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만들다 자동차 만든 회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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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만들다 자동차 만든 회사들
  • 박병하
  • 승인 2020.06.2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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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와 항공기는 예부터 그 연관성이 깊게 작용해 왔다. 초창기의 항공기는 오늘날 자동차와 큰 차이 없는 레시프로엔진(왕복엔진)을 사용했고, 구조도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항공기들이 너나할 것 없이 제트 엔진이나 터보팬 엔진을 사용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자동차와 항공기 사이의 기술적 차이점이 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와 항공기는 서로 기술적으로 끊임없이 교류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에는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항공기를 제작하던 회사가 자동차 제조사로 '전업'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특히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급속도로 불어나기 시작한 항공산업, 그 중에서도 전투기 등 군용기를 만들어 공급하던 회사들은 전쟁이 끝나자, 회사의 생존이 어려워졌다. 전쟁이 끝나게 되면 필연적으로 '군축'이라는 과정을 겪게 되고, 그 과정에서 신규 항공기의 수요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에 수많은 항공기 제조사들은 '자동차'를 미래 먹거리로 삼고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반면, 영국의 롤스로이스와 같이 창업 초기부터 자동차 분야를 '겸업'하는 경우는 물론, 오늘날의 혼다기연공업처럼, 자동차를 만들다가 종국에 항공기까지 손대기 시작한 곳도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항공기 제조사로 시작했다가 자동차로 '전업'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사브
터보엔진과 항공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주장하는 독특한 요소들로 유명한 사브자동차(SAAB Automobil AB). 이 회사의 모태가 되는 곳은 '스웨덴 항공 유한회사(Svenska Aeroplan AkiteBolag, 現 SAAB AB, 이하 사브)'다. 사브는 1937년 세워진 이래 지금까지 스웨덴 공군이 사용하는 각종 군용 항공기를 만들어 왔고, 지금도 만들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스웨덴 내의 크고 작은 방산업체를 차례차례 합병해가며 덩치를 꽤나 키웠다. 지금은 스웨덴 공군의 주력 전투기 JAS 39 그리펜 시리즈와 더불어 다양한 무기를 생산하고 있다.

사브는 제 2차 세계대전의 종전으로 인해, 그야말로 '먹고 살기 위해' 자동차 산업에 뛰어 들었다. 전쟁이 끝나면서 주 사업 분야였던 군용기 수요가 뚝 끊겨버렸기 때문이다. 사브는 항공기를 제작해 왔던 자사의 이력과 경험을 살려, 공기역학적인 차체 디자인과 같이, 항공기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 요소들을 적극 활용하여, 자신들만의 독특한 색채가 가미된 자동차들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사브의 자동차 부문은 1989년 미국 GM에 합병된 이래 나날이 자신의 색을 잃어갔고, 결국 2011년 파산보호 신청을 내기에 이르렀다.

BMW
1916년 세워진 독일 BMW는 창업 초기부터 자동차를 생산했던 제조사는 아니다. 본래는 항공기용 엔진 제작을 주업으로 삼았던 기업이다. 회사의 약자인 BMW부터 풀어서 쓰면 'Bayerishe Motoren Werke'로, '바이에른 엔진 제작소'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1916년도부터 항공기 엔진을 만들어 오던 BMW가 지상을 달리는 탈 것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1917년 한 설비회사를 인수하면서부터였고, 이 이후, BMW 모토라드의 역사가 시작된다. 4륜자동차를 생산하게 된 것은 전쟁이 끝나고 상당한 시간이 지난 1928년부터였다. BMW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폭격기에 탑재되는 엔진을 로켓 등을 주로 납품했다. BMW의 심장을 달았던 독일 공군의 군용기로는 포케불프 Fw190, 하인켈 He111 폭격기 등이 있다. 

오늘날 BMW는 세계적인 고급 자동차 제조사로 자리잡은 기업이다. 국내서는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등과 함께 독일 3대 프리미엄 제조사로 통한다. 비록 최근 불거진 화재 문제로 인해 수입차 시장 1위의 자리를 메르세데스-벤츠에게 빼앗기기는 했지만, 여전히 국내에서 순위권에 드는 실적을 올리고 있다. 

