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엑센트에 대한 '이유 있는 온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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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엑센트에 대한 '이유 있는 온도차'
  • 윤현수
  • 승인 2018.05.2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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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무너진 한국 소형차 시장을 홀로 지탱하던 현대차 엑센트가 최근 연식변경을 거쳤다. 2010년 출시 이후 벌써 데뷔 9년 차의 베테랑이다. 이제 후손에게 자리를 물려줄 법도 한데, 현대차는 더 버텨보라고 다그치고 있다. 연식 변경만 도대체 몇 번째인지 기억도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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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코드네임 RB, 즉 4세대 엑센트는 사실 해외 시장에선 후속 모델에게 바통을 물려준 바 있다. '솔라리스'라는 이름을 달고 팔리는 러시아에선 지난해 5세대 모델이 최초로 공개된 이후 선대 모델의 인기를 물려받은 채 순항 중이며, 소형차 시장이 슬슬 무너져가고 있는 북미 시장에서조차 최신형 엑센트가 등장했기 때문.

간단히 정리하자면 엑센트는 이미 5세대로 풀체인지를 이뤘고, 고국 소비자들에게는 구형 모델이 팔리고 있는 셈이다. 단편적으로 보면 이러한 현대차의 행보는 당연히 내수 역차별이 맞다. 이에 분개하는 우리 소비자들의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각자의 시장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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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엑센트는 4세대 모델 출시 이후 연간 6만 대 규모를 꾸준히 유지해왔다. 이는 주력 모델인 엘란트라에 비하면 3분의 1 가량에 불과한 성적이었으나, 기본적으로 미국 시장에서 서브 컴팩트 시장이 갖는 위상을 감안하면 엑센트의 성적은 머리를 정성스레 쓰다듬어 줘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특히 2016년에는 7만 9천 대 이상을 기록하며 미국 토종 브랜드 출신인 쉐보레 소닉을 데뷔 후 처음으로 제치기도 했다.

이후 2017년에는 판매량이 다시 6만 대 미만으로 떨어지긴 했어도, 충분히 이익을 뽑아먹을 수 있는 규모 정도는 유지하고 있다. 특히 갈수록 규모가 줄어들고 있는 서브컴팩트 시장에서 엑센트의 존재감은 날이 갈수록 선명해지고 있는 상황. 토종 기업 출신인 피에스타와 소닉이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으니, 현대차가 신형 모델을 투입하는 게 그리 이상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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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모두가 알다시피 현재 국내 소형차 시장은 처참할 정도로 박살 난 상황이다. 최신 판매량 차트를 들여다보면, 4월 기준 소형차 시장 판매량은 634대였다. 국내 완성차 업체 5개사가 구성하는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0.5%에 불과했다. 조금 적나라하게 이야기하자면, 기업 입장에선 사실상 있으나 마나 한 시장이라는 소리다.

4세대 엑센트와 더불어 3세대 프라이드, 여기에 쉐보레 아베오까지 합세했던 2011년 당시의 판매량을 들여다보자. 2011년 12월, 세 모델의 합산 판매량은 무려 4,421대였다. 합산 시장 점유율도 3.5%로 당시에도 마이너리티이긴 했어도, 현재와 같이 멸종 수준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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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당시 시장을 선도했던 엑센트는 월 2천 대가량이 꾸준히 팔렸다. 현재 국내 시장에서 2천 대 규모라고 하면 르노삼성 QM6가 그 정도를 팔고 있으니, 시판 차종의 다양화가 이뤄진 현재와 직접적으로 비교하긴 어려워도, 국내 소비자들에게도 제법 인기가 많은 모델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엑센트는 2014년 9월,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며 유로 6 배기가스 기준을 통과하는 최신예 디젤 엔진과 7단 듀얼 클러치를 수혈받았다. 당시엔 소형차 치곤 과분한 파워트레인이었고, 형제 차인 프라이드는 해당 유닛들을 지원받지 못해 안타까움을 전하기도 했다. 

