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에 다다른 호주 자동차 산업, 그리고 홀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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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에 다다른 호주 자동차 산업, 그리고 홀덴
  • 윤현수
  • 승인 2018.04.2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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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호주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자랑하는 토요타가 호주 현지 생산을 중단하고 모든 시설을 처분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토요타 뿐이 아닌 호주에 생산 기지를 가지고 있던 포드나 GM 역시 생산 부문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말았다. 호주 자동차 산업에 빨간불이 들어왔다고 알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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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원인은 무엇인가? 기업의 존재 목적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거다. 단순히 말하자면, '돈'이 안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호주는 인구당 차량 보유수 측면에서 최고를 자랑하는 미국에 이어 최상위권을 기록하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전체 인구수가 적은 편에 속한다. 한국의 절반도 안되는 인구를 보유한 국가인지라, 자동차 판매량의 볼륨이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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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호주의 1인당 GDP는 5만 5천 달러 정도로 임금 수준이 OECD 국가 내에서도 최상위권을 기록한다. 이렇다 보니, 현지에서 공장을 설립하면서까지 호주 시장에 투자하기에는 리스크가 상당히 높을 수밖에 없다.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돈도 많을뿐더러, 시장의 볼륨은 크지 않다. 기업의 입장에서 호주 시장 철수를 고려할만 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호주가 시장성이 없다고 보긴 어렵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인구 대비 자동차 보유대수가 많은 곳이며, 전반적인 소득 수준도 우수하기에 호주 국민의 자동차 구매력은 굉장히 높은 축에 속하기 때문. 따라서 현지 공장을 철수시킨 해외 업체들은 이제 현지 생산하던 모델들을 수입하여 판매 볼륨을 유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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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호주 자동차 시장은 여타 수단을 통해서라도 근근이 이어지고 있는 와중인데도, '홀덴'이 몰락했다는 사실은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GM의 호주 시장 공략 주자이자, 호주 출신 브랜드인 홀덴(Holden)은 제법 오랜 역사를 이어오며 스포티하면서 남성적인 자동차를 빚어왔으나, 결국 시대의 흐름은 거스르지 못했다.

홀덴은 GM이 서브프라임 사태를 통해 수익성 낮은 브랜드를 잔가지 쳐내듯 폐지시키던 시절에도 살아남았다. 그러나 GM은 이후 수익이 높은 미국- 중국에서 활약하는 알짜배기 브랜드(쉐보레 - 캐딜락 - 뷰익 - GMC)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홀덴은 사실상 관심 밖이었다. 현지 생산을 작년까지 이어올 수 있던 것도 사실 호주 정부의 지원금 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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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호주 자동차 산업에서 '생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그러나 홀덴이라는 현지 브랜드가 지녔던 커다란 상징적인 의미를 잃었다는 것이 호주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기고 있다. 현재는 쉐보레와 오펠 모델에 홀덴 엠블럼을 단 '뱃지 엔지니어링' 제품만이 호주에 팔리고 있다. 브랜드 정체성이 사실상 없어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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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산업을 구성하는 주요 직종의 종사자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것도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호주 빅토리아 자동차상공회의소(The Victorian Automobile Chamber of Commerce)에 따르면, 호주 자동차 산업에서 자동차 유지보수 관련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54%를 기록한다. 그러나 호주 내의 자동차 엔지니어 구인 수가 2만 7천 명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보였다. 이는 자동차 보수와 유지에 필요한 엔지니어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호주자동차협회(MTAA)는 371억 달러를 자랑하는 호주 자동차 산업의 주요 엔지니어들이 부족한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호주의 자동차 관련 사업체는 96% 이상이 소규모 혹은 개인 사업체이기에 엔지니어 부족은 호주 자동차 산업에 뼈아프게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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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호주 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소박한 국민 성향 때문에 프리미엄 자동차보다는 대중적인 브랜드의 모델들이 인기가 높은 호주에서 합리적 가격을 필두로 한 중국 제품이 먹힐 것이라는 생각을 품어온 것이다.

최근 중국 업체들은 지속적인 신차 출시를 감행하며 2020년까지 시장 점유율 10%를 목표로 하고 있다. 가령 상하이자동차는 SUV 중심으로 흘러가는 시장 트렌드에 맞춰 MG T60, GS, ZS와 같은 크로스오버 모델들을 내놓으며 본격적인 시장 진입을 위한 초석을 마련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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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중국차가 호주 땅을 밟았던 건 근 10년 전부터 있던 일이다. 2009년부터 발을 들이기 시작한 중국 자동차들은 일단 시장 분위기를 파악했고, 전통의 홀덴 브랜드까지 거머쥐고 있는 호주 시장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특히 주요 업체들이 공장을 철수시킨 지난해에도 분위기는 영 좋지 못했는데, 작년에 중국차는 판매량이 800대 정도로 아주 소수에 불과했다.

특히 중국을 제외한 어떤 시장이든 그렇듯, 호주 소비자들이 지닌 중국 브랜드에 대한 불신이 판매를 가로막는 주요 원인이며, 안전성 결함 역시 중국차의 호주 시장 진출에 발목을 잡고 있다. 물론 보다 적극적인 시장 공세를 위해 ANCAP (호주 신차평가 프로그램) 테스트를 진행 중에 있긴 하다. 그럼에도 호주 소비자들은 제법 보수적으로 여겨지기에, 중국이 목표로 한 점유율 확대가 달성될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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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중국이 바라던 목표에 가까워질수록 자연스레 입지가 좁아지는 건 홀덴을 비롯한 대중차 브랜드다. 시간의 흐름이 중국차들의 품질 향상과 함께 위상의 강화를 만들어낸다면, 실속적 소비성향을 지닌 호주 소비자들이 중국차를 쉽게 선택하는 것도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업의 예정된 하락세와 유일한 현지 출신 업체의 몰락은 호주 자동차 산업의 정신이 슬슬 사그라들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자동차 산업이 몰락했다고 회자되는 영국은 자부심과 상징성이라도 고이 간직했다. 완전히 껍데기만 남은 '홀덴'과는 다르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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