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라인, 분노의 질주 그리고 폴 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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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라인, 분노의 질주 그리고 폴 워커
  • 김상혁
  • 승인 2017.11.29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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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단어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들이 있다. 대체로 향수의 연상, 기억의 연장 또는 과거 회상 등이 입혀지면서 의미를 지니게 된 것들이다. 자동차에 빗대어 예를 들어보면 스카이라인, 분노의 질주 그리고 폴 워커를 떠올릴 수 있다. 스카이라인을 보면 폴 워커를 떠올리고 이와 동시에 분노의 질주 속 한 장면을 머릿속에 그린다. 혹은 분노의 질주 영화를 보며 폴 워커와 스카이라인의 케미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2001년에 영화 ‘분노의질주’가 등장했을 때 자동차 마니아들은 물개 박수 치며 열광했다. 그간영화에서 자동차는 달리고 부서지고 폭파되는 소재로 사용되는 것이 주요 임무였지만 분노의 질주는 철저하게 자동차를 위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본연의 임무인 달리기부터 디자인, 드라이버와 교감, 거기에 자동차와 사람이 만들어내는 스토리까지 더해지면서 심장을 마구 두드려댔다. 특히 자동차 한, 두 대가 나와서 영화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별, 브랜드별, 사이즈별 자동차가 시시때때로 나타나며 눈 호강까지 시켜줬다.

영화의 배경이 미국이다 보니 쉐빌이나 카마로 등 미국물 흠뻑 먹은 차량이 근육 빵빵 빈 디젤과 아웅다웅하기만할 것 같았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유럽과 일본 등의 차종도 다수 내비치면서 영화는 밸런스를 유지했다. 심지어 시리즈 중에서 현대자동차가 직접적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분노의 질주에서 등장한 수많은 자동차들 가운데서 단연 집중 조명을 받은 녀석이 닛산 스카이라인이다. 분노의 질주에서 폴 워커의 애마로 등장하여 깊고 쭉쭉 뻗은 직선 라인과 매끈한 눈매, 적절한 볼륨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자동차 마니아뿐 아니라 자동차에관심이 없던 사람조차 감탄사를 내뱉게 했던 녀석이다. 여기에 폴 워커의 훤칠한 외모와 성격, 극중 케미까지 더해져 현재 13세대에 이르는 스카이라인이 세대를망라하고 ‘폴 워커 = 스카이라인’이라는 이미지가 공식화됐을 정도다.

영화 속에서 잠깐씩이나마 다른 차량을 몰았던 폴 워커였지만 자동차와 가장 인상 깊은 케미를 발휘했던 것은 역시스카이라인 GT-R이다. 극 중에서 조카에게 자신의 차를타라고 이야기하는 대사가 있을 정도로 애정이 담긴 차였다. 그렇다고 스카이라인 GT-R이 단순히 분노의 질주, 폴 워커의 애마이기 때문에 조명 받은자동차는 아니다.

스카이라인 GT-R은 제조사인 닛산에게 있어서도 특별한 존재였다. 스카이라인은 본래 닛산이 아닌, 프린스 자동차 공업에서 만들어진자동차였고, 훗날 닛산이 프린스 자동차를 인수하면서 닛산의 품에 들어 왔다. 프린스 자동차 공업사는 이전부터 자동차 경주에서 포르쉐를 따라잡겠다는 장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포르쉐는 자동차 경주 무대에서 막강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고 당연히 모든 이가 불가능이라 여겼다. 하지만 프런트를 약 20cm가량 늘리고 2리터 6기통 엔진을 얹어 서킷에 들어선 2000GT가 포르쉐를 추월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단 한 바퀴뿐이었지만말이다. 그 한 바퀴가 강한 동기 부여가 됐는지 단점을 보완하고R380으로 다시 무대에 올라 당당히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스카이라인 GT-R 역사의 첫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한다.

신인 가수나 배우는 연타가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한 번의 '반짝'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 후속곡 및 작품이 흥행해야 한다는얘기다. 마치 무명에 가까웠던 폴 워커가 ‘분노의 질주’와 후속편 ‘패스트 앤 퓨리어스’로인기 배우 반열에 오른 것처럼. 스카이라인도 신인 배우로써 두 번째 타석에서 홈런을 쳤다. 프린스 공업사를 품은 닛산은 뒷바퀴 굴림에 2.0리터 6기통 가솔린 엔진, 5단 수동 변속기를 조합한 스카이라인 GT-R을 내놓았다. 160마력의 최고 출력과 공차중량 1,100kg, 각 잡힌 디자인으로 ‘하코 스카’라는 애칭까지 얻으며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특히, 자동차 경주에서 3년간 49연승을기록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깔끔하게 ‘50’을 채웠으면 더좋았겠지만.

큰 인기는 얻었으나 판매량에서는 크게 재미를 보지 못했다. 거기다후속 모델은 배출 가스 규제에 막히면서 좌절해야 했고 한동안 암흑기를 맞이했다. 1989년 오랜 기간잠들어 있던 스카이라인 GT-R은 2.6리터 6기통 가솔린 트윈 터보를 얹어 280마력의 성능을 가지고 화려하게부활하게 된다. 또한 닛산의 자랑거리인 ATTESA - ETS(Advanced Total Tractoin Engineering System for All-Terrain / Electronic TorqueSplit)를 적용해 상황에 따라 각 바퀴에 적절한 구동력을 배분하면서 운동성능도 강화했다. 판매량도약 4만 대 이상이 팔려나갔고 자동차 경주 무대에서도 승승장구하며 ‘재패니즈고질라’로 불렸다. 하지만 이어진 R33 모델이 또 한번 실망감을 안겨준다. 아이러니 한 것은 폴 워커의차고에 스카이라인 R33 Spec R 모델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

R33의 흑역사를 다시 뒤집은 폴 워커의 애마 닛산 스카이라인 GT-R R34는 2,600cc 트윈 터보 엔진을 얹어 280마력의 성능을 가지고 있지만 분노의 질주에 등장했던 폴 워커의 애마는 튜닝을 거쳐 약 550마력의 성능을 발휘하는 사양이었다. 영화에서 사용됐던 폴 워커의스카이라인 GT-R은 얼마 전 경매를 통해 약 10억 원에새 주인을 맞이했다.

스카이라인 GT-R R34 후속 모델로 R35가 출시됐지만 카를로스 곤이 스카이라인과 GT-R을 분리하면서더 이상 닛산 GT-R에는 ‘스카이라인’의 이름이 붙지 않는다. 스카이라인GT-R의 혈통은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으나 지난 2013년 11월 30일, 폴 워커의스카이라인 GT-R을 더 이상 볼 수 없듯이 ‘스카이라인 GT-R’은 향수의 연상, 기억의 연장 혹은 과거 회상으로 존재하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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