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백에 대한 다른 온도, 그리고 i30 패밀리
상태바
해치백에 대한 다른 온도, 그리고 i30 패밀리
  • 윤현수
  • 승인 2017.12.22 17: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륙, 그리고 각 국가들의 자동차 판매량 차트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해당 지역에서 선호하는 차종은 제법 선명히 드러나는 걸 알 수 있다. 천차만별의 기후로 말미암아 나뉘는 주거 환경, 그리고 오랜 세월 축적되어온 상이한 생활 양식 탓이다. 
 
물론 크로스오버 열풍이 불어닥치며 전 세계 소비자들의 자동차 취향도 점점 획일화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아직까지는 지역별 선호 차종의 윤곽이 남아있긴 하다.

가령 한국은 제법 오랜 기간 동안 세단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그랜저, 쏘나타, 아반떼 트리오가 번갈아가며 승용차 시장 1위를 독차지해온 것만 봐도 그렇다. 위풍당당했던 세단들은 크로스오버들이 득세하기 시작하며 점차 인기가 사그라들고 있지만, 그 무게추 이동이 세계적인 추세임을 감안해도 세단의 인기가 상당히 높은 시장임은 분명하다.

자동차 시장 수준이 가장 높다고 여겨지는 유럽은 어떠한가?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유럽 전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차종은 해치백이다. 2016년 한 해 동안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자동차 열 대를 모아봤더니, 그중 여덟 대가 해치백이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반면, 한국은 유럽에서 날고기는 해치백들이 도통 힘을 못쓴다. 한국에 제대로 된 자동차 시장이란 개념이 생긴 이후 해치백이 아예 인기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너무 오래전 일이다. 해치백의 불모지로 취급된 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흘렀다. 
 
현재는 몇 안 되는 국산 해치백 라인업을 구성했던 기아차 프라이드는 올해 일찌감치 단종의 길을 걸었고, 아베오는 작년에 월평균 132대 팔렸다. 참고로 저 판매량은 세단 모델을 포함한 수치다.

국산 해치백의 마지노선을 지키고 있는 i30는 한국 국적을 가진 차량이면서 고국에선 찬밥 신세를 받는 대표적인 자동차 중 하나다. 그러면서 유럽에선 어화둥둥 사랑받는 차다. 출신 성분은 차치하더라도, 타겟으로 삼은 시장이 다름 아닌 유럽이었으니 그럴 만했다. 해치백의 고장에서 사랑받기 충분한 차였다. 내년 출시를 앞둔 르노 클리오와 4세대 프라이드와 함께 국내 해치백 시장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녀석들이다. 
 
현대차 홈페이지에 있는 국내 시판 라인업을 보면 아반떼와 벨로스터 사이에 끼어있는 i30를 볼 수 있다. 가격표를 뒤적거려도 5도어 해치백 사양이 전부다. 

반면 현대차 독일 홈페이지를 접속하면 색다른 i30들을 만날 수 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 도로에서도 볼 수 있는 해치백 타입의 i30 말고도 꽁무니를 스테이션 왜건 타입으로 다듬은 ‘i30 콤비’(Kombi / Tourer), 스포티한 패스트백 스타일로 빚은 ‘i30 패스트백’(Fastback), 고성능 심장을 달아 본격적인 핫 해치 시장으로 진격하는 ‘i30 N’이 있다. 그야말로 'i30 패밀리'를 완성시킨 것이다.
 
그런데 해치백 모델을 제외한 이 세 가지치기 모델은 한국에선 만날 수 없는, 만날 기약도 없는 모델들이다. i30는 유럽에서 '가족'을 완성했는데, 우리나라에선 가지치기 모델은 커녕, 판매량을 보고 있자니 금방 단종되도 이상할 것 같진 않다.

