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포드 코리아는 서울 광진구에 자리한 워커힐 호텔에서 신형 이스케이프의 미디어 시승회를 개최했다. 신형 이스케이프의 핵심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성능과 효율을 모두 끌어올린 에코부스트 엔진. 둘째는 자동주차 장치와 핸즈프리 트렁크 게이트, 토크벡터링과 커브 콘트롤 등의 첨단 편의·안전 장비다. 포드가 이스케이프를 ‘똑똑한’ SUV(Smarter Utility Vehicle)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두 가지 핵심에서 비롯된다.
이스케이프는 2000년 데뷔한 포드의 컴팩트 SUV다. 넉넉한 실내와 뛰어난 실용성으로 미국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2006년의 2세대도 전작의 인기를 유지했다. 올해 봄, 신형인 3세대로 거듭나기 직전까지도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를 정도였다. 이스케이프는 국내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02년 등장했고, 그해 수입 SUV중 가장 많이 팔려나갔다.
포드는 유럽에서도 탄탄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 그간 포드는 미국 시장용 모델과 유럽 시장용 모델을 따로 만들었다. 이스케이프의 유럽 버전의 이름은 쿠가(Kuga). 실용성을 강조한 이스케이프와는 달리 탄탄한 승차감과 핸들링을 내세운 모델이었다. 쿠가 역시 큰 인기를 누렸다. 비교적 뛰어난 주행 안정성을 품은 SUV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2세대 이스케이프>
한편, 포드는 2000년대 들어 힘든 시기를 보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판매 감소가 원인이었다. 유가는 급증하는데 포드는 기름 먹는 하마인 덩치 큰 SUV만 찍어내고 있었다. 유럽차 회사를 압도하겠다며 설립한 PAG(프리미어 오토모티브 그룹)도 문제였다. 볼보를 제외한 재규어, 랜드로버, 에스턴마틴 등의 PAG의 일원들은 적자만 내고 있었다.
그 결과 포드의 시장 점유율과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계속되는 적자로 인해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개혁이 필요했다. 2006년, 포드는 14개의 공장을 폐쇄하고 3만 명의 노동자를 감원하겠다고 밝혔다. 52명의 임원중 12%도 줄이겠다고 했다. PAG로 꿈꾸던 야망도 접었다. 거금 들여 사들인 고급차 회사를 하나씩 내다 팔았다. 2010년 8월 2일, 볼보를 중국 Geely 그룹에 양도하며 PAG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쿠가>
뼈를 깎는 노력은 하나둘씩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빚은 줄고 주가는 차차 반등했다. 최근엔 채권마저 ‘투자적격’ 등급으로 돌아섰다. 무엇보다 상품성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PAG를 닫고 포드와 고급차 브랜드인 링컨에만 집중한 까닭이다. 2006년부터 시행한 ‘원-포드’ 전략도 한 몫 했다. 따로 놀던 미국용 모델과 유럽용 모델을 통합하는 전략이다.
자동차 업계에 불어 닥친 ‘다운사이징’ 바람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포드는 직분사 시스템과 터보차저를 이용해 성능과 효율을 동시에 올린 에코부스트 엔진을 개발했다. 에코부스트 엔진은 최대 125마력의 힘을 내는 직렬 3기통 엔진부터 최대 365마력의 힘을 내는 V6 엔진으로 구성돼 있다.
<에코부스트 1.6L 엔진>
신형 이스케이프엔 이런 포드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신형 이스케이프는 원-포드 전략에 따라 유럽에서도 변경 없이 그대로 팔릴 예정이다. 때문에 신형 이스케이프엔 이전 모델의 실용성과 쿠가의 주행안정성이 모두 담겼다. 엔진은 물론 에코부스트. 이전 동급 모델에 비해 성능과 효율이 모두 높아진 것이 특징이다. 1.6L 엔진은 구형의 2.5L 엔진을, 2.0L 엔진은 구형의 3.0L 엔진을 대신한다.
내실만 다진 것은 아니다. 안팎 디자인이 이전 모델과 연관성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해졌다. 미국차 특유의 둔탁한 느낌 역시 찾아 볼 수 없다. 전체 비례가 빈틈이 보이지 않을 만큼 치밀하다. 네 가닥의 선을 그은 보닛, 뾰족하게 오려낸 헤드램프와 테일램프, 거우듬히 부풀린 앞뒤 펜더 등은 날렵한 느낌을 낸다.
스포티한 느낌도 물씬 냈다. 머플러를 양쪽에 하나씩 달고 앞 범퍼의 공기흡입구는 입을 쩍 벌렸다. 공기흡입구는 엔진이 차가울 땐 구멍을 닫는 기능까지 갖춘다. 공기저항을 줄여 효율을 올리기 위해서다. 신형 이스케이프는 현대 투싼iX와 싼타페의 중간크기. 하지만 실내공간을 결정짓는 휠베이스는 싼타페와 비슷하다.
실내의 변화는 한층 더 극적이다. 대시보드와 도어트림 등엔 화려한 선과 면이 녹아들었다. 투박함의 끝을 달리던 ‘포드 이스케이프’의 실내가 맞나 싶다. 구석구석 장식된 금속 느낌 내는 패널과 센터콘솔을 덮은 유광 패널은 화사한 느낌을 더한다. 재질도 눈에 띄게 개선됐다. 도어트림 팔걸이 부분과 센터콘솔 뚜껑 등 몸 닿는 곳은 가죽으로 꼼꼼히 씌웠고 대시보드 상단 부분은 말랑 말랑한 우레탄 재질이다.
