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바퀴, 고개를 틀다 - 후륜 조향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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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바퀴, 고개를 틀다 - 후륜 조향 시스템
  • 윤현수
  • 승인 2017.09.2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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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수족처럼 다루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단연 '스티어링'이다. 바퀴로부터 전달되는 노면의 정보를 운전대를 통해 읽어 들이기도 하고, 직접 앞 바퀴의 방향을 설정하여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장치다.

그런데 최신 스포츠카들의 카탈로그들을 뒤적거리다 보면 `후륜 조향 시스템`(Rer Wheel Steering System)이란 용어가 눈에 들어온다. 흔히 조향은 전륜, 즉 앞 바퀴로만 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뒷바퀴도 조향에 참여하는 기술은 제법 오래전부터 있었다. 앞바퀴 처럼 고개를 휙휙 젖히진 않지만, 상황에 따라 뒷바퀴가 소심하게 각도를 비트는 기술이다.

1940년대 이전부터 상용차들에 사용되곤 했던 이 기술은 1980년대 후반에 일본 브랜드가 승용차에 4WS (Four Wheel Steering System)라는 이름으로 구체화시키며 불을 붙였다.

가령 혼다는 프렐류드를 시작으로 기계식 사륜 조향 시스템을 개발하여 상용화했다. 현재와 같이 ECU와 여러 개의 센서를 통한 전자식 구성과는 조금 달랐다. 가령 전륜과 후륜의 조향 방향이 같은 동위상, 혹은 그 반대의 역위상 조향까지 이어지는 메커니즘이 상이했던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혼다의 기계식 사륜 조향 시스템은 전륜 조향 각에 따라 후륜 조향 방향이 달라졌다. 운전자가 스티어링 휠을 140도 이하로 조향할 때는 뒷바퀴가 앞바퀴의 방향을 따라서 최대 1.7도까지 움직였다. 그리고 조향각이 140도를 넘어서는 순간부터 뒷바퀴는 역방향으로 돌기 시작하며 최대 5도까지 타이어를 비틀었다.

이후에 닛산이나 미쓰비시, 마쯔다 등도 각자 자신들만의 철학에 따른 4WS 시스템을 유압 밸브와 전자식 제어 등을 곁들여 만들어냈다. 안정적이면서 역동적인 차량 움직임의 구현을 위한 `4WS`에 일본 제조사들이 잠시 `꽂혔던` 것이다.

제법 재미있는 기술이었으나 비싼 가격으로 제공되는 선택 사양 치곤 효과가 생각보다 신통치 못했고, 복잡한 구조 탓에 잔고장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

잠깐 타오르던 4WS 기술은 잠시 암흑기를 지내다 2000년대 후반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했다. BMW가 무덤에 잠들어있던 4WS 기술을 깨워낸 것이다. 5세대 BMW 7시리즈에 적용된 '인테그럴 액티브 스티어링(Integral Active Steering, IAS) 기술은 앞서 일본 제조사들이 만들어낸 4WS와 개념은 동일했다.

고속 주행 시엔 조향 안정성 향상을 위해 뒷바퀴와 앞바퀴가 방향을 맞추고, 저속 주행 시엔 더욱 날렵한 조향 감각을 위해 뒷바퀴를 3도가량 반대 방향으로 틀었다. IAS는 크기를 잊게 만드는 스포츠 세단을 지향했던 F01 7시리즈의 아이덴티티를 더욱 짙게 만드는 장비 중 하나였다.

이후 사륜 조향 혹은 후륜 조향 기술은 스포츠카 세계에서도 점점 주목받기 시작하며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가령 '달리는 컨셉카' 렉서스 LC는 '렉서스 다이내믹 핸들링'이라는 개념 아래에 DRS (다이내믹 리어 스티어링) 기술을 품어 최적의 주행 상황을 만든다. 렉서스는 4세대 GS의 탄생 시절부터 DRS를 사용해오며 스포츠 감성을 품은 차량들에게 해당 기술을 전수해왔다.

