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왜 만들었을까? - 2차대전 괴작 총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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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만들었을까? - 2차대전 괴작 총기들
  • 모토야
  • 승인 2021.08.0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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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다양한 무기가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무기 기술의 발전도 혁신적으로 빨랐다. 오늘날 널리 사용되고 있는 레이더가 이 시기를 전후하여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으며, 수중에서 잠수함, 어뢰, 기뢰 등을 찾아내는 소나(SONAR, SOund Navigation And Ranging) 역시 이 시기를 전후하여 급속하게 발전을 이루었다. 

물론 이러한 기술의 발달과 혁신은 비단 첨단장비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이 시기에는 군함과 같은 거대한 무기체계에서부터 일선의 보병들이 사용하는 소화기 하나하나까지 눈에 띄는 변화를 거치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국가들에서는 1차대전 시절에 사용했던 볼트액션 소총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전쟁 후반, 독일에서 등장한 '돌격소총'의 개념으로 인해 현대 보병 화기의 패러다임이 변화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변화상에도 불구하고 전장에는 기괴한 총기들도 더러 있었다. 물론 이러한 괴작들이 등장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지만, 전쟁터에서 그다지 큰 효용성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대단히 나쁜 평가를 들어야만 했다. 2차대전 시절의 괴작 총기들을 소개한다.

FP-45 리버레이터(Liberator)
이 소형 화기는 외견 상으로 과연 총이 맞는가 싶은 모습을 하고 있다. 잘 봐줘야 장난감 혹은 철판으로 대충 만든 듯한 허접하기 짝이 없는 외관을 하고 있는 FP-45 리버레이터는 2차대전중 추축국이 점령하고 있었던 지역의 '레지스탕스'와 같은 저항군들에 원조해 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즉, 정규군이 아닌, 저항조직에게 원조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리버레이터는 괴상한 생김새와 더불어 사용 방법도 일반적인 총기와는 전혀 달랐다. 게다가 장탄수는 오직 1발 뿐이었다. 따라서 무기로서의 가치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총열은 지나치게 짧고 강선도 없어서 명중을 전혀 기대할 수 없었으며, 특유의 복잡하고 직관적이지 못한 장전 방식으로 인해 한 발 쏘고 빠르게 재장전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한다.

이렇게 괴이쩍은 물건이 나오게 된 데에는 저항조직에 화력을 제공하면서도 적군에게 탈취되었을 때 유효한 전력으로써 활용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해서다. 즉, 철저하게 의도되어 설계된 단발 소모성 1회용품이었던 것이다. 또한, 당시 미국에서만 사용했던 .45 ACP 탄을 사용하도록 만들어져, 적국인 독일군에 노획되어도 활용가치가 떨어졌다.

리버레이터는 이 때문에 "장전 시간이 생산 시간보다 오래 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개를 생산하는 데 걸린 시간이 고작 6.6초에 불과했다고 하니, 이 물건이 얼마나 찍혀 나왔는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기괴하기 짝이 없는 물건이 만들어진 곳은 자동차 제조사인 제너럴 모터스(이하 GM)였다. 그리고 GM은 이걸 1백만 정이나 찍어냈다. 이 총기는 서유럽 전선에 투입시키려 하였으나 그 효용성에 문제가 있어, 유럽의 레지스탕스들에게 대량으로 전달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쌓인 리버레이터 중 상당 수는 태평양 전선에 보내졌다. 심지어 일본군이 리버레이터를 노획하여 소지하고 있는 사례도 보고될 정도였다.

MP3008
이 총은 나치독일이 전쟁 막바지에 급조한 병기로, 영국의 '스텐 기관단총'을 베낀 '포츠담 장비(Gerät Potsdam)'를 기반으로 더욱 단순화시킨 구조를 띄고 있다.

영국의 스텐 기관단총은 비록 당시에도 '싸구려'와 '조잡함'의 대명사로 통하긴 했지만 극도로 단순화된 구조와 저렴함, 그리고 뛰어난 생산성을 가져, 됭케르크 철수 작전 이후 만성적인 무기부족에 시달렸던 영국 육군에게 큰 도움이 된 바 있다. 게다가 당시 기준에서는 도무지 총기로 보이지 않는 외형으로 인해 프랑스 곳곳에서 활동하는 레지스탕스들에게도 유용하게 사용되었었다. 이 때문에 나치 독일군은 처음에는 스텐 기관단총을 평가절하했지만,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게 되면서 군 제식으로 사용했던 MP40 대비 한참 저렴한 가격과 높은 생산성을 갖는 스텐을 불법복제한 포츠담 장비를 시작으로 스텐 베끼기에 나섰다. 그리고 MP3008 은 그 포츠담 장비를 더욱 개악한 물건으로, 전쟁 말기 독일의 상황이 어떠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MP3008은 스텐을 거의 그대로 베낀 포츠담 장비와는 다르게, 탄창을 수직으로 삽입하는 형태를 띄고 있으며, 안전장치 역할을 해줄 부품들이 부실하고, 작동부의 품질도 대단히 조악했다. 전쟁 말기 생산 시설이 부족해 가내수공업 수준으로 생산하게 된 탓에 품질이 조악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결국 이 총은 전황을 뒤집기는 커녕, 몇 정 생산되지도 못했다.

