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에서 ‘그리드 걸’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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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에서 ‘그리드 걸’이 사라진다
  • 김상혁
  • 승인 2018.02.05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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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자동차연맹(Federation Internationale de l'Automobile, 이하 FIA)이 개최하는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대회 포뮬러원(Formula One World Championship, 이하 F1)​에서 그리드 걸이 사라진다. FIA가 그리드 걸을 퇴출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리드 걸은 F1을 즐기는 하나의 요소로 이어져 왔다. FIA가 현재 시대적인 상황과 사회적 규범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내린 결정이다. 이러한 F1의 결정은 최근 성추행, 성희롱 등을 고발하고 지지하는 미투(Me Too) 운동 확산과 궤를 같이하며 많은 지지를 얻었다. 그리드 걸이 미투 운동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흥행을 위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다는 불만이 이전부터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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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과 여권신장에 대해 각종 캠페인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F1은 그리드 걸 제도를 폐지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F1의 브랜드 가치와 사회적 규범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반발하는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논란의 중점에 선 '그리드 걸' 본인들이다. 이사벨라 워크락(Isabella Worklock)은 F1이 그리드 걸 제도를 폐지 한 것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내며 "몬테카를로에서 그리드 걸로 활동했던 일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는 글을 SNS에 남겼다.​

​또 다른 그리드 걸 루시 스톡스(Lucy Stokes) 역시 “나는 내 직업을 사랑한다. 나는 존경받고 있으며, 내가 속한 팀을 대표하는 것이 자랑스럽다. 페미니스트들이 우리를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며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 로렌 제이드 포프도 “우리 생각을 묻지도 않고 우리를 변호한다. 덕분에 일자리를 잃었다."라며 반발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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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이사벨라 워크락, 루시 스톡스, 로렌 제이드 포프 SNS


그리드 걸은 국내에서 흔히 ‘레이싱 걸’로 불린다. 그늘이 없는 서킷 환경에서 대형 우산으로 드라이버들에게 그늘을 제공하는 역할과 함께 소속 팀의 유니폼과 피켓 등을 들고 팀을 홍보하는 등, 팀의 일원으로 인정받는다. ‘레이싱 걸’이라는 용어도 특정 프레임 논란과 시대적 흐름에 맞춰 ‘레이싱 모델’로 변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레이싱 퀸’이라고 불리며 1960~70년대 모터스포츠의 상업적인 홍보 효과를 위해 시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최대 자동차 경주 F1에도 1960~70년대를 기점으로 안착하여 반세기에 다다르는 전통을 가진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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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F1 그리드 걸 퇴출로 인해 커지게 될 파장이다. 일차적으로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그리드 걸들은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이고 부가적으로 국내 레이싱 모델이나 각종 스포츠 행사에 등장하는 라운드 걸, 모터쇼 레이싱 모델 등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스포츠 업계 양성평등을 위한 모금 단체 ‘더 우먼 스포츠 트러스트(The Women's Sport Trust)’는 F1처럼 격투기, 복싱, 사이클 등에서도 여성을 내세우는 것은 재고되어야 할 문제라며 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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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드 걸 퇴출 논란은 아직까지 국내에선 조용한 편이지만 불길이 커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과거 국내에서 열린 자동차 모터쇼를 두고 자동차를 위한 모터쇼인지, 레이싱 모델을 위한 모터쇼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과도한 노출과 마케팅으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최근에는 모터쇼에서 노출보다는 자동차를 부각시키는 의상에 엠블럼이나 로고를 크게 새긴 모델이 등장하거나 남자 모델을 배치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성 상품화 논란으로 질타를 받으며 개선 방향을 강구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기업 차원의 마케팅 효과, 모터쇼 주최 측의 이미지를 개선 한 것이다.​

​이처럼 F1의 그리드 걸 퇴출 문제도 마스코트 모델, 남자 모델, 어린이 모델 등 다른 방식의 대책을 마련하고 이뤄졌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단순한 그리드 걸 제도 폐지는 직업의식과 자부심을 가지고 충실히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기존 그리드 걸의 일자리만 뺏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남성 위주의 스포츠 분야에서 신체 노출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이와 같은 직업이 배척된다면 향후 여성들의 입지도 제한된 프레임에 갇히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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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이 결정 내린 그리드 걸 제도 폐지는 양성평등이라는 취지에서는 시대적, 사회적 흐름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후 대처 면에서는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한편, 그리드 걸이 사라진 F1 시즌은 2018년 3월 25일 호주 그랑프리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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