포르쉐 또한 '액티브 리어 액슬 스티어링'이란 이름의 시스템을 더하며 911의 역동성 향상에 기여하고자 했고 얼마 전 최초 공개를 이뤘던 3세대 카이엔에도 해당 기술이 전파되며 퍼포먼스 SUV의 위상을 더욱 드높일 예정이다.

이외에도 메르세데스-AMG의 아이콘 'AMG GT R'나 페라리 812 슈퍼패스트, GTC4 루쏘 등에도 적용되며 스포츠카 세계에서 역동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안겨주는 대세 `도우미`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한편, 스포츠와는 거리가 살짝 멀어 보이는 차량들에도 4WS 혹은 RWS가 장착되곤 한다. 프렐류드로 기계식 사륜 조향 시스템의 상용화를 이뤄냈던 혼다는 자사의 플래그십 모델인 레전드에 P- AWS(Precision – All Wheel Steer)라는 이름으로 그 시절 추억을 상기시키고 있다. 물론 장비 채용의 목적은 거의 유사하다고 볼 수 있으나, 그 메커니즘에 있어선 80년대의 기술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기술명 앞에 정교함을 뜻하는 `Precision`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보다 적극적인 뒷바퀴의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제동, 선회 시작, 고속 코너링, 중저속 코너링 등의 다양한 상황에서 토(Toe) 각도를 서로 달리하거나 조정하여 최적의 주행 상황을 만드는 것이 P-AWS의 사명이다.

생소한 개념 탓에 해외 브랜드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우리가 자주 마주치는 쏘나타도 뒷바퀴가 고개를 돌리던 시절이 있었다. 과거형으로 표현한 이유는 잠시 장착이 되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AGCS(Active Geometry Control Suspension'이라 이름 붙인 현대자동차식 RWS는 국내에서 5세대 쏘나타 트랜스폼 모델에 '주행 안정성 제어 시스템'이라는 이름을 달고 최초로 등장했다. 중상위급 트림에 87만 원짜리 옵션으로 구비되었던 해당 장비는 별도의 TV 광고도 제작되었을 정도로 현대차 측에서 제법 어필을 했던 전력이 있다.

사내 교육 및 홍보용으로 장비 장착 차량과 미장착 차량의 슬라럼이나 격한 주행 시 보여주는 거동 비교를 영상으로 제작하여 배포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던 TV 광고와 홍보 영상에 따르면 AGCS는 쏘나타에게 확실히 안정적인 거동을 선사했다.

이 장치는 차속과 스티어링 각도에 따라 ECU 판단하에 최적의 후륜 서스펜션 움직임을 자아내는 것이 최대 목표였다. 사실 아주 엄밀하게 따져보면 위에서 언급했던 4WS나 RWS 등과 차이가 다소 있다. 그럼에도, 뒷바퀴 움직임으로 안정적인 코너링과 차량의 거동을 자아내겠다는 목표와 개념에 있어서는 매우 유사했다.

그런데 꽤나 도전적인 시도에도 불구하고 AGCS는 '불필요한 옵션' 정도로만 취급되다 결국 후속 모델인 YF 쏘나타 가격표에는 아예 이름을 올리지도 못했다. 뒷바퀴를 좌우로 움직여 작은 혁신을 만들어보려던 시도는 단발성 이벤트로 끝나버린 셈이었다.

아쉽긴 하지만 AGCS가 다시금 새로운 이름을 달고 부활할 가능성이 제법 높다. 2010년대에 들어오며 4WS 기술이 스포츠카 브랜드들에 의해 주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현대차그룹 역시 프리미엄 브랜드 런칭과 스포츠 디비전 'N'의 출범으로 보다 안정적이면서 역동적인 자동차 만들기에 신경을 쓰고 있는 와중이다. 따라서 NF 쏘나타에 이어 뒷바퀴를 틀어 젖히는 국산차를 다시 만나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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