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12 람보르기니의 大父, 미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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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12 람보르기니의 大父, 미우라
  • 박병하
  • 승인 2016.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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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12 람보르기니의 大父, 미우라


페라리와 함께, 이탈리안 슈퍼카 브랜드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람보르기니(Lamborghini). 그 중심에는 항상 V12 엔진을 탑재한 미드십 슈퍼카가 있었다. 반세기 전부터 시작된 람보르기니 V12 슈퍼카의 계보의 시초가 되는 미우라, 오늘날 람보르기니 슈퍼카 디자인의 근간을 이룬 쿤타치, 괴물과 같은 성능으로 유명한 디아블로, 아우디 산하에서의 첫 작품인 무르치엘라고, 그리고 오늘날 람보르기니의 기함인 아벤타도르에 이르기까지, 람보르기니의 V12 슈퍼카는 그야말로 람보르기니의 정점이자,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정수(精髓)라 할 수 있다.



람보르기니 미우라는 창업주인 페루치오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 1916 - 1993)가 설립한 `아우토모빌리 람보르기니(Automobili Lamborghini)`의 세 번째 작품이다. 하지만 미우라는 페루치오가 직접 개발에 참여한 차는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미우라는 그동안 람보르기니가 만들어 왔던 차들과도 전혀 다른 성격의 차였다. 람보르기니의 첫 작품인 350GT와 그 후속작인 400GT는 모두 GT(Gran Turismo)였기 때문. 초기 람보르기니의 모델들이 GT가 많은 이유는 페루치오가 GT를 특히 선호했다는 데서 기인한다.



때문에 미우라는 개발 당시부터 페루치오 몰래 개발 작업을 진행해야 했다. 미우라는 모든 면에서 페루치오가 명백히 선호하지 않는 차종이고, 이 때문에 그가 개발을 허락해 주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에서였다. 미우라를 개발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장 파올로 달라라(Gian Paolo Dallara), 파올로 스탄자니(Paolo Stanzani), 밥 월러스(Bob Wallace)라는 세 명의 엔지니어들은 낮에는 페루치오의 눈을 피해가며, 밤에는 모두 모여서 미우라를 개발해야만 했다. 그들은 경주용 자동차의 막강한 성능을 가진 로드카를 원했다. 다시 말해, 일반 도로와 트랙 모두를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자동차를 원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우라는 페루치오의 의지가 아닌, 람보르기니 소속 엔지니어들의 열망이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열정으로 가득찬 엔지니어들에 의해 미우라는 차근차근 개발이 진행되어 완성되었고, 엔지니어들은 완성된 미우라를 페루치오에게 보여주기에 이른다. 미우라는 GT가 아닌, 본격적인 미드십 고성능 스포츠카로 만들어진 차였다. 그런데 페루치오는 예상과는 달리, 의외로 미우라의 생산 허가를 흔쾌히 내줬다. 페루치오는 미우라가 당장의 실적에는 크게 공헌할 수는 없을지라도, 당시로서는 신생 브랜드였던 람보르기니의 가치를 크게 올려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덕분이다. 그리고 미우라는 1966년의 제네바 모터쇼에서 `P400`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공개되며 람보르기니의 V12 슈퍼카 계보의 시작을 알리게 된다.



이렇게 람보르기니의 배지를 달고 세상에 나오게 된 P400은 `미우라(Miura)`라는 이름을 페루치오로부터 부여받았다. 미우라는 투우를 위한 소들을 기르는 사육사의 이름에서 가져 온 것으로, 이후의 람보르기니 모델들이 투우용 소들의 이름을 사용하는 전통의 시초가 된다.



미우라는 슈퍼카가 가져야 할 아름다운 외관 디자인과 출중한 성능을 고루 갖춘, 현대적인 슈퍼카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미우라의 외관은 카로체리아 베르토네(Bertone)에 몸 담고 있었던 젊디 젊은 디자이너의 손길로 빚어졌다. 이 젊은이가 바로, 훗날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한 마르첼로 간디니(Marcello Gandini)였다. 당시 간디니는 20대 초반의 젊은 디자이너로, 경험도 부족했고 인체공학적에 대한 조예도 부족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미우라의 디자인은 당대의 디자이너들이라면 시도조차 하지 않을 파격이 가득했다. 기성세대의 디자인에 얽메이지 않는 완전히 새롭고 자유로운 시도가 가능했던 것이다.



미우라의 외관 디자인은 당대의 쿠페들이 취했던 길다란 프론트 노즈와 전진배치된 앞바퀴, 그리고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뒷부분과 패스트백 등의 요소들이 반영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미우라를 처음 조우하게 되면, 이 차가 리어 미드십(MR) 구조가 아닌, 전방 엔진 뒷바퀴굴림(FR) 구조의 차로 인식할 수 있다. 미우라는 당시의 정통파 스포츠 쿠페가 갖는 우아하고 유려한 곡선과 간디니의 과감함을 보여주는 직선들이 조화를 이룬 디자인으로 파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뽐내며 일약 제네바 모터쇼의 스타덤에 오른다.



람보르기니 미우라는 아름다운 외양뿐만 아니라 성능 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미우라의 운전석 뒤쪽에는 배기량 4.0리터의 V형 12기통 엔진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엔진은 350마력에 달하는 최고출력을 냈으며, 0-100km/h 가속 시간은 6.7초, 최고속도는 275km/h에 달하는 괴물 같은 성능을 과시했다. 이러한 성능 덕에 미우라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양산차` 타이틀을 가져갔다.



하지만 람보르기니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미우라의 성능 강화를 착실히 진행했다. 그들의 주적(主敵)이자 숙적(宿敵)인 페라리의 도전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1968년, 페라리가 365를 통해 미우라의 275km/h를 넘는 280km/h의 속도를 기록하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양산차` 타이틀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람보르기니는 2년 후인 1969년, 최고속도 285km/h의 미우라S를 내놓으며 페라리에게서 다시금 타이틀을 빼앗아 왔다.



그리고 1971년에는 최고속도 290km/h의 미우라SV를 내놓으며 굳히기에 들어갔다. 미우라SV의 `SV`는 수퍼벨로체(Super Veloce)를 줄인 것으로, 이탈리아어로 `아주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수퍼벨로체 네이밍은 현대의 람보르기니 V12 슈퍼카에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꾸준히 성능을 개선한 미우라는 페라리 288 GTO의 등장 이전까지 항상 당대의 그 어떤 페라리의 양산차보다 빨랐다.



람보르기니 미우라는 람보르기니의 역사에 길이 남을 대작이자, 람보르기니의 정수라 할 수 있는 V12 슈퍼카 계보의 시조다. 람보르기니 미우라는 현대적인 슈퍼카의 기준에도 부합하는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희소성은 물론, 보는 이의 시선을 그야말로 `강탈`하는 자극적이고 멋진 외관 디자인과 타의 추종을 고성능의 엔진의 탑재와 미드십 후륜구동 설계, 그리고 소량 생산에서 나오는 특별함 등의 요소들이 빠짐 없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빠르고 강력한 차를 만들기 원했던 람보르기니 엔지니어들의 열망, 자유와 파격에 탐닉한 젊은 간디니의 그리고 페라리를 능가하고자 했던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의 야심이 합쳐져 만들어진 아름다운 괴물, 미우라. 미우라는 람보르기니 V12 슈퍼카 계보의 시조이자, 오늘날 슈퍼카 브랜드로서의 람보르기니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준 차로, 그 상징성과 역사적 의미가 실로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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