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슈퍼카, `치제타 V16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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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슈퍼카, `치제타 V16T`
  • 이동익
  • 승인 2015.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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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외관과 강력한 성능을 겸비한 `슈퍼카`, 혹은 스포츠카는 성공한 이들, 혹은 그러한 이들이 가진 부를 상징하는 측면이 존재한다. 남다른 것을 갖고자 하는 욕구와 고성능에 대한 열망을 충족하는 슈퍼카는 자동차 애호가들을 비롯하여, 일반인들, 심지어는 어린이들에게마저도 선망의 대상으로 통하고 있다.



그러나 선망의 대상으로 포장된 슈퍼카의 뒤편에는 다른 일면들이 존재한다. 슈퍼카는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것`을 찾는 고객들을 위해, 주문 방식으로 생산하며, 대부분의 공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이 때문에 품질 관리의 어려움과 낮은 생산성을 갖는다. 낮은 생산성은 채산성의 악화로 이어지며, 이 때문에 스포츠카 사업은 제조업으로서 심각한 위험을 수반해야 하는 모험이다. 이 때문에 적지 않은 수의 스포츠카 제작사들은 문을 닫거나, 거대 기업의 브랜드로 편입되는 등, 굴곡이 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주인이 몇 차례씩 바뀌었던 `람보르기니`나 `애스턴마틴` 등의 경우가 있다.


하지만 본 기사에서 소개할 차에 비하면, 이들의 상황은 오히려 탄탄대로에 속한다. 본 기사에서 소개할 슈퍼카는 남들과는 다른, 충격적인 외관 디자인과 폭발적인 성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싼 가격과 총 생산대수를 20대도 넘기지 못한, 턱없이 부족한 생산량 때문에 심각한 부침을 겪었다. 이 차의 이름은 `치제타 V16T`다.


치제타 V16T의 탄생


`누구도 보지 못했던 슈퍼카를 만들겠다`는 포부 아래 두 남자가 만났다.



한 명은 람보르기니 출신 엔지니어 `클라우디오 잠폴리(Claudio Zampolli)`였고, 또 다른 한 명은 1988년 서울올림픽 주제가였던 `손에 손잡고(Hand in hand)`를 작곡한 성악가 `조르지오 모로더(Giorgio Moroder)`였다. 슈퍼카 애호가이기도 했던 모로더는 잠폴리에게 후원을 약속했고, 잠폴리는 자신과 모로더의 이름을 딴 `치제타 모로더 모터즈(Cizeta-Moroder Motors)`를 설립한다.(`치제타`는 잠폴리의 이니셜인 `CZ`의 이태리어 발음이다.)



잠폴리는 16기통 엔진을 탑재한 `광기 어린` 슈퍼카를 제작하여 세상을 놀라게 할 계획을 세웠다. 12기통 엔진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부족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16기통 엔진을 중심으로, 그가 끌어 모은 람보르기니의 기술진과 함께 슈퍼카 제작에 돌입했다. 그들은 람보르기니 쿤타치 개발에도 참가했던 엔지니어들로, `누구도 보지 못했던 슈퍼카를 만들고야 말겠다`는 열망으로 똘똘 뭉친 집단이었다.



이들은 1988년 12월 미국 LA 모터쇼에 `치제타 모로더 V16T(CIZETA Moroder V16T, 이하 V16T)`의 프로토타입을 출품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9년 3월 스위스 제네바 모터쇼에서 작년보다 한층 발전한 프로토타입을 일반에 공개한다. V16T는 V형 16기통 미드십 엔진에 트랜스미션을 세로로 연결한 모습이 `T`자처럼 보여 붙은 이름이다.


잠폴리의 예상대로, 8기통 엔진 두 대를 붙여 설계한 16기통 엔진은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6.0리터 V16 엔진은 560마력의 최고출력을 발휘했으며, 최고속도 328km/h,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4.5초만에 주파하며 `16기통 슈퍼카 시대`를 개척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1988년 LA에서 처음으로 선보였을 때 25만 달러(약 3억 2천 500만원)였던 V16T의 가격은 계속 상승해 63만 달러(약 8억 1천 900만원)에 달하기도 했다.


