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장을 떠난 메이커들을 돌아보다] 스바루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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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장을 떠난 메이커들을 돌아보다] 스바루 편
  • 박병하
  • 승인 2017.05.31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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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수입자동차 시장은 서로 다른 34개의 메이커가 격돌하면서 더 많은 자동차를 판매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는 복마전과 같은 시장이다. 이러한 한국 시장에 발을 들였다가, 시장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철수한 몇 몇 메이커도 있다.


씁쓸한 뒷맛을 남기며 사라져간 메이커들의 부진과 실패를 되돌아보며, 한국 수입차 시장의 성격과 속성을 들여다 보자.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 3개의 메이커-닷지, 사브, 스바루-들을 각각 하나의 Chapter로 구성하여, 주간으로 게재한다. 금주는 2010년 1월에 론칭 후, 단 3년 만에 한국 시장에서 철수해 버리고 말았던‘스바루’에 대하여 다루겠다.

스바루의 역사는 1953년, 일본 후지 중공의 자동차 사업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스바루(昴,すばる)는 일본어로 ´플레이아데스 성단´을 의미하며, 엠블럼에 새겨진 커다란 별 1개와 5개의 작은 별은,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군용 항공기를 생산하는 군수 기업이었던 舊 ´나카지마 비행기´ 계열의 5개 회사를 후지 중공업으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5개의 회사를 하나의 큰 별로 묶는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2003년에는, 이 엠블럼을 후지 중공업의 글로벌 엠블럼으로 채택되기도 하였다.



1958년부터 1970년까지 생산된 경차, ´스바루 360´. 12년 간 약 39만 2천대를 판매하였다.


스바루는 항공기 개발 및 생산을 하던 모회사의 노하우를 활용하여, 유선형의 스타일링과 가벼운 중량으로 우수한 조종성을 갖춘 ´스바루 1500´을 내놓았다. 그리고 5년 뒤, 일본의 ´국민차´ 구상에 가장 가까웠던 모델인, ´스바루 360´이 인기를 얻으면서, 점차 견실한 자동차 제조사로 변모했다.


이러한 배경은 기술력을 대단히 중시하는 방향으로 기업을 성장시켜 갔다. 그 증거로 1972년, 중형 세단 ´레오네´를 통해, 세계 최초로 승용차를 위한 AWD 시스템을 개발/탑재하여 출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본격적인 승용 AWD 시스템은, 8년 뒤인 1980년, 아우디가 ´콰트로´를 선보이고 나서야 비로소 알려지게 된다.



스바루가 1972년에 세계 최초로 선보인 4륜구동 승용차 ´레오네´.




1990년부터는 스바루의 WRC 역사의 시작이다. 90년대에는 도요다 셀리카,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 등과 그룹 A 클래스의 왕좌를 겨루는 등의 실력을 보였다. ´WR´로 최상위 클래스가 재편된 2000년대에는 보다 컴팩트한 차체를 앞세운 푸조, 시트로엥, 포드 등의 유럽 팀들의 공세에 밀려 주춤하기도 했다. 2009년 시즌부터는 자본문제로 워크스 팀의 불참을 선언하며, 공식적으로는 WRC로부터 물러난다. 이 기간 동안 스바루는 통산 3회의 매뉴팩처러즈 우승을 따냈다.


한국에는 2010년 1월에 론칭하여, 동년 5월에 레거시 설룬과 아웃백, 포레스터 등의 SUV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뛰어난 성능의 4륜구동 시스템을 적극 마케팅에 활용하였으나, 엔화 불안정과 판매 부진을 이기지 못하고 2013년 1월, 한국을 떠나고 말았다. 스바루 코리아는 철수하기 직전인 2012년 12월까지 총 1700대 가량의 차를 판매하였다.



스바루와 다른 승용 4WD, 복서엔진을 주력으로 판매하는 메이커들의 판매량 추이(자료 출처: 한국 수입 자동차 협회(KAIDA) 통계)


스바루, 차는 괜찮았는데, 왜 부진을 면치 못했을까?


스바루의 차들은 구미권에서 ‘동양의 볼보’로 불릴 만큼 안전성과 신뢰성이 뛰어나고, 성능 또한 걸출하여 Motor Trend, Car and Driver, edmonds.com, Kelley Blue Book 등의 각종 자동차 저널에서 아낌없는 찬사를 받고 있다. 그리고 북미에서는 가장 ‘감가상각이 적은 메이커’로 수 차례 선정되기도 한 전적이 있다. 한국의 자동차 저널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스바루 차들은 항상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그렇게 좋은 차를 만들던 메이커임에도 불구하고, 스바루는 한국에서만큼은 유독 고질적인 판매 부족에 시달리다 결국 철수해야만 했다. 왜 제품은 우수한데 판매는 부진했을까?

