적이었다. 의견이 분분한 외관 디자인은 둘째치더라도, 프리미엄 브랜드다운 내용으로 풀어낸 인테리어는 느낌이 좋았다. 여기저기 적용된 퀼팅 패턴이 좀 과한 느낌은 있었어도 프리미엄 브랜드의 기본 덕목이라는 듯, 센터페시아와 대시보드를 가죽으로 감싼 솜씨도 수준급이었다.

아울러 제네시스 브랜드 런칭 이전부터 줄기차게 강조해 온 HMI (Human-Machine Interface)를 화려한 틀 안에 적절히 담아내어 쓰기 편하고 보기도 좋은 실내를 완성해냈다. 빠짐없이 챙긴 고급 편의장비 선물세트는 예로부터 현대차 그룹의 장기였다.

그러면서, FR 스포츠 세단의 전통인 '좁은 뒷좌석'을 놀라울 정도로 잘 재현했다. 물론 반은 농담이고, 반은 진지한 얘기다. 예로부터 제네시스의 모기업 현대차는 차 만들기에 있어 '거주성'이라는 항목에 상당한 공을 들여왔다. 합리적 패키징으로 승차 공간을 경쟁자보다 넓게 형성하여 조금 더 저렴하면서도 넓다는 것을 세일즈 포인트로 삼아왔다.

그러나 제네시스는 G70을 독일산 명마들의 체급에 딱 맞는 체구로 키워냈다. 앞 엔진, 후륜구동 자동차 구조 상 2열 공간을 넓게 구비하는 것은 어렵다. 특히 D 세그먼트급 차량과 같이 차체가 작다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굳이 차체를 조금 더 키우는 꼼수는 부리지 않았다.

독일산 준마들이 뛰어노는 전장에서 동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우리 차가 더 크고 넓다`라고 외치며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것 같던 예상이 보기 좋게 깨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계는 존재한다. 미국 시판 가격이 결정되진 않았으나, 제네시스가 응시하고 있는 메르세데스 벤츠 C클래스의 권장 소비자가격은 40,250달러다. 한 체급 위인 제네시스 G80과 불과 1,500달러 차이 밖에 나지 않는 높은 몸값을 지녔다.

조금 슬픈 이야기지만, 제조사들은 자신들의 `분수`를 제법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캐딜락은 ATS 가격을 C클래스보다 무려 6천달러 가량 낮게 잡았고, 아우디와 BMW 역시 A4와 3시리즈의 가격표를 각각 3만 6천, 3만 5천 달러라고 적어냈다. 따라서 G70은 미국 시장에서 3만 5천 달러 이하의 가격표를 지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브랜드가 해야 하는 당연한 선택이다.

G70은 앞서 언급했던 모델들과 체급과 노리는 시장은 동일하나, 고저차가 있는 브랜드 포지셔닝으로 인한 가격 차이 때문에 사실상 `완전한 정면대결`이라 보기엔 조금 민망한 구석이 있다. 그럼에도 이는 신생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이겨내야 할 풍파다. 가치 상승을 위해 조금 더 높은 값을 받고자 하는 것이 현대차가 제네시스를 내놓은 이유였다.

그런데 한국 소비자들의 시선은 조금 달랐다. 제네시스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독일 트리오를 쳐다보는 게 아니라, 불과 몇 달 전 화려하게 탄생을 알렸던 스팅어와 저울질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브랜드 포지셔닝이 상이한 두 모델을 동일 선상에 놓고 철저하게 비교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모델은 같은 그룹이 만들어낸 스포츠 세단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며, 파워트레인 라인업 구성이 동일하다. 심지어 가격대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브랜드 포지셔닝에 크게 민감하지 않다. 그저 유사한 가격대와 크기, 그리고 컨셉트를 지니고 있다면 '동급'으로 취급할 뿐이다. 서로가 겨냥하는 상대가 다른 G70과 스팅어지만, 현대차 그룹이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둘은 의도치 않게 집안 싸움을 벌이게 생겼다.

대중차 브랜드로의 독립으로 더욱 높은 시장을 바라보며 탄생한 제네시스 입장에서 라인업의 핵심 모델이 대중차 모델과 비교되는 것은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다. 물론 소비자 측에선 여전히 국산차와 수입차를 나누어 바라보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남아있기에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출시 시기도 그리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두 모델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데에 크게 작용했다.

스팅어 런칭 당시 기아차는 경쟁 상대로 BMW 4시리즈 그란쿠페와 아우디 A5 스포트백을 꼽았다. 단연 G70보다 높은 곳을 바라본 것이다. 행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보냈으나 기아차가 그린 그림은 그랬다.

기아차가 지목한 경쟁 상대와 직접적인 비교를 하긴 무리가 있긴 해도, 적어도 스팅어는 대중차 브랜드의 퍼포먼스 세단으로선 상당히 좋은 평을 이끌어냈다. '독창성'이란 단어를 여전히 중얼거리고 싶을 만큼 부족한 점이 있으나, 깐깐하던 소비자들도 관능적인 스타일링과 퍼포먼스 세단 다운 면모에 엄지를 들었다.

반면 제네시스는 G70이 '프리미엄 브랜드'의 일원이라는 것을 지나치게 의식했는지 하체를 다소 부드럽게 다졌다. 역동성에 무게추를 뒀다는 자신들의 이야기와는 달리, 외신 기자들이 평가를 내린 G70의 몸놀림은 스포츠 세단에 완전히 합당한 것은 아니었다.

조금 더 작고 가벼운 차체에 동일한 심장을 지녔고, 섀시 다지기에 점점 물이 오른 현대차 그룹의 솜씨에 G70 역시 기대를 걸어볼 만 했으나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한국 소비자들을 의식한 탓이었다. 외신 기자들은 추후에 출시될 수출형 모델은 하체가 더욱 단단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기도 했다. 가슴으로는 역동성을 누누이 되새겼을 텐데도,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강박관념이 제네시스의 머릿속을 지배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제네시스는 G70으로 시판 첫날부터 소위 `대박`을 쳤다. 대한민국 고급차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브랜드의 위력, 그리고 접근성이 높은 국산 엔트리 프리미엄 세단이라는 것이 주효했다.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현재와 같이 E 클래스와 같은 고가의 고급차가 네 자릿수 판매량을 훌쩍 넘는 면모를 보면, 고급차의 파이를 뺏어오는 것도 내수 시장에서의 제네시스 브랜드가 해야 할 사명이다.

그러나 홈그라운드라는 가산점을 받았음을 감안하면 갈 길은 여전히 멀다. G70의 진정한 가치가 판가름되는 곳은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의 격전지인 미국 시장일 것이다. 스팅어와 옥신각신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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