네티즌들은 어째서 한국엔 왜건이나 패스트백 등을 내놓지 않느냐고 다그치기도 했다. 그런데 기업이 이윤을 좇는다는 논리에 의하면 이건 당연한 전략이다. 지난 11월, i30는 유럽 시장에서 6,328대가 팔렸다. 현대차 유럽 법인 월간 판매량의 14.2%에 해당하는 수치로, 제법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 것에 반해 11월, i30가 현대차 한국 시장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6%에 불과했다. 사실상 판매 실적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는 모델이라 봐도 된다. 이렇다 보니, 국가에 따라 소비자가 i30에게 가지는 온도가 다르듯, 현대차도 시장에 가지는 온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가지치기 모델들이 체코에서 생산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으나, 한국에서 i30가 유럽만큼 인기가 있었다면, 이 가지치기 모델들도 한국에서 생산되어도 무방했을 것이다.

아울러 한국 소비자들은 해치백이 동급 세단보다 가격이 비싸서 구매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해치백이 같은 플랫폼을 사용한 해치백보다 높은 가격이 매겨지는 건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미국에서 엘란트라 GT로 판매되는 i30는 아반떼, 즉 엘란트라보다 4,400달러(한화 약 475만 원)가 더 비싸다.

이렇게 해치백이 인기없는 미국과 한국에서 세단보다 가격이 비싼 건, 운영 트림 수를 줄이기 위해 엔트리 트림에 고급 편의사양을 몽땅 몰아주다보니 시작 가격이 비싸진 탓이다. 아울러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해치백이 동일 구성의 세단보다 살짝 비싸게 판매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간단히 말하면 한국에서 i30의 부진과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은 해치백 선호도가 낮아서 생긴 결과물이다.

물론, 현시대는 기업이 이익만 쫓을 수 있는 시대는 결코 아니다. 많이 팔리는 모델만 시장에 투입한다면 기업의 이미지는 하락할 것이 뻔하다. 실제로 i30 N은 한국 시장에 출시되지 않지만, 대신 내년에 출시를 예정하고 있는 벨로스터가 그 한국산 핫 해치 역할을 대신할 전망이다. 시장에 따른 라인업 구성을 이익 우선으로 삼되, 이미지 리딩 혹은 소비자들의 니즈를 위한 모델 투입도 필요한 것이 현재의 자동차 기업, 나아가 모든 기업들의 올바른 표상이다.

따라서, i30 패스트 백의 늘씬한 자태를 보고 부러워하는 소비자들의 입장, 그리고 다채로운 i30 라인업이 존재하고 있는데도 정작 고국에는 해치백 달랑 하나만 내놓는 현대차의 입장 모두 이해가 되는 것이다. 참고로 초대 i30가 한국에서 월 2000대 정도 팔릴 때만 해도 현대차는 ‘창조적 물결’이라며 왜건 버전인 i30 cw를 내놓은 적이 있다.
 
아울러 현대차가 트림 다양성을 중요시하지 않는 건 결코 아니다. 스테디셀러인 쏘나타를 보라, 꾸준한 판매량이 보장되지 않은 시장, 혹은 모델이었다면 ‘7개의 쏘나타’ 전략은 결코 나오지 못했다. 베리에이션 모델, 혹은 다른 파워트레인, 심지어 트림 운영 수만 늘어나도 곧 ‘돈’으로 직결되는데, 이윤 추구가 목적인 기업이 자선사업을 할 순 없는 노릇이다.

작은 차를 선호하는 본인도 사실 안타깝다. 실용성 높은 왜건과 스타일리시한 스포트백, 혈기 넘치는 ‘N’ 모델까지 기대하지 않았던 모델이 없었기 때문. 특히 I30 해치백 모델을 타며 감탄사를 내뱉었던 지라 아쉬움은 더욱 컸다.

장난 섞인 상상이지만, 유럽에 사는 한 네티즌도 유럽에선 시판이 안 되는데 한국에선 판매 중인 아반떼와 쏘나타의 디자인을 보고 ‘왜 현대는 저렇게 좋은 차를 들여오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모든 건 상대적이다. 그리고 이유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