떠나야 했던 이유, 그 첫 번째: 인지도의 부족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스바루는 매우 낯선 이름이다. 자동차의 주된 수요 계층인 기성세대에게는 모회사인 ´후지 중공´이라는 이름이 더 잘 알려져 있다. 스바루라는 이름은 젊은 세대에게나, 기성세대 모두에게 낯선 이름이다. 한국의 자동차 애호가들에게도 스바루의 세부 모델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인들은 차를 고르는 데 있어서, 기술력보다도 중시하는 요소가 있다. 바로 ´이름 값´이다. 한국의 수입차 시장은 이런 ´이름 값´ 따지기가 심한 시장중 하나이다. ´남이 알아주는´차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특성 상, 인지도가 밀리는 차량은 상대적으로 시장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인지도를 만회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그 회사의 이미지를 한 번에 표현해줄 수 있는 ´얼굴 마담´, 즉 ´이미지 리더´ 모델의 출현이 절실하다. 스바루는 그 이미지 리더를 충분히 맡기고도 남을 만한 모델이 하나 있었다. 바로 ´임프렛자 WRX STi´였다. 하지만 스바루 코리아는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끝내 임프렛자를 내놓지 못했다. 스바루는 한국에서 자신들의 이미지를 표현해 줄 이미지 리더를 데리고 오지 못한 것이다.



WRC의 피드백으로 완성된 스바루 기술력의 집대성, 스바루 임프렛자 WRX STi. 308마력의 2.0리터 4기통 터보 복서엔진과 4륜 구동 시스템으로 무장했다.


그 두 번째: 광고


스바루는 한국에서의 마케팅을 할 때, 겨울에 자사의 자동차로 스키 슬로프를 오르는 이벤트를 열었다. 스바루 4륜구동의 걸출한 성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이벤트였고 브랜드의 이미지 제고에도 기여했다. 판매량에도 상당히 영향을 주었다. 이 이벤트 이후로, 소형 SUV 포레스터가 조금씩 인기를 얻게 되어, 스바루 코리아의 차종 중 한국시장에 가장 빠르게 안착했다. 평균 40~50대의 판매량을 기록하는 포레스터는 스바루 코리아의 효자모델이 되어주었다. 이쪽의 사례는 그래도 성과가 있는 사례이다. 하지만 후술할 광고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광고의 세계에서는, 잘 되는 광고가 있고, 안 되는 광고가 확연히 존재한다. 잘 되는 광고들의 공통점은, ‘확실한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반대로, 안 되는 광고들의 공통점은 ´제원과 기능을 설명하려 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동안의 자동차 광고에서는 어떤 차가 됐던지, 이런 식의 광고를 끝끝내 유지한다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바뀌었고, 더 이상 그런 광고는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이러한 양상을 제대로 이용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던 메이커가 바로 재규어였다. 재규어는 2007년, 새로운 XK를 출시하면서 홍보의 목표를 하나로 축약했다. 바로 ´고져스(Gorgeous)´. 그것 하나 뿐이었다. 재규어는 영상이 돌아가는 동안 제원이나 기능에 대한 것은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저 그걸 타고 있는 ´고져스´한 이들이 재규어와 함께하는 고져스한 모습만을 보여줄 뿐이다. 그 결과로 신형 XK는 열렬한 반응을 얻게 되었고, 재정 문제로 사세가 기울어가던 재규어를 부활시키는 신호탄이 되었다.



현대 제네시스 쿠페의 신문광고. (출처:현대자동차 홈페이지)


이런 점을 미루어 볼 때, 한국에선 초창기의 제네시스 쿠페 티저 광고가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단 15초 짜리 티저 광고에, 모든 것을 실었다. 후륜 구동임을 한 눈에 표현하는 파워슬라이드, 차가 멈추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인생은 짧다"라는 짧고도 강렬한 캐치프레이즈로 제네시스 쿠페의 이름을 알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한국인들은 이미 이 광고 하나만으로도 광고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하지만 스바루는 철수하는 그 날까지 ´4륜 구동´을 제외한 다른 쓸만한 캐치프레이즈를 찾지 못하고 떠나갔다.


그 세 번째: 상대적으로 떨어졌던 상품성과 경쟁사 대비 높은 가격


제품의 라인업도 넉넉치 못했다. 중형 세단 ´레거시´, 그 레거시를 베이스로 만든 크로스오버 비클인 ´아웃백´, 그리고 임프렛자를 베이스로 만든 SUV인 ´포레스터´가 전부였다. 사실 이 라인업은 북미 시장에서의 잘 팔리는 모델들만 뽑아서 포진시킨 것이다. 한 가지 실수를 범했다면, 미국 시장용 모델을 들여왔다는 점에 있다. 어느 메이커가 됐던 간에, 미국 시장에 투입되는 모델들은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인테리어를 더욱 투박하게 꾸미고 세부적인 옵션 사항을 많이 빼게 된다. 한국 시장은 세부적인 옵션과 화려한 인테리어 등에 특히 민감한 시장이다. 이런 시장에서 미국 시장용 모델을 그대로 판매하면 가격 상에서의 경쟁력은 갖추게 돼도, 상대적으로 상품성이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가격도 문제였다. 스바루의 모델들은 동급의 다른 일본 모델들에 비해 항상 가격이 비쌌다. 진출 첫 해인 2010년도만 해도, 주력 모델인 중형 세단 레거시 2.5의 가격(당시 3690만원)은 동급인 도요타의 캠리 2.5(당시 3490만원)보다 200만원이 비쌌다. 다른 동급 모델인 혼다 어코드 2.4(당시 3590만원)와는 100만원이 차이가 났다. 엔화가 내려가면서 다른 일본 메이커들이 가격을 내릴 동안, 스바루는 가격을 내리지 못했다. 그 이유는 네 번째 단락에서 후술하겠다.


