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 벤자 3.5 AWD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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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 벤자 3.5 AWD 시승기
  • 류민
  • 승인 2013.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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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오버(Crossover). 두 가지 이상의 장르 또는 분야가 섞여있는 것을 뜻한다. 퓨전(Fusion)도 이와 비슷한 의미다. 과거엔 음악 분야에서 주로 썼다. 1950~ 60년대 클래식 음악 연주자들이 고유의 표현방식을 사용해 팝음악을 연주하면서 생겨났다. 이후 재즈와 록, 록과 힙합 등 각 장르의 특징이 섞인 음악 형태에 흔히 쓰이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요리, 패션, 전자제품 등 분야에 관계없이 쓰인다. 장르 또는 분야의 경계를 허물어 각각의 장점만을 더하니 인기도 높다. 가령 휴대폰과 컴퓨터가 융합된 스마트폰이 좋은 예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물론 크로스오버가 유행이다. 세단, 쿠페, SUV, 왜건 등 기존 자동차 분류법을 탈피한 모델들이 속속 등장하는 중이다.


오늘 시승한 토요타 벤자 역시 크로스오버 모델이다. SUV와 세단이 섞였다. 차체 절반 위쪽은 세단처럼 납작하고 나머지 절반 아래쪽은 SUV같다. 모양새만이 아니다. 움직임에도 SUV와 세단의 장점들이 섞여있다. 데뷔는 2008년 미국에서 했다. 국내에는 2012년, 부분변경을 거친 2013년형 모델이 들어왔다.

보통 SUV와 세단을 섞은 크로스오버 모델의 외모는 SUV보다 긴장감이 떨어진다. 의도와는 다르게 생계형 미니밴 느낌을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벤자에게 큰 기대를 안했다. 게다가 시승 스케줄도 문제였다. 꽤 뚜렷한 존재감을 가진 SUV의 시승을 마치고 벤자로 바로 갈아타는 일정이었다. 더군다나 먼저 탄 차는 프리미엄 브랜드의 모델이었다.


감흥은커녕 실망하지 않으면 다행인 상황이었다. 아니, 그런 상황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벤자는 예상을 뒤엎었다. 어깨를 떡 벌린 자세에 LED 수놓은 헤드램프와 커다란 휠을 어울려 뚜렷한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인상은 강렬했고 짜임새도 치밀했다. 그렇고 그런 ‘SUV 세단’의 크로스오버 모델들과는 달랐다. 사진만 보고 짐작했던 것 이상이었다. 확실히 벤자는 ‘사진빨’ 안 받는 차다.

길이는 밑바탕 삼은 캠리와 비슷하다. 폭과 높이만 벤자가 조금 크고 높다. 그런데 체감은 실제 차이를 웃돈다. 차체를 이룬 요소들이 하나같이 큼직큼직해서다. 휠 크기가 2.7 모델은 19인치, 3.5 모델은 무려 20인치나 되는데도 그 크기가 의식되지 않는다. 문짝과 펜더 등의 패널들은 널찍한 면을 자랑한다.


토요타가 벤자를 크로스오버 모델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옆모습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차체 바닥은 SUV처럼 껑충하다. 따라서 험로 달릴 때 걱정이 없다. 3.5 모델의 경우 사륜 구동 시스템도 갖춘다. 하지만 지붕은 세단같이 생겼다. 비슷한 크기의 SUV보다 평균 10㎝정도 낮다.

볼보 XC70이나 아우디 올로드콰트로, 스바루 포레스터 등의 ‘SUV 왜건’ 크로스오버 모델과는 느낌이 확실히 다르다. 이들은 SUV처럼 차고를 띄운 왜건이다. 반면 벤자는 몸통이 두툼하다. SUV의 지붕을 콱 눌렀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납작한 지붕을 어울린 세단을 두고 ‘4도어 쿠페’라고 주장하는 이들과 같은 부류인 셈이다.
 


SUV와 구분되는 매력은 차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확연하게 와 닿는다. 벤자는 일어선 자세 그대로 엉덩이를 밀어 넣으면 된다. 적당히 높은 차체와 낮은 시트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뤘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도 부담 없이 탈 수 있다. 세단이나 SUV보다 확실히 편하다. 앞서 시승한 SUV는 발판을 딛고 운전대를 잡고 ‘올라타야’ 했다.

물론 이런 승하차 편의성은 ‘SUV 세단’의 크로스오버 모델들이 대체로 내세우는 장점이긴 하다. 하지만 벤자에서는 이 과정이 한층 더 자연스럽다. 스티어링 휠과 시트 방석 사이의 간격, 시트 방석의 모양 등 세심한 배려가 모여 만든 결과다. 차에 휙 올라타서 문 꽝 닫고 후다닥 떠나는 ‘미국식 접근 편의성’은 역시 토요타가 도사다.


남다른 쾌적함은 차에 올라탄 이후로도 계속된다. 지붕은 SUV보다 낮지만 시야는 SUV처럼 높직하다. 풍경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대신 머리 위 공간은 조금 빠듯하다. 낮게 깔린 대시보드 덕분에 길도 훤히 보인다. 때문에 웬만한 대형세단보다도 넓은 차체로 인한 운전 부담도 적다.