그러나 미국차 다운 실용성은 여전하다. 특히 컴팩트 SUV임에도 성인 네 명이 편히 탈 수 있을 정도의 넓은 실내공간이 큰 장점이다. 중형 SUV에 버금가는 휠베이스를 가졌기에 가능했다. 변속레버 아래쪽엔 컵홀더 두 개가 자리한다. 앞쪽 도어트림에도 1L짜리 물병이 각각 두 개씩 들어간다. 앞 시트 바깥쪽 아래 부분엔 우산 두는 공간과 뒷좌석 바닥엔 수납공간도 마련했다. 뒤 시트 폴딩은 기본. 접었을 때 바닥면이 평평해 짐 실기도 좋다.
국내에 수입되는 이스케이프는 1.6L 또는 2.0L 엔진을 얹는다. 1.6L 엔진은 최고 180마력과 25.4㎏·m의 힘을, 2.0L 엔진은 최고 243마력과 37.3㎏·m의 힘을 낸다. 두 엔진 모두 직렬 4기통. 연소실에 연료를 직접 분사해 출력과 연비를 높인 직분사 시스템과 엔진의 들숨과 날숨을 조절하는 변동 타이밍 캠샤프트, 공기를 강제로 압축해 출력을 올리는 터보차저 등을 단다. 변속기 역시 두 모델 모두 6단 자동이다.
옵션으로 사륜 구동 시스템도 준비된다. 이스케이프의 인텔리전트 사륜 구동 시스템은 앞뒤 구동력을 상황에 따라 0:100~100:0으로 배분한다. 시속 32㎞ 미만에선 보통 안정적인 가속감을 위해 뒷바퀴를 더 많이 굴린다. 토크벡터링 컨트롤은 기본이다. 코너에서 안쪽 바퀴를 덜 굴려 주행안정성과 앞머리 비트는 속도를 높이는 장비다. 주행속도와 차체의 기울어짐 등을 계산해 속도를 스스로 줄여 사고를 방지하는 코너 컨트롤도 기본으로 단다.
시승차는 1.6L 엔진을 단 모델. ‘이 큰 차체를 과연 1.6L 엔진이 이끌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차에 올랐다. 하지만 나의 걱정은 곧 기우로 변해갔다. 신형 이스케이프는 0~ 시속 150㎞의 일상 주행 구간에서 매끄럽게 뻗어나갔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가속 성능을 뽐냈다. 연비 걱정 없이 엔진을 불사르는 혈기 왕성한 운전자가 아니라면 불편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사실, 신형 이스케이프의 장점은 가속성능이 아닌 운전감각에 있었다. 울퉁불퉁 오프로드를 연상케 하는 거친 노면에서도 이스케이프는 세련된 승차감을 유지했다. 스티어링 휠 역시 나긋하게 화답했다. 하지만 뾰족한 코너의 정점에서도 든든하게 버텨줬다. 우직한 서스팬션의 움직임과 든든한 차체의 협업이 허리로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그래서 신형 이스케이프의 몸놀림은 노면이 고르지 않은 한적한 국도의 꼬부랑길에서 빛을 발했다. ‘누가 타도 편안하고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차’라는 포드 측의 설명이 이해가 갔다. SUV의 높직한 차체는 쾌적한 시야를 제공했다. 두툼하게 가죽을 두른 스티어링 휠과 양옆을 부풀린 시트는 심리적 안정감을 높였다. 하지만 하이힐 신은 여성운전자를 배려했다는 뒤로 누운 가속페달과 브레이크페달은 발목을 조금 뻐근하게 만들었다.
포드코리아가 밝힌 이스케이프의 공인연비는 1.6L 모델 9.8㎞/L, 2.0L 모델 9.2㎞/L다. 또한 포드코리아는 “가솔린 엔진의 경쟁모델에 비해 연비가 다소 낮아 보일 수 있지만 경쟁모델들은 구연비, 이스케이프는 신연비 측정방식을 따랐기 때문에 정확한 비교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미국기준의 연비를 비교하며 “신형 이스케이프의 연비는 동급 최강”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시승에서도 연비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속페달을 다독이면 순간연비는 13㎞/L을 훌쩍 뛰어넘었다. 가속페달을 바닥에 짓이겨도 순간연비는 6㎞/L대를 유지했다. 1.6L 엔진을 단 시승차는 이전 2.5L를 대체하는 모델. 이전에 비해 연비 10%, 이산화탄소 배출량 11%를 개선한 것이 특징이다. 낮아진 배기량으로 인해 세금을 무려 40%나 절세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포드는 이스케이프에 다양한 편의 장비를 마련한다. 가장 눈에 띄는 장비는 ‘핸즈프리 리프트 게이트’다. 열쇠를 지니고 뒤 범퍼 아래 모션 센서 부분에 발을 넣어 흔들면 트렁크가 자동으로 열리는 장치다. 트렁크에 실을 짐을 양손에 가득 든 경우,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 좌우 독립 공조장치는 기본, 터치로 조작하는 8인치 모니터를 포함한 포드의 통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마이터치 링컨’과 자동주차 장치, 파노라마 선루프는 옵션이다.
신형 이스케이프의 상품성은 잘 잡힌 전체 균형에 있었다. 화려한 안팎 디자인, 납득할 수준의 성능과 연비, 첨단 편의·안전 장비 등이 이스케이프의 매력이었다. 세련된 승차감과 안정적인 몸놀림, 실용성이 뛰어난 실내는 숨겨진 가치였다. 가장 놀라운 건 모난 곳을 찾기 힘들다는 점. 이제 포드를 다시 봐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지난 몇 년간 포드 모델이 만든 선입견만 벗어난다면, 이스케이프는 또 한 번 돌풍을 일으키기에 충분해보였다. 이스케이프의 가격은 3,230만원부터 시작한다.
글 류민 | 사진 포드, 포드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