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640i 그란 쿠페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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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640i 그란 쿠페 시승기
  • 류민
  • 승인 2013.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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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BMW가 4도어 쿠페를 내놓았다. 6시리즈 그란 쿠페가 그 주인공이다. 그란 쿠페는 지붕을 콱 누른 늘씬한 스타일로 벤츠 CLS-클래스, 아우디 A7 등과 경쟁한다.



2004년, 메르세데스-벤츠는 CLS-클래스를 선보였다. 네 개의 문과 번듯한 트렁크에 스포츠카처럼 납작한 지붕을 어울렸다. 그리고 이를 ´4도어 쿠페´라고 주장했다. ´쿠페는 문짝 두 개´라는 고정관념을 뿌리부터 흔들었다. 업계의 반응은 반신반의였다. 그러나 결과는 대박이었다. 낮은 실용성에 쿠페 구입을 망설였던 소비자들은 이 섹시한 세단에 열광했다.


CLS는 4도어 쿠페 시장을 열어젖혔다. 이 성공은 이후 자동차 업계에, 특히 중형 세단 디자인에 큰 영향을 끼쳤다. 가령 폭스바겐 CC와 현대 쏘나타가 좋은 예다. 에스턴마틴 라피드와 포르쉐 파나메라의 등장도 CLS의 성공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CLS 이후 사람들은 스포츠카 같은 세단을 원했다.



업계의 이목은 자연히 BMW로 집중됐다. 벤츠의 라이벌이자 스포츠 세단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BMW의 반응이 궁금해서였다. 그런데 BMW는 예상을 깬 모델을 내놓았다. 2009년의 5시리즈 GT(그란투리스모)였다. GT는 CLS처럼 중형과 대형 세단 사이에 자리한 모델이었다. 크기로 분류하면 둘은 동급 경쟁자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둘은 생김새와 쓰임새, 그러니깐 콘셉트가 전혀 달랐다.


CLS는 스타일에 목숨 건 모델이었던 반면 GT는 실용성에 초점을 맞춘 모델이었다. GT는 높고 큼지막한 차체에 해치도어를 붙여 만든 5도어 세단이었다. 넉넉한 차체 덕분에 실내가 7시리즈 못지않게 널찍했고 짐칸 활용도는 7시리즈보다 좋았다. 시야는 SUV마냥 높직했고 몸놀림은 BMW답게 빠릿빠릿했다. GT는 ´유전자 섞기´ 전략의 정점을 찍은 모델이라고 할 수 있었다.



GT에는 새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BMW의 자신감이 녹아있었다. 그러나 CLS처럼 돌풍을 일으키진 못했다. GT의 풍성한 몸매는 세상을 뒤흔들던 ´섹시´를 논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한편, 아우디는 2010년 5도어 쿠페인 A7을 발표했다. CLS처럼 날렵한 실루엣에 GT같은 해치도어를 달아 실용성까지 챙긴 모델이었다. 아우디 특유의 화려한 실내와 첨단 장비도 담겨있었다.


BMW는 별안간 머쓱해졌다. 아찔한 실루엣의 쿠페형 SUV, X6까지 빚어낸 BMW건만, ´쿠페형 세단´ 시장에서는 아우디에게마저 추월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BMW도 4도어 쿠페를 일찌감치 기획하고 있었다. 2007년 상해 모터쇼에서 발표한 ´CS 콘셉트´였다. CS 콘셉트는 BMW의 가까운 미래가 담긴 4도어 쿠페였다.



CS 콘셉트는 양산차 수준의 완성도를 품었었다. 차체에 너울진 곡선이나 헤드램프 디자인 등은 당장 도입이 가능한 것들이었다. 이런 세부 디자인은 바로 신형 7시리즈와 5시리즈, GT 등에서 꽃피웠다. 하지만 막상 4도어 쿠페로의 양산은 미뤄졌다. 2008년 시작된 미국발 글로벌 경기침체가 CS 콘셉트의 현실화 과정에 찬물을 끼얹었기 때문이다.