토요타가 벤자를 두고 한 ‘60:60 공간구성’이라는 아리송한 이야기는 센터콘솔에서 비롯된다. 독특한 센터콘솔 덕분에 운전석과 동반석에 앉은 사람 모두가 절반 이상의 공간을 사용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컵홀더로 위장한 덮개를 뒤로 밀면 아래쪽에 공간을 드러낸다. 크기는 웬만한 소지품을 다 때려 넣을 수 있을 만큼 넓다. 공간도 앞뒤로 분리해 뒀다.


AUX와 USB 단자도 센터콘솔 안에 있다. 센터페시아 아래쪽과 컵홀더 옆에 스마트폰 놓을 자리를 두 개나 마련한 것도 특징이다. 실내 전체 공간은 매우 넉넉하다. 벤자는 5인승. 3열 시트에 목숨 걸지 않은 까닭이다. 앞뒤 무릎공간과 좌우 팔공간은 남아 돌 정도다. 뒤 시트 등받이도 뒤로 눕힐 수 있다. 짐 공간 역시 널찍하다.

그런데 군데군데 허술하게 조립된 부분이 눈에 띈다. ‘미국산이니깐 이해하자’라기엔 왠지 억울하다. 같은 켄터키 공장에서 생산되는 캠리의 완성도는 유럽산과 비교해도 좋을 만큼 뛰어나서다. 실내를 마감한 소재도 차 가격을 생각하면 아쉽게 느껴진다. 대부분 고급스러운 질감보단 내구성이 좋은 소재가 쓰였다. 부담 없이 쓸 수 있으니 장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시승차는 벤자 3.5 AWD. V6 3.5L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에 액티브 토크 컨트롤로 앞뒤 구동력을 배분하는 사륜 구동 시스템을 맞물려 얹는다. 당당한 덩치만큼 무게도 무겁다. 2톤에 육박한다. 그런데 가속성능은 괜찮다. 동급 엔진의 웬만한 세단 이상이다. 최고 272마력, 35.1㎏·m의 힘을 내는 파워트레인이 벤자를 정지상태에서 시속 97㎞(60mile)까지 6.9초 만에 내던진다.

하지만 가속페달을 마음껏 밟기는 힘들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땐 차체 무게가 그대로 전해져서다. 엔진 성능에 흥이 나서 무턱대고 달리다간 등골이 서늘해 질 수도 있다. 물론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문제없다. 바닥을 향해 빠르게 떨어지는 연료계 바늘도 심리적 부담감을 더한다. 벤자 3.5 AWD의 복합연비는 8.5㎞/L. 시승과 촬영을 겸한 실제 연비는 7㎞/L대에 머물렀다.


덩치와 무게는 몸놀림에서도 느껴진다. 스티어링 휠을 비틀어 앞머리를 꺾을 때 각 관절의 수축 폭이 짐작보다 크다. 그러나 무게중심은 세단 마냥 낮다. 따라서 운전감각 역시 세단 쪽에 가깝다. 모양새만 크로스오버가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다. 전후좌우 무게의 이동도 예측 가능한 수준에서 맴돈다. 운전자가 의도한 궤적도 곧잘 따라 나간다. 그래서 꼬부랑길에서도 생각보다 운전이 즐겁다.

엔진은 렉서스와 나눠 쓰는 물건인 만큼 부드럽게 회전한다. 소음도 당연히 적다. 그런데 속도를 높여도 실내는 계속 조용하다. 거대한 몸집과 두툼한 타이어 덕분에 소음이 클 법도한데 노면소음도, 바람소리도 아주 적다. 예상외의 결과다. 토요타가 아닌 렉서스의 모델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승차감과 고속 안정성도 좋다. 실내 구성에서 느꼈던 쾌적함과 여유가 가속성능과 몸놀림에도 고스란히 녹아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벤자는 토요타 모델 중 가장 변종이다. 물론 토요타에도 독특한 모델이 많다. 개성 넘치는 경차 ‘iQ’와 터프한 SUV ‘FJ 크루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iQ는 경차 수요가 많은 일본 내수시장을 밑바탕 삼았기에 가능했다. FJ 크루저 역시 모험정신 가득한 시장 개척 모델로 볼 수는 없다. 험머의 H시리즈를 묘하게 연상시키는 까닭이다.

그러나 벤자의 경우는 다르다. 북미와 한국에만 팔고 누군가 시장을 개척하지도 않았다. 그만큼 토요타가 벼르고 만든 모델이다. 토요타의 의지만큼이나 벤자의 매력은 뚜렷했다. 그간 ‘SUV 세단’의 공식을 따른 여느 크로스오버 모델과는 달랐다. 모델과 시장 성격상 국내서의 흥행은 힘들겠지만, 쾌적함과 여유를 인생의 최대 가치로 삼는 이들이 반가워 할 만한 차임은 틀림없다.

글 류민 | 사진 한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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