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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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 시승기
  • 안민희
  • 승인 2012.04.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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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로로 뛰쳐나온 랠리의 황태자. 랜서 에볼루션의 이야기다. WRC(World Rally Championship)를 위해 가벼운 차인 랜서를 골랐다. 랜서의 가벼운 차체에 고출력 직렬 4기통 2.0L 터보 엔진을 얹어 네바퀴 굴림 구동계와 맞물렸다.

당 시 WRC는 양산차를 기반으로 경기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이를 호몰로게이션(Homologation)이라 한다. 하지만 규정을 뒤집어 생각하는 창의적인 방법이 있었다. 랠리카를 먼저 만들고, 이를 도로에 맞게 개조해 한정된 대수를 일반인에게 파는 것이다.

랜서 에볼루션의 경우에는 1세대와 2세대 모델을 한정 판매했지만, 인기가 커지면서 3세대 모델부터는 대량 판매를 시작했다. WRC의 성적이 양산차의 운명을 좌우하는 셈이었다.

다행히 랜서 에볼루션은 WRC의 그룹 A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특히 라이벌인 스바루의 임프레자와 1995~1999년까지 벌인 대결은 당시 WRC 최고의 라이벌 구도였다.

1995 년에 임프레자가 콜린 맥레이와 함께 운전자, 제작사 부문에서 우승했다. 1996년에는 랜서 에볼루션이 토미 마키넨과 리처드 번스를 앞세워 운전자 부문에서 우승했다. 스바루는 제작사 부문 우승을 거두며 1:1로 서로 주고받은 상황이 됐다.

1997년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랜서 에볼루션은 4세대까지 진화했지만, 임프레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임프레자 또한 랠리카를 그대로 양산해 판매했기 때문에 WRC의 성적이 매우 중요했다.

우 승을 다투는 라이벌 구도는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랜서 에볼루션은 차체를 넓히고 부스트 업을 더한 5세대를 내놓아 승리를 거둔다. 5세대 모델은 1998년 운전자, 제작사 부문 우승을 거두고 그룹 N(최소 개조 부문)에서도 우승하며 WRC 전체를 재패했다.

하지만 현재 미쓰비시와 스바루는 WRC에 참가하지 않는다. 하지만 라이벌의 개발은 계속 진행됐다. 현재 랜서 에볼루션은 10세대까지 진화했다. 차체와 엔진, 변속기까지 9세대 모델과 어느 것도 닮지 않은 새로운 랜서 에볼루션이다.




10세대 랜서 에볼루션은 기존 모델과 다른 완전히 새로운 차로 거듭났다. 일단 기반이 되는 차체를 일본형의 랜서가 아닌 더 큰 북미형의 랜서로 바꾸었다. 소형차인 랜서의 차체를 더 이상 키우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일본 시장에서의 이름은 갤랑 포르테스로, 랜서보다 윗급의 차다. 하지만 북미 시장에서는 갤랑 포르테스에 랜서의 이름을 달고 판다.

기반이 되는 차체를 바꾸면서 상당히 커지고 무게 또한 늘었다. 대신 윤거를 늘리고, 휠베이스 또한 늘어났다. 그렇게 접지력을 더욱 늘렸고, 안정감까지 챙겼다. 또한 실내 공간도 약간 늘었다.

얼굴은 이전의 디자인 테마와 조금 달라졌다. 그릴을 크게 키워 범퍼 아래까지 연결했다. 사나워 보인다. 그릴 안쪽으로 비치는 인터쿨러가 터보 엔진을 암시한다.  전조등은 역대 모델과 다르게 직선의 사용이 두드러졌다.

외 관 디자인을 맡은 노리코 오시미네가 영국판 톱기어에서 한 인터뷰에 따르면, 미쯔비시의 제트 전투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일본의 로봇만화 <기동전사 건담>에서 어느 정도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듣고 나니 자동차가 아닌 하이테크 병기 같다.

겉 모습은 강렬한 손질을 더했지만 실내는 조촐하다. 마치 5950만 원의 차 값 중 대부분을 구동계열에 쏟아 붓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스티어링 휠의 디자인 또한 평범하다. 어찌 보면 값싸 보일 정도다. 하지만 무거운 중량감이 느껴진다. 시트는 레카로의 버킷시트로 몸을 옥죄는 감각이 매우 타이트하다. 시트의 측면이 운전자를 무척 편안하게 감싼다.

검은색으로 가득 찬 실내는 단정하지만, 실내의 감성 품질은 많이 부족하다. 스위치를 누를 때 약간의 유격이 있거나 조작감이 좋지 못하다. 플라스틱 위주의 실내는 촉감 또한 별로였다. 하지만 달리기 성능으로 모든 게 용서가 된다.




