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의 불청객, 엔진룸 속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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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의 불청객, 엔진룸 속 고양이
  • 박병하
  • 승인 2016.01.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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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집도 주인도 없이 떠도는 고양이들, 이른 바 `길고양이`들이 자동차에 숨어 드는 일은 날씨가 추운 겨울철이나 일교차가 심한 환절기에 종종 보이는 광경이다. 이들이 숨어 드는 곳은 주로 엔진룸이나 타이어와 휠하우스 사이. 심지어는 고양이 특유의 유연함을 이용해 엔진과 언더커버 사이로 숨어드는 경우도 있다. 간혹 브레이크와 휠 사이의 공간에서 잠을 청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왜 고양이들은 날씨가 추울 때 자동차 안으로 숨어 드는 걸까? 이는 고양이가 가진 본능에서 기인한다. 고양이는 기본적으로 체온이 38~39도 사이로, 인간보다 정상 체온이 1~2도 가량 높다. 인간의 기준에서는 고열에 해당하는 37.5도는 고양이에게는 위험 수위의 저체온이다. 고양이들이 좁은 공간을 좋아하는 이유도 상대적으로 높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본능에서 온다. 이 외에도 장소보다 접근하기 쉽고, 몸을 숨기기에 좋은 점도 길고양이들이 자동차를 선택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추운 겨울, 집도 절도 없는 길고양이들의 입장에서는 운행을 마치고 시동을 정지한 자동차란 더할 나위 없는 은신처다. 엔진과 기계장치들에서 발생한 열이 남아 있는 자동차는 고양이에게 `따뜻함`을 제공한다. 엔진룸의 비좁은 공간은 좁은 곳을 좋아하는 고양이의 본능을 만족하면서도 다른 고양이들이나 유기견 등의 위협에서 자유롭게 해준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운행을 마치고 정지한 자동차에만 해당이 되는 이야기다. 고양이들은 자동차의 엔진룸이 얼마나 무서운 장소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동차에 시동이 걸리게 되면 엔진룸은 은신처가 아닌 `생지옥`으로 돌변한다. 시동이 걸린 자동차의 엔진룸은 엔진에서 발생하는 고열과 함께, 회전 운동을 하는 갖가지 기계 덩어리들로 가득한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운전자가 엔진룸 속 고양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자동차를 운행하게 되면, 고양이는 열에 의한 화상이나 회전하는 기계장치에 신체가 협착되어 중상을 입고 죽게 될 확률이 높다.


특히, 엔진룸은 자동차의 핵심 부품 및 장치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엔진룸 내의 각종 회전부에 고양이가 협착된 경우에는 더욱 심각하다. 협착으로 인한 기계 손상과 사체에서 발생한 이물질들로 인해 차량에 심각한 고장을 일으켜, 운전자와 탑승자도 위험에 처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양이의 사체를 처리하는 과정 역시 차주와 정비사 모두에게 고역이다.



이 고양이들을 불귀의 객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차에서 내보내야만 한다. 대개의 경우에는 보닛을 몇 번 노크하듯 두드리거나 차에 탑승하면서 문을 세게 닫고, 경적을 살짝 울려주거나 차내에서 발을 세게 구르는 등의 조치로 고양이들을 내보낼 수 있다. 고양이는 소리와 진동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출발 전에, 보닛을 열어, 엔진룸을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도망치기는커녕, 그 유연한 몸을 이용해 아예 엔진룸 깊숙한 곳으로 숨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고양이들은 다 자란 성체보다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 고양이들이 많아서 더욱 대처하기가 곤란해진다. 이 과정에서 기계 부품 사이의 좁은 틈에 몸이 협착되어 스스로 탈출할 수 없는 경우로 번지기도 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119 구조대에 신고하여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는 지난 해부터 엔진룸에 숨어 드는 고양이들을 깨워주는 캠페인을 개시했음은 물론, 인터넷과 SNS 등지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또한, 고양이를 좋아하기로 유명한 일본에서도 이러한 활동들이 추진 중에 있다.



닛산자동차(이하 닛산)의 경우, 지난 해 11월 19일부터 `고양이 똑똑 프로젝트(猫バンバン プロジェクト)`라는 캠페인을 트위터 등, SNS 상에서 본격적으로 개시하여 운전자들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올 1월 26일부터는 `고양이 똑똑 프로젝트`의 특설 사이트를 개설하고 프로젝트에 참여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신청자 중 100명을 추첨하여 `타기 전에 고양이 똑똑(乗る前に 猫バンバン)`이라 는 글귀와 고양이 캐릭터가 인쇄된 자석 스티커를 배포한다.


바쁜 아침, 나와 내 차는 물론, 집 없는 고양이들을 위해서 5분의 여유를 갖고 엔진룸을 둘러보는 습관을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엔진룸 속 고양이들을 내보내는 일은 고양이로 인한 차량 고장과 운전자의 피해를 막는 것뿐만 아니라 고양이들의 생명 또한 살리는 일이다. 이러한 조치에 들어가는 시간은 길어야 5분 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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