상품성을 높이니 성숙기에 들어선 모델 수명주기에도 불구하고 엑센트는 꾸준히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엑센트만 훨훨 날고 있는 상황인지라 상대적으로 상품성이 크게 떨어진 프라이드와 아베오는 서서히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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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엑센트 원맨쇼가 되어버린 소형차 시장은 슬슬 무너지기 시작했다. 제법 재밌는 상황을 연출했던 3자 구도가 무너지자 소형차 시장에서 엑센트의 존재감은 점점 선명해졌고, 그 소형차 수요를 몽땅 받아들이며 월간 판매량이 2,700대에 달하기도 했다.(2015년 12월 기준)

그러나 경쟁자이자 동료이기도 했던 프라이드는 신차 출시 당시 2천 대 규모의 판매량을 자랑했던 것과는 달리 500대 미만으로 판매량이 폭삭 주저앉았고, 아베오는 경쟁상대라고 보기에도 부끄러울 정도의 성적만 보일 뿐이었다.

이렇다 보니 소형차 시장은 세 모델이 피 터지게 싸우던 시기보다 더 축소되었다. 홀로 상품성을 높인 엑센트가 수요를 독점했기에 단독 모델 판매량이 늘었을 뿐, 시장 자체는 점점 줄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도가 지속되며 지난해 프라이드는 결국 단종의 길을 걸었고, 아베오는 카마로보다 불과 3대 더 많이 팔리며 최하위권을 기록하는 굴욕을 맛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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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대로 엑센트는 벌써 국내 데뷔 9년 차를 맞았다. 제아무리 시장을 독점했다고 해도 세월의 흐름은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소형 크로스오버들의 출현과 바로 윗급이 준중형 모델들의 꾸준한 상품성 향상은 사실상 소형차 시장에서 홀로 서있는 엑센트조차 무너지게 했다. F/L 이후 꾸준히 연식변경을 이루긴 했어도 파워트레인의 변경이나 신기술 탑재가 없는 상황이었기에 깊게 파인 주름을 감추긴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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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한국 시장에 풀체인지 모델을 내놓지 않는 현대차 입장이 이해가 간다는 것이다. 모델 수명 주기가 쇠퇴기에 이르렀음에도, 미국 시장에선 한국에서만큼 판매량이 폭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자료로, 최근 6년간 국내 시장에서의 엑센트 판매량 추이를 보자. 실제로 2012년 엑센트의 국내 성적은 30,530대를 기록했으나, 해를 거듭할 수록 판매량이 줄어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5년 후인 2017년 성적은 7,496대로 크게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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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 엑센트는 2012년 미국 시장에서 61,004대를 기록한 이후 되려 2016년엔 판매량이 폭등할 정도로 꾸준한 인기를 보여줬다. 2017년에는 58,955대를 기록하며 런칭 초기보다는 판매량이 줄긴 했어도, 모델 주기가 쇠퇴기에 이르렀음에도 볼륨 유지를 훌륭히 해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꾸준히 성적이 하락해 온 한국 시장과는 전혀 사정이 달랐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며, 결론적으로 상이한 시장 변화로 인해 모델의 지속성 측면에서 차이가 극명히 갈렸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대차가 엑센트에 가지는 온도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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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엑센트도 연식변경을 이룬 데다, 시장에 처음으로 발을 들이는 르노삼성 클리오가 출시된 만큼 반등의 여지는 충분히 있다. 그러나 그 볼륨 상승이 시장 판도를 바꿀 정도는 보여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에게 엑센트 풀체인지를 부추기려면 기아차가 계속 미루고 있는 프라이드 후속을 시장에 내놔야 하고, 르노 클리오 역시 엑센트를 위협할 정도의 성적을 꾸준히 보여줘야 한다.

이렇게 시장이 활성화되려면 무언가 자극이 있어야 된다. 수요가 적어졌다고 해서 시장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소비자에게도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미국 소형차 시장이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도, 그 규모가 빠른 속도로 잠식되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 것은 생각보다 경쟁 차종이 많은 데다 수요도 꾸준히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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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시장에도 신형 엑센트와 프라이드가 등장해서 소비자들의 눈길을 모으고, 르노 클리오도 좋은 성적을 기록한다면 소형차 시장은 충분히 2012년 당시와 같이 존재감을 뽐낼 수 있다. 그러나 소형차에 대한 온도가 차갑게 식어버린 한국 소비자들의 등을 돌리기엔, 헤쳐나갈 장애물들이 너무나 많아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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