변 속기 아래에는 2가지 조절 장치가 있다. SST(Sport Shift Transmission) 제어모드 전환 스위치와 S-AWC(Super All Wheel Control) 모드 스위치다. SST 제어모드는 노멀, 스포츠, 수퍼 스포츠의 3가지로 나뉜다. 마치 다른 차가 된 것 같이 날카롭게 반응성을 끌어 올린다. SST는 듀얼 클러치 변속기로 수동 기반의 변속기에 전자식으로 개입하는 두개의 클러치를 더했다. 순간적인 변속이 가능하다. 게다가 자동 변속기보다 효율이 훨씬 뛰어나다. 자동 변속기에 익숙한 사람 또한 편하게 쓸 수 있다.

S-AWC는 미쓰비시가 랜서 에볼루션의 사륜 구동 통합 제어 시스템에 붙인 이름이다. ACD, AYC, ASC 등의 전자 제어 기술을 합친 형태다. 어떤 상황에서도 차를 빠르게 몰 수 있다.

전 자 제어 시스템으로 매 순간 주행 상황을 체크하고, 네 바퀴 모두에 알맞은 구동력과 토크를 조절해 보낸다. 동시에 제동력과 엔진 출력을 조절해 어떤 상황이든 차체의 균형을 맞추고 빠르게  달릴 수 있다.  운전자는 가속페달을 밟고 스티어링 휠을 꺾기만 하면 된다.

ACD(Active Center Differential)와 AYC(Active Yaw Control), ASC(Active Stability Control)의 조율 덕이다. ACD는 주행 상태에 따라 구동력을 배분한다. 이를 위해 엔진 토크와 브레이크 압력 등의 정보를 읽어 각각 4륜에 구동력을 가감해 보낸다. AYC는 좌우 바퀴에 전달되는 토크를 조절한다. 코너링과 가속 모두 작동해 차체를 원하는 방향대로 돌린다.

ASC는 브레이크의 제동력과 엔진 출력을 컨트롤 해 차체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막아낸다.
또한, 주행하는 노면에 따라 주행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랠리 대회에서 도로의 종류는 크게 포장도로(Tarmac), 비포장(Gravel), 눈길(Snow)의 3가지로 나뉜다. 랜서 에볼루션도 마찬가지로 3가지 조절이 가능하다.

엔 진은 9세대까지 쓰던 4G63엔진에서 벗어나 4B11엔진으로 바뀌었다. 직렬 4기통 2.0L 터보차저 엔진이라는 형식은 유지했지만, 완전히 다른 엔진이다. 보어와 스트로크가 86㎜로 동일한 스퀘어 엔진으로 트윈 스크롤 터보의 힘을 더해 6500rpm에서 295마력의 최고 출력을 낸다.

4000rpm 에서 41.5㎏·m의 최대토크를 내는 엔진은 저회전부터 빠르게 부스트 압력을 채워 나간다. 토크를 상당히 빠르게 채워 올리는 느낌이다. 2000rpm에서 30㎏·m을 가볍게 넘긴다. 이후 3000rpm에서 40㎏·m를 살짝 넘겨 5000rpm까지 유지한다. 이후 토크는 하향 곡선을 그리며 줄어든다.

출력은 5000rpm에서 280마력을 찍을 때까지 긴박하게 상승한다. 이후 상승폭은 낮아져 6500rpm에서 295마력의 최고출력을 낸다.

토 크를 빠르게 끌어올려 5000rpm까지 균일하게 유지해 가속이 필요한 회전 영역에서 즉답성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이후의 회전 영역에서는 엔진을 최대한 돌려 힘을 짜낸다. 언제 어디서든 빠르게 가속한다. 랠리카에서 내려온 랜서 에볼루션의 특성이다. 최대 출력의 95%에 달하는 힘을 5000rpm에서 뽑아내는 이유다.

항 속 주행 중 SST의 제어를 스포츠로 바꾸고 3단에서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아본다. 터보차저 특유의 흡기음이 들려온다. 시퀀셜 터빈은 언제든 부스트를 채우고 대기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체 없이 바로 가속이 시작된다. 둔중한 토크가 몰아치다 빠져나간다. 터보 엔진이지만 가속 페달을 밟는 만큼 정확히 반응해 믿음을 준다. 고회전으로 향하자 엔진을 빠듯하게 돌려 힘을 쥐어짜낸다.

300마력에 달하는 힘이지만 체감상 아주 빠르진 않다고 생각하며 속도계로 시선을 돌렸다. 너무 빠른 속도였다. 속도감과 불안함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세팅이 훌륭했던 것일까.

