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티 FX50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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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피니티 FX50 시승기
  • 김기범
  • 승인 2012.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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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피니티 FX는 2세대로 거듭나면서 한층 자극의 수위를 높였다. 스타일은 더욱 전위적으로 변했고, 성능은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4WS와 가변제어댐퍼로 핸들링 성능을 다듬었다. 시승차 FX50S는 V8 5.0L 390마력 엔진과 7단 자동변속기를 얹고, 0→시속 100㎞ 가속 5.4초의 고성능을 뽐낸다.




지 난 2000년 처음 선보인 인피니티 FX 시리즈는 ‘스타일리시 SUV’란 장르를 제시했다. SUV라고 멋 부리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공간을 비롯한 실용성에 누가 될 정도여선 곤란하다는 암묵적 합의가 존재해 왔다. 1세대 FX는 되레 그 점을 노렸다. 꽁무니를 매몰차게 잘라 스타일을 가꿨다. 시야와 트렁크, 뒷좌석 머리 공간은 눈 질끈 감고 희생시켰다. 

나 아가 엔진을 앞 차축 뒤쪽에 얹은 프런트 미드십 구조로 핸들링에 자극적인 맛을 더했다. 코너링의 정점을 파고들 때 앞머리가 안쪽으로 휘감겨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전하는 이유다. 일찌감치 엄살을 피우며 언더스티어로 흐르다 주행안정장치가 끼어드는, 여느 SUV의 코너링 성능과 확연히 차별화됐다. 원가절감을 위한 플랫폼 공유가 낳은 보너스기도 하다.

모험은 성공적이었다. FX는 뜨거운 인기를 끌면서 인피니티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핸들링 빼어난 SUV를 자부하던 BMW X5와 포르쉐 카이엔은 FX의 추격을 피해 황망히 달아났다. BMW X5는 3열 시트로 실용성을 살리고, 첨단기술로 핸들링의 감칠맛을 더했다. 포르쉐 카이엔은 직분사 시스템의 도움으로 400마력의 벽마저 넘어섰다.

당돌한 ‘추격자’는 어떻게 변신했을까. 인피니티 FX의 가야할 길은 분명했다. 1세대 때 들었던, “도로 위로 뛰쳐나온 컨셉트카”의 이미지를 살려 상식을 성큼 앞서는 디자인을 선보여야했다. 애당초 평범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셈이다. 또한, 라인업에 디젤 파워트레인이 없는 만큼, 어쭙잖게 경제성을 들먹이느니 차라리 성능을 화끈하게 높여야했다.

결과는 예상과 한 치의 어긋남이 없었다. 이번 FX는 SUV와 쿠페의 혼혈을 자청한 BMW X6이 머쓱해할 만큼, 장르 파괴의 본보기를 다시금 제시했다. 볼륨감을 한껏 강조한 디자인은 기괴한 인상마저 풍긴다. 얼굴은 흡사 망치 상어고, 팽팽하게 부푼 덩치는 딱 미식축구 선수다. 여성스러움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XY 염색체로 똘똘 뭉친 디자인이다.

헤드램프와 테일램프는 눈 꼬리를 흘린 정도가 아니라 앞과 옆면의 경계가 모호한 부위에 녹여 넣었다. B필러는 앞쪽으로 살짝 당겨 뒷좌석 공간과 뒷도어의 크기를 키웠다. 차체는 닛산이 특허 낸, ‘스크래치 쉴드’ 기술이 낳은 특수 페인트로 칠했다. 기온에 따라 1시간에서 1주일 만에 자잘한 상처를 스스로 복원한다니 대견하기 이를 데 없다.

인테리어는 더욱 고급스러워졌다. 냉난방 통풍기능을 더한 시트엔 밭이랑처럼 세로 주름을 넣고, 사선으로 스티치를 박았다. 벤틀리 인테리어의 격자무늬 박음질과 비슷한데, 사치스러운 느낌이 기대 이상이다. 시트는 허벅지와 허리를 떠받칠 모서리를 우뚝 세웠다. FX50은 압축공기로 지지부위까지 부풀릴 수 있어 몸을 죄는 느낌이 스포츠카 부럽지 않다.

반신욕조에 앉은 듯, 빠듯하게 에워싸인 느낌은 여전하다. 앞 펜더가 거우듬하게 부풀어 차폭 가늠이 여의치 않다. 플라스틱의 질감은 이제 닛산과의 차별을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수준으로 올라섰다. 소니의 광학기술이 스민, ‘올 라운드 뷰’가 기본이며 스피커 11개의 보스 프리미엄 오디오와 블루투스 핸즈프리는 물론, 뒷좌석 천정엔 9인치 모니터까지 더했다. 




FX50 의 심장은 V8 5.0L 390마력. 출력이 FX45보다 70마력이나 늘었다. 최대토크는 50.9㎏·m. 괴력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스펙이다. 5단에 머물러 아쉬움을 남겼던 자동변속기는 이제 7단으로 진화했다. 또한, FX 최초로 스티어링 휠 뒤쪽에 마그네슘 패들 시프트를 덧댔다. 스티어링 휠은 림에 굴곡을 넣어 쥐는 맛을 살렸고, 패드의 스위치를 늘렸다. 

숨통을 트는 순간, 섬뜩한 포효가 이성을 마비시킨다. 엔진의 반응은 흥분제라도 맞은 듯 예민하다. 가속페달에 발바닥만 스쳐도 움찔거린다. BMW와 사뭇 비슷한 데, 액셀 페달과 스티어링의 조작감이 한층 말랑거려 부담은 덜하다. 그게 문제기도 하다. 조작의 신중함을 이끌 뻑뻑함이 없으니, 흥에 취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차의 움직임이 거칠어지기 일쑤다.

‘제로백’은 5.4초. 퓨어 스포츠 SUV를 표방한 카이엔 GTS를 거뜬히 제쳤다. 407마력의 BMW X6 x드라이브50i와 같고, 510마력의 벤츠 ML 63 AMG에 0.4초 뒤질 뿐이다. 몸놀림은 더욱 민첩해져 한계의 영역을 야금야금 더듬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 댐핑 압력을 쥐락펴락하는 서스펜션과 전기모터로 뒷바퀴를 1°까지 조향하는 4WS 시스템 덕분이다.  

이번 FX의 진화는 바람직했다. 오지랖 넓게 이것저것 욕심내지 않고, 나아가야할 바를 정확히 지향했다. 디자인과 성능에 자극의 수위를 높여 자신만의 입지를 단단히 다졌다. FX50과 함께하는 동안 두려울 게 없었다. 엔진회전수를 갑자기 띄울 때 토크가 살짝 흐릿해지는 느낌만 빼면, FX50은 동급에서 마땅히 견줄 라이벌이 없을 만큼 강력했다. 고성능 차만 눈에 띄면 본능적으로 뒤쫓아 꽁무니를 쪼았다. 세 꼭지별, 프로펠러, 말 문양 엠블럼의 SUV와 한 판 붙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날 위축시킨 단 하나의 존재는, 맥없이 떨어지는 연료 게이지뿐이었다. 


글 김기범 | 사진 인피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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