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티 EX35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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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피니티 EX35 시승기
  • 모토야
  • 승인 2012.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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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피니티 EX는 FM(프런트미드십) 뼈대에 AWD 시스템을 얹은 크로스오버다. 평소엔 뒷바퀴, 상황에 따라 앞바퀴도 굴린다. 파워트레인은 V6 3.5L VQ35HR 302마력 엔진. 2011년형 이후 변속기는 자동 5단에서 7단으로 바뀌었다. 온순한 외모와 가정적 컨셉트지만, ‘제로백’ 6초대의 강렬한 가속과 짜릿한 핸들링 성능을 뽐내는 이단아다. 


인피니티는 EX35를 선보이면서 크로스오버 성격을 강조했다. 서로 다른 장르를 한 데 섞는 것을 뜻하는 크로스오버는 1960년대 말 생겨난 음악 용어다. 팝과 오페라의 만남, ‘팝페라’가 좋은 예다. 자동차에서의 크로스오버 역시 비슷한 의미다. ‘승용차 SUV’처럼 서로 다른 장르의 장점을 추려 하나로 뭉뚱그린 차종이 크로스오버에 해당된다.


따라서 음악이건 자동차건 크로스오버는 전혀 새로운 장르라기보다는 기존 줄기에서 뻗어 나온 곁가지다. 한 때 요식업계에서 유행했던 퓨전과 비슷한 개념이다. 그럼 크로스오버는 왜 생겨났을까. 각 메이커마다 그럴 듯한 이유를 늘어놓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밥벌이’, 즉 돈을 벌기 위해서다. 니치 마켓의 소비자를 한 명이라도 더 잡기 위한 몸부림인 셈이다.


인피니티는 히트작 제조기, FM 플랫폼의 본전을 뽑을 아이디어를 고민했다. 세단과 쿠페, SUV까지 빚어냈으니, 이제 그 중간적 성격의 크로스오버 차례였다. 쓰임새를 따지는 여성 고객을 유인할 묘책이기도 했다. 크로스오버는 보통 SUV가 도심친화적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즐겨 쓰는 허울이다. 반면 EX35는 SUV와 거리가 멀다. 그보단 해치백, 왜건에 가깝다.


각 모서리를 둥글린 탓에 덩치는 수치보다 아담해 보인다. 보닛 양쪽을 타고 올라간 눈매와 가늘게 썰어낸 그릴 등 앞모습은 G37 쿠페와 비슷하다. 뒷모습은 FX처럼 힙이 잔뜩 불거진 것만 빼면 인피니티 어떤 모델과도 닮지 않았다. 보디는 제법 두툼하지만 앞뒤 오버행이나 휠베이스, 휠 하우스의 배치 등 전반적인 비율은 G 세단 부럽지 않게 스포티하다.



인테리어는 프미리엄 브랜드답게 화려하다. 겉모습을 깎고 다듬은 곡선과 곡면은 고스란히 실내로 이어졌다. 무엇하나 반듯하지 않고 느린 호흡으로 휘어냈다. 세 가닥 주름을 넣은 동반석 앞 대시보드는 뜨거운 오븐에서 한창 부풀어 오른 패스추리를 보는 듯하다. FX처럼 EX도 운전석에 앉으면 부드럽게 에워싸인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인피니티 EX35의 심장은 V6 3.5L. 미국의 <워즈>(Ward’s)가 해마다 발표하는 ‘세계 10대 엔진’에 줄기차게 이름을 올린 명기다. EX35 엔진의 코드네임은 ‘VQ35HR’. ‘HR’은 고회전과 뛰어난 반응성의 이니셜이다. 훌륭한 엔진을 결정하는 요소로는 사운드, 진동, 토크, 파워, 응답성의 다섯 가지가 손꼽힌다. 각 요소가 뛰어날 뿐 아니라 조화를 이뤄야 한다.


최고출력 302마력, 최대토크 34.8㎏·m의 ‘VQ35HR’ 엔진은 아이들링에서 레드존에 이르는 마디마디마다 희열을 안겨준다. 4,800rpm에서 봇물 터지듯 쏟아내는 토크의 물결은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 만큼 거세다. 사운드도 굉장히 스포티해서 습관적으로 고회전을 일삼게 된다. 왜 이 엔진을 명기로 꼽는지, EX35를 단 몇 분만 몰아 봐도 알 수 있다.



변속기는 자동 5단에서 7단으로 진화했다. 반응이 빠르고, 다운시프트 때 엔진회전수를 띄우는 ‘레브 매칭’ 기능도 변함없다. AWD 시스템은 닛산의 ‘아테사(ATTESA) E-TS’. 1초 당 100번 감시의 눈초리를 번뜩이는 16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와 삼차원 G센서를 어울렸다. 평소엔 뒤쪽에 구동력을 100% 집중한다. 상황에 따라 앞쪽에 50%까지 구동력을 옮긴다.


인피니티는 스스로 가속성능을 밝히지 않는다. 표를 가득 채운 제원을 거리낌 없이 넘겨주면서도 시속 100㎞까지 발진가속 시간만은 ‘물음표’로 남겨둔다. 그래서 어떤 모델이 됐든 인피니티는 계측기를 붙이기 전까지 ‘오감’(五感)으로 성능을 짐작할 수밖에 없다. 인피니티를 시승할 때마다 미지의 세계로 탐험을 떠나는 기분이 드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아쉽게도 2011년형은 계측하지 못했다. 그러나 자동 5단 시절 계측했을 때 ‘제로백’을 평균 6.48초에 끊었다. EX35는 신경의 촉수를 빳빳이 세운 채 액셀의 털끝만한 움직임마저 놓치지 않고 화답했다. 제동력은 고무풍선을 불 때처럼 처음엔 다소 힘겹게 솟다가 일정 수준 이상의 압력을 가하면 확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다.



‘생긴 것만 봐선 모른다.’ ‘피는 역시 못 속인다.’ 인피니티 EX35를 몰면서 새삼 의미를 곱씹게 된 격언이다. 스누피 닮은 외모 안에 뜨거운 피가 끓어 넘치는 스포츠 세단이 숨어 있다. 승차감은 G 시리즈보다 한결 부드럽다. 핸들링은 세단보다 무게중심이 높은 만큼 FX 쪽에 가깝다. 코너의 정점을 의도한 것보다 날카롭게 파고드는 특성은 중독성이 짙다.


인피니티 EX35는 자칫 식상할 수 있는 컨셉트였다. 승용차 플랫폼을 바탕으로 키를 키워 세단 혹은 해치백과 SUV 사이의 징검다리 모델을 만드는 건 인피니티 이전에도 수많은 브랜드가 시도했다. 하지만 ‘틈새시장을 위한 틈새모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기 일쑤였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흐릿한 성격 때문이었다.


반면 인피니티는 이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EX35는 크로스오버를 표방했지만 적당한 교집합을 추구하는 대신 각각의 뾰족한 장점을 오롯이 부각시켰다. EX35는 가족과 함께하는 주말 나들이의 동반자와 혼자만의 즐거움을 탐닉할 수 있는 스포츠 쿠페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인피니티의 크로스오버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글 김기범|사진 닛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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