그란 쿠페와 같이 틈새를 공략하는 고급 세단은 경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때문에 BMW는 지난 몇 년간 1시리즈, 3시리즈와 같은 작은 차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2012년, 드디어 BMW가 CS 콘셉트로 꿈꾸던 4도어 쿠페를 출시했다. 오늘 시승한 6시리즈 그란 쿠페가 그 주인공. 국내에는 직렬 6기통 3.0L 터보 엔진을 얹은 640i 그란 쿠페만 들어온다.



유난히 길고 넓고 낮다. 그란 쿠페의 첫인상이다. 체감만이 아니다. 그란 쿠페는 실제로 크다. 경쟁자 중 유일하게 길이가 5m를 넘는다. 휠베이스는 3m에 육박한다. 이전세대 7시리즈와 비슷한 크기인데, 지붕이 납작한 까닭에 존재감은 그를 훌쩍 뛰어 넘는다. 6세대 5시리즈와 뼈대를 나눠쓴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앞모습은 앞서 등장한 형제, 6시리즈 컨버터블과 비슷하다. 코끝을 쫑긋 세운 범퍼에 커다란 두 개의 라디에이터 그릴을 어울려 완성했다. 하지만 한층 더 음산한 느낌이다. 헤드램프와 안개등을 자글자글 수놓은 LED의 역할이 크다. 앞쪽에만 무려 32개의 LED가 쓰였다. 때문에 불빛을 밝히면 오싹한 느낌을 낸다.



기다란 보닛과 짧은 앞 오버행 등으로 이루어진 BMW 특유의 비례는 여전하다. ´호프 마이스터 킥´이라 일컫는 BMW 고유의 창문 라인도 담겨있다. 하지만 높게 끌어올린 어깨선에 납작한 지붕을 어울려 그 어떤 BMW 보다도 빠듯한 균형감을 뽐낸다. 특히 풍만한 뒷모습은 ´원조´라고 자랑하는 CLS보다 섹시하다. 시승차의 경우 스노우 타이어를 어울린 18인치 휠을 끼고 있어 원래의 20인치 휠보다는 긴장감이 조금 떨어졌다.


도어 손잡이를 당겨 옆구리를 싹둑 베어내면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비대칭을 이룬 대시보드에 운전자를 향해 돌아앉은 센터페시아를 붙여 완성한 BMW 특유의 실내다. 아래 급 모델에서 눈에 익은 구성이지만, 화사함의 수위는 다르다. 대시보드를 비롯한 눈에 띄는 대부분의 부품이 온통 천연 또는 인조가죽으로 뒤덮여 있다. 아울러 무릎 닿는 곳엔 말랑말랑한 우레탄 소재를 사용했다. 5시리즈에서는 볼 수 없는 고급스러움이다.



편의 장비도 화려하다. 앞창에 다양한 정보를 비추는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통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인 ´iDrive´, 차체 옆면과 뒷면을 카메라로 찍어 10.2인치 모니터에 띄우는 서라운드 뷰 등은 기본이다. 시승차는 시트 모서리까지 전동으로 움직이는 컴포트 시트와 스티어링 휠 열선, ´뱅앤올룹슨´사의 오디오 등을 옵션으로 달고 있었다.


뱅앤올룹슨의 손길이 닿은 오디오는 화려했다. 시동을 걸면 대시보드 가운데서 센터스피커가 스르륵 올라왔고 밤이 되면 각각의 스피커가 새하얀 불빛까지 뿜어냈다. 도어 트림에 붙은 스피커 덮개는 모두 알루미늄 재질이었다. 각 메이커의 기함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의 완성도였다. 성능도 훌륭했다. 고음과 저음 등 각 영역을 확실히 구분했고 해상도도 높았다.



그런데 소리의 전체 균형은 기대를 밑돌았다. 문제는 낮은 천장과 완만하게 누운 앞 창문이 만든 좁은 공간에 있었다. 청취자 귀 위쪽 공간 크기는 음악을 들을 때 큰 영향을 끼친다. 공간이 작으면 각 영역의 소리가 어우러지지 못하고 부딪힌다. BMW도 이런 현상을 충분히 예상했었다는 듯, iDrive에 공간감을 키우는 설정을 두었다. 그러나 전자장비가 만든 공간감은 조금 이질적인 느낌을 냈다.