그 네 번째: 격변하는 한일 양국의 경제상황


여기까지 글을 진행시키면서 스바루의 낮은 인지도와 한국 시장의 성격을 들어, 이미지의 중요성을 간과한 스바루 코리아를 성토하는 듯한 논조로 진행이 됐지만, 사실 스바루 코리아는 시작부터 상황이 좋지 못했다. 그 이유는 바로, 스바루 코리아의 불안한 자본 구조가 문제였다. 스바루 코리아는 지산 모터스와 후지 중공 간의 공동 출자에 의한 합자 법인으로 형성되었다. 소위 말해서 ´장사 밑천´이 다소 부족한 상황이었다.


거기다 엔화는 합자 법인을 만들기 시작한 2008년도에, 미국발(發) 금융위기 때문에 종전의 900원 선에서 갑자기 1700원 대까지 올라와버리고 말았다. 2배 가까운 환율 상승 때문에, 수익률이 높은 모델을 팔아도 수익이 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당장 단기간의 수익성 향상에 몰입할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이 사업 내내 재정 적자에 시달려야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 넉넉치 못한 자금 사정 때문에, 스바루 코리아는 융통성있는 자금 운용이 불가능했다. 악화일로를 걷고 있던 재정상황과 그로 인한 사업 마인드의 약화, 시장에서의 인지도 부족이라는 온갖 악재가 겹쳤다. 그래도 스바루는 포레스터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켜, 고정적인 판매량을 어느 정도 확보는 하고 있었다. 악재 속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던 그들은, 후술할 원인 때문에 결국 한국 시장을 떠나고 만다.


그 다섯 번 째: 후쿠시마 원전사고


뜬금없이 자연재해가 웬말이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야말로 스바루가 한국시장에서 철수하게 되는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일본 제조업의 피해 규모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전력 부족에 의한 코스트 상승과 공급 차질 등으로 자동차 생산이 발목을 잡혀 버렸다. 주문을 받아도, 차를 생산해서 넘겨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다른 일본 메이커는 이미 충분히 기반을 다진 시장이 존재하고, 물량의 융통성을 가질 수 있었으나, 스바루는 당시 한국 시장에 진입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포레스터가 SUV 방면에서 조금씩 시장을 형성해주고 있었지만, 스바루는 아직 한국 시장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지 못한 때였다. 이런 때 물량을 제때 공급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 상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거기다 방사능에 대한 공포 때문에 일본산 자동차들은 제 1순위로 매도당할 수 밖에 없었다. 국내외로 일본 제품에 대한 불신과 방사능 오염에 대한 공포가 급속도로 번지고 있던 상황에서, 기반이 부족했던 스바루 코리아는 더 이상 사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지난 2012년 12월, 스바루는 돌연 영업 정지를 선언, 철수하게 되었다.



스바루의 소형 SUV 모델 포레스터. 당시 스바루 코리아의 효자 모델이었다.


한국에 다시 돌아올 가능성은?


불안한 경제상황과 한국 시장에서의 냉담한 반응 때문에 스바루가 근시일 안으로 재진출을 시도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원전 사고와 그에 따른 악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적어도 ´방사능에 대한 공포´가 사그라들기 전 까지는, 일본의 제품이 한국시장에서 선전하는 것을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원전사고를 차치하고 보더라도, 지산 모터스의 실패를 곁에서 지켜본 수입업계는 스바루의 수입 및 판매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낼 것이며, 그렇게 좋지 못한 성적표를 들고 떠나간 메이커는 제품의 성격이나 메이커의 성향 전반을 완전히 뒤집어버리지 못하면, 한 번 참패했던 시장에 겁 없이 다시금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의 시트로엥처럼 말이다.


한국이라는 좁고도 특수한 시장에서, 스바루는 자기 자신의 설 자리를 착실히 마련하지 못했고, 한일 양국의 불안한 경제상황 때문에 적자 경영에 시달렸으며, 그로 인해 이렇다 할 행보를 보이지 못하다 본국의 원전 사고로 인해 결정타를 맞고 물러나버렸다. 스바루는 한국 시장에서 ´제품만 잘 만든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제조업의 어두운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실례가 되어 버렸다. 자동차를 고르는 사람의 선택지 하나가 사라져 버린 것이 못내 아쉽지만, 스바루를 원하는 사람은, 스바루가 다시금 와신상담하여 한국을 다시 찾아 오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을 듯하다는 씁쓸한 결론에 도달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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