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 ES350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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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서스 ES350 시승기
  • 류민
  • 승인 2013.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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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는 렉서스의 중형세단이다. 1989년 데뷔해 5번의 세대교체를 거쳤다. 렉서스 모델 중 가장 인기 있는 모델이기도 하다. ES의 누적 판매량은 렉서스 글로벌 누적 판매량의 약 25%인 140만대 이상이다. 국내에서의 인기는 더 좋다. 한국 렉서스 누적 판매량의 약 47.1%를 차지한다. 렉서스 두 대중 한 대가 ES인 셈이다.


렉서스는 유러피언 프리미엄 브랜드를 겨냥한 토요타의 고급차 브랜드다. 1989년, 브랜드 출범 당시 토요타가 내세운 주인공은 LS였다. LS는 ‘세계 최고의 대형 세단을 만들겠다’는 토요타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긴 모델이었다. 성능, 정숙성, 디자인, 편의장비 등 어디 하나 흠 잡을 구석이 없었다. LS는 토요타가 6년간 무려 10억 달러를 쏟아 부은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새 브랜드 출범에 LS만 내 놓기엔 겸연쩍었다. 렉서스와 LS의 야심찬 행보를 빛내 줄 조연이 필요했다. 그래서 토요타는 캠리의 앞뒤 모습과 실내를 다듬었다. 그 결과 ES가 태어났다. 이처럼 ES의 시작은 사실상 ‘급조한 고급형 캠리’였다. 그런데 예상보다 인기가 좋았다. 토요타는 당황했다. 그래서 1991년 캠리와의 연결 고리를 끊고 몸집을 키운 2세대 ES를 출시했다.


한편, 렉서스는 LS로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기함과 정면 승부를 펼쳤다. 특유의 정숙성을 내세운 LS는 시장을 파고들었다. 렉서스의 이런 전략은 이후에 출시하는 모델로도 이어졌다. 1991년의 GS로는 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등과, 1998년의 IS로는 C-클래스, 3시리즈 등과 경쟁했다. 1998년의 RX로는 벤츠 M-클래스와 함께 고급 SUV 시장을 개척하기도 했다.

그러나 ES는 직접적인 경쟁 상대가 없었다. 따라서 유유자적 자신만의 길을 개척할 수 있었다. 미국 시장에서 활약하는 대부분의 고급차는 뒷바퀴를 굴렸지만 ES는 앞바퀴를 굴렸다. 이런 ES의 매력은 뚜렷했다. 앞바퀴 굴림 방식의 장점인 넉넉한 실내 공간에 렉서스의 핵심 가치인 정숙성, 그리고 고급스러움이 어우러져 있었다.


반면 앞바퀴 굴림 방식의 단점은 철저하게 감췄다. 방향을 결정하는 앞바퀴에 큰 구동력이 걸릴 경우 조종 안정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ES는 3.0L 이상의 엔진을 얹고도 쾌적하되 안정적으로 달렸다. ES는 ‘고급차는 뒷바퀴를 굴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모델이었다. 그것도 뒷바퀴 굴림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미국 시장에서. ES의 이런 성공은 캠리로 전륜구동 세단 만들기에 도가 튼 토요타이기에 가능했다.

1997년, 3세대 ES가 등장했다. 2세대를 밑바탕 삼은 까닭에 신선함은 적었지만 판매량은 꾸준히 늘어갔다. 2001년엔 차체를 확연히 키운 4세대가 데뷔했다. 4세대는 전에 없이 큰 인기를 얻었다. 등장과 함께 ES의 미국 판매량을 약 60% 끌어 올렸다. 국내에 처음 출시된 ES도 이 4세대, 수입과 동시에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서울 강남 지역에서 현대 쏘나타만큼 많이 팔린다고 해서 얻은 ‘강남 쏘나타’라는 별명도 이때 생겼다.


2007년의 5세대는 완벽한 렉서스 고유 모델로 거듭난 ES였다. 2~ 4세대 ES는 일본에서 토요타 윈덤으로 팔았었다. 하지만 렉서스는 이 5세대와 토요타표 쌍둥이 모델과의 인연마저 매몰차게 끊었다. 한층 더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던 5세대는 ES의 판매량을 다시 한 번 10% 끌어 올렸다. 토요타가 2008년 ‘세계 최대의 자동차 회사’ 자리에 오르는데도 한 몫 했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상황이 악화됐다. ES를 비롯한 토요타 그룹의 전체 판매량이 급격하게 줄어갔다. 미국발 경기침체와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엔화 가치 등이 토요타와 렉서스의 발목을 잡았다. 물론, 토요타와 렉서스에게만 해당됐던 이야기는 아니다. 당시 미국 시장에 의지하던 자동차 회사들의 일반적인 사정이었다.


그러나 2012년, 렉서스는 부활을 선언했다. 신호탄은 신형 GS였다. 신형 GS에는 재도약에 대한 렉서스의 의지가 가득 담겨 있었다. 이런 의지는 과격한 인상과 탄탄한 주행 감각 등으로 표현됐다. 신형 GS의 외모와 주행 감각은 독일산 스포츠 세단과 견줄 수 있을 만큼 스포티했다.