반면, 빠듯한 머리 위 공간이 주는 장점도 있다. 차체가 몸을 푹 감싸 도는 느낌이다. 그란 쿠페에서는 스포츠카에서나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난다. 바닥에 딱 붙은 시트도 이런 느낌에 한 몫 한다. 휠베이스가 유난히 긴 까닭에 무릎공간이 예상보다 넉넉하다. 뒷좌석도 납득 가능한 수준의 공간을 뽐낸다. "4도어 쿠페의 뒷좌석은 성인에게 불편하다."라는 선입견을 깰 만큼 여유롭다.



센터콘솔 뒷면에는 좌우의 온도를 달리 할 수 있는 뒷좌석용 공조장치를, 도어트림과 뒷창에는 전동으로 움직이는 햇빛 가리개를 달았다. 뒷좌석이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아니라는 또 하나의 증거다. 그란 쿠페는 4인승. 뒷좌석에는 2명만 앉을 수 있다. 그러나 뒤 시트 가운데에 안전벨트가 달려 있어 유사시엔 1명이 더 앉을 수 있다. 뒤로 쭉 뻗어 나간 센터콘솔이 다리 공간을 차지한 까닭에 자세는 편치 않다. 트렁크도 460L로 생각보다 넓다. 뒷좌석 등받이는 6:4로 나눠 접힌다.


파워트레인은 터보차저를 곁들인 직렬 6기통 3.0L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다. ´640i´ 그란 쿠페임에도 ´535i´와 같은 구성이다. 하지만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일단 640i 그란 쿠페의 출력이 더 높다. 최고 320마력, 45.9㎏․m의 힘을 낸다. 각단 기어의 비율을 결정짓는 종감속 기어도 535i보다 짧다. 그래서 가속이 한결 활기차다.



BMW가 밝힌 ´제로백´은 5.4초. 535i는 물론 동급 경쟁자를 훌쩍 뛰어 넘는 수치다. 연비도 10.4㎞/L로 가장 좋다. 가속도 빠르지만 가속감은 더욱 날카롭다. 조작과 반응 사이에 의도적으로 간격을 둔 6세대 5시리즈와는 다르다. 나아가 어느 동급 경쟁자보다도 가속감각이 뾰족하다. 640i 그란 쿠페는 가속페달을 밟는 즉각 엔진을 화끈하게 불사른다.


짧은 기어비 덕분에 엔진 회전도 빠르게 치솟는다. 스포츠 모드나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 두면 바로 기어를 내려 물어 긴장감도 조성한다. 변속은 상당히 빠르다. DCT (듀얼 클러치 변속기)의 필요성을 느끼기 힘들만큼 경쾌하게 갈아탄다. 2단계 이상 기어를 내려도 회전수 보정과 함께 재빠르게 맞물린다.



거동도 탄탄하다. 거대한 차체와 휠베이스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민첩하게 움직인다. 운전대 방향에 따라 앞바퀴는 물론, 뒷바퀴까지 꺾는 ´인테그랄 액티브 스티어링´ 덕분에 앞머리 비트는 속도도 빠르다. 댐퍼와 스테빌라이저는 상황에 따라 압력과 강도를 바꿔 매끄러운 승차감과 다부진 몸놀림을 만든다.



벼르고 별렀던 까닭일까, 남들보다 한발 늦었다는 불안감 때문일까. 그란 쿠페는 경쟁자보다 크고 늘씬한 차체를 뽐냈다. 실내는 눈부시게 화려했다. 7시리즈에서나 볼 수 있었던 BMW 첨단 장비의 대부분이 담겨있었다. 운전감각은 역시 BMW다웠다. 경쟁자 중 가장 뾰족했다. 가속과 몸놀림에 깃든 날 선 감각은 그란 쿠페와 경쟁자를 구분 짓는 가장 큰 매력이었다.


시승 전,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가격이었다. 그란 쿠페는 동급 경쟁자 중 가장 비싸다. 하지만 직접 타보니 그런 생각은 홀연히 사라졌다. 그란 쿠페에 담긴 가치는 가격 차이를 잊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640i 그란 쿠페 기본형은 1억900만 원, 시승차인 익스클루시브는 1억3,610만 원이다.


글 류민 기자 | 사진 한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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