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의 터닝 포인트, XK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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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의 터닝 포인트, XK 이야기
  • 박병하
  • 승인 2017.08.3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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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에 벌어진 영국 자동차 산업의 몰락한 이래 부활에 성공한 재규어. 재규어는 현재, 롤스로이스, 벤틀리, 애스턴 마틴, 맥라렌, 그리고  한 지붕 아래 사는 랜드로버와 함께, 오늘날 영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제조사들 중 하나로 부상했다. 재규어는 1922년, 공학도이자, 이륜차 애호가였던, 윌리엄 라이온즈(William Lyons)와 윌리엄 웜슬리(William Walmsley)가  영국 잉글랜드 랭커셔 주에 위치한 블랙풀에서 `스월로우 사이드카 컴퍼니(Swallow Sidecar Company: SSC)`라는 이름의 소규모 사이드카 제작소를 세우면서부터 시작, 후에 자동차 기업으로 전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기업으로서 재규어의 역사는 굴곡이 꽤나 큰 편이었다. 자동차 제조사로의 전환 과정에서 공동 창업자인 웜슬리와 결별해야만 했고, 제 2차 세계대전이 몰고 온 후폭풍을 감내해야 했다. 60년대 후반에는  영국 자동차 산업의 몰락에 결정타를 날린 ‘브리티시 레일랜드(British  Leyland Mortor Company)’로 편입되는 수모를 겪었다.


또한, 브리티시  레일랜드로 편입된 것도 모자라서 홀로 재규어를 이끌어 왔던 창업주 윌리엄 라이온즈(William Lyons)의  은퇴 선언이 잇따르며, 재규어는 부진의 늪에 빠져들었다. 결국 1989년, 한창 덩치를 불리고 있었던 포드에 합병되며 재기에 성공하는  듯 했다. 그러다 2000년대 후반을 강타한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포드가 ‘하나의 포드’라는 기치 하에 대대적인 몸집 줄이기에 나서는 과정에서 재규어를 랜드로버와 함께 인도의 타타모터스에 매각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재규어의 100년에  가까운 역사는 부침이 많았고, 큰 위기가 자주 닥쳤다. 그리고  그 위기 속에서 등장한, ‘터닝 포인트’의 역할을 했던 자동차들의  존재 덕분에 재규어는 다시 숨을 고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역할을 수행했던 자동차들  중 ‘XK’라는 이름이 두 번에 걸쳐 나타났다.


‘아름다운 고성능’이라는  명제를 성립시키다 - 재규어 XK120

제 2차  세계대전의 종식 이래, 당시 ‘SS 자동차(SS Cars Ltd)’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던 SSC는 사명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나치 독일의 무장친위대(Schutzstaffel)때문이었다. 그들은 ‘SS’라는 이니셜로 불렸고, 2차대전 중 그들이 벌인 온갖 악행때문에 유럽은 물론, 전세계인의  공분을 산 악한들이었다.



자사의 이름이 전세계의 증오와 공분을 산 악당들의 이름이 겹친다는 것은 반드시 피해야 할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SSC가  선택한 두 번째 이름이 바로 ‘재규어’였다. 재규어라는 이름은 전간기에 자동차 제조사로의 전환 과정에서 출시한 모델이었던 ‘SS 재규어’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재규어의 역사에서 ‘XK’라는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재규어의 역사에 처음 등장한  XK는 ‘XK120’. 재규어 XK120의 등장은 전후 재규어의 주력이 될 새로운 세단 모델의 개발이 지연됨에서 비롯되었다. 신모델의 개발이 지연되면, 소비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게 될 것임이  자명했고, 신형의 세단 모델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엔진과 섀시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한 테스트 베드 역시 필요했다. 그리하여 1948년, 런던 모터쇼를 통해, 재규어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해 준 첫 번째 XK인 XK120이  비로소 공개되었다.



재규어 XK120은  공기역학을 반영한 미려한 곡선과 그로부터 비롯된 아름다운 스타일을 지닌 2인승 로드스터 모델이었다. 120이라는 숫자는 이 차의 제원 상 최고속도인 120mph(약 193km/h)를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는 1948년이었다. 당대의 기준에서 이 속도는 경주차에 준하는 속도였고, 당대의 양산차에게는 그저 꿈만 같은 속도였다. 그런데 웬 조그만  자동차 제작사가 어느 날 갑자기, “120mph를 돌파할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XK120이 등장하자, 당시 영국의 언론은 XK120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120mph를 넘기는커녕, 기계의 신뢰성부터 걱정된다”는 식의 의심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XK120에 대한 언론의 의심은 재규어의 주인이자, XK120의  설계자이기도 한 윌리엄 라이온즈를 격노하게 만들었다. 그는 언론의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벨기에의 Jabbeke 지역에 위치한 왕복 2차로 도로를 폐쇄하여 XK120을 위한 코스를 만들었고, 그 곳에 XK120의 성능을 의심하는 취재진을 모두 불러 모으고는, 자신이 직접 운전대를 잡고 성능 시연에 나섰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이 날 성능 시연을 하면서 기록한 최고속도는 본래의 목표이자, 차명의  유래이기도 한 120mph가 아닌, 132mph(약 213km/h)에 달한 것이었다! 이는 당시 양산차 중 가장 빠른  기록이었다. 불가능할 것으로만 여겨졌던 XK120의 성능  시연은 의심 많던 영국의 언론을 놀라게 하는 한 편, 재규어 자동차의 이름을 길이 드높이게 만든 대사건으로  통한다. 그리고 재규어를 ‘아름다운 고성능 자동차’를 만드는 기업으로서 각인시키며, 자동차 기업으로서 재규어의 전환점을  마련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XK120은 이후 등장하게  될 XK시리즈는 물론, 1950년대 르망24시에서 통산 5회 우승을 따낸 `재규어 C-타입`과 `재규어 D-타입` 등의 명차를 만들어 낸 밑바탕이 되었다.