마르첼로 간디니만의 특징적인 디자인


V16T의 디자인을 보기 전에 `람보르기니 디아블로`의 탄생 비화를 먼저 살펴보자. 뜬금없이 왠 디아블로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사실 V16T와 디아블로는 디자인 상으로 형제 뻘에 가까운 관계였다.


1985년, 람보르기니는 쿤타치의 후속 모델을 탄생시키기 위해 `프로젝트 132`에 돌입했다. 당시 프로젝트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마르첼로 간디니(Marcello gandini)`는 람보르기니 미우라와 쿤타치를 디자인함으로써 이미 그의 작품 세계를 인정받고 있었다. 그는 `각`과 `쐐기` 형태가 특징적인 후속 모델을 디자인했고 이듬해 작업을 끝마쳤다. 그 후속 모델이 바로 초기의 디아블로였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1987년 람보르기니가 재정난으로 인해 크라이슬러에 인수되면서 프로젝트의 방향이 틀어진 것이다. 크라이슬러는 프로젝트 132에 프리미엄 슈퍼카 최대 시장인 미국의 입맛에 맞는 디자인을 적용하기를 원했다. 크라이슬러 디자인 센터는 간디니의 디자인에 대대적인 수정을 하여, 전체적으로 둥그스름한 형태를 띄게 되었는데, 이는 간디니의 초안과는 전혀 다른 디자인이었던 것이다.



간디니는 크라이슬러의 일방적인 디자인 변경에 크게 실망했고, 이후 잠폴리의 제의를 받아 디아블로에 적용할 예정이었던 자신의 디자인을 V16T에 입히기에 이른다. 보닛에 장착된 4개의 팝업형 헤드램프, 측면의 수직형 에어 인테이크가 특징적인 V16T의 광기 어린 디자인은 이렇게 탄생했다.


하나만 보고 열은 못 본 결과는


그러나 치제타 V16T는 V형 16기통의 강력한 엔진과 충격적인 디자인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 외의 부분을 소홀히 한 것은 자동차가 갖는 상품성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으며, 이 때문에 치제타 V16T는 그 기상천외한 특징들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괴작`이 되고 말았다.



V16T의 엔진은 지나치게 출력과 가속력에만 신경을 써 연비가 나쁘고 배기가스를 과도하게 방출했다. 배기가스 문제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소음 및 환경 공해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할 정도로 심각했다. 또한, 필연적으로 길다란 크랭크 축을 갖는 V16기통 엔진의 특성 상, 기계적 신뢰도가 낮았다. 차체 안전성 또한 형편 없었다. 결국 V16T는 미국에서의 판매, 주행, 소지가 전부 금지되었다. 세계 최대의 슈퍼카 시장 중 하나인 미국에서의 판로가 막혀버린 치제타 모로더는 당장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려야만 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수작업을 통해 극소량만을 생산하는 방식을 택한 V16T는 잠폴리에 많은 이익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후원자였던 조르지오 모로더가 더 이상 후원을 해줄 수 없다고 통보하면서 치제타의 경영은 낭떠러지에 선다. (치제타 모로더 V16T는 이때부터 모로더를 빼고 치제타 V16T라고 불리게 된다.) 결국 잠폴리는 1991년부터 1995년까지 V16T를 20대도 생산하지 못한 채 회사문을 닫아야 했다.



모든 슈퍼카 및 제조사가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치제타. 잠폴리는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로 회사를 옮겨 `치제타 오토모빌리 USA(Cizeta Automobili USA)`라는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고 2006년부터 세계 각지에서 들어오는 주문에 맞춰 주문 제작 형태로 V16T를 소량 생산 중이다. 가격은 64만 9천 달러(약 7억 1천 325만원)다.



글 이동익 기자, 사진 위키피디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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