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로 만든 자동차, 트라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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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로 만든 자동차, 트라반트
  • 이동익
  • 승인 2016.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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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개봉한 영화 `트라비에게 갈채를(Go Trabi Go)`은 동독에 사는 일가족이 통일 이후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면서 겪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자동차로 떠나는 첫 외국여행이니만큼 자동차가 응당 제 역할을 해내야 할 텐데 이게 웬걸. 잦은 고장으로 속을 썩이고, 여행 도중 사고를 내기도 하면서 `달구지`라는 별명까지 얻는다. 그러나 이 가족에게 자신들의 든든한 발이 되어주는 달구지는 사실상 가족의 한 구성원이나 다름없다.



영화에서 등장한 자동차는 `동독의 국민차`라고도 불렸던 `트라반트(Trabant)`다. `트라비(Trabi)`라는 애칭으로도 유명한 이 자동차는 동독 작센주 츠비카우의 작센링 자동차에서 1957년부터 통일 직후인 1991년까지 300만대가 넘게 생산된다. 츠비카우는 호르히, DKW, 반더러, 그리고 아우디 등이 합병한 아우토유니온이 들어서면서 1930년대부터 이미 자동차 공업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동독에 공산 정권이 들어서면서 작센링 자동차도 인민소유경영체제로 전환되었고 전 인민과 노동자를 위한 승용차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그러나 자동차 생산에 필수 자재인 철판의 부재가 그들의 발목을 잡는다. 서방세계와 단절된 동독이 서방세계로부터 철판을 수입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작센링 자동차는 FRP(섬유강화플라스틱), 즉 목화 섬유로 만든 식물성 강화플라스틱을 차체에 사용하여 1959년 최초의 트라반트 모델인 `P50` 개발에 성공한다.



P50은 목화 섬유로 이루어진 가벼운 차체 무게와 저렴한 가격이 장점이었다. 0.5리터 2기통 2행정 엔진을 탑재했으며, 최고출력은 18마력이었다. 이후 부분 변경을 거치면서 배기량을 595cc까지 늘렸고 최고출력도 23마력으로 소폭 상승했다. 모델명도 `P60`으로 바뀌었다.



1964년, P60을 잇는 `P601`이 등장한다. P601은 가장 널리 알려진 트라반트 모델로, 1991년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트라반트의 전형으로 판매됐다. 트라반트는 수십년 동안 큰 외형 변화가 없었는데, 동독 정부가 물자 부족을 이유로 후속 차종을 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P601에 탑재된 엔진은 동급 차종에 비해서 연료 소모도 많은데다 출력도 낮았다. 제원상의 최고 속도는 123km/h였으나 실제로는 40~60km/h 이상의 속도를 내기도 버거웠다. 광고도 `4인의 성인과 짐을 실을 수 있는 자동차`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라반트는 동독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자동차였다. 동독의 경찰도 트라반트의 지붕을 없앤 파생형 모델을 이용했다. 여기에 헝가리와 폴란드, 루마니아와 같은 주변 공산주의 국가에도 수출하는 등 트라반트의 인기는 그칠 줄을 몰랐다.



그러나 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동독이 추구한 계획경제의 경직성이 문제의 시발점이 되었다. 1973년, 동독은 트라반트 생산시설의 확충과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 시기를 놓침으로써 위기에 직면한다.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생산량도 문제가 되었다. 새 차를 갖기 위해서는 주문에서 출고까지 10년 이상을 기다려야 했고, 4~5년 된 중고차의 가격이 신차 판매 가격의 2배 이상으로 거래되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트라반트가 서방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9년부터다. 1989년은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면서 동독을 벗어나 서독으로 향하는 수많은 행렬이 이어지던 시기다. 당시 동독을 떠난 수많은 사람들이 트라반트를 몰고 서독으로 들어왔다. 서독 입장에서 트라반트는 여간 골치덩이가 아니었다. 연료가 불완전 연소되어 주행할 때마다 여타 서방자동차의 10배에 달하는 배출 가스를 내뿜었다. 별도의 윤활유 공급 장치가 없어 휘발유에 윤활유를 섞여 연소시키는 2행정 엔진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여기에 차체를 구성하는 플라스틱이 잘 썩지 않는 재질인 점도 문제가 되었다.



통일 이후 폭스바겐은 트라반트를 생산하던 공장을 인수했다. 이들은 트라반트의 생산을 바로 중단하지 않고 상품성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최대 출력 40마력의 1.1리터 4기통 엔진을 탑재했으며 브레이크와 방향 지시등, 서스펜션 등도 개선을 거쳤다. 차명도 `트라반트 1.1`로 변경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독일 정부는 결국 트라반트 생산 중지 명령을 내렸다. 과도한 배출가스와 미흡한 안전성 등이 이유였다.



비록 갖가지 단점을 이유로 철퇴를 맞기는 하였으나, 트라반트는 오늘날까지도 꾸준한 관심을 받으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트라반트를 통해서 다시는 분단을 겪지 말자는 인식을 공유하는 트라반트 동호회나 트라비 랠리 등이 대표적이다. 2007년 츠비카우에서는 트라반트 50주년을 기념한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이 행사에는 독일뿐만 아니라 폴란드, 체크, 헝가리, 루마니아 등지에서 약 2천대에 달하는 트라반트가 몰려들면서 진풍경을 연출했다.



아울러 인디카(Indykar)라는 회사는 2009년 IAA(프랑크푸르트국제모터쇼)에서 트라반트의 전기차 모델인 `트라반트 nT`를 전시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새롭게 개발된 트라반트 nT는 외형은 원조의 그것을 따랐으나 내부 및 성능은 최신 기술을 적용한 전기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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