메서슈미트
몇 년 전 개봉했던 영화 '덩케르크'에서 왕립공군의 스핏파이어와 접전을 펼친, 노란 기수를 가진 독일군 전투기의 모습을 기억하는가? 이 기종은 나치 독일 공군의 주력 전투기였던 'Bf109'다. 비록 실제 영화에 출연한 기종은 오리지널은 아니었지만, 독일군의 전투기로서 영화에서 큰 긴장감을 안겨준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 Bf109를 생산한 곳은 독일의 메서슈미트(Messerschmitt AG)라는 기업으로, 융커스(Junkers), 포케불프(Focke-Wulf), 하인켈(Heinkel) 등과 함께 독일 항공 전력을 책임지고 있었던 주요 항공기 산업체였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또 다른 전투기로는 세계 최초로 실전배치된 제트전투기 'Me 262 슈발베(Schwalbe)'가 유명하다. 

하지만 이 메서슈미트는 전쟁이 끝나자, 더 이상 항공기 산업에 손을 댈 수 없었다. 나치 독일에 무기를 제공한 전범기업이었기 때문에 연합국으로부터 항공기 제작을 금지당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메서슈미트는 비교적 설계와 생산이 간단한 ‘마이크로카(Microcar)’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당시 마이크로카는 유럽의 재건 과정에서 값싼 이동수단이 필요했던 유럽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서유럽의 경제가 회복되면서 버블카 시장이 작아지기 시작했고, 자동차 사업의 수익성이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메서슈미트는 1964년을 끝으로 자동차 사업에서 손을 떼었다. 

스바루
후지중공업의 자동차 브랜드로 시작했다가 현재는 후지중공업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이름이 된 스바루(Subaru). 스바루의 모태가 되는 후지중공업(富士重工業, Fuji Heavy Industries Ltd.)은 1953년 세워진 중공업 회사로, 자동차를 비롯하여 항공기와 각종 기계를 제작하는 기업이다. 하지만 이 기업 역시, 그 뿌리를 파고들면, 전범기업의 후예라고 할 수 있다. 전신이 되는 회사가 바로 '나카지마 비행기(中島飛行機)'이기 때문이다. 나카지마 비행기는 후술할 미쓰비시 중공업 등과 함께, 구 일본군에 군용 항공기를 공급하며 일제에 부역했던 대표적인 전범기업이다.

후지중공업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나카지마 비행기는 패전 후 일본에 주둔한 연합군 최고 사령부(GHQ)의 '비행기 연구 금지명령'으로 인해 1945년에 회사 자체가 강제로 분해되었다. 그리고 1953년, 흩어져버린 구 나카지마 비행기의 계열사들이 재규합하면서 후지중공업이 세워진 것이다. 자동차 업계에서의 스바루는 자사의 독특한 대칭형 AWD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스바루 양산차는 이 대칭형 AWD를 처음부터 탑재할 것을 전제하고 설계되어, 사륜구동을 지원하지 않는 차종이 드물다. 스바루는 국내에서도 5:5로 출자해 설립한 지산 모터스를 통해 2010년도부터 판매를 시작한 바 있으나,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진출 후 단 2년만에 철수하는 비운을 맞았다.

미쓰비시
미쓰비시 중공업은 국내에서 '전범기업'의 대표격으로 통하는 기업으로, 태평양 전쟁에서 악명을 떨친 '0식함상전투기(零式艦上戦闘機, 이하 제로센)'를 생산한 곳으로 유명하다. 미쓰비시 중공업이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위에서 설명한 나카지마 비행기의 사례와 맥을 같이 한다. GHQ의 비행기 연구 금지 명령으로 인해 더 이상 항공기 사업에 손을 댈 수 없었기 때문에, 미쓰비시중공은 1960년대부터 급성장하고 있었던 일본의 경차 시장을 겨냥해 별도 사업부를 개설하며 승용차 사업에 뛰어 들었다. 이후 미쓰비시는 1970년도에 미국 크라이슬러와의 합작을 통해 별도 법인으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미쓰비시 자동차는 일반 승용차 시장보다는 주로 SUV나 MPV 등의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1990년대 일본에서는 'RV의 미쓰비시'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로 상당히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국내에서도 이 시절의 '잘 나가던' 미쓰비시 차종인 '파제로'와 '샤리오'가 정몽구 회장이 몸 담았던 현대정공을 통해 각각 '갤로퍼'와 '싼타모'라는 이름으로 생산되기도 했다. 또한 미쓰비시 자동차는 현대자동차와의 협력관계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이들의 협력관계는 1세대 에쿠스의 개발을 끝으로 사실 상 해소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수 십년에 걸친 연비 조작과 결함 은폐 건이 무더기로 적발되면서 회사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이 과정에서 닛산자동차 미쓰비시자동차를 인수,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의 일원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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