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차]현대자동차 마르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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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했던차]현대자동차 마르샤
  • 박병하
  • 승인 2017.12.2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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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형차와 대형차의 사이에 놓이는 ‘준대형차’라 불리는 세그먼트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SUV와 함께 가장 높은 선호도를 보이고 있는 세그먼트다. ‘중형차보다더 고급스럽고 대형차보다 덜 부담스러운’ 준대형차는 중산층 이상의 소비자 층을 중심으로 꾸준한 사랑을받고 있다. 특히 현대자동차의 그랜저는 2017년 1월부터 11월까지 무려 12만대이상을 팔아 치우며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그랜저는 본래 지금의 에쿠스, 혹은 제네시스 EQ900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명실상부한 플래그십대형 세단의 이름이었다. 지금의 체제에서 그랜저는 한 기업을 대표하는 최고급 세단에서 이제는 현대자동차의허리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과거부터 꾸준히 고급형 중형세단을 표방한모델들을 내놓아 왔다. 지난 수십 년간 중형 세단이 성장을 이끌어 왔던 대한민국에서 고급형 중형 세단이란그리 생소한 개념이 아니다. 현대자동차의 대표적 볼륨 모델이자 국민차로 사랑 받아 왔던 ‘쏘나타’ 역시 보급형 중형 세단인 스텔라의 고급화 버전에서 출발했고, 구 대우자동차는 레코드-로얄 시리즈를 통해 이미 상당히 세분화된중형차 라인업을 꾸리고 있었다.

2세대 쏘나타의 성공으로부터 시작된 쏘나타의 전성시대와 대우 로얄 시리즈의 몰락, 그리고 그랜저의 등장과 함께 마침내 국내 자동차 시장은 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재편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 당시 쏘나타와 그랜저 사이의 틈은 너무나도 컸다. 그리고이 틈을 메우기 위해 현대자동차는 이미 초대 쏘나타를 통해 한 번 실패한 경험이 있었던 고급형 중형 세단에 다시금 도전했다. 새로운 ‘고급’ 중형차는코드 네임 ‘H’를 부여 받고 개발을 시작, 1995년 3월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차의 이름은 ‘마르샤(Marcia)’. 오늘날 그랜저가 위치한 준대형 세단을 보다본격적으로 구체화한 선구자적인 모델이었다.

준대형 세그먼트 형성의 단초를 제공한 모델

현대자동차 마르샤는 쏘나타2와 쏘나타3에 사용된 Y3 플랫폼을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디자인, 편의사양, 파워트레인 등, 많은 부분에서 쏘나타와는 지향하는 바가 다른 차였다.

마르샤의 외관 디자인은 쏘나타와는 전혀 다른 인상과함께 한층 화려하고 고급스럽게 꾸며진 점이 특징이다. 특히 전면부의 디자인은 쏘나타보다도 더 날카로운인상을 가지면서도 번쩍이는 크롬 라디에이터 그릴로 쏘나타와는 비교할 수 없는 화려함을 자랑했다. 그뿐만 아니라 보닛에는 그랜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전용의 후드탑 엠블럼까지 넣었다. 뒷모습에서는 한 줄로이어진 테일램프가 눈에 띈다. 고급스러운 감각을 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그러나 측면의 디자인에서는 여지없이 쏘나타2 및 쏘나타3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실내의 경우에는 아예 쏘나타2의 것과 같았다. 물론, 현대차는 우드그레인과 함께 당시 그랜저에나 들어갔었던 운전석및 조수석 에어백, 자동 에어컨과 고급 오디오 시스템을 적용하는 등,안전/편의사양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득력을 얻고자 했다. 이러한 점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마르샤를 ‘비싼 쏘나타’로 인식되게 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다만 마르샤가 쏘나타에 비해 월등한 점이 한 가지있었다면 단연 ‘엔진’이다.마르샤는 당시 그랜저의 중간급 모델에 탑재되었던 2.5리터 V6 엔진(G6AV)을 보닛 아래 품고 있었다. 당시 최고출력 173마력/6,000rpm,최대토크 22.4kg.m/4,500rpm을 발휘한 마르샤의 2.5리터 V6 엔진은 당시 중형급 차종에 탑재된 엔진 중 가장 강력한엔진이었다. 이 덕분에 마르샤는 우수한 가속 성능을 확보할 수 있었다.물론, 가격을 낮춘 하위 트림의 경우에는 146마력의최고출력을 내는 2.0리터 시리우스 엔진을 탑재한 모델도 존재했다. 변속기는자동 4단 변속기와 5단 수동 변속기(시리우스 엔진 탑재 차량 한정)가 준비되어 있었다.

1997년, 마르샤는 출시 약 2년 만에 페이스리프트가 진행되었다. 클리어 타입의 헤드램프 적용과함께 기존의 세로줄 그릴을 격자 형태로 변경하고 그랜저급의 고급 세단에 적용되는 투톤 컬러까지 준비했다. 실내에는새로운 패턴의 우드 그레인과 함께 2단으로 구성된 신규 콘솔박스를 적용하는 등, 고급화에 더욱 힘썼다.

현대자동차의 마르샤는 ‘고급 중형세단’ 전략을 충실히 따른 모델이었다. 쏘나타와 거의 같은 체적을 지니고 있지만 실내 마감과 윤택한 안전/편의사양, V6 모델 한정으로 월등한 동력성능까지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마르샤는 ‘배기량은 작고 차체는 큰’차를 선호하는 경향이유달리 강했던 90년대 당시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에서는 호응을 얻기 어려웠다. 또한 1997년 불어 닥친 외환 위기 이후, 현대차는 그동안 불어나 있었던 자사의 모델 라인업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이 때문에 ‘고급 중형세단’을주창하며 보무도 당당하게 등장했던 마르샤는 단 3년 만에 단종을 맞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마르샤가 가지고 있었던 고급 중형세단 컨셉트는‘그랜저 XG’를 통해 ‘준대형세단’이라는 세그먼트로 발전되게 된다. 마르샤의 계보에 상위모델인 그랜저의 이름이 쓰이게 된 이유는 본래 그랜저 XG가 마르샤의 후속모델로서 개발된 차종이었기때문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현대차가 다이너스티, 에쿠스 등, 그랜저의 상위 모델을 잇달아 내놓았고 이 때문에 그랜저라는 이름은 오갈 곳이 없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 ‘그랜저’라는 이름은 이미 하나의 브랜드였으며, 여전히 상징성이 강한 이름이었다. 그리하여 현대차는 한 번의 실패를 맛봤던 마르샤 대신 그랜저라는 이름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곧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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