달라진 재규어의 첫 번째 발걸음- XK(2세대, X150)

2000년대, 재규어는 포드 산하의 PAG(Premier Automotive Group)에 편입된 이후, S-타입을  내놓으며 재기에 성공할 것으로 여겨졌으나, 포드 몬데오와 플랫폼을 공유했던 X타입의 상업적 실패로 인해 또 다시 부진의 늪에 빠졌다. 게다가  그마저도 기존 제품군의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품질 문제로 인해 여의치 않았다. 이 때 재규어에게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은 참신함과 혁신성으로 시선을 사로잡아, 기업의 쇄신을 한 눈에 보여줄 수 있는 신차였다.




재규어가 인도 타타모터스로 넘어가기 전이었던 2005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의 재규어 부스에서 새로운 스타일의 쿠페형  컨셉트카가 나타났다. 이 쿠페는 당시 클래식한 이미지에 매몰되어 있었던 재규어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현대적인 스타일링과 정교함으로 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 컨셉트카의 이름은 ALC(Advanced Lightweight Coupe). 가벼운 몸무게를 가진  2+2 구성의 그랜드 투어러(GT)였다. 이  컨셉트카는 동년 하반기에 열린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XK(X150)’라는 이름을 얻고, 선대인 ‘XK8(X100)’의 뒤를 이었다. 위기를 맞은 가문을 구원해야 할 막중한 임무를 띄고 있었던 것이다.



ALC 컨셉트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XK는 등장 당시부터 미디어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고, 당시 재규어를 회복시켜 줄 기대주로 떠올랐다.  2세대 XK에는 이안 칼럼의 손길을 입은 새로운 디자인은 물론, 공학적 요소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달라진 재규어 라인업의 모습을  최초로 제시한 자동차로서 의미가 깊다. 또한, 신형 XK의 투입을 전후하여 제품은 물론, 서비스와 마케팅에 이르는 모든  부문에서 대대적인 체질개선이 시작되었다.




외관 디자인에서는 이안 칼럼의 진두지휘 하에 발현되고  있는, 오늘날 재규어 자동차의 디자인이 보여주고 있는 매끈하고 절제된 선과 면의 처리에서 오는 현대적인  감각이 살아 있으며, 옛 E타입을 떠올리게 하는 늘씬한 프로포션은  단종된 지금도 여전히 우아하다. 실내에서도 오늘날 재규어 자동차들에 반영된 변화상을 확인할 수 있다. 과거 재규어들의 고전적인 분위기를 지우고, 단순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과 함께, 한층 향상된 조립 품질을 보여주며, 제대로  된 고급 자동차로서의 모습을 갖췄다.



2세대 재규어 XK는 재규어의 기술 발전 측면에서도 뜻  깊은 모델이다. 오늘날 재규어의 장기로 통하고 있는 알루미늄 차체구조 설계를 발전시키는 데에는 XK의 설계 경험이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2세대 XK는 플래그십 세단 XJ에 이어, 두  번째로 알루미늄 합금제 차체 구조를 적용한 자동차였기 때문이다. 가볍고도 탄탄한 알루미늄 기골을 가진  XK는 경쟁 모델인 BMW 6시리즈 쿠페나 메르세데스-벤츠 SL클래스 등에 비해 한층 가벼운 몸무게를 지녔다. 이 덕분에 당시 경쟁 차종에 비해 동력성능이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경쟁  차종에 비해 밀리지 않는 가속 성능과 운동성능을 자랑했다.


재규어 XK는  데뷔년도인 2007년부터 단종되는 2014년까지, 총 두 차례에 걸쳐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다. 2009년에는 범퍼의  디자인을 변화시키면서 알루미늄 소재를 대폭 적용한 5.0리터 V8 엔진을  탑재하여, 기존 4.2리터 V8 엔진에 비해 더욱 강력해진 동력성능을 갖게 되었다. 고성능 모델인 XKR의 경우, 초기형 XKR은 420마력의 성능을 내었으나, 새 엔진을 통해, 무려 90마력이나 향상된 510마력의  강력한 동력 성능을 갖게 되었다. 또한, XKR을 뛰어넘는, 더욱 강력한 모델이자, 오늘날 재규어 R-S 라인업의 시초라 할 수 있는 XKR-S를 선보였다.



2011년에는 마지막 XK이자, 현재까지는 최후의 XK이기도 한,  두 번째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등장했다. 헤드램프의 디자인을 당시 재규어 라인업이 취하고  있었던 날카로운 스타일로 변화를 주었고, 편의사양을 대폭 개선했다. 여기에 2012년에는 선대 XKR-S을 뛰어넘는, 더욱 강력한 XKR-S를 선보였다.  XKR-S는 기존 XK의 기골과 하체를 대폭 보강하고, XKR보다  더욱 강력한 550마력이라는 고출력을 자랑했다. 2011년에  등장한 마지막 XK는 2014년까지 생산되었고, F타입의 등장과 함께, 자리에서 물러났다.



위기의 재규어를 구하는 전환점이 되어주었던 두 대의  XK는 이후에도 재규어에게 있어, 기념비적인 자동차로 재규어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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