휠 베이스를 늘이고 폭을 넓힌 차체와 사륜 구동이 주는 안정성이 크다. 그리고 서스펜션 세팅이 능수능란했다. 앞 맥퍼슨 스트럿, 뒤 멀티링크로 평범하다. 하지만 빌스타인의 쇽업쇼버와 아이바흐의 코일 스프링의 궁합은 도로를 누르며 더욱 강하게 구동력을 전한다. 게다가 전자제어 사륜 구동의 강력한 접지력은 평범 그 이상이다.

승차감은 저속에선 SST의 영향으로 저속에선 조금 울컥거릴 수 있다. 변속 또한 2500rpm을 기준으로 변속한다. 하지만 패들 시프트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한 템포 늦춰 부드럽게 가속 페달을 밟으면 편안하게 미끄러져 나간다.

탄성이 지나치게 높은 서스펜션을 사용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저속에서는 도로의 충격을 조금 크게 전달한다. 그러나 속도가 올라갈 수록 안정감과 부드러움이 더해져갔다.

중량감 있는 차체를 도로에 붙이고 가볍게 밀어내는 감각이다. 공차 중량은 1646㎏. 차체를 바꾸며 9세대 모델에 비해 160㎏이 늘었다. 차체의 중량감을 빼면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일 본의 유명한 서킷 중 하나로 츠쿠바 서킷이 있다. 2km를 약간 넘길 정도로 길이는 짧지만 굽이치는 코너와 시케인, 고속 코너를 전부 갖춘 곳이다. 일본 메이커나 자동차 잡지의 테스트가 이뤄지는 곳 중 하나다. 이곳에서 일본의 <베스트 모터링>이 테스트한 결과에 따르면, 랜서 에볼루션 10세대 모델은 9세대 모델보다 랩타임이 느렸다.

무게가 늘어 랩타임은 느려졌지만, 30㎜ 늘어난 앞 뒤 윤거와 18인치로 커진 타이어는 접지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실내의 거주성 또한 좋아졌다.

랜서 에볼루션은 상당히 좋은 장비를 여럿 갖췄다. 하지만 앞좌석, 옆면, 커튼, 운전자의 무릎을 감싸는 7개의 어드밴스드 에어백을 빼면 이 모든 장비는 주행에 초점을 맞췄다.

알 루미늄 후드 등의 경량 바디 구성, BBS의 18인치 단조 휠, 빌스타인의 쇼크 업소버, 아이바흐의 코일 스프링, 레카로의 버킷 시트, 브렘보의 디스크 브레이크 시스템 등 호화로운 구성을 갖췄다. 편의 장비는 스마트키와 크루즈 컨트롤, HID, 전자동 에어컨, 락포드 포스게이트 오디오 정도. 편의보단 주행 위주로 장비를 골라냈다.

가 격은 5950만 원. 가격 대비 가치는 운전자의 성향이 정한다. 순수하게 주행에만 목적을 둔 차에 일반적인 잣대를 들이대긴 힘들다. 비슷한 가격대의 차들에 비해 편안함과 폼새는 부족하다. 하지만 그 안에 담은 기술적 가치는 무엇보다 뛰어나다. 주행 성능만으로는 훨씬 비싼 차들을 능멸한다.

게 다가 국내 시장에서 랜서 에볼루션의 가격은 싼 편이다. 일본 시장의 경우 기본형인 RS가 315만 엔이다. 주력 상품인 GSR의 경우 SST 변속기를 더하면 400만 엔 정도다. 그 중 빌스타인과 아이바흐를 갖추고 SST를 기본으로 더한 GSR 프리미엄 모델은 525만 엔이다.

이 모델이 국내 시장에 들어오는 랜서 에볼루션과 같다. 2012년 4월 기준 현재 엔화 환율은 100엔에 1400원대다. 어림잡아 계산해도 약 7350만 원으로 국내 시장의 가격이 1400만 원 정도 더 싸다. 랜서 에볼루션을 고민 해왔다면 지금이 적기다.

미 쓰비시는 10세대에 이르러 완전히 새로운 랜서 에볼루션을 내놓았다. 이젠 WRC에 참가하지 않는 이상 차체도 커지고 무게도 늘었다. 하지만 아직 랠리의 꿈은 놓지 않은 듯하다. 기대하는 모든 것을 그대로 해낸다. 빠른 동시에 운전자에게 신뢰를 주는 차다.

하 지만 엔진을 빠듯하게 쥐어짜는 만큼 연비 또한 운전자의 지갑을 쥐어짠다. 공인 연비는 8.1㎞/L지만 수퍼 스포츠 모드에서 끝까지 밀어붙이면 실제 연비는 반 아래로 떨어진다.  매일 타기는 힘들겠다. 하지만 레이스를 꿈꾼다면 이만한 차는 찾기 힘들다.


글 안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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