때문에 그 뒤를 잇는 신형 ES에도 업계의 관심이 쏟아졌다. ‘주력 모델인 ES엔 어떤 변화가 담겨 있을까?’라는 의문 때문이었다. 나 역시 ES에 GS와 같은 변화가 담겨 있을지 궁금했다. 그런데 한편으론 걱정도 했다. ‘ES가 특유의 쾌적함을 잃지는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신형 ES를 만났다. 일단 겉모습에 담긴 변화는 GS와 비슷해 보인다. 뾰족하게 오린 헤드램프와 모래시계 모양의 ‘스핀들 그릴’을 달아 존재감을 높였다. 이전 ES에서는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인상이다. 하지만 GS처럼 과격하진 않다. 적당히 둥글린 차체를 어울렸기 때문이다.

ES는 GS와 달리 편안한 인상으로 사랑 받는 차다. 때문에 지나치게 박력을 강조할 수 없다. 구멍을 꽁꽁 틀어막은 안개등 부근에서 렉서스의 이런 고심이 느껴진다. 옆모습에 단정하고 차분한 느낌이 지배적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전체 균형이 빠듯한 까닭에 후륜구동 못지않게 역동적이다.


실내의 담긴 변화는 한층 더 극적이다. 특히 화려한 느낌은 이전모델은 물론, GS보다도 강하다. 대시보드에 너울진 곡선과 경계선을 따라 촘촘히 수놓은 바느질, 몸 닿는 곳을 뒤덮은 촉촉한 가죽 등이 화사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낸다. 스포티한 분위기도 GS 못지않다. 납작하게 빚은 대시보드와 높고 넓적한 센터콘솔 덕분에 긴장감이 넘친다. 이전에 비해 시트도 낮고 스티어링 휠 각도도 반듯하다. 

뒷좌석은 여전히 쾌적하다. 아니, 한층 더 쾌적해졌다. 휠베이스를 45㎜ 늘린 덕분에 무릎 공간이 무려 71㎜나 늘었다. 차체 가운데가 불쑥 솟은 후륜구동 모델과 달리 바닥도 평평하다. 때문에 성인 3명이 편히 앉을 수 있다. 뒷좌석 송풍구는 기본, 옆 창과 뒤창엔 햇빛 가리개도 달았다. 트렁크는 골프백 4개를 꿀꺽 삼킨다.


편의장비도 화려하다. 리모트 터치 콘트롤은 2세대, 통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TPEG와 DMB를 지원하는 한국형 내비게이션을 품는다. 각종 멀티미디어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이다. 오디오는 검증된 ‘마크레빈슨’제, 앞좌석 시트는 열선과 통풍 기능을 갖춘다. 스티어링 휠에도 열선이 깔려있다.


시승차는 ES350. 최고 277마력, 35.3㎏․m의 힘을 내는 V6 3.5L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를 맞물려 얹는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뼈대까지 갈아치운 신형 모델인데도 파워트레인과 출력이 이전과 같다. 이는 ES에서만 두드러지는 현상은 아니다. 최근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들은 성능보단 효율과 주행 감각을 개선한 신차들을 출시하고 있다. ES 역시 마찬가지다. 엔진 힘을 갉아먹던 파워 스티어링과 냉각수 순환 장치를 전기식으로 바꾸고 변속기 종감속 기어의 비율을 조정하는 등의 개선으로 효율을 높였다.

어안이 벙벙할 정도의 정숙성은 여전하다. 소리로 시동 유무를 확인하기 쉽지 않을 정도다. 외부소음도 철저하게 틀어막았다. 회전수를 띄우고 도로를 내달려도 빨갛게 무르익은 엔진 사운드만 들려올 뿐이다. 매끈한 가속 감각도 그대로다. 가속 페달을 탁 치면 차체가 한 치의 지체 없이 훅 하고 떠밀린다.


가속 성능엔 불만 없다. ES는 이전부터 필요충분 이상의 힘을 냈다. 이전과의 결정적인 차이는 손끝과 허리에서 느껴진다. 신형은 이전 보다 한층 더 민첩하고 안정적인 거동을 뽐낸다. 앞머리를 비트는 속도와 자세를 가다듬는 속도가 빨라졌다. 하지만 여느 스포츠 세단처럼 날 선 감각은 아니다. 승차감은 여전히 부드럽다.

신형 ES에 담긴 변화의 핵심은 스포티한 ‘감각’이 아니다. 솔직한 ‘몸놀림’이다. 움직임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다. 심리적인 안정감이 높아져 운전대를 꺾고, 가속과 감속을 하는 과정에 한층 자신감이 실린다. 높아진 직진 안정성도 한 몫 한다. 가속 페달을 짓이겨도 접지가 희미해지거나 운전대가 먹먹해지는 느낌이 없다.


ES는 많은 것이 변했다. 전에 없이 과격한 인상과 화려한 실내로 존재감의 수위를 높였다. 그런데 ‘쾌적함’으로 요약되는 정숙성과 넉넉함, 고급스러움도 한층 더 높였다. 전체 균형에 초점을 맞춘 주행 감각도 반가운 변화다. 사실, 신형 GS를 타봤을 때 실망한 점이 있었다. 스포티한 감각을 지나치게 부각시킨 탓에 렉서스 특유의 포근하고 쾌적한 느낌이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신형 ES는 다르다. 렉서스는 ES의 고유 가치를 지켰다. ES에는 렉서스만의 개성이 오롯이 살아있다.

글 류민 | 사진 한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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