11년식 경기관총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구 일본군의 무기체계는 여러모로 악명이 높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우리나라나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는 '압제자의 무기'라는 측면에서의 악명이 높겠지만, 기본적으로 병기로서의 성능과 신뢰도가 뒤떨어지는 무기들이 상당히 많았다. 이는 일본이 서구 열강 대비 한참 뒤떨어지는 수준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던 데다, 생산 능력도 형편없었고, 결정적으로 서구 열강 대비 경제력 또한 뒷받침되지 못했던 까닭이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1년식 경기관총이다. 11년식 경기관총은 제 1차 세계대전 중 보병 소총수들과 함께 행동하며 화력을 지원해 주었던 '경기관총'의 효용성에 주목한 일본이 1922년 개발 및 생산하기 시작한 기관총이다. 이 기관총은 당시 일본군 제식 소총인 30/38식 아리사카 소총의 6.5mm 탄을 사용하도록 만들어졌다. 이 총을 개발한 사람은 일본의 군인이자 발명가인 남부 키지로(南部麒次郎) 소장으로, 일본군의 수많은 소화기 개발에 관여한 인물이다.

11년식 경기관총의 가장 큰 특징은 아리사카 소총에 사용하는 5연발 클립으로 급탄을 하는 것이었다. 이 방식은 이탈리아의 페리노 M1908 중기관총에 사용되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었다. 이러한 방식을 채용한 이유로는 일본군의 부실하기 짝이 없는 병참능력으로 인한 것이었다. 남부 소장은 본래 마드센이나 쇼샤 경기관총처럼 탄창으로 급탄하는 방식을 사용하고자 했으나, 탄창 보급소요를 감당할 수 없었던 일본군 수뇌부의 압력으로 인해 이와 같은 방식을 채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클립을 이용해 급탄을 하는 방식은 몇 가지 장점이 있긴 하다. 부사수가 클립만 계속 보충해준다면 화력을 지속적으로 투사할 수 있고, 아리사카 소총의 클립과 호환되기 때문에 병참관리의 측면에서 큰 이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장점은 이것이 전부였다. 소총에 사용되는 클립을 그대로 사용하기 위해 급탄기구가 불필요하게 복잡해졌을 뿐만 아니라 그마저도 작동불량이 잦아, 윤활유까지 실시간으로 공급해야 했다. 게다가 이 윤활유로 인해, 먼지가 많은 중국 전선에서 기능고장도 속출했다.

이 때문에 일본군은 중국 국민당군으로부터 체코제 Vz.26 기관총을 노획해서 사용하기도 했다. 일선의 일본군 병사들은 탄창 급탄식으로 제작되어, 탁월한 신뢰성과 화력을 선사한 Vz.26을 '무고장 기관총'으로 칭송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1936년부터 생산된 11년식의 후속 기종인 96/99식 경기관총은 Vz.26을 베끼다시피하여 개발되었다.

14년식 권총
14년식 권총은 위의 11년식 경기관총을 설계한 남부 키지로가 개발한 자동권총 중 하나다. 남부 키지로가 개발했던 자동권총들은 하나같이 문제점이 수두룩했는데, 이는 일본의 뒤떨어지는 정밀기계 공업 기술과 무관하지 않다.

14년식 남부 권총에는 안전장치가 여럿 적용되어 있다. 그립 세이프티와 더불어 수동 레버식 안전장치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전장치가 부실하여 땅에 떨어졌을 때의 충격으로 스스로 격발되거나 권총집에 차고 있다가도 약간의 충격으로 인해 스스로 격발이 되는 경우가 잦아, 부상을 입는 사례도 있었다. 그리고 안전장치는 부실한 주제에 작동불량도 심해 무기로서의 신뢰도도 매우 낮았다.

이 때문에 남부 키지로가 설계한 권총들은 대대로 '자살 권총'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명이 따라다녔다. 여기서 말하는 자살 권총이란, '자살을 하기 위한 권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들고 다니는 것이 자살행위'라는 의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4년식 권총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한반도와 일본 내에서 상당 기간 사용되었다. 물론, 더욱 안전하고 신뢰도 있는 미국제 권총들이 도입되면서 전부 퇴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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